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댓글들 감사합니다. 참 따뜻한 분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보다 힘든 분들, 제철 음식을 위해 버텨보란 분들, 소소하지만 기분이 나아지는 행동을 권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특히 기분이 좋았던건 글을 잘 쓴다는 댓글이었어요. 그냥 생각대로 쓴 글에 칭찬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어릴 때는 글을 쓰는 쪽으로 진학하고 싶었는데 포기 했다가, 성인이 되어서 글을 쓰자니 어디에 써야할지 모르겠어서 막혀 있는 상태입니다. 이 추가글을 보실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혹시 글을 쓸만한 곳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날씨가 더 추워지고 있네요. 올해의 끝이 다가온단 뜻이겠죠. 언제 또 약한 맘이 들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나쁜 생각은 최대한 하지 않으렵니다. 엄마 마음에 제가 또 대못을 박을 순 없으니까요. 우선 좀 일어나서 산책도 하고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다니는 정신과 외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나 찾아도 보구요. 이런 결심은 다 많은 분들의 위로와 격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언젠가는 좋은 일로 글을 쓸 수 있었음 합니다. 여러분께 제가 받은 위로는 언젠가 제가 만나는 다른 힘든 사람에게 베풀겠습니다. 댓글 써주신 많은 분들 하나하나 답댓글 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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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원래도 심한 우울증이 있어서 나가지도 않고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는데 요즘 들어선 한계 초과인것 같아요. 이 글은 얼마 전 미리 작성해서 제가 하는 커뮤니티 몇 곳에 올렸던 글 입니다. 써 놓고 몇 번을 읽어 봤는데 참 짧은 인생 어떻게 이렇게 살아 올 수 있나 싶어요. 요즘엔 밤에 드라이아이스나 매듭 묶는법을 검색하다가, 장소를 생각 하다가, 지옥에 있는듯이 괴로워 하며 밤을 새고 잠이 듭니다.
이 글이 장문이기도 해서 다 읽는 분들도 별로 없으실 것이고, 그저 그런 글로 묻혀 밀려나겠지만 부디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저를 도와주세요... 제가 조금이라도 살 의지를 갖게 도와주세요...
신이라는 존재가 정말 있는지 요샌 궁금해져요. 만약 신이 있다면 사람을 만들 때 어느정도 밸런스를 맞춰서 만들었을거 아니에요? 신은 인간에게 극복 할 수 있는 시련만 준다는 말이 있잖아요. 사람 사는게 시련의 연속이라는건 아는데 그 사이에 좋은 일들도 생기는게 사람 인생이잖아요. 보통은 그 좋은 일로 힘을 얻어서 시련도 극복하고, 그 좋은 걸 기대하며 힘도 얻구요. 근데 저는 만약에 존재하는 어떤 신이 저를 만들 때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에서 말한 것 처럼 행복과 불행이 꼭 반반 정확하진 않더라도 어느정도 분배는 되어 있을텐데 저한테는 실수로 행복을 넣지 못한 것 같거든요.
제가 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됐는지 제가 살아 온 얘기 좀 들어주실 수 있나요? 아마 많이 길어질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저는 9n년생입니다. 이 때 출생신고를 했다면 저는 지금 3n살이 되어 있을텐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출생신고가 늦어졌고, 친아빠가 벌금을 내기 싫단 이유로 그냥 출생신고를 해서 나이가 몇 년 깎여서 주민등록상 나이는 2n살입니다. 어릴 때는 내 나이에 맞게 학교 다니고 싶고, 원래는 나랑 동갑이었을 애들이 몇 년 먼저 교복 입는거 보면서 참 많이 부러워 했는데, 지금은 몇 년을 더 벌었다고 생각해서 이 문제에 대해 부정적이진 않지만, 그냥 좀 뭐랄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느낌? 시작부터 꼬였단 생각이 듭니다.
