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새벽녙에 심심해서 써보는 이야긴데 이런 이야기가 거북한 사람이 있긴해.. 그냥 내 몸뚱이 하나 살아온 이야긴데 그냥... 열심히 살았다는 이야기가 듣고 싶긴 해.
그러니까 나는 올래 23살이 된 직장인이야. 공고 나왔고 대학은 안 갔어.
그냥 어릴적부터 내가 산 이야긴데.
나는 경상도에서 외동딸로 태어났어. 그리고 아빠는 그 지역에 꽤 이름있는 생양아치고, 엄마는 키도 크고 되게 예쁘고 열심히 사신 분이야.그런데 내가 외동딸로 태어난거야.엄마 말로는 시댁에서 내가 딸인거 알고 지우라고 했는데 꾸역꾸역 낳았대. 어쨌든 그렇게 태어났는데 내가 태어나고 엄마가 아파서 수슬을 해야 했대. 그래서 사촌 집에 맡겨졌어. 기억은 없어 당연하지 돌도 전이니까. 뭐 금방 수술은 잘되고 엄마랑 아빠랑 작은 단칸방에서 나 키우면서 살았대. 그런데 아빠가 생양아치라고 말했잖아. 그것때문에 엄마도 많이 맞고 자주 싸웠어, 그렇게 내가 유치원 들어갈 즘.... 그러니까 3살때, 이혼을 했대. 나는 엄마가 키우기로 합의보고,
글도 일찍 떼고.. (3-4살때 그냥 동화책을 혼자 읽는 수준) 엄마 일하러가면 돌봐주는 사람 없어도 괜찮았다고 그랬어.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잖아. 7살이 되어서 초등학교 들어가야했어. 근데 키우는건 엄마였지만 양육권이 아빠한테 있대.그래서 학교에 들어갈려면, 아빠 동의가 필요한거야. 그래서, 아빠한테 양육권을 달라고 했는데 아빠가 싫다고 했대. 어쩔 수 없이 학교는 보내야 하니까. 그 뒤로는 아빠손에 컸어. 아무리 아빠가 뭐 수틀리면 때린다고 해도, 자기 딸을 때리겠냐고. 그렇게 억지로 안심하면서.
근데 어릴때부터 그걸 맨날 달고 살았어
애미 없는 애 애비 없는데 부모 없는 애.
이상하지. 난 엄마 아빠가 다 있고. 그냥 떨어져 있을 뿐인데 그런 말을 들어야 했어. ㅋㅋㅋ학교 애들이 그러더라고, 우리 엄마가 너 엄마 없다고 놀지 말라고 했다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어. 사실 정말 하고 다니는 꼴이 엄마 없는 애였거든. 아빠가 뭘 할 줄 알겠어. 그냥 학교만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봐. 겨우 8살 난 애를 씻기지도 않고, 머리 예쁘게 묶어주는 법도 몰라. 그냥 자기는 먼저 일가고 나는 알람소리 듣고 일어나서 학교 가는거야. 근데 어린게 뭘 할 수 있겠어. 세수나 쪼끔하고 널려 있는 옷 입고 가는거지. 그러니까 애한테서 냄새나고 못 나고. 그러니까. 점점 더 왕따를 당했던것 같아.
그 시절에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냥 나 혼자 세상에 부유하는 기분이였어. 그때의 나는 8살인데. 맨날 자기 전에 죽고 싶다고 생각했어. 집은 아무도 없지, 학교에서는 애들이 매일 엄마 없다는 말을 하지 근데 그걸 늘 울면서 엄마 있다고 말했거든 내 딴에서는 맞는 말이잖아. 그냥 엄마는 멀리 있을 뿐인데. 왜 자꾸 엄마가 없다고 하는지 그게 너무 억울했나봐.
