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이에는 이, 눈에는 눈 ! (경자 story)
그리고 한 한 시간쯤 지났나?
개판 씨가 왔다.
" 개판씨, 어서 와요. 춥죠? 이리와 보세요. "
" 어, 이거 웬 강아지예요? "
" 어때요. 귀엽죠. 이렇게 지켜보고 있으니까 마음이 편안해 지네요. "
" 그래요? 원래 우리 개씨 가문들이 사람을 좀 편안하게 하죠. "
" 하~아, 그런가봐요. "
" 민혁인 아직 안 들어왔어요? "
" 아뇨, 들어왔다가는 수혠가 그 여자 전화 받고 나갔어요. "
" 아니, 수혜씬 무슨 급한 일이 있다고 다 늦은 밤에 불러내고 그런데요. "
" 글쎄요..."
나 같은 마음일 지도 모르겠다.
이 늦은 밤에 나도 개판씰 불러냈는데...
" 경자씨, 우리나가요. "
그리곤 마당 벤치에 앉아 불꽃놀이 폭죽에 불을 붙였다.
잘 타는 구나!
한 동안 폭죽을 바라보며 밤하늘에 갖다댔다.
" 개판씨, 이렇게 하늘에 대고 쳐다보니까 밤하늘에 떠 있는 별 같아요. "
" 경자씨? "
" ... "
" 수혜씨 한 번 만나봐요. "
" 제가요? ... "
" 글쎄요. 이 일은 수혜 씨랑 상관없는 일인 것 같은 데... "
" 왜요? 수혜가 사이에 껴서 일어나는 일인데..."
" 누군가가 사이에 낄 여지가 있다면 어쨌든 그것도 당사자들의 문제겠죠. 그리고 민혁인 우리사이에 대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도 않을 거예요. "
" 그래서 전 전부터 민혁 일 보낼 준비를 하려 구 하는데... 근데 그게 ... 오늘은 이상하게 심술이 나서는 가지 말라고 붙들 었드랬어요. "
" 그런데요? "
" 그냥 가더라 구요..."
" 개판씨! "
" ... "
" 다 탔네. 하나 더 주세요. "
난 하나를 더 받아들고는 역시 하늘에 대고 바라봤다.
문득 전에 바라봤던 그 별이 생각나 찾아봤다.
없다...
어디 갔을까?
저기 있구나...
이젠 그 빛이 많이 바래서 찾기조차 힘든데...
여전히 혼자 빛나고 있구나.
외롭겠다.
점점 시들어 가는 꽃처럼 ...
그 빛이 점점 사라져 가는 구나...
혼자선 오래 버티기가 힘들었을지도 몰라...
내가 하나를 보태어 줄게...
그리곤 폭죽을 그 별빛 옆에 갔다 대었다.
별이 두 개 니까 덜 외롭겠지...
한 동안 그 반짝이는 모습을 바라보는 데...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면서 별빛이 두루뭉실 하게 엉겨 보인다.
내가 울고 있는 거지...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불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곤 또 다시 눈물...
홍수가 나 댐에 가득 고인 물이 버티다 버티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처럼 내 눈에서 흐르
는 눈물을 나의 이성으론 감당할 수가 없었다.
난 고개를 숙이고 소리내어 울었다.
뭐가 슬픈지 잘 모르겠다.
그냥 뭔가가 서러운 것 같은 데...
그리곤 개판 씨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눈물을 훔치고 개판 씨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어주었다.
개판 씨도 슬픈 웃음을 짓더니 내 마지막 눈물 자국을 닦아주고는 안아 준다.
한동안 난 그렇게 편안하게 말없이 안겨 있었다.
이젠 울만큼 울었는지 눈물이 나지 않는다.
그때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민혁 이가 재희와 들어왔다.
민혁인 우리를 보고 매우 놀라는 기색이었으나 이내 냉정을 찾은 말투로 얘기한다.
" 개판이 네가 웬일이야? "
" ... "
" 넌 이 늦은 밤에 어디 갔다오는 거야? "
개판씬 대답대신 이렇게 물었다.
" 재희 데리러. 넌 이 늦은 밤에 나 만나러 온 거야? "
" 어~ 엉~ 개판이 오빠네, 와 오빠도 나 데리러 온 거야? 이거 놔 앙. 나 안 취했어. 자 봐.. "
그러면서 부축하고 있는 민혁일 억지로 떼어내고는 평균대에서 체조선수가 체조경기 보여주듯 똑바로 걸으려 노력한다.
그리고는 세 걸음 옮기고 쓰러진다.
민혁 이가 얼른 가서 부축하고 ..
" 야, 얘가 미쳤나? 계집애가 이렇게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마시면 어떻게 해?"
" 야! 너 누군데 나한테 계집애, 계집애 하는 거야? 으이씨"
" 야, 너 낼 보자. 이게 오빠한테..."
" 오빠~, 오빠구나.. 하 앙~ 우리 잘생긴 오빠야! "
그러면서 오빠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 야, 까불지 말고 얼른 들어가자. 누나, 뭐해? 문 좀 열어. "
그가 다소 짜증 섞인 목소리로 얘기한다.
" 응, 으응"
수혜씨 만나러 간 게 아닌가?
좀 당황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게 재희를 민혁이 방에 눕히고는 나와서 민혁인 개판 이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마당에서 개판 이와 한참 얘기를 하는 것 같더니 들어왔고 개판씬 갔다.
전세가 어째 좀 불리해진 것 같아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윗층 으로 올라가려는 데.
" 누나 "
" ... "
" 누나, 개판이 좋아해? "
" 무슨 소리야 ? "
" 그냥... 개판 이가 누나 좋아하는 것 같아서... "
" 그래서? "
" 누나가 좋아하지 않는다면 개판이 힘들지 않게... "
" 뭐? "
이게 내 생각은 조금도 안하고 그저 개판이 힘든 걱정 뿐이라...
순간 가슴속에서 돌덩어리하나가 튀어나오려고 하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면서 얼굴에 열이나고 심장이 마구 뛰어 가뿐숨을 몰아쉬었다.
" 뭐라구? 내가 개판 씰 좋아하든 말든 그건 개판 씨와 내가 알아서 할 일이야. 넌 네 일이나 신경 써. "
" 개판인 내 친구야."
