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아픈 엄마와 우리 아빠

쥐띠 |2021.03.24 17:27
조회 108 |추천 0
영원히 건강할것 같던 50대가 넘은 우리엄마가
건강 검진을 통해 작년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전조 증상이 있던 엄마지만,
작년 초부터 직장이 인력이 부족해서. 코로나라서. 시기를 미루다 작년 말에서야 발견이 되었다.

엄마가 후회하셨다.
진작 말할걸..

아빠는 그에 “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야” 하셨지만

내가 어릴적 아빠는 호랑이같은 성격에 엄격했던 사람으로 기억되었는데, 엄마가 잠든 날밤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시며 “ 빨리 말해주지.. 이상한것 같다는 말 한마디만 해주지” 하셨다. 밤마다 그 생각에 잠을 잘 수 없으나 안그래도 죄스러워하는 엄마에게 차마 말할수 없다고 하셨다.

솔직히 나는 실감이 안났다.
친척들에게 할머니에게 엄마 친구들에게 다 비밀로 하기로했다.
아빠는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왔고 어디가서 털어놓을 수 없는 가장이셨다.

일하는 도중에도 집에 혼자 있을 엄마가 너무 걱정되하셨다.

엄마가 먹고 싶단 음식은 다 사왔고, 아빠가 야근하는 날 엄마가 굶을까 걱정이 되는 아빠는 배달이안되는 가게에(포장만 가능) 전화로 사정을 부탁하고 직접 퀵까지 불러가며 엄마 식사를 챙기려하셨다.

부정적으로 말하며, 심부를 시켰는데 너무 많이 사왔다고 짜증내는 엄마에게 아빠는 “ 엄마가 화내도 행복하다” 고 항상 긍정적으로 말해주던 아빠

항암 치료로 머리를 다 밀은 엄마에게 “ 여보는 두상도 참 예쁘다” 해주고 입원 하는날 비용때문에 다인실만 예약한 우리엄마를 알게된 아빠는 그자리 바로 원무과에 전화해서 1인실, 2인실 예약하셨다.

우리집이 사업가 집안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지만, 그 병원비 몇백이 뭐가 아깝냐고. 최고의 치료를 할거라며 서울의 큰병원도 바로 예약한 아빠였다.

무조건 항암주사도 가장 좋은걸로

지방에 사는 우리가족. 아빠는 엄마의 항암치료마다 연차를 써서 본인이 직접 운전해서 새벽부터 엄마를 모시고 가셨다.


항상 꼿꼿하게 살던 우리 아빠는 교수님에게 항상 감사하다고 숙였고, 엄마는 입원했다.

수술당일날도 아빠는 모든 순간을 엄마곁을 지켰으며
다음날 엄마가 어느정도 정신도 회복되고 아빠는 직장때문에 다시 복귀해야했을때, 엄마가 수술로 몸도 붓고 수액으로 보행이 힘들자 저녁 식판을 치워줘야 한다는 이유로 엄마가 저녁드신 후 내려가신단다.

미안했던 엄마는 점심 식사 후 아빠를 내려보냈고, 아빠는 내려가기전에도 간호사한테 간병인을 쓸수 있는지 여쭤보았다.

퇴원 하는날도 새벽부터 올라와 엄마 기다리고 늦어지는데 화 한번 안낸 아빠

엄마 무조건 완치 받게 할거고, 완치 후에도 매번 f/u, 건강검진으로 엄마 챙길거라는 아빠


어릴적 아빠는 그저 무섭고 엄격하게만 봤던 내 시각이
아빠가 두려움에 우시는 모습이 마음이 무너지는줄 알았다


수술이 끝나고 집에서 회복중인 엄마를 위해 코로나때문에 엄마가 못온척하며 매달 외할머니 보러 아빠 혼자 가신다.

부정적이였던 우리엄마게게 긍정적으로 말해주는 아빠
아빠가 말하셨다. 아픈 엄마에게 아픈 말을 하는 순간 집안은 무너지는 거라고. 가장 힘들고 아픈 엄마에게 예쁜말만 해줘야한다고.

나는 왜 그동안 몰랐을까.

어디가서 말 할곳 없이 적어본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