근데 그러다가 10살 어느날, 아빠가 짜장면이랑 탕수육을 사주더라. 뭔지는 몰라도 그게 너무 좋았어. 맨날 김치에다가 다 식은 밥을 먹었거든, 할 수 있는 음식도 없었고.
그래서 엄청 맛있게 먹었어, 기분 좋더라 아빠가 처음으로 맛있는걸 사줬거든.
그리고 나서 이모가 온대. 이모차 타고 재밌는곳 가는 거래.나중에 온 이모는 처음 본 사람이었어. 단발머리에 키도 크시고 아주 멋진 사람 처럼 보였거든.
근데 고아원 원장님이더라. 나는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는데. 고아원에 간거야. 아빠가 버려서. 그럴거면, 엄마한테 데려다 주지. 근데 그 시절에 나는 아무것도 몰랐어. 그냥 집이 넓고 이모가 맛있는걸 사주니까 그냥 좋았어, 삼시세끼 따듯한 밥이 나오는게 좋았고 깨끗한 옷 입고 예쁘고 머리 묶고 학교 갈 수 있다는게 너무 좋았어. 아빠가 날 버린줄도 모르고 그냥 그게 그렇게 좋았다고, 그게 뭐라고. 병신 처럼 그냥 그게 좋았어 아무것도 몰랐거든.
각설하고, 거기에는 장애가 있는 삼촌이랑 나랑 3살 차이가 나는 오빠. 그리고 이모가 있었어. 처음으로 생긴 가족이였어.
오해할까봐 쓰는데. 계기야 어떻게 됐든. 난 여기서 많은걸 배웠고. 행복했어., 만약 여기에 가지 못했다면 난 진작에 죽었을거야.
삼촌은 컴퓨터를 엄청 잘했고 오빠는 키도 크고 ㅡ 학교에서 인기가 제일 많은 사람이었어. 키도 크고 잘생겼었거든.
그렇게 아빠가 버린줄도 모르고 살았어. 근데. 어느날. 그 고아원에 엄마가 왔어
그때 엄마는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싶어. 아빠한테 자식을 맡겼더니 그 자식이 고아원에 있대. 그래서 헐레벌떡 찾아온거야.
그때 나보고 말했어. "엄마가 꼭 돈 많이 벌어서 찾아오겠다"
그 말을 믿었어. 엄마랑 살았을때는 엄마가 옷도 예쁘게 입혀줬고 주위에 아줌마들에게도 예쁨 받았거든. 그러니까 엄마랑 살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겠지. 라고 생각했어.
원장님은 천주교였고, 그래서 나도 세레도 받고 성당도 다녔어. 그때 쯤에 나는 초 5쯤 됐고. 조금 머리가 굵어지면서 깨달은거야. 아빠가 날 버렸다는 걸. 그러니까. 난 지금도 꽤나 신실한 신도인데. 그 당시에 나는 아마 미쳐 있어서... 감사의 기도를 올리기 보다는 원망의 대상이 필요했어.
신은 견딜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준다던데. 나는 이렇게 괴로운데. 이게 견디는거냐고. 왜 고통같은걸 주냐고. 그렇게 원망할 상대가 필요한거야. 어린 맘에 아빠나 엄마를 원망하지는 못하고 그냥 하느님만 미워했어.
그리고 점점 사춘기가 오는거야 키도 커지고 2차 성징도 오고. 난 원래 살이 안찌는 체질이야. 키도 엄마 닮아서 컸어. 그런데. 2차 성징이 오니까. 그냥 가슴만 봉긋하게 부풀었어.
그리고, 같이 살던 그 오빠한테 3년간 성폭력을 당했어. 매일 밤마다 어떤 손이 내 몸을 만지는데. 집에 있는 사람은 고생 많이 한 이모. 거동이 불편한 삼촌, 밖에 없으니 범인이 누구겠어. 실 눈으로 본 사람은 그 오빠가 맞았어. 첨에는 아무생각이 없었어. 이게 불쾌한거라는걸 몰랐거든. 성교육도 받기 전에 일이야.
