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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살면 안 될 것 같아.

홀로 |2021.03.20 04:23
조회 566 |추천 0

이런 얘기 어디 풀어놓을 곳도 없고,

풀어놓은들 약점밖에 더 되겠나 싶어서 못 했는데.

 

한번쯤은 어딘가에 털어놓고 싶어서 익명 사이트를 찾다가 생각난게 판이더라.

 

아마 아무도 보지 않을테고, 제대로 읽지 않을 것이고, 남의 인생에 별 관심도 없겠지만.

그러니까 오히려 제격이라 생각했어.

 

나는 머지않아 자살할 것 같아.

 

 

 

나는 26살이야.

많다고는 못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나 어려요. 이럴 수도 없는 나이라고 생각해.

 

아니야, 아직 기회 많아.

그렇게 말하기엔 이미 인생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너무 많이 줄었어.

 

이젠 어리지 않아.

 

 

 

그럼 어디서부터 글을 써야할까.

 

기억을 돌이켜보면, 참 나빴던 기억들 뿐이지만.

그 중에서도 유난히 한이 맺히는 곳들부터 적을까.

 

 

 

원래부터 집이 잘 사는 편은 아니었고, 이런저런 불만이며 불화는 잦았지만.

인생이 확실히 박살나기 시작한 터닝포인트는 확실해.

 

2007년,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시기.

 

 

 

어머니 생신날에 나는 어머니와 누나, 남동생과 함께 피자를 먹었어.

참 속 편하게 말이야.

 

아버지는 일한다고 그 날 집에 안 왔어.

 

 

 

며칠 후 부터 집안 분위기가 험악해졌고, 크게 싸움이 났고, 아버지가 집을 나갔어.

집에는 어머니와 누나, 남동생 밖에 안 남았지.

 

어린 마음에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내가 뭘 할 수 있나 고민했었는데.

 

어린 애가 뭘 할 수 있겠어? 애초에 내 잘못도 아닌데.

 

 

 

별건 아니었어.

아버지가 어머니 생신날에 바람을 피웠고, 들켰고, 싸움이 난거고, 별거에 들어간거지.

 

그래, 이 정도야 꽤 많은 집들이 겪는 일이잖아.

 

바람피우는 년놈들이 제 깟 놈들 비슷한 부류 만나면 흥분해서 껄떡거리기 바쁜 강아지들인건 둘째치고, 그런 쓰레기들이 세상엔 참 많잖아.

그리고 그 정도는 그래. 상처가 될 순 있지만 나이를 먹고 성인이 되면 털어낼 수 있는거잖아.

 

괜찮았어.

 

 

 

초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는 꽤 괜찮았어.

 

애초에 일한다고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던 사람이라,

아버지가 집에 없는 빈 자리가 그리 큰건 아니었거든.

 

돈이 문제되긴 했지만,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진 그럭저럭 보내줬나봐.

 

나도 이 때까진 그럭저럭 행복하진 않아도 그냥 살만 했어.

공부도, 운동도. 내 할거 하면 됐었지.

 

초등학교라서 그런거였지만

내 삶을 되돌아보니 그나마 그래, 좋았었다. 할 수 있는 시기가 이 때 뿐이더라.

 

집에서 방치되다보니 꼬질꼬질하고,

누나 옷을 물려입으니 여자 옷차림으로 다닌다고

좀 따돌림은 있었지만 뭐 어때. 그 정도야 사소한 일인데.

 

많은 사람들이 겪는거잖아.

 

 

 

아버지한테 끌려가서 친할아버지, 할머니의 감시 하에 한달 가까이 학교를 못 나갔다가,

동생 손 붙잡고 뛰어서 택시잡고 탈출한 적이 있기는 한데.

 

한 달은 짧아.

돌이켜보니까 그 것도 별 것 아니더라.

 

 

 

그리고 시간이 지나 중학교에 입학했어.

 

이 때는 이미 장기간에 걸친 가정 내 불화로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있었어.

거기에 사춘기가 겹쳤으니 어땠겠어?

 

나는 성격이 내성적이라 어떻게 풀 방법을 못 찾았고, 좀 찌질한 기행으로 나타났어.

 

현실에선 온갖 이상한 짓들을 해서 친구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인터넷에서는 진짜 별 것 아닌 일로도 시비트고 말꼬리 붙잡고 싸우고 다니는거.

 

쓰레기같은 짓이었고, 찌질했고, 한심했지.