엄마는 결혼을 세 번하셨어요. 첫번째 남편은 폭력적이었고 바람을 피웠습니다. 엄마는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오빠를 낳았죠.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이혼을 했구요. 그 다음에 만난게 저의 친아빠인데, 정말 무능력한 사람이었어요. 이 사람도 엄마를 때리는건 마찬가지였고, 일도 안 하고, 일자리를 구해도 사소한 이유로 금새 그만두고, 장사 하고 싶대서 친정에 손 벌려서 차를 해주니까 장사는 하지도 않고 딴 짓이나 하던 사람이었어요. 그런 사람과 엄마 사이에서 저를 낳았는데, 원치 않은 임신이라 그 사람은 지우라고 했지만 엄마는 저를 낳았어요. 그리고 짧은 시간 셋이 같이 살다가 엄마는 친아빠를 피해 떠나고, 저는 외할머니 댁에 맡겨졌다가 친아빠가 잠시 저를 데려갔었어요. 어릴 때라 얼마나 둘이 같이 지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때 얼마나 지옥 같았는지는 생생하네요.
아마 요즘 같았으면 당장에 아동학대범으로 감옥에 갔을거에요, 그 사람은. 제대로 된 집도 없어서 성인 두 명이 누우면 꽉 차는 단칸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에서 절 데리고 지냈어요. 가전 제품은 당연히 없었고, 아빠가 없을 때 배가 고프면 물로 배를 채우거나, 운이 좋으면 맞은편 방에 살고 계신 주인 내외께서 밥을 먹여주시곤 했습니다. 동네에서 친구를 사귀기도 했는데, 아빠는 저를 잘 못 나가게 했어요. 그 말을 어기고 나갔다가 걸리면 싸리 빗자루로 종아리를 맞았는데, 맞은 갯수를 소리내서 말 할 때 소리가 작으면 다시 처음부터 때려서 제 다리는 빨갛고 파란 피멍으로 울긋불긋 했어요. 어느날은 아빠가 빵을 줬는데 그 빵을 먹다가 마당에 있는 강아지한테 준 적이 있어요. 그걸 안 아빠는 저를 혼냈고, 무릎 꿇고 손 들고 있으란 벌을 시키고 제 앞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어요. 저는 빵 조금밖에 먹은게 없는데. 그리고 지금 생각 해보면 외도도 했던것 같아요. 어느날 고모라는 사람이 아빠랑 방에 왔는데 둘이 끌어 안고 누워 있었거든요. 그 분은 제게 잘해주긴 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엄마 소식이 없으니까 아빠는 제가 방에서 불장난을 해서 방을 태웠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저를 친척 이모 집에 두고 가버렸어요. 그 이후로 그 사람을 본 적도, 연락을 한 적도 없어요. 그래서 이젠 얼굴도 목소리도 뭣도 기억이 안 나고, 이름이랑 얼굴에 점이 있었다는거, 축구를 좋아했다는거, 딱 그것만 생각이 나요.
어쨌든 저는 이모 집에 버려졌으니 이모가 저를 외할머니 댁에 데려다줬어요. 그 이후로 쭉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살게 됐습니다. 할머니는 날 때 부터 왜소증이라는 장애가 있으셨는데, 오빠가 태어나기도 전에 할아버지랑 같이 교통 사고가 나서 다리를 펴질 못하셨어요. 항상 기저귀를 차고 앉거나 기어서 생활하셔야 했어요. 할아버지도 그 때 다리를 다치셔서 다리에 철심을 박아서 지팡이를 짚고 절뚝이셔야 했구요. 그렇게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할머니는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멋지고 훌륭한 분이라 저를 사랑으로 키워주셨어요. 저는 철이 일찍 든 편이라 이런 상황에 불만 없이 지냈지만, 속상한 일이 있다면, 일년에 몇 번 안 되는 엄마가 오는 날 엄마한테 어리광을 부리거나, 헤어지기 싫다고 떼를 쓰면 성인이 들어도 버거울 정도의 폭언을 하고 뺨을 때렸어요. 그런 점 외에 할머니랑 지내는 동안은 버틸만 했어요. 정말 오로지 할머니 덕분에. 그에 반해서 할아버지는 젊으셨을적 시절부터 술을 좋아하시고, 술주정이 폭력적인 분이셨어요. 연세가 드셔도 그건 변하지 않으셨죠.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어느날은 술 드신 할아버지가 할머니 목을 조르면서 죽으라고 하는 것도 봤었어요. 할머니 고생이야 말 할 것도 없지만, 엄마도 평생 그 모습을 보고, 당신도 피해자인데 자식은 부모 모습 따라간다는 옛말이 틀린게 하나 없는건지 엄마도 알콜중독자가 됐고 닮지 말아야 할 폭력적인 술주정까지 닮아버렸어요. 게다가 할아버지랑 엄마는 사이까지 좋지 않아서 서로 술 마시고 다투는 날이 많았어요. 그냥 다투기만 하는게 아니라 둘 중 누구든 꼭 피를 보게 되는 싸움이었어요. 언젠가는 엄마가 칼을 들고 죽겠다는걸 어린 제가 말리다가 제 어깨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서 아직도 어깨에 큰 흉터가 있어요. 이런 싸움은 할아버지가 병상에 눕게 되시기 전까지 계속 됐죠. 이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저는 술주정이 심한 사람을 싫어하고, 술 취한 사람, 화내는 사람을 너무 무서워 하게 됐어요. 대신 다행인건 저는 술 조절을 잘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거?