위에서 말했듯이 여긴 고아원이야. 그러니까 누가 입소하고 퇴소한다는 센터라는거지. 그 오빠랑 동갑의 나이인 오빠가 내가 중 1때 들어왔어. 오빠 1 오빠 2라고 부를게.
그 오빠2는 반년 정도만 살고 나갔는데.
정말 신기한게 뭔지 알아? 평소에 그렇게 말도 안하고 어색한 사이인주제에. 사람 하나 병신 만들때는 그렇게 죽이 잘 맞더라. 오빠 12한테 거의 매일 밤마다 만져졌어. 다행이라고 한다면 ㅅㅇ은 없었다는 거려나. 이걸 나쁜걸 알게 된거는 초등학교 5학년 때야.
근데 그걸 중 2때까지 참았어. 말했듯이 오빠 1은 우리 학교에서 제일 잘 나가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냥 그 오빠 말 한마디에 겨우 사귄 친구들을 잃는게 너무 무서웠거든.
근데 이 이야기를 중 2때 친구들한테 말했어.아 친구라고 할 수 있나..
원래 초등학교 고학년때 걔네들이 내 왕따 주동자였거든. 하고 다니는게 추레하다는게 그 이유였어.걔네들은 되게 예뻤거든
그중에 어떤 애 한명이 나한테 그랬다?"그래, 너 아니면 누가 널 사랑하겠니"걔 입장에서는 놀리는 말이겠지만.부모가 멀쩡하게 있는데도 고아원에 있는 나한테는 가볍게 들리지 않았던게 문제지
뭐 여튼 걔네들한테 말했어. 그래도 나와 가끔 대화해주는건 걔네 밖에 없었거든. 근데 그렇게 나를 호구 취급하고 못 잡아 먹을 것 같이 굴던 애들이 그때만큼은 진지해져서 이거 선생님한테 말해야 해. 하고 위로해주더라.
그래서 그걸 담임선생님한테 말했어.
근데 그 오빠랑 나랑 같은 중학교를 나왔거든, 그 시점에서 오빠는 고등학생이였지만. 내 담임선생님이 그 오빠 담임도 했던거야.
내 이야기를 계속 들으면서. '걔가 그럴애가 아닌데..' 하고 중간중간 말씀하시는데 그냥.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어.
그 오빠가 그럴 사람이 아니면. 나는 그래도 되는 애라서 그랬나. 라고. 그때 그오빠가 그랬거든 남자 ㄲ리게 하는 몸이라고.
그래서 그게 내탓인가 했어. 쓸대 없이 말라서, 쓸대없이 가슴만 커서.
그러다가 성폭력 상담센터인가에 갔어. 학교도 빼먹고 가는거였어. 상담선생님이. 나한테 계속 몇 번 만졌냐 어딜 만졌냐 그런 얘기를 하는데. 그게 너무 듣기 싫은거야. 그냥 다 잊어버리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척 살고 싶은데 그걸 계속 말하는게 싫었어. 아마 사춘기라서 그랬던것 같아.
그렇게 상담을 받는데 위클래스에 갔거든. 근데 위클래스 선생님이 그런일이 있는데 씩씩하네 라고 하더라고. 그때 확 무서워졌어, 그렇게 몇 년동안 거부도 못한걸 어디까지 알고 있는걸까. 누가 더 아는걸까. 그런 사람들이 또 내게 뭐라고 하지 않을까. 하는거. 그래서 도망쳤어.
고아원 원장님이 이 일을 알고는 펑펑 울면서 그러더라. 정말 그랬냐고, 왜 말 한마디 못했냐고 미안해서. 네 얼굴을 어찌 보냐고.
이모는 괜찮았어. 이모는 죄가 없잖아. 사실 그 오빠도 그렇게 밉지 않았어, 그냥, 그걸 모두가 알게한 담임과 상담선생님이 싫었어.
