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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과 학교폭력을 당한 18 하소연 좀 들어주세요.

0주 |2021.04.08 02:11
조회 413 |추천 6
안녕하세요. 올해 18살 고등학교 2학년인 남학생입니다.

제가 여태까지 살면서 이 억울한 이야기들을 풀고싶어 늘 마음이 답답했었는데 지금이나마 용기를 내어 한번 풀어보려고 합니다.

어렸을 적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을 하고 저는 아버지쪽의 보살핌(?)을 받아 살아왔습니다. 유치원 시절이였을 적 부터 저의 가정폭력은 시작됐었는데요.

아버지가 늘 저녁이면 친구분들과 술자리를 하러 가시는 겁니다. 저는 무섭고 두려워 세탁기 옆에 욕조를 밣고 세탁기 위에 있는 창문을 통해 빠져나가 저희 동네 근처 지구대로 향했었죠. (혼자서 간게 아니라 주변 어른이 도와주셨었습니다.) 지구대에서는 늘 먹을 것과 담요 과자등을 주셨으며 저는 할아버지 전화번호를 기억해 늘 할아버지가 데려다 주시는 일상을 초등학교 올라가기 전까지 반복했었습니다.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 초등학교 5학년 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당당해졌었죠. 허나 그 당당함이 꼴보기 싫었는지 결국은 따돌림으로 이어졌고 저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거나 지나가다가 배를 맞는 등 정말로 쳐맞고 쳐맞는 일상을 반복했었습니다. 결국 못 참다 폭발한 나머지 그 아이를 때렸고 선생님은 무슨 일이냐며 자초지종을 물으셨습니다. 그렇게 학교폭력이 알려지고 조치가 취해지나 했는데 다음날 평범하게도 그 쌍둥이(주범)들은 저에게 눈치를 주며 이를 갈고 있었죠.

초 5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학년 올라가 초6 그 녀석들은 끝을 모르더군요. 지나가면 "아 저 새끼다" "병신ㅋㅋㅋ" "야 말걸어봨ㅋㅋㅋ" 등등 제가 다 들리게 뒷담화아닌 뒷담화를 하였으며 한 번은 배가고파 밥을 더먹을려 하는데 저한테 "돼지새낔ㅋㅋ 작작좀 쳐먹지" (지도 더 쳐먹을려고 뒤에 있었다는게 함정ㅋㅋㅋ 심지어 저는 날씬했고 그녀석은 비만이였던...)라며 아주 아니꼬운 꼽을 주었죠.

그 녀석이 자리에 먼저 일어나 드디어 가는구나 싶더니 갑자기 저에게로 다가와 식판을 머리에 부어버리고 강아지라며 비웃고 급식실을 떠났습니다.

참고로 초6은 이 사건을 이후로 저희 담임선생님 귀에 들어가자마자 "야 쌍둥이 일로와봐"라며 엄청나게 크나큰 목소리로 그 녀석들을 혼내시는 것을 제가 직접 목격하였으며 그렇게 초등시절 학교폭력은 그 시절 이후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 실내화 가방이 없어 찾아보니 남자화장실 변기에 빠져있었던 적도 있었네요..)

그리고 지금부터가 제 인생최악날 시작입니다..

중1 할머니가 쓰러지시고 병원으로 입원을 함과 동시에 돈이 필요했던 아버지는 투잡을 하시고 저는 초5,6의 사건을 떠올려 어떻게 해서든 따돌림을 멈추려고 친구들을 마구마구 사귀었습니다.

그렇게 학교생활이 안정화되다 보니 이제는 집안이 저를 괴롭히더군요. 아버지의 투잡은 아버지를 스트레스 받게 하셨고 저는 그 화풀이 수단이 되었습니다. 중1 그렇게 특별할 것도 또 나쁠 것도 없었던 인생은 중2로 올라갔고 아버지의 스트레스는 점점더 증가 여자친구 한 번 잘못사귀었다고 저는 없던 소문이 돌고 이름만 친구라는 놈들은 금세 다른 아이들 쪽으로 붙어버렸습니다.

그때 처음 깨달았죠. '진실여부는 궁금해 하지도 않은채 연기처럼 도는 소문을 바람으로 만드는 그 아이들은 정말로 단순하다고.'