" 그래? 그럼 난 뭐야? "
" ... "
" 왜 말이 없어. 너에겐 내가 아무가치도 없는 존재지? 그지. 친구도 아니고 수혜 씨도 아니고 첫사랑의 애인도 아니고 그지... 길거리에 다니는 똥개만도 못한 존재냐? 그러니까 내 기분 따윈 아랑곳 않고 네 멋대로 오 밤중이든 언제든 옛날애인이 불러내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뛰어나가지."
" 그러면서 너 지금 누구한테 충고야? 그리고 나두 개판씨 좋아해. 알잖아? "
" 앞으로 우리 일에 관심 꺼 줬음 좋겠어. "
막 퍼부었더니 잠시 냉정이 찾아진다.
차분한 음성으로 덧붙였다.
" 네 첫사랑이 꼭 이루어지길 바래... 네 소원이 그거 아니니? 그때 첫눈 오는 날 빈 소원이 그거지? 수혜 씨랑 다시 만나는 거 ... 정말 하느님이 널 무지 사랑하나 부다. 어쩜 그런 엄청난 축복을 주셨냐? 결혼한 여자가 첫사랑을 찾아오기가 쉽지 않은데... 널 위해 그 남잘 미리 데려 가셨나 봐. 잘해봐. "
그의 표정이 많이 굳어졌다.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올라가려는 데...
손목을 확 잡아끌어서는 허리를 꽉 안고 무섭게 쳐다본다.
" 야, 뭐야? 놓고 얘기해 "
순간 난 화가 나고 당황해서 그의 가슴을 두 손으로 밀어 냈는 데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 누나, 진짜로 개판이 좋아해? "
" 내가 꼭 너한테 그런걸 대답해야 할 이유가 있어? 이거 안 놔? "
" ... "
그가 안고 있던 허리를 놓아주었다.
" 진짜루 좋아한다면 어쩔 건데. 진짜 루 좋아 할거야, 앞으로... "
" 앞으로... 누나 진짜 못됐구나. "
" 뭐, 지금 누가 할 소린데... "
그리고는 이층으로 올라와서는 진정이 안되고 온몸이 떨려서 한 동안 마루를 서성거렸다.
한 열 바퀴쯤 돌았나?
이제 좀 진정이 되는 것 같은 데 폐에 산소공급이 안 되는 것처럼 답답함을 느꼈다.
거실 창문을 열고 매섭게 불어오는 겨울 바람을 맞으며 서 있으니 오히려 춥기보다 시원하다.
아까의 일을 생각건대 일면 개판 씨에겐 내가 너무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민혁 이에겐 너무 촌스럽게 내 마음을 보인 것 같아 맘이 더 씁쓸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일 사람들을 어떻게 볼라나...
그러면서 민혁 이에겐 그동안 갖지 못했던 오기 같은 것이 싹트는 것을 느꼈다.
다음날 아침!
새벽에 일어난 나는 그래도 시집식구라고 신경이 쓰여서는 아가씨에게 북어국 이라도 끓여줄 요량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민혁인 쇼파 에서 잠을 자고 있다.
어제 바람도 많이 불고 추울 텐데...
순간 안쓰러운 생각이 잠시 들었으나 어제의 일을 생각하면서 그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불도 덮지 않고 자네...
침대에서 재희가 자니 이불이 없겠구나...
나한테 얘기하기가 그래서 그냥 자나?
안됐다!
난 올라가서 따뜻한 이불을 가지고 와 그에게 덮어 주었다.
그리곤 추위 속을 달려 그 아래가게로 갔다.
" 저, 북어국 좀 주세요."
" 어머, 왜요? 누가 또 약주를 많이 하고 오셨나봐요? "
" 아, 네 에 "
" 어제 보니까 밤늦게 웬 아가씨를 부축해서 가던 데, 얼마나 마셨던지 떡이 됐던데...누구예요? "
" 아, 네 저희 아가씨예요. "
" 아, 그렇구나, 그래서 오빠가 가서 인사불성이 되 동생을 데려 온 거구나!"
" 요즘 젊은 사람들은 여자들도 아주 주당들이 많아요. 그죠? "
" ... "
그렇게 북어 국을 사 가지고 들어갔는데 민혁 인 없다.
벌써 나갔나...
북어 국을 끓이고 밥을 해서는 출근 시간도 있고 해서 자고 있는 아가씰 깨웠다.
" 아이, 안 먹는다니 까요. 왜 그렇게 귀찮게 그래요. 그냥 내 신경 쓰지 말구 나가라 구요."
더 깨웠다간 욕 나올 것 같은 분위기라 그냥 차려놓고 데워서 먹으라고 하고는 출근했다.
하루종일 머리에서 어제 일들이 떠나질 않고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프다.
" 경자야? "
"... "
" 야? "
" 엉? "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너 오늘 내내 표정이 안 좋다. 무슨 일 있니? "
" 아, 아니 무슨 일은. "
" 그럼 저기 가서 저것 좀 가져와"
" 알았어"
" 경자야, 이 번에 이 선배가 도자기의 명가 일본에서 도자 전시회를 하거든. "
" 와? 정말 근사하다. "
" 그래서 말인데 시간이 좀 촉박해서 나 좀 도와 주라. 정신 없어 죽겠다. 준비된 작품도 없 구 ... "
" 주제가 뭔데... "
" 응, 식물과 곤충 문양과 그림으로 된 걸 위주로 해서 만들려 구. "
" 그래, 그럼 그냥 추상적으로 그리지 말 구 실제로 있는 식물, 곤충을 그대로 옮기듯 하면 어떨까? "
" 나 두 그럴 생각이야, 그래서 말인데 도서관이나 인터넷으로 자료 찾는 것 좀 네가 해주라."
" 당연히 해야지, 그리구 또 뭐 도와줄 것 없어. 뭐든지 얘기해 내가 적극적으로 도와줄 께"
" 고맙다. 근데 결혼한 사람을 늦게 까지 붙들어 놓을 수도 없 구. 걱정이다. 도와줄 사람은 너 하난데."