그러다가, 아빠가 왔어 진짜 오랜만에 보는건데 무슨 종이 같은걸 주고 여기에 내 이름을 쓰래.그때 당시에 몰랐는데.
합의금이었어.
그쪽 오빠한테도 아빠가 있었던거야,그래서 우리 아빠한테 합의금으로 퉁치자. 아들 인생에 빨간줄 긋게 할 수 없다고 한거지.근데 그걸 우리 아빠가 오케이한거야.
돈 주면, 딸이 어떤짓을 당했든 상관 없다는 느낌이었어. 몇 년 지나고 나서 그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이해하고 눈물도 안 났거든.
그렇게 그 고아원에서는 나왔어. 아빠랑 다시 살게 된거야.
그리고 그게. 1년도 안 됐어,
중 2 후반 쯤이었나. 그때였는데.아빠가 새벽 4시에 들어온거야. 그때 자고 있었는데 아빠가 날 깨웠어. 왜 깨웠냐면 라면을 끓이래. 술먹고 들어와서 라면 먹고 싶대.그래서 나 내일 학교도 가야하고 자야한테 아빠가 끓여먹어라. 했어
그렇게 맞았어. 머리가 죄 뜯기고 손목 뼈가 나가고. 얼굴에 멍이 들게 맞았어.15살때, 새벽 4시에 아빠 라면을 끓여주지 않아서 맞은거야.다행이도 내 생존본능이 열일해서. 도망치는데 성공했어. 맨발에, 잠옷에. 머리는 다 뜯기고 엉망인 채로. 뛰다가 그냥 그 시간에도 문열린 빵집 문을 미친듯이 두드렸어. 살고 싶었거든. 주인 아저씨가 놀래서 문을 열어주셨는데. 그때 아직도 기억나, 전화기좀 빌려주세요 라고 말했는데 아저씨가 가게 전화를 주셨는데 손목 뼈가 나가서 그걸 바닥에 떨어뜨린거야. 근데 다시 잡아도 떨어지고 다시 잡아도 떨어지고. 그래서 그 자리에 주저 앉아서 엉엉 울었어. 그냥 너무 너무 그 모든게 무서웠어. 차라리 죽고 싶었어. 대체 왜, 왜 이런일이 내게만 있는거냐고 모든게 억울하고 슬프고 아프고 죽고 싶어서 바닥에 웅크려서 악바리를 쓰면서 우니까 빵집 아저씨가 경찰에 신고했어. 그때 내가 눈이 뒤집혀서 그냥 살려주세요 하고 울었거든. 그렇게 경찰소에 갔는데 경찰 아저씨가 내 발을 보고는 검은색 삼색 슬리퍼를 신겨 줬어.
그리고는 멀지 않은 곳에 아동보호 센터를 갔어. 거긴 남녀 합쳐서 200명이 넘었거든, 갓난 애기들 부터 19살 까지 엄청 다양해.
그 대신 가족이란 느낌은 덜했어. 그냥.. 기숙학교 같았달까.
그래도 밥이 제때 나오고. 이제 누가 챙겨주지 않아도 되는 나이였으니까 다 괜찮았어.
난 이때. 진짜 많은 걸 배웠어. 고아원에서는 이렇게 살아야지 하는걸. 그리고 이 곳에서는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는거.
그, 부모없는 애처럼 보이게 하는건 뭐라고 생각해?바로 외관이야.
센터에서는 휴대폰이 없었어. 전화를 하고 싶으면 담당 선생님이나 공준 전화를 써야 했고 그 당시에 있는 스마트 폰은 꿈도 못꾸는거였어. 컴퓨터도 하루에 한 시간. 용돈은 한달에 만원
근데 그 센터가 교회랑 이어져 있었거든.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헌금 4000유원은 그냥 나가는거야그리고 남은거에서 절반은 강제로 저금햐 결과적으로 한달 용돈이 3000원인거지.