중2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는데 몇명은 아니꼬운 시선으로 노려보고 여자애들은 뒷담화를 아주 신명나게 까더군욬ㅋㅋㅋㅋㅋㅋㅋㅋ 다행히 저도 믿을 수 있었던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 녀석들을 의지하며 살아갔습니다. 허나 아버지의 정신은 더욱더 피폐해지셨고 한 번은 저의 꿈(특전부사관)을 이야기하는데 이리 말씀하시더군요 "너가? 특전사?ㅋㅋㅋㅋㅋ 운동잘해? 공부잘해? 군대는 적응이얔ㅋㅋㅋㅋ 너는 절대로 못할걸ㅋㅋㅋㅋㅋ 걔네들 봐라 서울 엘리트들이라니까?ㅋㅋㅋㅋㅋ" 이라면서 개무시를 해버리셨습니다.

결국 그 날을 기점으로 특전부사관을 포기하고 살아갔었습니다.

...중2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죠 과학선생님이 프린트를 잘못 거둬왔다고 제 머리를 때리며 병신이라고 하질 않나 가정교육 못받았냐고 하질않나ㅋㅋㅋㅋㅋㅋㅋ 내 수업에 네 라는 말 조차도 하지 말라고 하질 않나... 한 때는 저를 괴롭히던 무리중 한명이 책상의자의 혼자 앉아있던 겁니다. 축 쳐진 어깨와 얼굴이 걱정된 나머지 그 친구에게 다가가 "괜찮아?"라며 말을 걸었고 그 친구의 고민을 들음과 동시에 저도 그 아픔을 알고 전날의 기억들은 뭍어둔체 그 친구랑 제 친구랑 같이 다니게 되었죠. 좋았습니다. 성격도 얘가 착한 것도 알고보면 순진한 아이에다가 그저 떠밀려왔었던 소심한 아이지만 심성은 바른 녀석이란 것도요. 그렇게 6개월을 지낸체 그 녀석이 저한테 이리 말하더군요. "정말 미안해.. 나 그 녀석들이랑 화해해서 다시 그쪽으로 붙고싶어." 저는 그 녀석이 조금더 행복하기를 빌며 "니가 좋아하는 쪽으로 가면되는거야. 다만 후회는 하지마라" 라며 쿨하게 보내주었습니다... 허나 내심 쓸쓸한 감정이 자리잡았던 것은 예상이외의 경우였습니다. 그렇게 친구 한명을 보내주고 다시 저는 저의 친구들과 놀기시작했었죠.

그렇게 중2를 잘 마무리하나 싶었더니 아버지의 모진 말들은 거세졌고 중3 자살시도를 했었던 시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중3으로 올라가 친구 이 외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오직 저에게는 친구들만이 저의 자랑거리였죠. 제가 집에서 부여받은 역할이 있었는데 첫번째 설거리 두번째 빨래였습니다.

체육대회 전날 저는 들뜬 나머지 그 전날 설거지를 못다하고 잠에 들었으며 아침 일찍 아버지가 저를 깨우시더니 설거지를 안했다고 저의 명치를 발로 찬다음 주먹으로 가격한 뒤 나무 빗자루(엄청 단단합니다.)를 들고와 저의 옷깃을 잡으며 수 없이 내리치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멍투성이로 체육대회 날을 맞이했었고 그 날은 너무나도 슬픈 체육대회 날이였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의 모진 말은 더욱더 심해짐과 동시에 과격해지셨고 술만 마시면 때리는 등 특히 머리를 가장 많이 맞았었습니다.

중3 겨울 아버지가 밖으로 불르시더니 재혼을 한다네요ㅋㅋㅋㅋ 전 얼떨떨하게 "아빠 선택이니까요.."하며 이야기를 끝냈었고 어머니가 들어온다는 설레임에 잠을 청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태국분의 새어머니가 들어오고 어머니는 저에게 음식과 과자를 사다주셨으며 저는 같이 저녁먹을 사람 이야기할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눈물과 웃음이 끈이지 않았었습니다.

