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현재 광주에서 거주중인 27세 남입니다. 어디가서 한 풀이할수도 없고... 답답한 마음에 여기에 적어봅니다.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는 직장 동료로 서울에서 만나 제가 생겨버려서 어머니가 21살때 저를 낳으시며 식도 못치르시고 외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에 골인 하셨습니다. 외가 이모들 말론 간, 쓸개 다빼줄것처럼 말해 8남매중 막내인 저희 어머니를 데려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술만 먹으면 어머니를 그렇게 때리십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폭력에 못이겨 돌잔치떄 받은 패물들을 들고 옷가지 몇개 챙겨 다시 어머니고향인 벌교로 돌아왔다고합니다.. 그렇게 몇년이 흘렀을까요.. 아버지께서 외가로 찾아오셔서 제가 6살떄 초코케익을 들고 오셨습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나네요.. 그 어린시절) 그렇게 어머니는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에 다시 재결합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친가가있는 광주로 내려와 친가에서 집을 해주셨는데... 할아버지는 술을 먹고 엄마 멱살을 잡으시고 자기 돈을 내놓으라고 하지않나.. 여전히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손찌검을 하시고.. 그래도 어머니는 버티셨는데.. 어느날 제 여동생이 태어나게 되고.. 아버지의 계속된 폭언과 폭력으로 인해 어머니는.. 저희를 고아원에 맡기셨습니다.. 꼭 데리러 오겠다는.. 엄마.. 엄마를 보며 울면서 엄마 가지마.. 제발.. 여기다 버리지마.. 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꼭 돈 벌어서 데리러 올게"라고 말씀하셨고, 전 울면서.. "엄마 꼭 와야되..?" 하며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고아원 생활은 이렇다 할 것도 없이 지옥과 같았습니다. 방안엔 화장실이 없어서 복도로 나가 불이 다꺼진 상태로 화장실을 가야했지만, 전 무서워서 참고 참다 결국 이불에 오줌을 싸버렸고.. 엄청 맞은 기억이 나네요.. 그 후로도 마찬가지였고요. 엄마 생각을 처음엔 엄마 언제올꺼야?.. 정말 죽고싶어 어린나이에 이런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3개월이 지나도.. 6개월이 지나도 오지않았습니다.. 그렇게 증오에 가득찬 감정만 남았고 사진하나 없지만.. 그리웠습니다. 미치도록학교에선 고아원다니는 새끼라며 무시당하고.. 고아원에서도 또래애들에게 무시당하고.. 가장행복했던 기억은 태권도를 다녔던 기억이네요.. 참 사범님이 잘 해주셧던.. 그렇게 정말 하루하루를 살다가.. 어느날 누군가 왔습니다. 바로 엄마가 저희를 찾으러와주셨습니다.. 저를 먼저 찾으시고.. 동생은 거의 신생아였기에 다른 곳에 맡겨져있었습니다. 증오하던 그런 감정.. 엄마를 보는순간 사르르 사라지며 엄마품에 안겨 엄청울었던 것 같습니다. 동생을 찾으러가니 동생도 다행히 잘보살펴지고 있었고, 걷기까지 하는걸 보고 또 울었습니다. 그렇게 엄마가 삼겹살을 사주고 엄마가 살고 계신곳으로 갔습니다. 단칸방에서 홀로.. 이제생각하니 더 슬프더군요..전 그날밤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너무 행복한데.. 엄마가 또 어디로 가버릴까봐.. 그렇게 새우잠을 자고 또 다시 다른학교로 전학을 가고 다시 아빠가 찾아와 또 도망다니게됩니다..