제가 어릴 적 엄마랑 헤어져 살고 있을 때 엄마는 지금의 아빠를 만났어요. 아빠는 유복한 집안의 막내 아들인데 다 포기하고 엄마를 만났다나봐요. 그리고 저랑 10살(주민등록상으론 7살) 차이 나는 남동생도 낳았어요. 그 때 같이 사업을 했는데 잘 되지 않아서 그 때 부터 엄마가 빚을 지게 되었어요. 동생이랑은 동생이 이제 막 기어다니는 갓난쟁이 때 처음 만났는데, 그 때는 제게 친척 동생이라고 할머니가 얘기 해줬어요. 그치만 저는 어릴 때 눈치가 빨랐거든요. 엄마한테 누구 애기냐고 물어보니 동생이라고 했어요. 새아빠를 아빠라고 부르게 된 것도 비슷해요. 눈치는 챘는데 곤란해서 못 부르다가 엄마한테 뭐라고 불러야 하냐니까 엄마가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제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어요.
새아빠는 좋은 분이셨어요. 성격도 호탕하고 쾌활하시고 성실하셨죠. 정도 많으셨고 무엇보다 저를 차별하지 않으시고 제 생각을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아빠라는 존재를 잘 모르기도 하고, 되려 부정적인 생각만 많아서 친근한 딸이 되진 못 했어요. 어느 날 아빠랑 둘이 밤길을 걷다가 용기를 내서 팔짱을 꼈는데, 아빠가 무슨 일이냐고 장난을 쳐서 그 이후론 그런걸 안 하게 됐어요. 근데 아빠는 한창 사춘기인 제게 몸에 관련된 농담을 많이 했었어요. 가슴이 작다, 이런거. 그러다가 제가 아빠에게 아예 맘을 닫게 되는 일이 생기는데, 엄마랑 술을 마시던 아빠가 갑자기 제 티의 목 부분을 늘려서 속을 보려고 한거에요. 저는 놀라서 뭐하시는 거냐고 따졌고, 아빠는 당황스러워 하면서 화를 내고 집을 나갔어요. 엄마는 누구 편도 못 들겠다고 했고. 그리고 얼마 뒤에 아빠는 장난 섞인 사과를 하면서 아빠 뒤끝 있는거 알잖냐면서 일을 마무리 했어요. 누군가에겐 그정도의 일이겠지만 제겐 평생을 남더라구요.
그러다 제가 고등학생 때 아빠가 뇌출혈로 쓰러지셨어요. 그리고 얼마 안 가서 할머니가 돌아가셨구요. 그리고 또 얼마 뒤엔 할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어요. 안 좋은 일들은 왜 항상 한번에 찾아 오는건지... 아빠는 수술을 받아서 운 좋게 목숨은 건졌지만 오른쪽 전부 편마비가 오고, 지능에 문제가 생기셨어요. 이건 좀 나중 일이지만 할아버지는 왜인진 모르지만 다리가 썩어가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 간경화가 너무 심해서 마취도 못 하고 고통 받으시다가 제가 20대 초반 때 요양원에서 돌아가셨어요. 너무 밉기만해서 그런지 아무 감정은 안 들어요. 제가 나쁜거라고 해도.