그 3천원이로 뭘 할 수 있는데? 옷이나 화장품은 물론이고, 간식 같은것도 못 사먹어. 학교 앞에 떡볶이 떡꼬치. 몰래 먹는 라면., 이런건 상상 할 수도 없는거지.
밤 10시가 되면 강제로 취침이었고 아침 6시가 되면 또 기상이었어. 식사 때를 놓지면 밥도 없지. 주말마다 교회도 꼭 가야해.
옷은 1년에 두번 사줘, 여름, 겨울. 그것도 인당 10만원 고정인데. 백화점 가야해. 지하상가 같은데서 예쁘고 마음에 드는 옷 5천원 짜리도 못 사. 꼭 백화점이어야 해. 백화점 옷은 가격대가 있어서 티 한벌 사면 끝이야.
그리고 그 당시에 나는 중학생이고 나이대가 다양하니까 언니들도 많았어. 근데 정말 웃긴게 뭔줄 알아? 센터지만 분명히. 갈곳없는 아이들에게는 보금자리인데.언니들은 항상 우리를 단속했어.연애 금지.화장 금지
비비라도 바르면 원장님 몰래 맞기도 했어.
난 이게 감옥 같다고 생각했어.
문제는 위에도 썼지만 난 꽤 공부 잘하는 편이였거든. 무슨 소리냐면... 난 그나마. 상황이 나았어. 후원자가 많았거든. 다들 백원 이백원을 아껴 쓸때. 나는 공부 잘하고 운동잘하고 하니까. 자소서 같은걸 써서 장학금도 받고, 대회 나가서 상금도 타고 했던거야. 내가 그나마 여유로운 상황인거지. 난 그 때 태블릿피시도 있었거든.
근데 그게 문제였던것 같아. 언니들한테 미운털이 박혔거든. 난 돈을 받으면 책을 사서 읽었는데.
언니들이 나를 상대로 삥을 뜯는거야. 노래방가게 2천원만 빌려줘라 떡볶이 먹고 싶은데 천원만 꿔줘라.
물론 난 거절했지.
독하기는 했지만, 꽁으로 받은 돈 아니잖아. 시험시간에 3일동안 밤새고. 다 푼 문제집을 2번씩 풀어가고. 공모전이나 대회같은데 나가서, 상을 타오고, 그게 내가 거저 얻은게 아니었잖아. 운동화도 떨어져서 사야했고, 나만 학교를 멀리 다녀서 교통비도 필요했어. 필기구도 사야했고.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았으니까.
원래 성격이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사람이었어.
근데 웃긴건 그 와중에 연애도 했다? 같이 사는 센터의 남자앤데 걔를 쫒아다녀서 결국은 사귀기도 했거든. 미운털박히기에는 충분한거지, 하지말라는건 다 했으니까
근데 그렇게 애들한테 결핍을 가득 만들어 놓으면 어떻게 되는줄 알아?도벽이 생겨.
학교에서 남의 물건 훔쳐서 징계를 먹기도 하고 같은 기숙사에 사는 애들 물건을 가져가서 중요한건 꼭꼭 숨겨두고 아니면 이름을 써두고 그랬어. 그게. 정말 보금자리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다들 성격에 문제가 생기는거야. 도벽이 생기고. 멀쩡한 다른 애를 괴롭히고 그러는거야.
언니들이 나한테 삥을 뜯으려고 하는걸 내가 다 싫다고 했거든.그러니까 그 센터에 사는 대학생 언니 중 한명이 나를 기합을 주는거야
달라면 줄것이지 왜 이렇게 말이 많냐.
마치 맡겨둔 돈을 찾듯이 말이야.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받은 후원금을 내 배불린데 쓴것 도 아니야. 라면이 떨어면 내가 한 번들 사두기도 하고 가끔씩은 아이스크림을 사서 돌리기도 했어.