" 걱정하지마. 결혼과 상관없이 예전처럼 도와 줄 수 있어. "
" 아이구 아서라, 괜히 네 남편한테 밑 보이기 싫다. "
" 정말 괜찮 대두... 우리 민혁 인 그런 사람이 아니라구. 진짜야. "
" 진짜지? 어디 한 번 두고 봐야지? "
그렇게 해서 난 아예 작정하고 늦게 들어갈 결심을 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그 뭐시 다냐 '응보사상' 인가?
그거. 참 좋은 사상 같다.
그렇게 할 생각을 하니 벌써 속이 후련해지는 걸 느끼겠다.
네가 늦게 들어오면 나도 늦게 들어가고 네가 첫사랑 만나면 나 두 첫사랑 만난다 이거야.
그리곤 인터넷으로 눈으로 보기에 튀는 곤충과 희귀 식물사진을 모으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흘러 9시가 훌쩍 넘었다.
아니 근데 이 선배 가라 소릴 안 하네...
정말 시험 해 보는 거야?
" 선배, 피곤하지 않아? 나머진 낼 하면 안 될까? "
" 그것 봐. 벌써 신랑한테 혼날까봐 걱정이 돼지? "
" 아니라니까? 오늘은 진짜 피곤해서 그래. 낼 부턴 더 늦게 까지 도와 줄게."
" 알았어. 고마워. 근데 강아진 어때? 잘 있지? "
" 강아지? "
아뿔싸! 오늘 강아지 우유도 안 주고 그냥 나왔네...
그럼 그 어린것이 여태 한 끼도 안 먹고...
굶어 죽었겠다.
어쩌지...
내가 너무 정신이 없어서...
" 선배, 어떡해? 강아지 아침도 안 주고 나왔어. 여태까지 쫄쫄 굶었나봐. "
" 민혁 인가하는 내 신랑이 줬겠지? "
" 글쎄. 아직 안 들어왔을 텐데..."
" 그럼 전화해봐? "
" 전화? "
" 어차피 지금 갈 건 데 뭘? "
" 야, 같이 가. 내가 태워다 줄게. "
" 선배도 들어가려 구? "
" 아니, 더 하다 가야지."
" 그래, 그럼 됐어, 나 혼자 갈 수 있어. "
" 그러지 말 구 타구가. 괜히 늦게 까지 일시키고 밤늦게 혼자 들여보낸 다 구 욕먹게 하지 말 구. 그리구 강아지가 어떤 지 내가 봐줘야지. "
" 그렇구나. 강아지. 그래 선배 같이 가자. "
그리곤 선배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 선배, 강아지 괜찮을까 ?"
" 글쎄, 나 두 굶겨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
그렇게 집에 도착한 시각은 11시쯤.
집 문을 열고 들어오니 민혁 인 역시나 와 있지 않 구 식탁은 재희가 먹구는 치우지도 않고 가서 어수선하다.
" 선배! 집이 좀 많이 더럽지? "
" 아니 뭘, 이만하면 깨끗하구만. 근데 민혁 씬 원래 이렇게 늦게 다니니? "
" 아니,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 두 있 구. "
" 너, 남의 일 같이 왜 그렇게 건성건성 얘기 하냐? "
" 그게 아니라 우린 결혼할 때 서로가 하는 일에 서로 터치하지 않기로 했거든. 그러니까 선배도 나 편안하게 부려먹어도 된다 구"
" 그래. 굉장히 의식이 오픈 된 부부네. "
" 그나저나 강아진 어딨냐? "
" 어, 저기에다 놨는데... "
" 어디? "
" 어, 없네... 어디다 놨더라. "
" 얘가, 나이도 어린 게 벌써부터 건망증이야?"
" 그러게 말야 "
" 아! 맞다. 이층에다 올려놨었지? "
" 선배, 이층으로 올라가자."
" 와, 여기가 네 작업실이야? "
" 응 "
" 전망도 좋고 무지 좋다 야. 선배도 없는 작업실을 넌 가지고 있구나. 부럽다. 흑흑 "
" 근데... 선배 저 강아지 좀 봐 "
" 어떡해? 죽었나봐? "
강아지가 눈을 감고는 완전히 뻗어 있다.
선배가 강아지 눈을 뒤집어 보더니,
" 안되겠다. 병원가야지. "
" 근데 선배 지금 이 시간에 병원 문 연 데가 어딨어. "
" 그렇구나. 그럼 어쩐다. "
" 경자야, 가서 꿀물이나 설탕물 좀 만들어 가지고 와. 좀 따뜻하게 한 물수건하구 "
그렇게 해서 따뜻한 꿀물과 물수건을 해왔다.
선배는 물수건을 강아지 배에 덮어주면서 마사지를 해주며 꿀물을 입으로 조금씩 넣어 주었다.
그랬더니 잠시 후 강아지가 조금의 움직임을 보인다.
" 와, 선배 깨어나는 것 같아, 조금 더 먹여봐? "
" 알았어. 그래도 많이 늦지 않았나 보다. 효과가 있는 게. "
그렇게 해서 다소 좋아진 강아지에게 수저로 우유를 조금씩 먹여 주었다.
그랬더니 오히려 더 달라고 보채기 시작한다.
그렇게 점점 원기를 회복하니 정말 다행이다.
한참을 들여다보고는 이제 아예 본격적으로 우유를 먹여주었다.
그리곤 잠든 것 같은데...
" 선배, 정말 대단해. 역시나... 어떻게 이렇게 할 생각을 한 거야?"
" 낸들 뭐 아냐? 그냥 사람 살리는 심정으로 했지 뭐.. "
" 그렇구나 , 그나저나 강아지한테 정말 미안하다. "
" 그럴 수도 있지 뭐. 앞으로 잘 하면 돼 "
" 그래 야지 "
" 난 이제 가야겠다. 너무 늦었다. "
" 잠깐 선배 이왕 왔는데 차 한잔 하구가. 커피 어때? "
" 커피? 좋지. "
" 근데 네 남편 와서 뭐라 그러는 거 아니냐? "
" 아이구 아니라니까 되게 걱정하네... "
" 내가 타올게 기다려."
" 아니야. 같이 내려가자. 아래층에서 먹을래 "
" 그럴래? "
" 응 "
이렇게 얘기하면서 계단을 내려오는 데 민혁 이가 이미 와서는 쇼파에 앉아있다.
