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새엄마의 학대 글을 보고 쓰는 병주고 약주던 우리 엄마

엄마 |2020.11.20 01:26
조회 892 |추천 6
새엄마 글을 보는데, 나는 어린시절 새엄마 글쓴이 보다 낮은 수준의 학대를 받았음에도 내 어린시적 기억들이 나를 심연으로 끌어들였어요. 우리 엄마의 다른점은 학대 수위가 조금 낮았고, 그 외에 나를 위해서 어느정도의 희생은 했다는 점에서 완전히 미워할 수만은 없은 존재기에 항상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제 이야기도 써보고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엄마가 학대를 했기에 지금 내가 엄마를 무시하는게 정당한지, 아니면 제가 우리엄마 말처럼 받은건 다 까먹고 나쁜 것들만 기억하는 배응망덕한 딸인지 얘길 듣고 싶어요.저는 새엄마가 없기에 없음체.
내 가장 어린 시절을 기억은 2-3살 쯤 어떤 이유인진 모르지만 엄마에게 한시간 정도를 쳐맞았던 기억임. 인상 깊은 점은 그 후 엄마가 나를 껴안고 또 한 삼십분 울었던 것.
두 번째 엄마에게 심하게 맞은 기억은 4-5살 쯤 주말아침에 무슨이유에선지 쳐맞고 나서 기분 나빠 나들이를 가기 싫어서 짜증내는 나를 집 바로 앞 찻길에서 가로수 잘라놓은 어른 한뼘이 좀 넘는두깨의 통나무를 주워 나를 풀 스윙 했던 기억임. 엄마가 스모선수처럼 그걸 양손으로 들어올려 나를 풀스윙 하던 그 모습이 아직 기억남.
5-7살 쯤 부모님 친구집에 가거나 친구가 놀러오면 엄마가 나를 뒷방에 조용히 데려가서 10-20분 정도 뺨을 심하게 갈긴 적이 자주 있었는데, 이유가 엄마가 내 장난감들을 내 동의없이 친구 아들 딸 아기들에게 나눠주는걸 내가 싫다고 했기 때문임. 그렇게 싸다구를 맞고 난 후면 나는 혼자 뒷방에 남아 몇시간씩 손님들이 가거나 집으로 갈때까지 저녁도 먹지 않고 울곤 했음. 그 집 주인이나 손님 아줌마들이 나를 달래주곤 했음.
8살 때쯤 한번은 엄마랑 길거리에서 그릇을 사고 있는데, 엄마가 아저씨한테 애교부리면서 아잉 500원만 깎아줘요 이러고 있는거임. 그게 너무 보기 싫어서 내가 500 원주니까 엄마가 엄청 빡쳤음. 사람들 다 보는데서 짧은다리로 나한테 킥을 여러번 날렸음. ㅋㅋ 아저씨도 개당황했었음.
8-10살 쯤 까진 우산이나 스테인플러 같은 자잘한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넘어져서 새로 사준 점퍼에 구멍이 날 때 마다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들로 풀스윙으로 맞았었음. 한번은 과외 가기 직전에 우산을 잃어버린걸 들켜서 차 안에서 싸다구를 10분정도 심하게 맞고 머리가 산발인 채로 과외에 가서 선생님이 놀라서 얼굴 씻기고 머리를 다시 묶어주던게 기억남. 그 때쯤 일이주일에 한번씩은 온몸에 파리채로 맞은 피멍이 들어서 일주일 넘게 갔던게 기억남.
12살쯤 에는 문제집을 안풀어놨다고 자주 맞았는데, 주로 파리채와 빨래바구니로 맞았음. 한번은 바구니의 날카로운 면에 손목을 깊이 베였음. 베이고 나서도 여러번 다시 풀스윙으로 맞았는데, 아빠가 나중에 물어보자, 바구니를 한번 던졌다가 실수로 그랬다고 했음.
14살 쯤 집안도 기울고 교우관계도 좋지 않아 방황을 많이 할 때라 주로 집에서 컴퓨터게임을 했는데, 엄마가 그걸 못하게 했음. 그래서 몰래 밤에 하다가 한 번 걸린 적이 있는데, 새벽 2시에 엄마는 나를 집에서 쫒아내면서, 집 나가서 창녀가 되서 몸을 팔고 살라고 했음. 사실 게임과 매춘은 별 관계가 없음.
이 때 까지가 내 인생의 암흑기이고 그 때 까지의 엄마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엄마에게 별로 정이 없음. 이후에 공부도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교 진학도 했음. 고등학교 부터는 공부도 치열하게 하고 바쁘게 살아서 엄마한테 맞거나 샤우팅 당한 적이 손에 꼽음. 고 2 때부턴 어디 가서 상도 타오고 엄마의 자랑이 되서 엄마가 함부러 대하지 않았음.
그러 던 중 20살에 대학교에서 시험공부 한창일 때 엄마가 꼬리뼈가 부러져서 입원을 함. 사실 생명에 지장있는 것도 아니고, 걱정도 되지 않고, 시험 끝난 바로 다음날 엄마가 퇴원할 때 까지 병문안 안감. 그 때 엄마는 엄청 화가나서 나에게 애미가 입원했는데 병문안오 안오냐고 샤우팅을 하는데 나는 사실 왜 엄마가 오버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별로 반응을 하지 않음. 