 

어쩔 수 없었어.

자기합리화인거 알아. 하지만 별 수 없어.

 

안 그랬으면 나는 그 때 이미 죽었을거야.

이제와선 차라리 그랬으면 좋았겠다 싶긴 하지만, 나는 살고 싶었어.

 

 

 

중학교 땐,

참 많은 일들이 있었어.

 

외모가 아버지를 닮았다는 이유로 어머니한테 차별을 당했고,

 

누나와 남동생이 힘을 합쳐서 집안에서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해.

단순히 밥을 자기들끼리 먹고 잔반으로 먹게한다거나, 그런게 아니었지. 그 것도 있었지만.

 

일하고와서 피곤한 어머니한테 허위로 쟤가 동생을 때렸다거나.

나누어 가지라고 어머니가 용돈을 주면 자기들끼리 써버린다던가. 그런거였어.

 

나중에 알고 보니까, 내가 남동생이랑 같이 아버지한테 끌려가서 감금당했을 때.

어머니는 자살을 하려했고, 그런 어머니를 말리려는 누나가 나 혼자론 안 되냐고 했는데,

어머니는 그런 누나에게 혼자는 안 된다고 했대. 그게 원인이래.

아버지는 아들을 원하고, 어머니는 나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대.

 

듣는 나로선 내 잘못도 아닌 걸로 어처구니 없는 괴롭힘을 받은 셈이라 황당했지만

어쩌겠어? 시간은 되돌리지 못 하는데.

 

집안에서의 체벌은 기본이 목도였어.

가끔 조금 더 심한 잘못을 저질렀으면 쇠파이프로 맞았지.

옷장 위에 걸이용으로 달려있던 철로 된 봉이었는데, 그걸로 맞았어.

근데 쇠파이프로 맞은건 언제나 나 뿐이었지.

 

남자기도 하고 넌 운동을 했으니까.

남들보다 더 많이 혼나야한다. 그게 이유였어.

 

개인적으론 그냥 외모가 아버지를 닮아서 그랬던거라 생각해.

 

 

 

그 외에도 참 셀 수도 없이 많은 일들이 있었어.

 

자고있는데 숨이 막혀서 깨어나니 누나가 목을 조르고 있었어.

내가 싫대. 혐오스럽대. 니 때문에 자기가 힘들대. 내가 뭘 했는데?

 

동생이 내 물건과 지갑에 손을 대서 때렸어.

쇠파이프를 들고와서 날 패길래 맞다가 뺏어서 동생 한대 때리고 집 밖으로 던졌어.

그랬더니 식칼을 들고와서 휘두르길래 맨발로 집 밖으로 도망쳤어.

퇴근하고 집에 온 어머니는 날 혼내더라. 운동한 놈이 동생을 때려서 그런거래.

 

그 날 밤 잠을 못 잤어.  새벽 4시인가.

 

어머니랑 누나랑 대화하는게 들렸거든.

어머니가 누나한테 그러더라고.

너무 심하게만 하지말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거야.

 

그 때 이후로 가족들 중 아무한테도 기대를 안 했어.

솔직히 자포자기 하고 살았지. 상위권에서 놀던 성적도 그 때부터 곤두박질쳤어.

 

그냥 살아 숨쉴 때 곁에 느껴지는 모든게 싫었어.

피부에 닿는 모든게 혐오스러웠어.

 

 

 

이 즈음 해서는 가정사가 바깥으로 유출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랑 싸우고 학교에 전화해서 어머니를 정신병자라고 선생들한테 통보하고 다녔어.

더이상 생활비도 주지 않았어. 한겨울에 집에 난방이 안 되어서 패딩입고 잤어.

 

 

 

어느 날 새벽에 잠에서 깼는데

그제서야 몇년간 외면해왔던 현실이 눈에 들어오더라.

 

집은 벽이 부숴져서 시멘트가루가 바닥에 흩어져있는데 아무도 청소할 생각을 안 해.

창틀은 떨어져나가있고, 지붕은 주저앉아있어.

 

그 틈으로 바람이 숭숭 들어와서 자기 전에 떠놨던 물에 얼음이 껴있어.

 

그리고 그 가운데 세탁 안 한지 2년이 된 낡은 패딩을 껴입고 자고있는 내가 있었다.

 

 

 

가족들이 나를 혐오스러워하고,

성격 탓에 몇 없던 친구들도 학교에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자 다들 모른 체 하기 시작했어.