" 어? 민혁이 왔구나? 언제 왔어? "
난 태연한 척 말했다.
" 응, 방금 "
" 안녕하세요. 이 늦은 밤에 찾아와서는 ..."
" 아니, 괜찮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 네. 경자가 강아지 좀 봐 달라 구 해서... "
" 네..."
" 너 두 차 한잔 할 래? "
" 응 "
셋이 차를 마셨다.
" 근데. 이 집사람들은 서로 소리 소문 없이 들어오고 그러나봐요? 들어오시는 소리 못들은 것 같은데... "
" 네? 예 "
민혁 이가 멋쩍게 웃는다.
" 근데. 앞으로 경자 좀 자주 빌려야겠습니다. "
" 네? 무슨 뜻인지? "
민혁 이가 놀라서는 묻는다.
" 아, 놀라시기는 저 제가 조만간 일본에서 전시회를 여는 데... 만들어 놓은 작품도 없고 해서 좀 도와 줬으면 싶어요 "
" 좀 늦게 들여보내도 되겠죠? "
" 네 에... "
" 경자 말로는 뭐 그런 거 신경 안 쓰니까 걱정하지 말라 구는 하는 데 그래도... "
" 네.. "
"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경자야, 나, 갈게 "
" 선배 같이 가. 내가 바래 다 줄게."
" 바래다주긴 여기 앞에다 차 세워 놨는데. 나오지마 "
" 아니야. 그래도 ..."
그리고 나는 굳이 따라나갔고 민혁인 현관 앞에서만 인사를 했다.
" 선배 잘 가... "
그리곤 들어와서 먹던 찻잔을 치우고 있는 데 민혁 이가 채널을 돌리면서 한마디한다.
" 요즘은 매일 남자들을 데려오고 그러네. 오늘은 개판 이가 아니고 선배야? "
" 남의 일에 신경 쓰지마. 네가 개판 씬 놔 두 라며 . "
" 그 선배 강아지 한 마리 주고는 매일 우리 집에 강아지 핑계로 들락거리는 거 아냐? "
" 너, 웬일로 내 일에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러냐? 질투 하냐? "
"... "
" 너, 누나가 맨 날 너만 바라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아서 불안해 ? "
" ... "
" 하긴 뭐 그럴 리가 없지. 왜 이번엔 선배가 안 됐단 생각이 들어서 그러는 거야? 내가 선배 델구놀다가 버리기라 두 할 까봐? 흥, 졸지에 나 완전 카사노바 됐구만... "
" ... "
그리곤 컵을 치우고 이층으로 올라왔다.
올라와서는 순간 또 한동안 강아지 생각을 잊어버렸구나 하는 생각에 강아지에게 미안한 맘이 들었다.
새근거리며 잘 자고 있다.
정말 귀엽고 안쓰럽고 내 배 아파 낳은 아기같이 마음이 아려온다.
일면 유일하게 내 것이란 생각에 마음 한편이 든든해진다.
26. 오늘 우연히 수혜 씨를 만났는데... (경자story)
이제 삼월의 문턱에 들어서서 그런지 날씨가 많이 포근해 졌다.
땅이 녹아 꾸덕꾸덕 해 졌을 텐데 도시의 봄은 아스팔트라 늦게 찾아오는 것 같다.
대신 우리 집 마당에서 난 봄을 느낀다.
다행이야!
땅은 그동안 자신의 심장에 박혀있던 얼음 덩어리를 녹여내며 얼어붙었던 마음을 풀어헤치고 나무는 꽁꽁 동여맸던 속살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는지,
종종 세차게 불어 치는 바람이 샘 부리는 여인네의 손톱처럼 온몸을 후벼파고 지나간다.
" 여보세요? "
" 어, 선배? 왜요? "
" 네 "
......
" 네 "
......
오늘도 난 그렇게 선배의 일을 도와 주고 있다.
요즘 선배는 학교가 개강을 해서는 더 바빠졌다.
그래 작업도 많이 못하고 해서 늦게 까지 작업하는 날이 많다.
선배는 아예 센터에서 밤을 새는 경우가 허다하다.
선배는 오늘도 좀 늦는다고 전화를 한 것이다.
오기 전에 내가 할 일 이것저것을 알려주려고.
그렇게 난 열심히 선배의 일을 도와주고 있다.
이 시간쯤이면 소장님이 우리 선배 얼굴 보러 올 시간이 됐는데...
그때 누군가가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온다.
그럼 그렇지!
소장 님이네.
" 어! 경자씨 혼자 있는 거야? "
" 네. 왜요? 실망하셨어요? "
" 실망은 무슨? "
" 근데. 전영진 씬 안 오셨나? "
" 네. 오늘은 좀 늦게 오신 데요. 섭섭해서 어떡해요? "
" 그러게 말야? 우리센터에서 유일한 총각인데... 오늘은 얼굴도 못 보겠네. "
" 근데 오늘은 빈손으로 오셨어요? "
" 그럼. 뭐... "
" 아니요, 그냥 배가 좀 고파서... "
" 어쩐다 경자씨 실망했나 부네... "
" ... "
말없이 도자기를 빚고 있는 데.
" 짜~ 잔 내가 누구야, 자 붕어빵! 이제는 더 이상 맛볼 수 없다 구. 붕어빵 아줌마가 오늘 까지만 한다 그래서 기념으로 산 온 거야. "
" 와! 맛있겠다. 얼른 먹어요 . 붕어빵은 따뜻한 게 생명 이예요. "
그리곤 얼른 달려들어 붕어빵을 먹었다.
그리곤 마지막 남은 하나!
" 소장님 이거 제가 먹어도 돼요? "
" 엉? 어 그 그래 .. 경자씬 먹으면 다 어디로가 무지 잘 먹는 것 같은데 살 안찌는 거 보면... 부럽당! "
그렇게 배부르게 먹고 나서 나는 소장 님과 커피를 마셨다.
" 붕어빵과 커피라... 어째 좀 안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 "
" 그러게요. 그래도 둘 다 맛있는 데요. "
" 그렇긴 하네..."
