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감동적인 좋은글이라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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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
조선말 의친왕의 아드님으로 태어난 왕자 이우께서는
힘없는 나라의 혼란한 시기에 왕자로 태어났기에
슬픈 운명을 안고 태어나셨는지도 모른다.
과거 강국의 볼모로 잡혀간 많은 이나라의 왕자들 중에는
충신의 희생으로 돌아온 분도 계셨고
오히려 왜국의 오오기미,왕이 되신 분도 계셨다.
또 조국을 잊은 분도 계셨다.
그러나,이우공처럼 서글픈 운명을 산 분은 없을듯 싶다.
공은 어쩔 수 없이 일본군 장교의 신분이 되셨다.
잡아먹힌 나라의 왕손이기에 그들의 꼭두각시가 되셔야했다.
그러나 공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황족임을 잊지 않으셨다.
우리가 폄하하는 조선말기의 황가의 눈물은 끝이 없었을 것이다.
고종황제께서도 독립운동을 지원키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듯,
의친왕의 아들이신 이우공 역시 일본군 장교의 신분을 지녔으나
조선의 황족임에 조선의 독립을 위해 독립군 활동을 하셨다.
공은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셨고,일본군의 정보를 전달하셨다.
공의 의기와 지성에 일본은 긴장하였으나
왕자를 함부로 제거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히로시마 제 2군 사령부 중좌로 계시던 중,히로시마 원폭투하로 사망하셨고,
끝내 바라고 바라던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채 젊은 나이에 눈을 감으셨다.
탐욕으로 채워진 왕가라는 평을 듣는 영국의 왕실조차도 존립여부에 대한
오랜 찬반양론에도 여전히 국민들의 사랑속에 건재하다.
일본은 천황을 신으로 여긴다.
모든 전쟁이 그렇듯, 적국의 패배를 가장 확실히 각인시키는 방법은 왕족을
죽이거나 회유하는 것이었다.
왕족이란 그만큼,
한나라의 역사를 상징하며
정신의 주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바뀌어 왕족을 축출한 국가조차도 왕실의 복권을 시도한다.
어찌됐든,우리도 우리손으로 왕실을 축출했다.
그러나,우리의 황실은 그어느나라의 황족못지않게
안팍으로 그 가치를 발휘 하셨으며. 힘을 잃었기에 왜곡당하셨고.
세상의 변화에 국민이란 이름의 정체세력과 사상에 이름을 잃으셨으나,
이제와서는.
다시금 우리 앞에 돌아오셔야 할 귀하고 귀한 우리의 핏줄이시라는 생각을
한번쯤.
꼭 한번쯤.
해봐야 할 것이다.
탐욕에 겨운 현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은 생각해야 한다.
과거의 왕족들은
전쟁에 있어
목숨을 걸고 적장의 목을베러 달렸으며.
나라의 위기에 있어
도망치느니 끝까지 자리를 지켜
조국에 묻히고 싶어 하셨음을.
오늘날의 지도자들은.
위기에 가장 먼저 떠나가고.
전쟁은
놀이처럼 스크린으로 지켜본다.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황실이 있었으며
그 후손이신 이석왕자께서는
현재 조용히 이땅에 살아계신다.
우리의 궁은 쓸쓸하다.
어느 궁에 가보아도
복원한지 얼마 안된 곳이라해도
우리에게 남아있는 궁은 폐허처럼 느껴진다.
아마도,그 주인이 머물지 않기 때문일까 한다.
한번쯤 황실재건회 등 http://www.koreanempire.org/
을 찾아 옛황실이 어떠했는지 살피는 것도 좋을듯 하다.
슬프게도 바로 얼마전인데도 당시의 자료란 참으로 빈한하다.
< "Finale Tango" . Apasionado >
사족같아,사실 쓰려니 너무도 마음이 아파 쓰지않으려 했는데 써야겠다.
28일 오전 1시 53분이다.
공께서는 원폭 당시 부상을 입으셨지만 살아계셨습니다.
그러나 병원으로 옮겨간 후 사망하셨죠.
워낙,일본정부에는 눈에 가시같은 분이셨기에.
일본의 고위관리가 지칭했듯이
"호랑이같은 조선왕족의 핵심"
이라는 표현처럼,이우 왕자께서는 직접 비밀결사대와 전투병력을 조직하시기도
했고,비밀리에 독립운동을 지원하시며 독립투사들에게 대단한 힘을 주신분입니다.
그 사망의 원인이 아직도 미스테리라서,더더욱 심장이 뜯기는 아픔을 참기가 어렵습니다.
뱀은 그 분을 이렇게 말합니다.
"공작새의 화려함과 호랑이의 피를 지닌,전세계 어느 왕족보다 뛰어난 왕족중의 왕족"
이우 공은 그런분이셨습니다.
우리에겐 이런 왕족이 계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