 

이 즈음 해서

내 방문 앞에 어머니가 불을 질렀다.

 

다행히 조기에 운 좋게 발견한 누나가 불을 끄긴 했는데.

졸다가 밖이 시끄러워서 나와보니까 내 방문 앞, 집의 1/4가 불타있더라.

 

그 와중에도 아무도 나한테 괜찮냐는 말을 건네지 않았어.

 

나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었던거야.

이게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벌어진 일.

 

 

 

중학교 3학년이 되고 나서, 생각을 했어.

이제 16살, 20살까지 4년. 내가 12살 때부터 지금까지 겪어온게 4년.

 

그러면 지금까지 겪어온 만큼만 참아내고 견뎌내면 나 혼자 나가서 살 수 있다.

 

근데 그러려면 내가 잘해야한다.

하지만 뭘 잘해야할까? 모르겠는데, 일단 내가 지금 할 수 있는건 공부 뿐이니까 공부를 하자.

 

 

 

손에 놨던 공부를 다시 잡았고,

여전히 전교 하위권 수준이었지만 그 학기 가장 성적이 많이 오른 학생이라고 칭찬도 받았다.

 

 

 

근데 집에 오니까

 

성적이 떨어진 지 2년만에 내 성적표를 본 가족들이 있었다.

성적이 왜 이렇게 떨어졌느냐고 묻더라.

 

아무 말 않으니까, 학원을 강제로 끊었다.

난 알아서 할거다. 학원 다닐 생각 없다. 학원 다니면 100% 성적 떨어진다.

그 학원 나는 정말 싫다. 그렇게 얘기했지만 소용 없었다.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우리가 이혼했으니까, 우리가 욕 먹지 않으려면 니가 잘해야 돼."

 

그 때 든 생각이, 내가 잘해봐야 이 사람들한테 득 되는거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다시 공부에서 손을 놨고, 컴퓨터를 붙잡고 살기 시작했다.

 

집에선 새벽이면 창문으로 나와서 온 동네 골목길을 아무 이유없이 돌아다녔고

학교에선 온 종일 잠만 자다가 하교하면 컴퓨터 붙잡고 새벽이 될 때까지 인터넷에서 찌질하게 싸우고 다녔다.

 

그 때도 그게 잘못됐다는건 알았는데.

이런 짓이라도 안 하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툭하면 코피터지고 머리 아파서 토하던 때기도 하고.

 

 

 

또 다시 시간이 지나서

고등학교 1학년.

 

집은 여전히 엉망이었고

이혼을 한 지도 오래되었을 텐데, 툭 하면 싸움이 났다.

 

이 즈음 해선 솔직히 버틸 수가 없었어.

 

 

 

그래서 화를 냈다.

 

나도 좀 살자고, 나도 좀 지긋지긋하니까 제발 좀 그만하자고,

그냥 대화 한번 하고 끝내던지, 싸우고 끝내던지, 아무튼 다 좋으니까 한번 끝내자고.

 

거절하더라.

자기들이 내 말을 왜 들어야하냐고 면전에서 비웃더라.

 

그 때 내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없었고,

나는 멍청한 생각을 했다.

 

등교 거부.

 

 

 

가족들 싹 다 체면을 신경쓰던 사람들이니까.

 

내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이 것 뿐이다. 그렇게 오판하고서.

 

 

 

아버지가 학교에 자퇴서를 내고 왔고, 나는 중졸이 되었다.

 

 

이 때의 충격이 너무 컸다.

24살까지도 고등학교와 관련된 악몽을 꾸었을 정도로.

 

솔직히 아직도 트라우마고, 학력은 콤플렉스다.

 

 

 

아무튼,

 

그 이후는 한동안 기억이 없다.

 

그냥 별로 쓸게 없어서 기억이 없다고 하는게 아니라, 충격이 너무 컸던 탓인지

2012년 여름부터 2014년 여름까지 약 2년간의 기억이 아예 없다.

 

그 때에 검정고시도 합격하고 어째 살긴 살았던 것 같은데.

 

딱히 뭘 했는지에 대한 기억이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2014년.

언제부터인진 제대로 기억이 안 나는데,

 

나는 그 때는 이미 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었고,

아버지가 집에 다른 여자를 데려오기 시작했다.

 

참.

역겨워서 못 버티겠더라.

 

무작정 짐 싸들고 어머니한테로 갔다.

