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끓나니
"이 시조는 이순신 장군님이 한산도에서 쓰신 시조입니다. 그 떄 당시 장군님은 선조에게 부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장군은 고민합니다. 전력이 열세인 상황에서 부산본진을 공격한다는 건 자살행위이기 떄문입니다. 거기다가 판옥선은 평저선이라 수심이 깊은 부산 앞바다의 파도를 이겨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장군님은 결국 명령을 어기고 투옥됩니다. 이 시조엔 장군님이 백성과 병사들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장군님은 전쟁에서 자식들을 모두 잃습니다. 전란 중에 자식을 앞세운 사람이 어찌 나하나 뿐이겠는가? 하고 장군님은 냉정을 유지 하십니다. 근데 잘 보면 일장검이 미세하게 떨립니다. 칼이 운다는 말은 이래서 나온 것입니다. 자식을 잃고도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는 장군님의 모습이 정말 애절합니다. 이런 감성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습니다."
남자가 음악을 들려줍니다.
"김 범수의 약속이라는 노래를 들어보면 이런 남자들의 감성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보내고 웃으며 눈물을 떨구는 남자의 슬픔입니다."
여학생들 중에는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있다.
"요즘 젠더 갈등이 심각하죠? 여러분들은 이런 남자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네~~"
"장군님의 칼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과 똑같은 것이 뭐라고요?"
"남자가 웃으며 눈물을 참으려고 하는 것이요."
"역시 우리 례쁜 학생들이에요."
"선생님! 근데 질문 있어요."
여학생 하나가 손을 들고 질문한다.
"시조 한 수 가르치시는데 1시간 가까이를 쓰시는 이유가 뭔가요?"
선생님이 빙긋 웃습니다.
"20년 전이었나? 제가 강사를 하다가 쫓겨났죠. 제 은사님이 그러셨어요. 선생은 단지 지식만 전달하는 직업이 아니다. 인문학을 가르치고 항상 참되거라 바르거라 해야 된다고요. 이순신 장군의 애국심과 애민정신을 이해하면 나도 공감능력이 생기고 남을 귀히 여기게 된다. 인문학이 무너지면 그 나라는 망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그땐 내가 너무 철이 없었어요. 당신 자식이나 감성교육 시키세요. 내 새끼는 똑바르다고요. 라고 삿대질하던 학부모의 말이 내 가슴을 찌르더군요. 나 하나 똑바로 한다고 해서 바뀌는 세상이 아니더군요."
"아아"
"지금은 그냥 자본주의가 만연해있는 상황에서 선생으로서 나 하나만이라도 인문학을 가르쳐야 겠다. 라고 다짐하고 여러분들에게 감성강의를 하는 것입니다. 강의료도 받지 않고요."
선생님이 인사를 꾸벅 한다.
"20년 전 쯤이었을 거예요. 깡패처럼 생긴 유단자가 나에게 이렇게 협박했어요. 내가 행복하려면 내 주변사람부터 행복하게 해줘라. 내가 하면 불륜이고 남이 하면 로맨스다. 그래서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그 분이 누구인 가요?"
선생님이 자신의 가슴을 가리킨다.
"그 분은 지금 제 심장에서 살아요. 그리고 욕심에 빠질 때마다 나에게 발차기를 해요. 똑바로 해! 이 화상아 그러면서요."
학생들이 고개만 갸웃 거린다.
"여러분 우리는 화합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적이 아닙니다. 공부만 잘하면 되는 세상, 서울대만 가면 제일인 세상, 그러다 보면 공부만 잘하고 공감능력 전혀 없는 괴물이 탄생해서 이 나라를 어지럽힐 겁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거 하나만 기억하세요. 내가 행복하려면 내 주변사람부터 행복하게 해줘라. 그래서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