그런데 노래방 비 5천원을 주지 않았다고 그러는거야. 그래서 그 언니한테. 그랬어. 내 돈을 어떻게 쓰던 그건 내 마음이다. 주고 싶은 생각 없다. 라고, 그러다가 뺨을 맞았어.
머리채가 잡히고 뺨을 맞고,
그리고 그 즉시 원장실로 달려갔어. 난 아빠한테 맞아서 여기 온건데. 여기서도 맞으면 있는 의미가 없다. 퇴소하겠다. 여기서 받은건 전부 두고 가겠다고.
그렇게 퇴소 했어. 결국 갈데가 없어서 돌아간 곳은 아빠였지만. 근데 가보니까.. 새 엄마가 생긴거야. 물론 난 그 분을 엄마라도 단 한번도 부른 적이 없이 우리 엄마 멀쩡히 있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그게 싫었거든.
그렇게 동생도 생겼어 그 분 딸.
개버릇 개못준다고. 아빠는 술에 취하면 나나 새 엄마를 때릴려고 했지.근데 내가 일부러 다 맞았어. 새엄마는 단 한대도 맞은 적 없어 내가 다 맞았어.
그래도, 다시 센터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왜냐면 그렇게 숨막히는 곳은 싫었거든. 구질구질하게 매일 맞고 살아도. 자유로운 곳이 좋았어.천성이 그런가봐. 무슨 독립투사도 아니고 말이야.
근데 새엄마 눈에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봐, 물론 나도 그 아줌마 마음에 들 생각은 전혀 없었어. 아빠한테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나한테는 매일 뭐라고 하니까. 나 고아원에 있다온거 아는 사람이, 내가 왜 고아원에 갔는지 다 아는 사람이 그렇게 날 못 살게 굴더라.
아빠가 없으면 아줌마가 나를 때렸고. 아빠가 있으면 아빠가 나를 때렸어.가끔 그 동생도 때릴려고 하는데 내가 막았어, 걔는 죄가 없잖아. 나도 물론 죄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맞는게 마음이 편했어.
매일매일 자기 전에. 죽고 싶다고 생각했어.이대로 눈 안 뜨면 좋겠다.하느님 제발 부탁이니까 이대로 죽게 해주세요.하고.,
그렇게 고등학교에 올랐어,공부 잘해서 선생님이 명문 여고 원서 넣을거냐고 물었는데 대답할 수 없었어.나 그때 전교 2등이었다?근데 그거에 대답할 수 없는거야.
아빠한테 말하니까.여자애가 무슨 공부냐, 중학교만 졸업하고 공장 다녀라. 라고 했지
왜인줄 알아?아빠랑 아줌마 사이에서 애가 태어났거든 남자애였어.
그러니까 공장 다니다가 시집가서 남동생 뒷바라지 하라고 한거야.,나 그때 중 3인데 말이야.그래도 고등학교는 졸업하고 싶어서 취업이 바로 가능한 공고에 들어갔어.진짜 아쉽지. 나 전교 1-2등 하고 내신도 빵빵해서 명문고 갈 수 있었는데 그랬어.선생님이 아쉬워 하시는데, 내가 더 아쉬웠어. 나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공부 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면 했어.
아줌마도 집에 없고, 아빠도 집에 없으면 나랑 그 치 한방울 안 섞인 동생이랑 이복동생을 봤어.우리 아들 우리아들 하면서 유치원도 좋은데 보내주고 칭얼거림 한번이면 뭐든지 다 해주더라.걔가 울기라도 하면 맞는건 나였어.걔가 미웠어.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그저 그래. 그 아줌마가 덩치가 좀 있으신 분이어서. 임신 한 줄도 몰랐거든 애 낳고 나서 나랑 그 아줌마 딸도 안 거야.그래놓고 우리보고 책임을 지래. 왜 그래야 할까. 자기들끼리 좋다고 낳았으면 자기들이 져야지. 걔가 세상에 나올때도 그런 애가 있는지 몰란던 우리가 왜 책임을 지냐고.,동생도 그러더니 왜 우리를 믿고 애를 낳냐고.