허나 이러한 따스함도 3개월 뒤에는 아예 단절되었으며 이제는 그냥 저녁을 혼자 먹으라는 듯이 반찬만하고 쓰윽 가셨습니다. 처음에는 돈 버시니 이해하고 넘어갔는데 반찬은 점점더 소홀해졌고 이제는 계란국 만두국만 2달동안 쳐먹어 댔다가 나머지 반찬하나는 계란1나 만들어주고 끝이였습니다. 이런 생활을 하다보니 배는 점점더 고파졌고 새벽 4시 너무 배가고픈 나머지 5000원을 들고 편의점으로 햄버거하나를 사러 향했었습니다.

갑자기 전화가 한통 걸려오게 되더니 아주 큰 목소리로 이러한 말씀을 하시더군요. "너 어디야 이 새끼야!! 지금 새벽이잖아!! 죽고싶어?" "저 배가 고파서 편의점에 잠깐 가려.." "빨리 안들어가?" "지금 들어갈게요" "하...빨리 사와" ?? ㅅㅂ 놀리는 건가했습니다. "아뇨아뇨 들어갈게요 죄송해요" "이 씨x 너 내일 죽었어 개xx야"라며 통화를 끊으셨습니닼ㅋㅋㅋ 새어머니가 평소에는 새벽에 나가도 뭐라 안하더니 그날은 이상하게 아버지한테 저 나갔다고 꼬지른 거였더군욬ㅋㅋㅋㅋ 이렇게 다음날 눈칫밥 줜나쳐먹고 저는 속으로 '몰카인가..'하며 황당한 상태로 하루를 보냈었습니다.

(+)또 어느 날은 두 분이서 부부싸움을 하는데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말려댔었고 그 장소가 밖이며 비가 오던 때라 비를 다쳐맞으며 두분의 싸움을 중제했었습니다. 어머니라는 양반이 아버지가 친구 차타고 갈려하니까 달리는 차 앞을 몸으로 뛰어들어막더군요ㅋㅋㅋㅋㅋㅋㅋㅋ 와 씨 어이가 없어서 어머니 잡고 하지말라하는데 바닥에 주저 앉더니 저를 밀치고 차 앞만 6번이상 가로막아 결국에는 차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후...sibal)

이렇게 기막히고 황당한 일들이 반복되고 반복되고 반복되다가 방안에서 창문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있던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뛸까... 한번에 죽을 수 있겠지.."
진짜로 멍한 기분이였고 실제로 제 방 바로 앞에 창문이 있고 빨래 건조대 앞에 베란다가 있었는데 그쪽으로 넘어가 난간에 기대서고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정도면 죽을 수 있겠는데..." 결국 나간에 기대어 있던 몸을 창문으로 이끌고 "아니.. 난 이것도 못하잖아"라며 혼자 중얼거린체 다시 방 창문에 걸터앉아 멍하니 사색에 잠겼었습니다.

그 후로 부터는 모든 것이 자살,자살,자살 이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담고 살았고 "이렇게는 못 살잖아"라며 수없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었습니다.

제가 정말로 손 떨리며 고민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우연히 주방을 지나가다가 식칼이 눈에 보이는 겁니다. 그걸 이유 없이 짚어들고 목에다가 들이댄뒤 "아프겠지.."라는 생각을 수없이 하게 되고 칼날을 목에 살짝 찌르며 들이대니 손이 떨리고 심장은 뛰며 제 눈은 계속 식칼의 날만을 바라보게 되더군요. 결국 "이건 아니야 라며" 식칼을 복부로 옴겼고 이것도 손이 떨리고 심장이 너무 뛰다보니 결국은 그냥 포기하고 식칼을 제자리에 돌려놓았었습니다.