" 근데, 경자씨 "
" 네? "
" 저기 우리 이번 주말에 점 보러 가지 않을래? "
" 점이요? "
" 응, 내가 아주 용한 점 집을 알아냈거든. 데스크 아가씨들이 그러는 데 족집게래, 아주 장난 아니게 맞춰서 그 자리에서 소름이 돋아서 죽는 줄 알았다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래. "
" 에이, 그냥 대충 감으로 찍 구 그러는 거겠지, 맞긴 뭐가 맞아요. "
" 아니야? 내가 들어도 족집게 더라니까. "
" 그 왜, 데스크에 최현옥 씨 있잖아? "
" 아, 네 그 임신하신 분이요? "
" 그래, 그 시어머니가 관절염 있어가 지구 그렇게 고생하는 데 그걸 단번에 맞추더라 잖아. 세상에 대단하지 않아."
" 네? 에. 푸하하 "
" 아니, 경자씨 왜 웃어? "
" 웃기잖아요. "
" 뭐가? "
" 그 현옥 씨가 임신해서는 점 보러 갔을 거 아니 예요."
" 그렇지 "
" 그럼 결혼했는지도 맞췄겠네요. 그리구 저희 또래의 부모님들은 다들 관절이 안 좋으시죠"
" 그래 두 난 아직 두 관절 좋아. "
" 그러니까 제 말은 두루뭉실 얼렁뚱땅 얘기해서 맞으면 다행이고 틀려도 대충 둘러대면 되겠금 얘기를 하는 거란 거죠. "
" 그렇게 점보는 거는 저 두 하겠어요? "
" 그러니까 옛날에 친구한테 들었던 얘기가 생각나네요. "
" 뭔데 ? "
" 어떤 사람이 점을 보러 갔는데 그 보살인가 하는 사람이 그 사람을 유심히 보더니 상을 탁 치면서 그러 드래요."
" 뭐라구? "
" 허 험, 큰일이야, 큰일~ "
"그러면서 계속 한숨을 쉬면서 큰일이라고만 하니까 그 사람이 궁금하잖아요? 그래 무슨 말씀이냐고 그랬더니 그 보살이 이렇게 얘기 하드래요."
" 집 뒷마당에 감나무 있지, 그거 없애야돼 거기에 귀신이 씌었어. 허허 큰일이 로고... "
" 근데 그 사람 집에 감나무가 없었던 거예요. 저희 집엔 감나무가 없는 데요? 그랬겠죠."
" 그랬더니 그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래, 다행이야.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하드래 잖아요. "
" 에이, 뭐야, 나두 전에 들은 얘기 같다. "
" 경자씬 점을 안 믿나본데, 내 나이 대봐. 그런 게 막 믿음이 가고 위안이 되고 그래."
" 그럼 경자씬 안 갈 꺼야? 그럼 누구랑 간다? 진짜 용하다는 데... 애기 보살이래. 한 열 살 먹었다나. 근데 할머니 신이 들어서는 할머니 목소리를 낸다는 거야."
" 그래요? 신기하다. 할머니 목소리가 성대묘사 하기 쉬워서 그런가? "
" 헤헤 "
" 경자씨 그만해, 나 혼자 갈 거야. "
" 아니 예요. 제가 따라가 드릴 께요. 언제 가실 건 데요? "
" 진짜? 언제가지... 이번 주 토요일 날 어때? "
" 좋아요 "
괜히 나 두 궁금해지네...
나한텐 뭐라 그럴라나...
뭐 별루 좋은 얘기 안 하겠지 뭐...
토요일 날!
" 여기 어디쯤 이랬는데... 잠깐만... "
" 여보세요? "
" 어, 현옥씨! 우리 버스에서 내렸는데... 어느 골목이야? "
" 어, 그래서 어, 어, 알았어. "
" 가자 경자씨, 저 쪽 인가 봐? "
여기가 어디냐 면요.
허름한 동네인데...
이런 곳에 아직도 이런 집들이 있었나?
서울의 중심가인 데도 고층빌딩을 뒤로하고 아직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집들이 골목을 끼고 산재해 있다.
그리곤 그 골목들이 또 다시 좁은 셋 길을 만들고 길이 끊어졌다 싶으면 다시 이어지고 이어졌다 싶으면 막다른 골목이 나타났다.
그렇게 찾기를 10분 여, 우리는 그 문제의 집을 발견했다.
역시나 허름한 슬레트로 지붕을 덮은 자그마한 집.
좁은 마당도 시멘트로 발라져 있고 마당곳곳은 물이끼가 껴서는 푸릇푸릇하다.
대문도 어디서 쓰다버린 나무로 대충 생색만 낸 모양에, 구하기 힘든 촌스러운 파랑으로 칠을 해 놓았다.
" 이 집 인가 봐, 경자씨 "
" 그래요? "
난 좀 음침한 게 썩 들어가고 싶은 맘이 들지 않았다.
" 자, 들어가자, 경자씨 "
" 근데 아무도 없나봐요? 이 집 아닌 거 아니 예요.? "
" 글쎄 맞는 것 같은 데... 저기 봐 깃발도 있잖아. "
깃발 ! 그렇구나 흔히 무당 집이나 점 집에 걸려있는 흰 바탕에 붉은 페인트로 불교마크 같은 것을 그려 넣은 것이 힘없이 흔들리고 있다.
그 바랜 빛이 몇 년은 비바람 속에서 굳건히 버틴 것 같이 초라하다.
"근데. 유명한 집은 맞아요? 왜 이렇게 손님이 없어요. 아예 주인도 없는 것 같은데... "
" 그러게... 저기 아무도 안 계세요? "
" ... "
" 아무도 없나봐요? "
돌아서서 나오려고 하는 데 미닫이문이 벌컥 열리면서 웬 아이가 내다본다.
10살은 족히 더 되 보이는 여자아이이다.
" 점 보러 왔어? 들어와. 오늘 우리 엄마가 계모임에 가셨어 "
아 흐~ 소름이 쫙 돋는다. 목소리가 완전 엽기다.
아이답지 않은 늙은 할머니의 쉰 목소리.
그리고 아이 답지 않은 눈빛.
