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마요 주먹밥, 데친 브로콜리, 과일 샐러드)
흔히 생각하기에 요리사는 매 끼니마다 호화롭게 먹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대단한 걸 먹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남이 먹을 요리하느라 기운이 빠져서, 재료비의 압박 때문에, 혹은 내가 만든 음식은 이미 질려서 등 다양한 이유로 그냥 남은 재료 대충 요리해서 먹거나 심지어는 다른 식당의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경우도 있지요.
하지만 요리사는 그렇게 대충 끼니를 때울 수 있어도 요리 전문 사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다른 직장 동료들이 '요리 전문 사서는 밥으로 뭘 먹나'하는 호기심어린 시선이 집중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도시락 하나 만들자고 아침부터 몇 시간씩 시간을 투자할 수는 없으니 겉으로 허름하지는 않으면서도 나름 간단하게 준비할 수 있는 메뉴를 고민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안에 참치마요를 넣은 주먹밥 같은 것은 금방 준비할 수 있지요. 여기에 데친 브로콜리를 장식삼아 꽂아두면 겉보기에도 나쁘지 않습니다.
(잡곡밥, 게맛살두부볶음, 취나물무침, 어묵양파볶음, 미역국)
일반적으로는 이런 구성이 도시락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어제 저녁 반찬 남은 걸로 만든 도시락"이지요.
도시락 전체를 보온도시락으로 싸기엔 부피와 무게가 너무 부담스러워 국만 보온병에 담곤 합니다.
식어도 먹을만한 반찬을 주로 활용하다보니 기름기가 많은 음식은 도시락으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남편은 실직하여 집에 있고, 아내는 집에서 가까운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쌀이 떨어져서 아내는 아침을 굶고 출근하였다.
"어떻게든지 변통을 해서 점심을 지어 놓을 테니, 그때까지만 참으오."
출근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마침내 점심시간이 되어 아내가 집에 돌아와 보니, 남편은 보이지 않고 방 안에는 신문지로 덮인 밥상이 놓여 있었다. 아내는 조용히 신문지를 걷었다.
따뜻한 밥 한 그릇과 간장 한 종지. 쌀은 어떻게 구했지만 찬까지 마련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내는 수저를 들려고 하다가 문득 상위에 놓인 쪽지를 보았다.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이걸로 우선 시장기만 속여 두오."
낯익은 남편의 글씨였다. 순간, 아내는 눈물이 핑 돌았다. 왕후가 된 것보다도 행복했다.
- 김소운, "가난한 날의 행복" 중에서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따뜻한 밥에 후한 가산점을 주곤 했습니다. 식은 밥은 천덕꾸러기 신세, 피치못할 경우에나 먹는 느낌이었지요.
하지만 식어서 굳은 잡곡밥이라도 뜨거운 미역국과 함께 먹으면 맛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시장이 반찬이라고, 언제나 냉장고만 열면 마음대로 꺼내먹을 수 있는 집에서와는 달리 밖에서 일하다가 배고플 때 먹는 도시락은 꿀맛이지요.
미국 유학 당시에 유리병 샐러드 붐이 일어서 소셜미디어마다 잼 병에 담은 샐러드 사진이 걸려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굳이 도시락 쌀 일이 없어서 시도해보질 않았는데 직접 만들어보니까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에 있는 재료를 썰어서 유리병에 차곡차곡 쌓기만 하면 되니까요. 겉보기에도 예쁘고 소스가 흐를 염려도 없으니 좋습니다.
(달걀, 옥수수, 올리브, 방울토마토, 양상추, 허니마요 샐러드)
출근하는 길에 빵집에 들러 바게트 하나 사다가 커피 한 잔 뽑아서 곁들여 먹습니다.
겉보기엔 조그만 잼 병이라 주변 사람들이 "그거 먹고 배가 부르겠어요?"하는데 정작 접시에 꺼내보면 끝도 없이 나와서 놀라게 됩니다.
무슨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아공간 가방이나 화수분도 아니고, 조그만 유리병에서 나온 샐러드가 접시에 가득합니다.
(달걀감자 샌드위치, 양상추, 오이)
삶은 감자와 삶은 달걀, 마요네즈를 섞어서 샐러드를 만들어 두면 밥반찬으로 먹기도 좋고 샌드위치 만들기도 좋습니다.
워낙 간단한 샌드위치라 참치마요, 햄치즈와 함께 즐겨 만드는 샌드위치입니다.
식빵은 페이스트리샵에서 구입했더니만 일반 샌드위치 식빵을 사용했을 때와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크기도 좀 작은 대신 버터가 많이 들어가서 부드럽고 고소하네요.
만들기도 쉽고, 보기에도 그럴듯하고, 맛도 괜찮고, 양도 많으니 자주 해먹게 되는 유리병 샐러드.