이렇게 소심한(?)자살 시도를 빈번히 반복하게 되고 저는 스트레스를 친구들한테 괜히 화내며 풀고있었죠..(고1 정식으로 사과하고 지금까지도 잘 내고 있습니다) 결국 소심한 수차례의 자살시도 끝에 학교는 자살방지캠페인으로 설문조사를 시작했고 제가 학교에서 자살율이 가장 높게 나왔다며 그때는 선생님한테 계속해서 불려가고 위클(상담)선생님이 너 무슨 일 있냐며 본격적으로 제 이야기를 털어놈과 동시에 법적인 처벌은 원하지 않는다 하고 점심시간때마다 선생님 차타고 심리치료 받으러 갔었습니다. (그쪽 햄버거,피자 주면서 재밌었습니닼ㅋㅋㅋㅋ)

이렇게 중3에서 고1이 이전 아버지가 저를 의자에 의자에 앉히더니 "너 동생생겼다"며 뜬금없는 개소리를 시전하게 되고 진짜로 2020년 4월 28일 제 동생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둘째가 생겨 그런지 아버지의 욕설과 폭력은 폭포수처럼 수직하강하게 되었고 이제는 살았다 하며 지냈는데 역시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더군욬ㅋㅋㅋㅋㅋㅋㅋ

1. 고1 코로나로 학교에 못간채 집에서 박혀있었던 어느날 갑자기 안방에서 큰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그날은 새벽이였고 아버지가 약주를 약간하셔서 술먹고 주정부리나 했는데 어머니가 2000만원 정도의 빚을 질뻔하셨고 그 실수를 아버지는 수차례 넘겨드렸는데 어머니는 그걸 넘긴다고 괜찮은 줄 알고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신겁니다. 결국 아버지는 생각좀 하겠다며 문을 나서셨는데 어머니가 얘 잠옷만을 입힌체 아버지의 문앞을 가로막은 겁니다. 참고로 잠옷이 얇았고 그 날은 11월 12월? 쯤이라 엄청 추웠습니다. 심지어 새벽.... 그렇게 아버지와 저는 제 동생 넘기라면서 이건 아니라고 얘 춥다고 하는데 끝까지 잡아때고 있었고 아버지는 결국 참다못해 엄마를 밀쳐 계단으로 내려가는데 엄마가 "아아아"하면서 아버지 말리러 내려가는 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계단에서 난리날까봐 6층? 정도에서 어머니를 잡아 아버지보고 그냥 빨리 가시라고 말렸는데 갑자기 이 여자가 소리를 지르더니 주저 앉더군요. 그건 제 알빠가 없었습니다.

허나 문제는 새벽이였고 주변의 민폐와 더불어 하필이면 계단이라 소리는 울리지 가장 중요한 얘는 그 소리에 깜짝놀라 천둥치는 소리로 우는겁니다. 저도 결국 참다못해 (가명:은빈) "엄마!!! 은빈이 은빈이 주시라고요!!!!" 라며 빠르게 제 동생을 때어낼려고 했었고 제 동생이 어머니가 너무 꽉 잡아 쪼이는 바람에 숨을 못셨음과 동시에 얘 귀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니 저는 더욱더 미치는 심정에 "놓으시라고요!!! 얘가 숨을 못쉬잖아!!"이러며 진짜 온 힘을 다해 제 동생을 빼내려 했습니다. 슬슬 손이 풀리고 제 동생을 데리고 가려하니 저를 계단에서 밀치더군요. 그대로 굴러 떨어짐과 동시에 저를 계단에서 밀쳤던 어머니를 본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향하셨고 저는 아버지를 꽉 안으며 "괜찮아요"라며 수십번을 말씀드렸습니다. (갑자기 아버지 노릇해서 이상했네욬ㅋㅋ) 그렇게 5층 사람이 경찰 부르고 여경찰과 남경찰이 온다음 몇시간 가량을 이야기한 뒤 사건은 마무리되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나가서 혼술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러면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2. 이건 몇달전 일입니다. 비교적 최근이죠.
아버지와 고모그리고 어머니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겁니다. 얼마나 마셨는지... 고모과 아버지의 시비가 싸움으로 이어지고 어머니라는 년은 저를 부른 뒤 지는 하지 말라며 뒤에서 울고있더군욬ㅋㅋㅋㅋㅋㅋㅋㅋ 아버지와 고모를 말리며 저는 두 분 사이에 끼어 구타를 당했으며 고모가 선풍기로 아버지를 때릴려 하기에 오른손으로 막고 선풍기는 그 오른판 충격때문에 커버가 날아감과 동시에 강풍으로 회전했습니다.. (버튼도 눌려졌는데 하필 강풍..)그걸또 아버지가 짚고 고모를 때릴려하시기에 선풍기 노커버에 강풍으로 돌아가고 있던걸 왼손으로 막았고

