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맞이해서 기념으로 킹크랩을 한마리 먹기로 합니다.
요즘엔 어지간한 식재료는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택배로 받아보는 세상이지만 수산물, 특히 신선도가 중요한 고가의 수산물은 여전히 수산시장에 직접 들러 두 눈으로 품질을 확인하고 사는 편을 선호합니다.
가격으로 치면 kg당 몇천원 더 주는 한이 있더라도 맛있고 살이 꽉찬 녀석을 고르기에는 이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니까요.
주로 방문하는 곳은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마포 농수산물 시장입니다.
커다란 시장 안에 여러 가게들이 모여있는데, 전통시장이 언제나 그렇듯 양심적으로 장사하는 가게가 있는가하면 호구 뒷통수 치려고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가게들도 있습니다.
예전에 랍스터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저울 눈 속이는거야 조금만 신경쓰면 예방할 수 있지만, 가게 주인이 물건보는 눈이 없어 '막상 요리해보니 살이 없더라, 맛이 없더라'하는 건 수산물 특성상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이왕 먹는 거, 호구잡히는 것만 아니면 조금 더 비싸게 주거나 조금 크기가 작은 녀석으로 먹는 한이 있어도 회전율이 빠르고(=장사 잘되고) 주인의 안목이 있는 가게를 가는 게 좋지요.
랍스터는 회로 먹기도 하고, 무엇보다 크기가 어지간히 큰 녀석도 냄비에 비스듬하게라도 넣으면 들어가니 살아있는 채로 가져와서 집에서 쪄먹곤 합니다.
하지만 킹크랩은 구조상 집에 있는 냄비에는 도저히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구입한 가게에 부탁하면 별도의 찜비를 받지 않고 요리해주기도 하니 그쪽이 더 편합니다.
찜기에 들어가는 킹크랩을 확인한 후, 번호표를 받고 30분 정도 돌아다니며 시장 구경을 합니다.
찜기 하나당 한두마리 정도 들어가는게 한계다보니 사람 많을 때는 몇시간이고 기다려야 하기도 한다더군요.
시장을 돌아다니면 제철 생선 모듬회나 전복, 가리비, 낙지 등 다양한 수산물이 유혹합니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습니다. 이미 현금 가져온 걸 탈탈 털어서 킹크랩을 샀거든요.
10만원짜리를 살 생각이라면 지갑에 9만오천원 정도 넣어두고 "돈 이것밖에 없어요! 단골인데 5천원만 빼줘요, 사장님!"하면 어지간해선 깎아줍니다 ㅎㅎ
물론 흥정이 영 안될 경우를 대비해서 다른 주머니에 만원 정도 비상금(?)을 챙겨가야 하지만요.
다 쪄낸 킹크랩은 스티로폼 박스에 넣고 테이프로 감아서 가져옵니다. 두어시간 정도는 뜨끈뜨끈하게 유지가 되지요.
집에 와서 박스를 열어보니 뜨끈한 김이 올라오면서 게 냄새가 확 퍼집니다.
소 한마리는 옆집 몰래 먹을 수 있어도 게 한마리는 온 마을이 안다는 옛말이 실감납니다.
킹크랩이라고 하면 다 같은 킹크랩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레드 킹크랩과 블루 킹크랩으로 나뉩니다.
레드 킹크랩이 미묘하게 맛이 더 좋고, 그래서 시세를 찾아봐도 레드가 kg당 5천원 정도 비쌉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 차이를 몰라서 블루 킹크랩을 레드 값 주고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장 쉬운 구분법은 등딱지 한가운데의 육각형 모양에 돌기가 몇개 나 있는지를 세어 보면 됩니다.
육각형 안에 돌기가 여섯 개 있으면 레드, 네개 있으면 블루라고 보시면 됩니다.
가시에 긁히지 않게 일회용 행주나 수건 등으로 감싸가며 다리를 뜯고 껍질을 손질합니다.
수조 안에서 가장 작은 녀석(약 1.5kg)을 구입했는데도 크기가 무지하게 큽니다.
하지만 크기보다 더 중요한 건 수율. 껍질 속에 게살이 얼마나 차 있느냐가 크기보다 더 중요할수도 있습니다.
어제 들어온 녀석이라 그런지 살이 꽉꽉 차 있습니다. 살이 80% 이상 차 있어야 A급으로 치는데, 이정도면 90%도 가뿐히 넘겠네요.
살이 꽉 찬 게는 살점 한 점 더 먹어서 좋은게 아니라 식감이 단단하고 단 맛이 도는게 장점입니다.
게다가 껍질을 열어보니 장도 제법 들어있는 것이 밥 비비는 보람이 있습니다.
마음같아서는 다 손질해서 접시에 게 모양으로 쫙 펼쳐놓고 싶은데 워낙 크다보니 가장 큰 접시를 써도 통채로 올리는 건 불가능합니다.
어쩔 수 없이 되는대로 다리 몇개만 손질해서 쌓아올립니다. 장을 긁어내서 밥, 참기름, 김가루, 몸통에서 발라낸 게살과 섞어 볶음밥도 만들어 게딱지에 올려줍니다. 게딱지가 크다보니 거의 밥 두세공기 분량은 담기네요.
배가 부르지만 포기할 수 없는, 자투리 살 넣어 끓인 킹크랩 라면입니다.
크기가 커서 자투리랄만한 부분이 없긴 합니다. 관절 마디에서도 엄지손가락 크기의 살덩어리가 쏟아져 나오니까요.
그래도 가장 끝부분의 다리와 관절 몇 개를 넣어 라면을 끓여 먹습니다.
이미 게살과 볶음밥으로도 배가 부르지만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에 손이 절로 갑니다.
이렇게 라면 끓여서 국물까지 다 먹고 나면 '아, 게 한마리 진짜 잘 먹었다'라는 탄성이 나오지요.
성탄절 특식이 별건가요. 굳이 스테이크, 파스타 아니더라도 가족과 함께 맛있게 먹으면 그게 성탄절 특식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