" 엄마가 계모임 가셨대요. 어머니 안 계시니? "
" 경자씨 어머니가 무슨 상관 있어? 애기 보살이라니까."
" 아참 그랬었지. 아휴 소름 돋아요. "
나는 속삭이듯 말했다.
" 그래서 유명하다 잖아"
소장님도 속삭이듯 얘기한다.
" 얼른 들 안 들어오고 뭐해, 추워 문 닫어. "
어린것이 호통이다.
어린것이 아무리 신이 들었더라도 그렇지, 좀 기분이 언짢아 져서는 안으로 들어갔다.
소장님은 물 만난 고기처럼 너무나 깎듯이 아이를 할머니 대하듯 하신다.
" 그래, 뭐 하러 왔어? "
" 네. 그냥 앞으로의 일이 궁금해서 왔어요. "
소장님이 말씀하셨다.
" 앞일? 사람의 앞일을 어찌 아누... 쯧쯧쯧 "
그러면서 쌀알을 던지며 눈을 지긋이 감는다.
뭐야? 그럼 뭘 알아본다는 거야...
내가 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니까 그 애기 보살이 기분 나쁜 표정을 짓는다.
소장님이 내 옆꾸리를 꾹 누르면서 애기 한다.
" 저기, 그러지 마시구, 아주 용하기로 소문 났다구 해서 저 먼데서 물어 물어왔어요. "
" 음, 음... "
" 여기... 복채 걱정은 마시 구... "
그러면서 소장 님이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서는 탁자 위에 놓아준다.
" 흠흠. "
" 그래 그럼 생시 좀 대봐 "
" 예, 저는 53년생 이구요, 시는 낮 12시오."
" 어디? "
역시나 눈을 지긋이 감고는 엄지손가락으로 나머지 손가락을 짚어가면서 중얼중얼 거리 더니...
" 에 후, 공방 살이 끼었어. "
" 네? 무슨 뜻인지? "
" 공방 살 몰라, 과부가 될 팔자야 과부 "
" 과부요? 전 결혼 안 했는데요? "
" 그래, 잘했어, 했어도 혼자 살아 결국은"
" 그렇군요? 정말 용하다, 용해. 그지 경자씨 "
" 네... "
난 마지 못해서 대답을 했다.
"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재복이 있어,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 "
" 그래요. 더 나이 들어서도 결혼 운이 없나요? "
" 결혼 운... 어디 보자.... 쯔 쯧, 없어. 혼자 사는 게 나아. 그게 사주에 나와 있으니까. 결혼했으면 풍파가 많을 운인데 정말 다행이야. "
" 그래요. "
" 경자씨, 이젠 경자 씨도 한 번 봐 "
그래 난 마지못해 생시를 넣었다.
한참을 손가락을 헤아리더니...
마지못해 넣었으나 자못 궁금증이 나는 것이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다.
인간이란 간사한가 보다.
" 아직 결혼 안 했구 만... "
" 네에? 저 결혼했어요. "
내가 그 보라는 표정으로 소장님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 애기 보살이 탁자를 꽝 치며 불호령을 한다.
" 지금 뉘 앞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거야. 우리 할멈 신이 결혼 안 했다는 데."
" 아니 진짜로 결혼했다니까요? 그죠, 소장님."
소장님이 좀 당황하신 표정으로.
" 응, 으응... "
얘기하면서 애기 보살의 눈치를 살핀다.
" 그럴 리가 없는 데... 헛갈리... 헛갈려... "
그리고는 다시 눈을 지긋이 감고 또 한참...
저 이마에 땀이 좀 송글송글 맺힌 것 좀 봐...
" 그럴 리가 없어. 지금 사주에 인연이 깊은 남자가 없는 걸로 나와 있는 데... 아직은 결혼 수가 안 보이는 데... 헛갈리... 아직 제짝을 못 찾은 것 같은 데... 진짜 인연은 조만간 나타날 거야. 그 사람을 꽉 잡아. 그 담엔 다른 인연이 없어... "
" 무슨 소리예요. 결혼한 사람이 제 짝을 못 찾았다면 제가 이혼이라도 한다는 소리예요? "
이렇게 말하고는 순간 가슴한 구석이 싸 ~아 해오는 것을 느꼈다.
난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 저기 보살님. 경자씨 진짜로 결혼했거든요. 다시 좀 봐 주세요? "
" 에헴 다시 볼 것 두 없어... 말 한 그대로야 "
" 저, 그러면 제 인연이 언제쯤 나타나는 대요? "
" 조만간 올해 안에... "
" 어떤 사람일까요? "
" 글쎄... .... .... "
" 가까운 데 있는 사람이야."
" ... "
그렇게 우리는 그 곳을 나와 골목을 걷고 있다.
난 속으로 정말 용하다라는 생각에 또 소름이 돋는 데...
우리 소장님은 옆에서 연신 욕을 해대고 있다.
" 아이구 내가 저런 돌팔이 점쟁이한테 복채를 그냥... 그걸 그냥 확 가져올래 다 말았네."
" 복채를 얼마나 주셨는데요? "
" 얼마는... 10만원 "
" 네? 그렇게나 많이요? "
" 복채를 많이 줘야 더 신이 잘 든다 잖아 "
" 네..."
" 그나저나 경자씨 말이 맞나봐"
" 아까 나한테도 공방 살이 있네, 그러더니 결혼 안 했다니까 결혼 안 하길 다행이라고 하잖아. 에이 정말 속았다."
" 그래도 소장님 재복 있다는 건 맞췄잖아요. "
" 재복? 그것도 그래, 내가 그냥 봐도 좀 있어 보이니까 얼렁뚱땅 찍은 거지. 안 그래? "
" 아, 네. 그럴 수도 있겠네요. "
" 나는 그렇다 치고 경자씨는 완전 못 맞췄잖아. 그 얼굴색 변하는 거 봤어."
" 경자 씨가 보기보다 좀 어려 보이는 얼굴이니까 결혼 안 했겠 거니 하고 찍었는데, 낭패 본 거지 뭐. 에이, 기분도 꿀꿀한 데 어디 가서 차나 한잔하자. "
" 그럴까요? "
" 가만 경자씨 신랑한테 연락해서 저녁같이 먹자고 할까? "
" 예? 저 저녁 약속 있다고 했어요. "
" 그래, 그럼 안 되겠네..."
