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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의 수박을 어떻게 해야할까요?

ㅇㅇ |2021.07.23 15:55
조회 131 |추천 0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고3인 남학생입니다. 네이트판은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로만 봐왔지, 직접 작성할 줄은 몰랐는데 절박함이 절 이렇게 만드네요.
저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 두 분이 이혼을 하셨거든요.

그래도 어머니도, 외할머니도, 이모도 다분히 노력해서 남부럽지 않게 잘 커왔습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게 말이죠.
어머니는 저를 세상의 전부라 보셨고 거의 모든 걸 헌신하셨습니다. 아마 저도 어머니를 가장 소중한 존재로 생각했을 거에요.
음.. 하지만 저와 어머니 사이, 그리고 저와 세상의 다른 사람들 사이에 곪고 있던 큰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혹시 아스퍼거 증후군을 아시나요? 물론 저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아닐 겁니다. 곧 정신과 검사 결과가 나오는데, 의사 선생님의 대략적인 의견은 '접점이 없다'였으니까요.
다만, 그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죠. 타인의 감정이나 생각에 공감하지 못합니다. 배려심이 없고, 이기적으로 보이죠. 제게 불편한 건 참지 않지만 남이 불편한 건 신경쓰지 않습니다.
남이 내게 뭐라 하는 건 참지 못하는데, 내가 남에게 뭐라 하는 건 빈번합니다. 아무리 슬픈 영화를 보던, 음악을 듣던 그냥 그 뿐입니다. 울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누구보다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제가 쌓아온 제 행동의 결과는, 사랑이 아닌 이용이었습니다. 그저 어머니를 내가 성장하고, 자립하는 시기까지 날 도와주는
사람으로만 인식했어야지, 지금까지의 제 행동이 이해될 겁니다.

때로는, 사람을 때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연례적으로 하는 상담 시간의 상담사나, 나와 대화를 하는 누군가나, 심지어는 어머니도 제게 뭔가 말을 하고 있으면
그 말이 나오는 입이, 그렇게 싫습니다. 이 감정은 어렸을 때부터 느껴왔어요. 상대방이 아무리 친절하고 나와 친밀해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똑같았어요.
그런데 최근에서야 이런 감정과 충동이 든다, 라고 간략하게 실토했을 뿐이죠.

이런 문제를 꽁꽁 숨겨왔어서인지, 어머니 말고는 아무도 제가 이런 사람인지 모를 겁니다. 공부도 잘하고, 인성 좋고, 믿고 맡길 수 있는 학생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죠.

오늘 하루는 제가 코로나 백신을 맞은 날이었습니다. 평소 몸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던지라, 속으로도 걱정을 꽤 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접종센터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리시다,
제가 접종이 끝나니 저를 픽업하시고 마트에 들리셨죠. 저는 야외 주차장에 주차된 차 안에 있었습니다. 더웠습니다. 짜증도 났고, 백신 때문에 샤워도 못 하니 뭘 저렇게 사나 싶었습니다.
기다리다 어머니가 짐을 싣고 출발하셨습니다. 집에 도착할 때 쯤, 어머니가 짐 내리는 걸 좀 도와달라고 하셨습니다. 평소였으면 자주 도와드렸으니 군말 없었겠지만, 팔도 욱신거리는데
짐 들기가 싫었습니다. 그래도 들었죠. 수박이었고 들고 집까지 올라갔습니다. 사실 수박 먹기 싫었습니다. 먹기도 싫은데 무겁기까지 하니 짜증이 났죠. 그래서 짜증을 냈습니다.
백신도 맞았는데.. 하면서 궁시렁댔죠. 수박 먹기도 싫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수박을 화장실에 집어던지셨습니다. 제가 복숭아 알러지 때문에 며칠 과일을 못 먹은 게 걱정되서, 없는 형편에 비싼 돈 주고 사왔는데 먹기 싫다니 버려야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싸웠죠. 말씀드렸듯이 저는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잘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제 말은 어머니의 행동과 말에 담긴 함축적/심층적 의미를 전부 반영하지 못합니다.
싸웠고, 저는 그냥 다 귀찮아서 일단 화장실 타일에 널부러진 수박 조각들을 냅두고 손과 발을 씻었습니다. 되도록이면 비눗물이 안 튀기게 하면서 말이죠.
씻고 나와 컴퓨터 앞에 앉으니, 이게 사람이 할 짓이냐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리 태연히 일상을 영위하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도 수박 드시기가 싫었답니다. 자기가 장 본 것들 다 절 위해서랍니다. 여태까지 절 위해 살아왔는데 이런 일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선 자신이 저 깨부수어진 수박같은 심정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현재 상황은, 기름이 다 떨어져가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자동차에 치매 걸린 어머니도, 아들도 싣고 달려야하는데 더 이상 기름이 없는 거죠. 제가 기름이 되어주진 못 할 망정, 기름 탱크에 구멍을 뚫은 것 같더군요.
어머니는 든든한 남편도 없고 하나 있는 동생마저 도움 안 되는 존재거든요.