뭐 각설하고. 그렇게 대충 살고 있었는데 집안에서 싸움이 난거야.물론 일방적인 폭력이었지.아줌마가 화나서 나를 때리는거야.니가 누구 덕에 고아원 나온줄 아냐고 감사해야할 년이 모가지 세우고 다니는게 꼴보기 싫다고.아줌마가 내 배를 막 걷어차는데. 그때 집 문이 열렸어, 내 친구야.동생이 이러다가 언니 죽을것 같다고, 친구한테 전화 한거야.
걔도 놀라서 나 데리고 나오고. 그렇게 새벽 2시까지 편의점을 배회하다가. 다른 친구 집에서 하루밤 자기로 했어.근데 새벽 3시에 막 하혈을 하고 배가 너무 아픈거야. 응급실에 갔는데 내장 파열이래.걷어차여서 다쳤는데 살아야한다는 집념으로 버틴게 긴장과 함께 풀린거야.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나 그때 고 1이었어.고작 17살이었어. 근데 그런거야. 엉엉 울면서 죽고 싶다고 했지 죽고 싶다고 아니면 차라리 죽이게라도 해달라고.
경찰서에 가고 결국 난 또 아동 복지 센터에 가게 됐는데 이틀만에 퇴소했어. 왜냐고?손바닥만한 방에서 하루종일 나오지도 못했거든. 창문만 보면서, 그냥 누워만 있었어. 숨이 안 쉬어지고. 눈물만 계속 나는거야. 그때 처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날 때린 사람은, 지금도 침대에서 자고 밥 먹고 자유롭게 밖에 나가서 사람들이랑 대화도 하고 그러는데. 정작 맞은 나는 갇혀서 아무것도 못하고 손만 떨고 있잖아.그게 너무너무 억울한거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죽어야하냐고.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서 배터리 2퍼 남은 휴대폰을 억지로 키고, 창문으로 손으 주욱 뻗으면, 와이파이사 한칸 잡히길래 그렇게 매달려서. 친구한테 문자 보냈어.
살려달라고,
그 친구덕분에 이틀만에 퇴소했지만 어차피 아빠집이야.그 아줌마랑은 말도 안해.동생은, 그냥 나한테 계속 미안해 해.그래도 그냥 버텼어.
왜냐면 죽고 싶지 않았거든.
평일에는 편의점 알바를 하고 주말에는 빵집 알바를 했어 왔다 갔다 할 버스비가 없어서 35도가 넘나드는 더위에도 자전가를 빌려타고 1시간을 달려서 돈을 벌었어. 살려면 필요한게 너무 많았거든. 하복도 맞춰야 했고. 공고라서 재료비도 필요했고. 그렇게 돈을 벌어서 월급을 받으면, 그절반은 아줌마가 가져갔어. 나도 그냥 순순히 줬어. 저거라도 주면, 적어도 전기세는 내고 가스비는 낼테니까. 다깨진 휴대폰을 그냥 가지고 다녔어. 터치도 안됐는데 그냥., 공기계도 들고 다녔어.휴대폰을 다시 살 염두도 못 냈어.아빠는 화가 나면 내 물건을 부수는 걸로 화를 풀었거든. 우리 아빠는 권투 선수였어. 지금도 막노동 해.근데 나는 고 등학생인데 몸무게가 39였어. 깡으로는 이겨도, 몸으로는 죽어도 못 이겼거든. 근데 그 당시에 친구들이 나한테 그랬어 너 이것저것 하는것도 많은데. 휴대폰이 없으니까. 연락이 안되서 답답하다고. 더이상 친구 못해먹겠다고. 그렇게 돈 벌면 휴대폰이나 하나 사지, 얼마 하지도 않는데. 라고 말했어.