" 저, 소장님 우리 개판씨 가게 가서 차 마시구 밥 먹을까요? "
" 개판씨? 아, 그때 그 성격 좋은 총각? 참 그 총각이 까페 한다구 했지, 진짜 어울린다.굉장히 활동적으로 보여."
" 그렇죠."
" 소장님은 개인적으로 개판 씨가 어때요? "
" 어, 개인적으로 나이를 무시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괜찮은 남자지. 일단 성격 밝고 사회생활 적응 잘하고 뭐 그 정도면 얼굴 괜찮고. 솔직히 민혁씨 보단 개판 씨가 더 끌리는 것 같아...어, 경자씨 농담이야, 기분 나쁜 거 아니지? "
" 아니예요."
그렇게 해서 소장님과 나는 개판씨 가게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는 데 개판 씨가 놀라며 반갑게 맞는다.
" 아이구, 이거 웬일들이세요? "
" 이쪽으로 앉으세요. "
" 오늘 어디들 다녀 오시나봐요? "
" 네, 오늘 점보고 왔거든요. 돌팔이에게 복채를 뜯기고 온 기분이라 기분이 영 찜찜해요. "
소장님이 투덜거리듯 얘기한다.
" 왜요? 점쟁이가 뭐래요? "
" 아, 글쎄 경자 씨한테 이혼한다는 둥 올해 안에 새 남자가 나타나는 데... 뭐라 그랬지 경자씨? 꽉 잡으랬지, 그 사람이 마지막 인연이라고. 내 참 웃겨서 결혼 한 사람한테 그게 할 소리냐 구요. "
소장님 그만~
" 네 에... "
개판 씨가 내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얘기한다.
" 뭐 드실래요?"
" 여기 뭐 잘해요? "
소장님이 물으신다.
" 저희 집이야, 다 잘하죠. 특히 스파게티하고 스테이크가 맛있어요. 오늘은 스테이크 드셔보세요. "
" 그럴까요? 경자씬? "
" 네, 저 두요. "
그렇게 우리는 맛있게 식사를 하고 후식으로 나오는 차 한잔을 하고 있었다.
그 때 문이 열리고 난 무심코 그 곳을 봤는 데 민혁 이가 들어온다.
그런데 뒤 따라 들어오는 여자는?
순간 심장이 벌컥거리는 기분!
저 여자가 수혜 씨구나...
둘이 순간 너무 잘 어울린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에게서 느낄 수 없는 세련된 느낌과 당당함 같은 것, 사회생활에 적응된 활달한 표정관리...
순간 난 내 키가 절반으로 줄어든 느낌이 들 정도로 기가 죽었다.
나도 당황했지만 개판 씨 표정 역시 무척 당황한 표정!
정작 민혁 이와 수혜 씨만이 개판 씨를 바라보면서 쾌활하게 인사를 하는 순간까지는 우리를 못 본 듯했다.
그렇게 개판 씨에게 눈웃음으로 인사를 하고는 돌아서서 두리번대던 민혁 이가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난 그가 그렇게 당황한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큰 잘못을 저지르고 엄마에게 들킨 아이 같은 표정...
정말 그 표정이 안쓰러워서 다 용서 할 테니 편안히 하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순간 나도 당황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소장님은 지금 아무것도 모르고 차를 홀짝이고 있고...
이 분위기의 열쇠는 내가 쥐고 있는 듯한 무서운 착각이 들었다.
그때 소장 님이 고개를 들어 날 보다가 내 시선이 머무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다시 고개를 돌려 나만 들으라고 한마디한다.
" 뭐야, 경자씨, 저 여잔 누구야? "
" ... "
" 저기 소장님, 오늘은 소장님 먼저 들어가시면 안 될까요? 자초지종은 제가 담에 말씀드릴 께요. "
" 그 그래, 그럼 나 먼저 갈게."
그리곤 슬그머니 소장님이 민혁 이와 수혜 옆을 지나 나가신다.
나가면서 연신 수혜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보신다.
" 민혁아, 웬일이야? "
" 어, 차 한잔 마시려구 "
수혜가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겠는지 금방 표정이 바뀌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 누구? 수혜씨? "
" 어... "
"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
" 제 얘기를요? 민혁 이가 제 얘기를 다 해주던가요? "
이 여자 뭐야? 인사를 했으면 인사를 받아야지 정색을 하고 말꼬리는 왜 잡어.
" 아니요. 오해하지 마세요. 민혁인 수혜씨 얘기 안 해요. 다른 사람한테 전해 들었어요. 좀 앉으시겠어요? 저두 차 마시던 중인데... "
그렇게 해서 내가 마시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민혁 이와 수혜가 나란히 앉아있다.
그래, 그렇구나...
네 옆자린 항상 채워져 있구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 다른 사람 누구한테 제 얘길 들으신 건데요. "
" 개판 씨요"
" 개판 씨요? 그럼 좋은 소리 안 했겠네... "
" 왜요? 나쁜 소린 안 하던데요. "
" 그래요, 그럼 다행이 구요. "
그때 개판 씨가 와서 내 옆에 앉는다.
" 개판씨, 고마워요? "
" 뭐가요? 수혜씨. "
" 경자씨 에게 그래도 나에 대해 잘 얘기 해 주셨다구 해서요. "
" 아, 네... "
그다지 밝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 근데 여긴 웬일이냐? "
개판 씨가 민혁이 에게 물었다.
" ... "
아까부터 민혁 인 입을 함구하고 있기로 했나부다.
하긴 뭐 크게 할 말이 있겠는가?
그러자 수혜 씨가 대신 대답을 한다.
" 네. 저 요 근처에 꽃집을 하려 구요. 그래서 민혁 이하고 가게 알아보고 오는 길이 예요. "
" 꽃집이요? "
개판 씨가 놀라며 묻는다.
" 네, 그냥 가게나 하나 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어떻게 현우씨 보내고 다 정리 하니까 그거 하나 할 돈도 녹녹치 않네요. "
" 그래서 민혁이 도움을 많이 받고 있죠. 아까 그 가게 괜찮지? 그거 계약하자. "
" ... "
이거 분위기 너무 불편해서 안되겠어요.
