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트의 넋두리.. 답답해서 씁니다
ㅇㅇ
|2020.08.23 20:36
조회 203 |추천 1
저는 소위 말하는 '인기과' 전공의입니다.지금은 파업을 하고 있어요.
학생 때는 흉부외과에 동경을 가졌더랬죠.
두근두근 스스로 박동하며 전신에 혈액을 공급하는 심장!그 근육덩어리를 실제로 보거나 혹은 만져본 사람이라면누구나 동경을 안할 수가 없을 거예요.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흉부외과를 전공하면 스스로 폼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죠.나는 인체에서 제일 중요한 심장을 다루는 의사야!! 하고.
그러나 흉부외과 전문의를 따고 난 다음은요?개인병원 혹은 작은 병원에서 흉부외과 수술을 받으려는 환자는 거의 없습니다.결국 전공을 살려 일하려면, 대형병원밖에 일자리가 없을텐데요,얼마 뽑지도 않는 일자리에 과연 내가 들어갈 수 있을까요?(실제로 그 일자리에 뽑히는 흉부외과 의사는 얼마 되지도 않습니다.)
만약 대형병원에 남지 못한다면, 나는 어떤 의사로 살아가야 할까요?어차피 흉부외과 의사로 일하지 못할 거라면 구태여 힘들게 흉부외과를 전공할 필요가 있을까요?
'힘들게'라는 것은 얼만큼 힘든 걸까요?
흉부외과와는 비교도 안되게 편한 과의 전공의를 하고 있는 지금도,3월부터 8월까지 6개월 동안, 편안한 침대는 커녕숙소의 딱딱한 2층 침대에 머리를 누인 날도 손가락으로 꼽을 겁니다.1. 응급실 콜에 즉각 대응하기 위해서2. 숙소에 누우면 알람을 듣지 못하고 계속 잘 것 같아서3. 숙소까지 갈 기운도 없어서매일 병원에 있는 진료용 베드에서 잠을 청했죠.좀 더럽지만 머리는 3일에 한번 감고 잠은 하루에 4시간 정도 자요.흉부외과를 전공했다면 분명 이보다 훨씬 힘들었을 겁니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머릿속에 어렴풋한 걱정이 있었어요.언젠가 내가 불의의 사고로 흉부외과 수술이 필요하게 된다면 과연 제때 수술을 받을 수 있을까...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전공을 강제로 정하게 할 수는 없으니,결국 해결책은 국가만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국종선생님의 외상의료센터처럼, 어떤 의료행위들은 행위를 하면 할수록 적자가 늘어납니다.흉부외과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1달에 한 명 발생할지 모르는 흉부외과 환자를 위해,적자를 감수해가며 흉부외과를 운영할 의지가 있는 병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병원의 뒤에는 마땅히 국가가 서 있어야할 것입니다.
지금 시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강제로 기피과를 전공하도록 하는 정책이 아니라,기피과 전문의가 전공을 살려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입니다.
지금의 상태로는 흉부외과를 전공하도록 결심하는 동기가 오직 개인의 동경과 열정밖에 없습니다.그저 그런 의대생이 있기를 빌며 흉부외과 의사를 운에 맡겨 양성하지 마십시오.그저 의대생 숫자를 늘리면 확률이 높아질 거라며 의대생 숫자를 늘리지 마십시오.흉부외과를 전공하면, 흉부외과 의사로서 일하며 먹고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십시오.그래야 국민들도 제때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국민과 국가 모두에게 흉부외과 의사가 필요합니다.이것은 그저 일자리가 없다는 징징거림이 아니라,국가 운영에 필요한 의사 인원을 확충하기를 바라는 겁많은 의사인 국민의 의견 입니다.
+) 이것도 갑갑해서 써요서울에서 받을 수 있는 의료서비스와 지방에서 받을 수 있는 의료서비스가 차이가 난다면,지방에서 비슷한 수준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방병원들의 실태를 철저히 조사하고,의료기기의 충분한 보급을 시행하고, 의료인을 유인할 방책을 고안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의사를 더 뽑아야 한다는 게 저명하다면, 그래야겠죠.하지만 다른 대책 없이 의사만 더 뽑아서 지방에 강제로 묶어둔다고 의료서비스가 좋아질까요?
치솟는 서울집값을 잡기 위해 벽지에 주택을 잔뜩 지어두고 국민들에게 벽지에서 살라고 해봐야,벽지의 집값만 더욱 떨어질 뿐입니다.
또, 북한도 아니고, 더 뽑힌 의사들이 10년 동안의 강제복무에 순순히 응할 것 같습니까?순순히 응한다고 하더라도, 그 의사들과 함께 일할 간호사, 약사 등의 다른 의료인력과의료기기가 충분하지 않다면 그 지역의 의료전달체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요?
정말로 정부의 정책은 이것이 최선일까요?
지금 정부는 이러한 의문들은 모두 덮어놓고, 의사들의 의견에는 귀를 막은 채공공의대 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남원 공공의대 부지 토지 보상이 이미 끝났다는 둥, 도지사 추천 입학 전형을 만든다는 둥,흉흉한 말들이 나돕니다.
정말 국민을 위한 정책은 어떤 모습이어야 합니까?
몇몇 질나쁜 의사들에 대한 뉴스를 저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면허가 취소되어 마땅한 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압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의 투쟁에 대하여는 떳떳한 심정으로 부탁드립니다.가장 강한 것은 국민이기에, 고개 숙여 절박한 심정으로 부탁드립니다.부디 국민 여러분이 의사의 편을 들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