어머니는 또 무슨생각이신지 결국 다시 살림을 합치셨습니다.. 그런데 또 폭행이 이어지니.. 어머니는 동생만 앉고 비오는날 가버렸습니다.. 저를 놔두고.. 비가 그렇게 오는날.. 전 갈때도 없는데 아버지는 "뭐하냐 니도 니 애미 따라서 가라고" 하셨습니다.. 전 어쩔수없이.. 집을 나와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갈곳도 없이 하염없이 또 울며.. 봉선초등학교와 또또 분식이라는 곳을 계속 왕복했습니다.. 그러다 그 분식집 아주머니가 무슨일이냐며.. (항상 제가 자주 가던곳) 묻자.. 아빠가 엄마를 떄려서 도망갔다고 말을 했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주머니가 자기 집에서 등학교를 하며 팬티도 사주시고 거기에 있던 누나 옷도 입혀주셨습니다. 참 고마운분이죠? ㅎㅎ 그렇게 2주정도 흘러 어머니는 다시 절 찾으러 와주셨고 그동안 먹은것들 계산한다고하니.. 아주머니는 나중에 잘커서 한번 와달라고 하셨고.. 아직 한번을 못갔네요.. 하하
그렇게 어머니는 저와 동생과 함께 단칸방에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처음엔 아무것도 없어서 주인집아주머니가 김치를 주시며 전 그 쌀밥에 김치가 너무 맛있고 행복해서 지금도 기억에 남네요.. 3명이서 함께 살수있다는 자체가 너무행복했습니다.. 그런데 행복도 잠시 아버지가 또 어떻게 찾아냈는지 모르는데.. 찾아와서 물을 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습니다.. 저흰 어쩔수없이 문을 열어주고 가끔씩 폭행 또한 이어지고 경찰이 계속 출동햇죠.. 그렇게 제가 고2정도 되어 아버지가 여름날 술에 만취해서 어머니가 자기말을 안듣는다며 어머니 목에 칼을 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전 너무 놀라 게속 만류했고 아버지가 칼을 놓자마자 모든칼을 모아서 세탁기 뒤에 숨기고 대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제목을 졸랐고 어머니는 말리다가 넘어져 다치셔서 제가 이러단 큰일 나겠다 싶어 밖으로 아버지를 끌고 나갔습니다.. 그러다 계속 맞으니 그동안에 분노로 아버지를 잡고 엎어치기를 하고 경찰이 도착했습니다. 상황설명을 하고.. 아버진 귀가 조치 되었습니다.. 그후론 다행히 폭력이 많이 누그러졌습니다. 패륜적인 행동이었지만.. 제겐.. 어머니가 전부였기에 그렇게 행동하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운이 좋게 사범대에 합격하여 국어교육과에 재학하게 되었습니다. (안믿으시면 졸업증명서 첨부하겠습니다.) 타지로 가게 되어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LH저소득층 지원? 이런걸 받아서 저흰 처음으로 2개의방이 생겼습니다. 아버지가 집을 모르게 되어 더욱 행복하고 망므에 안심이 되었구요.. 대학에 가선 학비, 생활비, 방세, 책값을 벌기 위해 노가다를 방학 때 마다하며 버텼습니다. 그런데 동바리라고 건물 외벽 지지대 공사를 하는데 그만 10층에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6층정도에 외벽 안전망? 덕분에 쓸리기만 하고.. 앉아서 정말.. 오줌을 지렸습니다.. 아.. 죽는구나 그래도.. 어머니한테 의지안하고 혼자힘으로 게속 돈을 벌었습니다... 대학에서 공부가 집중이 되겠습니까.. 주말엔 술집에서 서빙하고 저녁엔 택배다니고.. 근데 친가에선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해야지 무슨 돈을 버냐.. 당장 월세 25만원.. 관리비.. 생활비.. 책값.. 등록금도 없는데 저런 이야기만 합니다..
친가 쪽이야기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친가는 돈이 많습니다. 물론 큰아빠에게 모든걸 투자하고있지만요.. 올해 4월에 아버지가 칼로 사람을 위협했다고합니다.. 대학다닐때.. 정말힘들때 도움 한번 주지도 않은 사람들이 우리집은 이혼했는데 저보고 합의를 보라고 합니다. 가서 .. 제가 돈이어딨고.. 얼굴도 이젠 보기싫은데.. 계속 전화가 새벽이고 아침이고 오후고 왔었습니다.. 제가 뭘해결할수있는것도 아닌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도와주는 사람하나없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이악물고 살아왔는데 그 희망의 한줄기 끈이 끊어진 느낌이들었습니다.. 정말 사람만나는게 무섭고 전화가 두렵고.. 삼촌은 절 죽여버린다니.. 어쩌니.. 술을 먹고 전화하고.. 스트레스를 너무 받으니 머리도 빠지고.. 결국 전 아무것도 하지않았습니다... 그냥 차라리 교도소에가서 정신좀차리라고.. 아빠란 존재가 저에겐 없었던것같습니다..
다행히 큰아빠가 피해자와 합의를 보고 교도소에 가지는 않게 되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어제 전화하셔서 우리가 집해줄테니까 정신좀 차리게 같이살라고 하십니다.. 엄마에게 말하니 안된다고 말씀하셨고, 저도 결사반대했습니다. 겨우 찾아온 평화인데.. 깨트릴순 없다고 생각하고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니 나중에 너 장가갈때 전세집 하나라도 해주신다고 같이 살라고 하십니다. 그냥.. 간간히 제가 찾아간다고 했습니다. 인연을 왜 안끊고 사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것같습니다. 당연히 전세집 받아내야죠? 우리 어머니는 나중에 어디서 살아요.. 한평생 저희둘 키우겠다고 일을 닥치는 대로 하셨는데.. 전 그래서 앞으로도.. 힘들긴 하겠고 금전적으로 풍요로울순 없어도 어머니의 입장에선 쓰레기가 되리라 다짐합니다.. 두서없이 수정없이.. 막 쓴글이라 죄송합니다.. 읽어주신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