민혁 이하고 내가 제일 어색하네...
" 수혜 씨하고 민혁이 차 시켜야지."
할 말을 잃은 내가 유일하게 던질 수 있는 말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차를 시키고 기다리는 동안 난 뭔가 속 시원히 한바탕 해야겠다는 생각에 무슨 말이 적절할까 생각했는데...
괜시리 잘못 터뜨렸다 간 나만 더 촌스럽고 비참해 질 것 같아 그 시기를 다음으로 미루고, 그냥 먼저 가봐야 겠다며 일어섰다.
" 경자씨, 벌써 가시려 구요? "
개판씨가 묻는다.
" 네. 센터에 다시 가보려 구요. 지금 선배혼자 바빠서 끙끙대는 거 보고 왔거든요. 가서 일 좀 도와 줘야 줘. "
" 어디예요? 제가 태워다 드릴 께요. "
" 괜찮아요, 담 에요. 이러시면 저 민혁이 한테 혼나요? "
" 네? 무슨 말.. "
" 아니요, 그냥 민혁 이가 개판 씨를 얼마나 끔찍이 생각하는 데요. "
그러면서 난 민혁이 얼굴을 한 번 흘깃 봐주었다.
표정 요? 당연히 별루 죠?
잘해봐라 사공 민혁!
그리곤 개판 씨는 돌아서서 가는 나를 붙들어서 억지로 센터 앞까지 태워 주고 간다.
정말 개판 씨가 날 좋아하는 것일까?
개판 씨의 이 친절이 이젠 부담으로 다가오려고 한다.
" 경자씨 "
" 네 "
" 기분 풀어요. "
" 기분이요. 저 기분 그냥 그래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요. "
" 거짓말 마세요. 경자씬 표정이 솔직해서 얼굴에 다 나타나요. 가서 거울 한 번 보세요."
" 제 표정이 어떤 대요? "
" 건드리면 울 것 같은 표정인데요. "
" 아닌데... 진짜 아니 예요. 고마워요. 개판씨 "
그리곤 차에서 내려 멀어져 가는 개판 씨의 차를 한 동안 바라보고 돌아섰다.
센터에 들어오니 다들 퇴근해서인지 데스크 조명만 켜져 있고 다 꺼져 있다.
그리고 도예 작업실로 들어갔는데...
선배가 여전히 땀을 뻘뻘 흘리면서 도자기 성형을 하고 있다.
너무 집중한 나머지 내가 온 걸 모르는 것 같은데...
놀래 켜 줘야지...
그리곤 살금살금 다가가 그 유치한 놀이의 진수인 ' 눈 가리기'를 실시했죠.
" 누구 게? "
" 어? 뭐야? 누구야? "
" 에이, 선배 뭐야? 너무 오버하니까 재미없잖아. "
" 야, 넌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 초등학생용 놀이를 하고 있냐? "
" 근데 너 웬일이야? 이 늦은 시간에."
" 웬일은? 선배가 고생할 걸 생각해서 얼른 뛰어 온 건데. 나 잘했지? "
" 거짓말, 너 부부 싸움했지? "
" 아니~ "
" 그럼 민혁 씨가 오늘 회식이 있어서 늦는다지? "
" 아니라니까. 아! 너무하다. 이 후배의 순수한 선배사랑을 몰라주다니...흑 흑 흑 "
그리곤 선배가 탁자 위에다 놓고 열심히 만들고 있는 모습을 그 바로 앞에 앉아서 턱을 괴고는 한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선배는 정말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이다.
혼신의 힘을 다한 다는 게 맞나보다.
난 걸맞지 않게 고개 살짝 살짝 돌리면서 선배가 만드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 선배, 왜, 피와 땀이 어린 작품.. 그런 얘기 많이 하잖아. 근데 그 말이 맞나봐."
" 무슨 소리야? "
" 지금 그 도자기로 선배의 굵은 땀방울 다섯 개가 들어가는 걸 확인했어. "
" 경자 넌 결혼하더니, 더 사춘기 소녀가 되가는 것 같다. 왜 그렇게 귀여운 포즈를 연출하고 그러냐? 결혼해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옛말도 다 틀리나봐."
" 히히 나 귀여워 ? "
" 야, 까불지 말고 이왕 왔으니까, 이거나 좀 다듬어라"
하던 도자기를 나한테다 넘기고는 다른 일에 전념한다.
" 이거 빨리 해서 이천에 내려 가야돼. "
센터에 있는 전기가마는 도자기의 색을 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말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흙 가마에 가서 구워야 한다.
불 때는 시간, 화력 등에 따라 그 색의 오묘함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 언제? "
" 오늘 "
" 내일 주말반 수업은 어쩌고? "
" 야, 이번이 마지막 주라 수업 없잖아. "
" 아, 그렇구나. 깜박 했네. "
" 넌 젊은애가 왜 그렇게 기억력이 없냐? 뭐 다른데 신경 쓸 일도 없으면서."
" 선배, 오늘 내가 특별히 따라 가주지. "
" 뭐? 아서라 "
" 아니야, 괜찮아. 어차피 민혁 이도 오늘 안 들어온단 말야? "
" 왜? "
" 어, 친구들하고 산에 갔어. "
" 그래? 그래도 이럴 때일수록 집에 있어야지. 같이 나돌아다니면 되겠어."
" 나두 오랜만에 가마에 불 좀 때보고 싶어서 그래...응~응~응~ 갈게~ "
" 얘가 왜 이렇게 보채고 그래. 알았어. 나야 뭐 네가 가 주면 좋지 뭐. "
그렇게 해서 난 선배가 가마에 불때는 거 도와주러 이천에 내려가기로 했다.
오늘은 집에 안 들어 갈 거예요.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오늘 정말 화가 났는데 풀 데가 없었거든요.
또 가슴 한편이 약간은 풀리는 것 같네요.
~~~~~~ 행복한 주말 보내시구요.
제가 라섹 수술을 해서 혹시 며칠 못 올릴 수도 있어요.
지금도 약간 눈이 아픈데 1,2주정도 회복기간이 필요하다네요.
그래도 크게 무리만 없다면 꼭 올려드릴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