저도 기름 탱크에 구멍 뚫기 싫었습니다. 어머니께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안 되더군요.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조차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도 몇 년 만에 울었습니다. 나 왜 이렇게 된 거냐고,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고, 나도 날 이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원인이 뭐냐고, 아버지가 없어서 그런 거냐고, 나는 왜 다른 사람들과 사고방식이 다르냐고,
나도 그들과 하나가 되고 싶다고, 토해내듯 말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울음이 뚝 그쳤습니다. 내가 왜 멍청하게 울었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소나기가 한바탕 퍼붓고 지나간 하늘이 쾌청하듯 마음도 울렁이다 너무 쉽게 진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더 싫었습니다. 어머니가 죽고 싶다는 말을 하셔도, 보험금이라도 남겨서 제가 살 수 있게 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어도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당장 귀찮아질 생각만 했죠. 제 자신이 싫었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지에선 저같은 인물이 악인이었거든요.

어머니는 저를 보시기 힘드시답니다. 아버지한테 가서 살아보라고 하시네요. 자립할 수 있도록 그러랍니다. 그마저도 사랑에 근거한 조언일테니 애매한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언젠가 아버지를 죽일 작정이었습니다. 저와 어머니가 일궈낸 여러 타이틀은 아버지라는 완장에 붙이려 했지만, 정작 책임은 지지 않았거든요. 지금까지 지불한 양육비가 0원입니다.
제가 군대조차 안 가는 병에 걸렸을 때, 가족력을 물어보니 자기방어적인 답변만 주고, 확답은 피했습니다. 그보다도 더 싫은 건 제 이런 문제가 아버지한테도 똑같이 있거든요.
제 문제가 유전되는 거라면, 전 아마 아버지를 죽이거나 자살할 겁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감정에 공감 못하고, 타인의 시선만 신경쓰는 사람입니다.

어머니는 제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내가 어릴 때 살던 집 지붕에 쥐가 있었어.'
'쥐 오줌이 혈소판에 장애를 일으키는 병을 옮긴다더라. 그 병에 걸리면 붉은 반점도 생기고 1년 못 가서 죽는댔어.'
'난 내가 그 병에 걸린 줄 알았고, 그렇게 한 달을 살다보니 손등에 반점도 생겼어'
'근데 지금까지 살아있고. 너도 마찬가지야. 어렸을 때부터 어떤 문제나 병이 생기면 너를 거기 맞춰갔어. 상상임신처럼 말이야'
제가 아스퍼거 증후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저를 이렇게 만들고,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니 문제가 생긴 걸까요?
저라는 사람은 뭐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죠? 어머니에겐 더 이상 기댈 수 없어요. 어머니조차 무너지기 일보직전이니까요.
더 이상 살기도 싫고, 세상이 너무 막막합니다.

이런 침울한 저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화장실의 수박을 어떻게 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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