우리 형편에 이기적인건 알지만 대학에 들어갔어요. 1학년은 학자금 대출을 받았어요. 대학이랑 거리가 좀 있어서 항상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1교시부터 공강 없이 수업 듣고 돌아와서 평일 오후 알바 하고 몇 시간 못 자고 학교에 가고를 반복했어요. 학교에선 항상 맨 앞 정중앙에 앉아서 열심히 배웠어요. 공부는 안 했는데 그래도 성적이 그럭저럭 나오더라구요. 20살 땡 되자마자 집 형편도 안 좋은데 집에 손 절대 벌리지 말자 싶어서 핸드폰, 인터넷, 교통비 전부 제가 내니까 밥 값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굶으면서 다닌 적도 많았어요. 그래도 새로운걸 배우는걸 좋아해서 그 때는 참 좋았던 것 같아요. 근데 1학년 말에 집 사정이 말도 못하게 안 좋아져서 저는 결국 다음 학년부터 휴학을 하고 돈을 벌었어요. 그러던와중에 새아빠 산재 소송에서 우리가 이겼고 돈을 받을 수 있게 됐어요. 엄마는 오빠, 저, 동생에게 각각 천만원을 줬어요. 저는 거기서 500 정도를 썼어요. 복학 등록금이랑 대학 다니면서 생활비 때문에. 그런데 어느날 오빠가 엄마에게 울면서 자길 도와달란거에요. 무슨 일이냐니까 도박빚이 생겼대요. 인터넷 불법 도박. 엄마는 우리에게 줬던 돈들을 전부 오빠 빚 갚으라고 줬어요. 그리고 저는 대학을 그만뒀어요. 집이 너무 어려우니까 대학 다닐 시간에 한 푼이라도 더 버는게 낫겠다 싶어서.
이런저런 일을 했어요. 그러다 오빠랑 같이 서비스직을 하게 됐는데, 오빠는 그때도 도박을 못 끊고 있더라구요. 근데 저는 누구에게도 그걸 말하지 않았어요. 분란 만들고 싶지 않았거든요. 지금에 와서야 그 때 알렸어야하나 후회해본들 부질없죠. 그때 오빠가 처음으로 저한테 제 명의로 대출을 받아 달라고 했어요. 500을 대출 해줬고, 이자도 성실히 주다가 1년 뒤에 중도상환으로 다 갚아줬어요. 그리고 작년에 또 700을 받아 주긴 했지만... 어쨌든 오빠랑 일년 정도 같이 일을 하고 헤어지면서 저는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심각하단 소리 듣고 되려 제가 충격이었어요. 저는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사는줄 알았거든요. 그 이후로 저는 이런저런 이유로 갈수록 정신이 망가졌어요. 그래서 작년부턴 일도 쉬고 한심하게 숨만 쉬고 있네요.
작년 어느날 오빠가 여자친구가 임신을 한 것 같다고 했어요. 저는 상황은 좀 그렇지만 축하한다고 했고, 태몽도 제가 대신 꿨었어요. 그 이후부터 오빠가 예전보다 더 많이 힘들어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당장 자기 자신도 힘든데 애까지 생겼으니 당연하겠죠. 그리고 올해 연초부터 오빠의 돈타령이 더 심해졌어요. 사업 아이템이 있다, 동업자를 구해서 사업을 하기로 했다, 동업자가 돈을 들고 도망가서 사기를 당해 큰일이 났다, 아는 형이랑 동업을 하고 싶다, 등등. 그러다 8월에 우리 집에 큰 돈이 들어 올 일이 생겼었어요. 원래는 다달이 나와야 하는 돈인데 공단 실수로 지급이 안 되어서 몇 년치 밀린걸 한번에 받았거든요. 엄마는 오빠가 아는 형이랑 동업을 한다니까 해보라면서 투자금을 줬어요. 근데 그 과정에서 오빠가 우리 집에 많은 돈이 생겼단걸 알게 된거에요. 오빠는 자기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엄마는 예전에 오빠가 사기 당했단 얘기에 못 미더워했지만 오빠 사업하라고 받은 돈을 전부 오빠에게 줬어요. 그 돈이 전부 8천만원입니다. 저는 이제 아기도 태어났으니 오빠가 마음 잡고 열심히 살아보려는 것 같아서 항상 응원했어요. 오빠는 묻지 않아도 오빠 잘 되어가고 있으니 오빠만 믿으란 얘길 했어요. 저는 이제는 좀 행복이란게 보이려나 싶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아침에 오빠가 전화를 해서 받아보니, 전화를 한 사람은 새언니였어요. 새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제게 오빠가 자살을 했다고 말했어요. 시간이 멈추는 것 같았고, 머리가 백지 처럼 하얘졌어요.