다만 일회용 종이접시와 포크를 함께 갖고다녀야 하고, 무겁고 깨질 염려가 있으니 좀 신경써서 옮겨야 한다는 건 단점입니다.
유리병에 넣은 채로 그냥 먹으면 좀 편하겠지만 아래쪽부터 소스를 깔고, 소스에 적셔도 상관없는 재료를 깔고, 단단한 채소와 양상추를 순서대로 채워넣었기 때문에 접시에 펼쳐서 섞어 먹지 않으면 맛이 없거든요.
(새우, 아보카도, 올리브, 당근, 오이, 양상추, 머스타드마요 샐러드, 콘브레드, 인스턴트 옥수수 수프)
어제 구웠던 콘브레드 몇 조각 챙기고, 따뜻한 국물이 아쉬워서 편의점에 들러 컵에 든 인스턴트 옥수수 수프도 하나 곁들입니다.
샐러드 퍼묵퍼묵 하다가 탄수화물이 그리워지면 콘브레드 한 입 베어물고, 그러다 목이 막힐 듯 하면 수프를 마셔줍니다.
왠지 그럴듯한 레스토랑 런치 메뉴 먹는 느낌이네요. 날씨만 좀 따뜻해지면 점심시간에 풀밭에 앉아 먹기 딱 좋은 구성입니다.
(카치오 페페, 마늘 바게트)
카치오 페페는 굉장히 자주 만들어 먹는 파스타입니다.
스파게티를 삶아서 치즈와 후추를 뿌리면 끝. 듬뿍 뿌리는 후추 탓에 까르보나라의 원형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진짜 맛있는 스파게티 면 + 진짜 맛있는 치즈를 사용하면 어지간히 화려한 파스타도 못 따라올 정도로 깊은 맛을 보여줍니다.
전자레인지에 데워먹어야 하기 때문에 진짜 맛있는 수준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물 좀 넣고 데워서 잘 섞은 다음 뜨거울 때 치즈 듬뿍 뿌려먹으면 나쁘지 않습니다. 치즈는 집에서 미리 갈아서 지퍼백에 넣어 온 파마산 치즈.
마늘빵 곁들여서 먹다보면 '와인 한 잔 함께 먹으면 진짜 좋겠다' 싶지요.
(비빔밥, 미역국)
마트에서 시장 보다가 비빔면 소스만 따로 파는 걸 봤습니다. 그 때 처음 든 생각은 '저 소스 맛있기는 한데 굳이 돈 주고 살 필요가 있나?'였습니다.
비빔면은 국물이 없어서 그런지 한 개 끓여먹으면 배고파서 언제나 두 개씩 끓여먹었거든요. 그러다보니 남는 비빔면 소스가 봉지에 한가득.
애들 볶음밥 만들 때는 병에 든 참기름을 사용하다보니 일회용 참기름 역시 많이 남습니다.
이 두개를 보자 자연적으로 드는 생각: 도시락으로 비빔밥 쌀 때 가져가면 되겠네!
냉장고에 남아있던 나물 네 종류와 달걀을 밥 위에 올리면 완성입니다.
달걀은 후라이를 하는 게 정석이지만 달걀 구울 곳이 없으므로 그냥 황백지단으로 만들어 올렸습니다.
미역국 몇 술 떠서 굳은 밥을 부드럽게 만들고 고추장 소스와 참기름 뿌려 먹으면 "비빔밥은 언제나 옳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모듬콩, 게맛살, 양상추, 당근이 든 월남쌈, 미니핫도그, 치즈스틱, 숭늉)
남은 재료를 대충 싸서 먹을 수 있다면 좋은 도시락 메뉴입니다.
샌드위치가 그렇고, 비빔밥이 그렇고, 월남쌈이 그렇지요.
라이스 페이퍼에 남은 반찬 대충 싸서 둘둘 말면 완성입니다.
이것만으로는 좀 배고프겠다 싶어서 냉동 미니핫도그와 치즈스틱도 함께 준비했습니다.
보온병에 누룽지를 한 줌 넣어와서 밥먹기 전에 뜨거운 물을 부어놓으면 밥 다 먹고 나서 뜨뜻한 숭늉과 누룽밥을 후식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니 먹으려고 회사 다니나 싶은 느낌이기도 하네요.
이럴 때 변명삼아 하기 딱 좋은 말이 있지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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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사서의 추천도서 "행복을 찾는데 필요한 것은 파랑새가 아니라 치킨이다"편이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공공도서관이라 이거 광고한다고 뭐 돈 버는 것도 아니고, 조회수 높다고 인센티브 떨어지는 것도 없지만 ㅠ_ㅠ
그래도 글 쓴게 묻히면 아쉬우니 홍보 한 번 해 봅니다 ㅎㅎ
https://www.nslib.or.kr/info/dataroom2.asp?mode=view&number=41&gub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