 

 

 

어머니도 재혼을 한 상태였는데, 어떻게 방 하나 빌려 살 수 있게 되었다.

참 부담되었을텐데 어떻게 방 하나 내주더라.

 

난 그냥 고시원값 한두달 치 내주고 말 줄 알고 간건데.

 

 

 

음.

 

그리고 알게된건 나는 쓰레기였다.

백수놀음을 몇달씩 했다.

 

뭐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든지...말해봐야 변명이지.

결국 쓰레기니까 그렇게 산거고.

 

몇달 후부턴 국비지원 교육도 받아보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하곤 했지만

 

오래 못 가더라.

 

알바 잠깐하고 몇달씩 놀고 알바 잠깐하고 몇달씩 놀고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2018년.

 

 

 

정신 차려보니 23살이었다.

군대는 면제.

 

의외로 정신과 쪽은 정상이라고 나오고 (개인적으론 불신한다.)

시력으로 인한 4급이었는데, 장기대기 사유로 면제.

 

 

 

그리고 그 해에, 좀 큰 일이 있어서

옷 3벌, 신발 2개만 달랑 들고 통장 잔고 0원으로 서울에 돌아왔다.

 

 

 

친구한테 빌려 고시원을 겨우 잡고,

알바앱을 뒤져 가장 가까운 곳의 알바를 조건도 보지 않고 들어가고,

 

그렇게 일을 시작하고 몇달 뒤 관두고,

 

다시 몇달씩 백수 노릇 하다가

알바앱을 뒤져 가까운 곳의 알바를 보지 않고 들어가고,

몇달 뒤에 관두고.

 

 

 

수 없이 반복하다가 깨달았다.

 

아,

 

나는 망가진 사람이구나.

 

나는 정상적으로 살 수가 없구나.

 

일을 오래할 수가 없고, 한 곳에 오래 잘 정착할 수도 없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선택지가 좁아서

공사판, 상하차, 간단한 아르바이트, 주방 보조 정도 뿐이었다.

 

 

 

열심히 일을 해도 겨우 몇달 뒤면 사소한 걸 이유로 포기하고 관두는걸 반복.

 

 

 

일을 관둘 때마다

나는 사회를 살아갈 수가 없다는 확신이 진해진다.

 

 

 

고시원도 지긋지긋하고, 좁고 냄새나는 여관도 지긋지긋하다.

애초에 이 나이에 이렇게 사는 놈이 나 말고 몇 없을텐데 싶고.

 

몸 겨우 뉘일 한칸짜리 좁은 고시원의 눅눅한 천장을 바라보고있으면

그게 내 인생의 관짝 뚜껑을 덮는 것 같아서 숨이 막히더라.

 

 

근데 그래도 못 고쳐.

나는 못 바뀔 것 같단 생각이 들어.

 

사람의 근본은 못 바꾸잖아.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송두리 채 날려버리는게 아니라면 못 바뀌어.

 

근데 그럴 순 없는거고, 그럼 나는 못 바뀌는거고.

 

못 바뀌면

난 현실을 못 살아가는 사람인거고...

 

 

 

 

그런 생각들을 하고 나니까

 

천천히, 천천히.

삶을 정리해야겠단 생각이 들더라.

 

 

 

지난 몇 달 동안 생각을 천천히 정리해봤는데

 

삶을 정리해야겠단 생각이 안 바뀌어.

 

여전히 살고싶단 생각은 드는데,

글쎄.

 

살고싶다고 해서 살 수 있는게 사람은 아니잖아.

아무한테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사람은

도태되었으니 사라지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

 

 

 

제목에는 머지 않아 자살할 생각이라 했지만

아마 짧아도 1년 뒤일거야.

 

지금은 아무 것도 없으니까.

 

 

 

뭐라도 정리하고 나면

 

그 때 가야지.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라도

스스로에게 보여주는 유서라고 생각하고 쓰기 시작한건데

 

쓰다 보니까 좀 두서가 없고 정신이 없다.

 

나도 뭐라고 썼는지 모르겠어. 그냥 한탄하는 것 같은데.

 

 

 

 

나도

고시원 말고 제대로 된 방에서 살고싶고

 

나도

남들처럼 제대로 일해서 돈 벌고 모으고 평범하게 살고싶고

 

나도

의지할 곳 있고, 기댈 사람이 필요했는데.

 

 

아무 것도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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