요새 좀 힘들다곤 했는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 부담이 컸던걸까? 수많은 이유들을 떠올려 보아도 말이 되질 않았어요. 그런데 오빠가 죽은 진짜 이유가 더 말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오빠가 연초부터 얘기했던 사업 아이템, 동업자를 구했다는 것, 사업을 한다는 것, 사기를 당했다는 것, 동업을 한다는 것... 그 모두가 거짓말이었어요. 애초에 사업은 한 적도 없었어요. 심지어 우리한테만 돈을 가져간게 아니라, 새언니, 처가, 오빠의 친가, 친구, 지인, 사채... 오빠가 돈을 빌릴 수 있는 많은 사람에게 돈을 빌렸는데 그 규모가 억 단위에요. 심지어 죽은 당일에는 친척언니 남편 사무실 돈까지 횡령을 했어요. 그럼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썼냐, 다 인터넷 불법 사설 도박에 쓴거에요. 인터넷에서만 보던 말도 안 되는 일을 우리 오빠가 벌인거죠. 뭐 어느 사주 보는 사람이 그랬는데 저는 사주는 좋은데 가족운은 참 없다더라구요. 가족 때문에 평생을 힘들었지만 가족 때문에 버티고 살고 있는데 가족이 또 나를 이렇게 무너뜨리는게 참 아이러니하네요.
그치만 잃기만한건 아니에요.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거든요. 오빠의 장례식장에서 오빠의 친가 가족들을 처음으로 만났는데, 저를 잘 알고 계시더라구요. 심지어 오빠의 새어머니는 저를 보시곤 고생 많이 했다면서 힘들었겠다고 손을 잡고 우시더라구요. 도대체 이 분들이 나를 어떻게 알지 싶었는데, 오빠가 친가에 갈 때 마다 제 얘길 했대요. 제가 너무 안타깝고 걱정 된다구요. 오빠에게는 어머니가 다른 저랑 동갑인 여동생이 있는데, 어릴 때 그 여동생을 엄청 괴롭혔대요. 나중에 좀 커서 그때 왜 그랬냐고 물으니, 저는 부모님이랑 떨어져서 할머니 밑에서 힘들게 자라는데, 부모님 밑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여동생이 미웠대요. 그 때 오빠 나이가 11살 밖에 안 됐었는데... 그 얘길 들으니까 오빠랑 오랜 시절 떨어져 자랐다가 오랜만에 만났을 때, 오빠가 제게 불편함 하나 느끼지 않은게 참 이상했었는데 그 의문이 풀리더라구요. 오빠는 항상 제 생각, 제 걱정을 했더라구요. 저는 그 깊은 마음을 너무 늦게서야 알게 된거구요. 돈 얘기 할 땐 참 힘들었는데 그거 외엔 정말 좋은 오빠였거든요.
대충 마무리 하자면 요새는 죽은 오빠의 채무 정리 때문에 이것저것 글도 읽고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근데 너무 복잡해요. 오빠가 남기고 간 숙제가 너무 많고 어려워요.
저는 사실 올해 초에 죽으려고 손목을 그어서 인대를 끊어서 죽다 살아난 적이 있거든요. 그 때 그냥 제가 죽었으면 오빠는 살아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오빠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에 더 살고 싶은데 아쉽다고 쓰여 있었거든요. 오빠랑 나랑 바뀌었어야 했는데. 저는 너무 힘들어서 더 살고 싶지가 않거든요.
이제는 더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하는데... 정말 아는데... 아침에 눈 뜨는거 자체가 고통이에요. 일상생활에서 기본적으로 해야하는 것들을 하는 것도 힘이 들고... 저도 이런 제가 싫어요...
오늘 밤은 너무 우울해서 쓴 글이 너무 길어서 다 읽은 분도 없을 것 같지만, 혹시라도 있다면... 사람이 꼭 행복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불행은 찾아오지 않기를, 그리고 항상 웃는 날이 많길 바랄게요.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