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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에게

스물아홉 |2020.12.28 18:43
조회 945 |추천 4
여자친구에게

음... 어떤 단어 어떤 문장으로 시작을 해야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아.
어떤 말투로 적어야하는지도 잘 모르겠어.
내가 네게 하던 그 말투를 잊어버렸거든.
좀 딱딱할 수도 있지만 그냥 별 생각없이 적어볼게.

갑자기 왜 이런걸 쓰냐고?
정확하게 언제였는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예전에 너와 내가 카페에 앉아서 읽었던 그 글이
어제 내 피드에 다시 보이더라.

그 글 읽으면서 참 많이 울었어.
거기에 나오는 그 사랑이
우리와 너무 닮았거든.
그래서 나도 한 번 써보려고.

그때 같이 읽으면서 네가 했던 말 기억 하냐?
나 죽으면 너도 나 따라온다고 했던거.

너와 이별한지 2년.

미안하지만 너도 알듯이 나만 이렇게 살아있어.
남들처럼 더 잘 살아보려고 노력도 하고 욕심도 내고
친구도 만나고 영화도 보고 술자리엔 다 참석하고.
너 없어도 어찌저찌 잘 살아간다.
순경에서 경장으로 진급도 하고 드디어 나에게도 차가 생겼어.
집은 예전에 살던 임대아파트 그대로.

술과 담배는 여전히 줄이지 못하고 오히려 더 많이 찾게되는거같다.
원래 돈 벌기가 이렇게 힘들었냐?
아 힘들다고 했었지 맞다.

2006년 7월, 남들처럼 중2병에 걸린 내가
남들보다 일찍 철이든 너를 만나서

2018년 10월, 네가 더이상 다시는 깰 수 없는 잠에
들기 전 까지

흔히 말하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2년의 연애.
차라리 널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나는 지금 너무 후회가 된다.

혹시 기억나? 우리 처음 만나게 된 그 날.
중학교 2학년 새학기.
같은반 내 첫번째 짝이 너였잖아.

난 그때 너를 처음 알게 되었지만 너는 날 알고있었지.
네 옆에 앉자마자 넌 엄청 싫은 표정으로 친구들에게 갔어.
난 너가 엄청 싫어했던, 공부는 싫어하고 놀기만 좋아하면서 엄청 뺀질거리는 그런 남학생이였으니까.

뭐 그때까지만 해도 난 별 생각 없었어.
아주 단단히 중2병에 걸려서 너가 날 싫어한다는 그
사실이 나를 더 우쭐하게 만들었으니까.

문제는 우리 제주도로 갔던 수련회 그 첫날밤에 생겼지.
나는 내 친구들이 많은 방에서 자겠다고 발코니에 나와
옆 발코니로 뛰어 넘어가다가 떨어졌던날.

다행히 윗층과 아랫층 사이 높이가 낮아서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하필 그 아랫층이 너가 배정받은 방이었을줄이야.

쿵 소리에 나와본 너는 나를 보자마자 걱정은 커녕
엄청 이상한 표정으로 크게 웃었잖아.
너 그때 속으로 ' 뭐지 이 병신은? ' 이렇게 생각했지?

무튼 이상하게 난 그때 너한테 반했어.
몰라 중2병이라 머리가 어떻게 된건지.
설렘 포인트가 전혀 없는데 설렜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우린 자연스럽게 친해지며
방학날 내가 너에게 고백했을때.
너는 또 호탕하게 웃으며 알겠다고 고개 끄덕여주며 우린 그렇게 만났잖아.

그 고백이 나는 지금 너무 후회가 된다.

시간이 지나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을때 우린 서로 다행이라며 좋아했던게 엊그제 같은데.
그때도 여전히 난 뺀질거리는 남학생, 너는 학교생활 열심히하는 모범생으로.

그 후로 넌 대학생이 되었고 공부에 뜻이 없었던 나는
군인이 되었지.
그때 참 많이 싸웠는데.

너는 엠티에 가고 나는 훈련을 가고.
나의 휴가만을 기다리는 너를 두고 나는 밖에있는 친구들을 만나고.
아는 선배가 너에게 고백을 하고 나는 화만 내고.
그렇게 일말상초를 지나 전역까지 참 고생 많았다 우리.

그때 너에게 꽃신을 신겨주며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말과함께 우리 꼭 결혼하자고, 부끄럽지 않은 남자친구로,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너의 편이 되주는 베프로 그렇게 있겠다고, 그러니 내 옆에만 있어달라는.

그 말이 나는 지금 너무 후회가 된다.

그렇게 2015년 너는 취업을 하고, 그 다음 해 2016년 내가 경찰이 되고.
시간이 지나며 우린 친구들중 가장 오래 된 커플이 되었고, 서로가 서로를 당연히 여기기 시작했어.

서로 진지하게 결혼 이야기를 주고받고.
주변 사람들의 연애 상담도 해주고.
형님들의 결혼생활 이야기를 들으며.
명절땐 우리집, 너네집을 드나들며 인사를 나누고
나의 추억엔 네가 있고, 너의 일상엔 내가 있었던.

널 당연히 여겼던 순간이 나는 지금 너무 후회가 된다.

우리의 아름다웠던 스물일곱에,
하늘은 못난 내가 싫었는지 아니면 너무도 예쁘고 착했던 너가 필요했는지 우리의 마지막을 그리 허무하게 가져갔어.

오랜만에 데이트니까 멋지게 입고 기다리라던 너의 마지막 전화를 끝으로 우린 그렇게 사라졌어.
그저 나만 남게되었으니까.

내가 한 시간 먼저 일어나서, 내가 한 시간 일찍 준비를 하고, 내가 너에게 전화를 걸어 예쁘게 입고 기다리라 말 했다면 너는 아프지 않았을까?
나는 울지 않았을까?

그 더웠던 여름날 내가 너에게 고백하지 않았다면,
넌 다른 여느 사람들처럼 웃으며 지내고 있을까?

전역날 꽃신 대신에 내가 군화를 거꾸로 신었다면,
그래 차라리 욕 먹고 그렇게 지나갔다면,
다른사람 옆에서라도 네가 행복하게 지냈을까?

감히 내가 너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다면,
그 날 그렇게 너가 떠났을때 나는 아프지 않았을까?

아니, 그냥 살아는 있었을까?
너를 만난 후 모든 순간이 후회로 남았어.

너가 없는 나는 여전히 중2병 걸린 남학생이야.
날 잡아주던 네가 없어서 항상 위태로워.

나 너 앞에서 많이 울었는데.
일부러 더 울었는데.
날 두고 떠난 너가 미워서 좀 듣고 미안해하라고.

있잖아. 사실 나 잘 못지내.
그냥 좀 보고싶어.
너랑 가끔 데이트도 하고싶어.
퇴근후에 하던 그 귀찮던 전화가 지금은 좀 필요해.

이제 곧 2020년이 끝나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될거야.
우리가 약속했던, 늦어도 스물아홉에는 결혼하자던
그 약속의 날이 끝나가.
그러니 오늘은 내 꿈속에 나타나주면 안될까?
그럼 내가 여전히 널 사랑한다고 말 할게.
난 여전히 너가 좀 필요하거든.
추천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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