그렇게 대학교 4년을 치열하게 보내서 누구든 들어본 이름의 해외대학교에 석사 유학이 결정났음. 그때 쯤부터 내가 이유없이 엄청 울기 시작함. 그 전까지 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이 유학을 위해 엄청 치열하게 살았는데, 그걸 이루니 갑자기 그 전 까지 어루만지지못한 내 외로움들이 몰려왔나봄. 지금 생각하면 유학을 그렇게 열망했던 것도 딱히 한국에있는 가족과 친구들에 애정이 없어서 그런 걸 수도.
그 전까지 엄마에 대한 원망을 딱히 하지 않고 묵묵히 지냈는데, 나는 내가 왜 우울하고 울기만 하는지 근원을 어린시절에서 찾음. 문자와 대면으로 과거의 일들을 얘기하며 사과를 듣고싶다 했는데 엄마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핑계와 묵묵부답으로 일관함. 그래서 유학가기 직전 3개월간 얼굴을 보지 않음. 마침 지방에 연구소에 인턴을 하고 있어서 그냥 집에 들어가지 않음. 결국 직전에 몇번 만나서 화기애애한 척 연기를 하고 유학감.
해외에 있으면서도 계속 내 엄마에 대한 정의를 내리려고 했었음. 지금 돌이켜봐도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어린 아이가 심하게 맞은건 명백한 학대임. 근데 엄마가 나를 학대할 때 아빠는 바람피고 밖에서 성매매하고 그러고 있었음.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아빠한테 스트레스를 받은걸 때릴 핑곗거리들을 찾아 나에게 푼 것 같기도 함. 학대를 빼고 생각하면 엄마는 참 불쌍한 사람임. 가난해서 초등학교도 못나오고 공장에서 일하다가 23살에 우리아빠랑 결혼함. 그 전까진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도 얘기해주지 않음. 아빠랑 결혼 하기 전 이미 연애할 때 아빠가 대놓고 바람피는걸 직접 현장에서 보고도 결혼함. 우리아빠 집은 예전에 돈이 좀 있었음. 사업하면서 말아먹었지만. 엄마의 인생이 불행하고 사랑을 받지도 주는법을 배우지도 못한 사람이라, 엄마에게 너무 부정적인 평가를 하기는 불공평한 것 같아 혼란스러움.
엄마에게 혼란스러운 다른 이유는 학대와는 별개로 나를 챙겨줬기 때문. 아빠가 사업해서 공장지대에 살았는데, 학교를 도시로 다녀서 거의 매일 아침에 나와 오빠를 엄마가 도시로 태워가고 시간이 맞으면 태워옴. 엄마가 출퇴근하는 김에 같이 한거긴 하지만...몇번은 버스를 타고 같이 통학/출퇴근을 했는데 버스 의자에 나를 먼저 앉혀주곤 했음. 사실 나는 그 때도 엄마가 싫고 부끄러워서 멀리 떨어져서 서곤 했는데 그게 엄마입장에선 서운했을 법 한테 엄마는 불평하지 않음. 내가 부끄러워하는걸 알았는듯.
10살쯤 한번은 감기를 심하게 앓아서 입원을 하고 몇달은 걷지 못했는데, 그 때 엄마가 나와 병원에서 같이 지내고 퇴원 후에는 30키로 정도의 나를 안아서 목욕탕에 데려갔음. 그 이외에 엄마에게는 아끼면서 내게는 항상 좋은 휴대폰과 점퍼를 사주곤 했음. 때되면 목욕탕도 데려가고 먹고싶은건 다 사주고... 항상 방황하던 중에도 우리 지역에서 제일 비싼 교정치과에서 치아교정도 해줬음. 그 때 우리집 많이 힘들었음.
엄마는 다른 사람들에게 한없이 퍼주는 사람임. 그래서 어릴 때 내 장난감들도 퍼주곤 해서 어린 내 마음에 상처 마구 냈음. 지금 엄마가 하는 말도 엄마가 오빠와 나에겐 잘 해주지 않았지만 다른사람들을 도와주는데서 행복을 느낀다고... 우리엄마 지금 절에서 삼. 나와 오빠가 중고등학생일 때 절에가서 살아서, 오빠는 아직도 엄마가 옆에 없었음을 원망함.
지금의 28살의 내가 보기에 엄마는 불우하게 자라고 나쁜남편을 만나 애정결핍인데 애정을 주는 범도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 같음. 그 옆에서 나와 오빠는 많은 상처들을 받았고. 근데 엄마가 완전한 가해자는 아닌 것 같기도 함... 나는 아직도 너무 혼란스러움. 앞으로도 혼란스럽겠지.
희생만 당한 내가 엄마를 어디까지 이해해야 앞으로 사는데 후회가 되지 않을지... 혼자 고민하기는 너무 버겁고 지침.
엄마라는 존재와 더 오랜 시간을 살아보진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얘기해주세요..
추천수6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