덕분에 저는 왼손 아래가 일자로 찢어지며(심하게는 아니였는데 일자로 쭈욱 찢어져있더군요) 피가 나는 상처를 부여잡고 있었습니다. 진짜 온힘을 다해 두 분을 떨어뜨리고 고모를 제 방으로 모신다음 "이제 주무세요.."라며 기진맥진한 상태로 거실을 나왔습니다. 거실 의자를 보니 아버지가 담배피며 앉으라고 하심과 동시에 제가 의자에 앉은 후 "자식새끼 바꾸고 싶네"라며 여태까지 개 처럼 살아왔는데 이딴 소리를 개소리를 하는겁니닼ㅋㅋㅋㅋㅋ 제가 진짜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아빠 마음 다 이해한다고.. 힘드신거 안다고 근데 나도 힘들고 손풍기 날에 손 맞아서 피도나 아프다고..." 이러니 저한테 "찌질한새끼 우냐?" 라며 "우~울어~~~" 이야... 이러면서 놀리는겁니다.. 결국 2만원을 챙겨 문을 열고 뛰쳐나갔으며 24시 편의점에 도착해 먹을거리와 붕대 벤드를 사 어머니한테 먹을거 드리고 저는 제 컴퓨터 방에서 치료한 뒤 그냥 그 바닥에서 잤습니다..

지금 저는 고2입니다. 18살이죠. 16살 자살시도를 하고 어쩔 수 없이 성숙해져야만 했습니다. 어리광도 부리며 살아가고 싶었는데.. 이 인생이 가끔은 비참하고 쓸모없어집니다. 그래도 작은 것에 만족하고 행복해 하는 제 자신은 너무나도 좋습니다. 이럼에도 살아갈려고 하는 제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허나 아픈거는 매 한가지네요... 우리 남동생이 11개월인데 3개월 동안 쌀마음만 맥이고 그 와중에 짜파게티를 맥인적도 기름진 두부를 맥인적도 일반인이 마시는 국물이는 조미료가 다량 첨가되어 있는데 그 국물을 맥이는 등 그 안에 고기를 맥이는 등... 보다 못해 제가 이유식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제는 아이가 이유식을 잘 안먹습니다..

저는 성인이 되고 난 후인 2년뒤 이 집을 바로 나갈 생각입니다. 아예 가족과 연을 끊으려고요. 물론 금전적인 면에서는 도와드리고 그래도 키워주신 감사함은 알고 있으니 도움도 드리며 살아갈 생각입니다. 허나 같이 밥을 먹거나 여행을 가거나 할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집을 떠나기 전에 형이라는 존재가 비록 집과의 이별을 택했지만 그래도 가족중에서 너를 가장 사랑하고 아끼고 얼마나 신경썻는지 그리고 이 아이가 부디 저와는 다른 생활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에 최소한 2년이라도 형 노릇하면서 잘 먹이려고 하는 중입니다.

18살 못난 하소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제 동생이 저와는 다른 생활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고 만약 제 동생 얼굴에 상처하나라도 난다면 가족이건 뭐건 다 뒤엎을 생각입니다. 다만 저도 저의 인생이 있기에 이제부터는 제 자신을 위해서 살아갈려고합니다.다시한번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늘 답답한 이 마음 오늘은 개운하게 내뱉어 보았습니다. 18살도 이렇게 사는데 여러분들이라고 못하시겠습니까. 작은 일에도 행복해 하면서 살아가세요. 소시민은 공감하고 뭉칠 수 있기에 행복하답니다. 그 소시민이 이 세상을 따듯하게 한다는 사실 만큼은 잊어버리지 마세요. 저희들의 따듯함이 길가에 다양한 색들의 꽃들을 피어나게 합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꽃을 길가에 피워주시기를 바라며 글 마치겠습니다.


(+정말로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참고로 제가 찍었으며 이날 나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자고 다짐했었네요 ㅎㅎ 이 넓고 뻥 뚤려있는 풍경을 보니 아직도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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