차마 자존심 때문에 말 못했어.너네가 뭘 아냐고. 우리 아빠는 가정폭력범이라서 나한테 가장 중요한 물건을 부수는 취미가 있다고 돈 모아서 휴대폰 하나 맞춰도. 이주도 안되서 다시 박살난다고 그걸 못 말하겠더라.
가난한게 싫고, 나를 동정하는게 무섭고. 불쌍하게 보는것도 싫고 그랬어.
그래서 고 2때 친구들을 잃었어.
엄마는. 고아원 이후로 연락이 안되서 어디 있는 줄도 몰라 번호도 몰라. 그때 나한테는 없는 사람이었어. 없는 사람을 원망해서 뭐하겠어.
그냥 생각 자체가 없었거든.그래도 아득바득 새 엄마는 인정하지 않았지.
그렇게 살다가 아빠한테 또 맞았어. 이번에는 칼이었나. 칼을 들고 죽여버리겠다고 하는데. 너무 살고 싶은거야. 내 삶이 뭐라고 이렇게 거지같고, _같게 살았는데. 그런데도 내 삶을 버리기에 너무너무 무섭고 싫은거야. 겨우 하루를 버티는게 고작이었으면서. 그렇게 한참을 맞고, 아빠 휴대폰을 봤는데. 엄마 번호가 있었어.
그냥 살고 싶다는 마음 하나였어.
그래서 엄마한테 몰래 문자를 보냈어.
'엄마, 나 ㅇㅇ이야. 근데 너무 무서워 데리러 오면 안돼?'
하고.
바로 답장이 왔어.
어디 터미널에 몇시에 만나자고.
그 주에 바로 엄마가 왔어.
그 당시에는 엄마 얼굴도 기억 안나서 못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는데.바로 보이더라. 우리 엄마라고.
검은색 원피스에 부츠를 신고 오셨는데.나는 낡아빠진 후드티에 반바지 그리고 슬리퍼 차림이었어
그게 너무 슬퍼서 엄마를 보자마자 울었어. 그게 너무 너무 슬펐어.
저렇게 잘 살고 있으면서, 왜 나 한번 보러오지 않았나. 나는, 그 지옥을 혼자 버텼는데. 매일 매일 죽고 싶다가 살고 싶다가를 반복하면서. 그냥 하루를 견디는게 고작이었는데.
그렇게 엄마를 따라 수원에 갔어. 아빠가 쫒아올것 같아서 그게 너무 무서워서, 휴대폰도 다끄고 살았어. 살고 싶었으니까. 며칠이 지나고 다시 경상도로 갔는데. 그때는, 아빠한테 내 양육권을 받아야 했어.너무 너무 무서웠어, 안주겠다고 하면 또, 그때처럼 엄마가 날 두고 갈까 그게 너무 무서웠어. 카페에 앉아서 얘기를 듣는데.
눈물도 안 나더라.
왜냐면 아빠가 날 너무 쉽게 놓아줬거든
이유가 뭔지 알아? 고 3이라서.
대학보낼 돈이 아깝고, 또 이제 고 3이면 1년만 더 있으면, 저소득 청소년 지원금도 안 나오니까. 알아서 하라고,. 그래서 보내줬어,이제 내가 돈이 안된대.그래서 보내주는거래.
눈물도 안나고 그냥.. 마음이 텅빈것같았어. 그래도 아빤데. 어떻게 날 두고 그렇게 말 할 수 있나.그게 어떻게 가능한건가 싶어서. 내가 버텨온 모든 시간이 거짓말 같았어.얼마나 우스워 보였을까. 지원금 나와서 데리고 있었던거 이제 받아 먹을것도 없는데 치워줘서 고맙다는데. 내가 살려고 버티던게 얼마나 우습고, 하찮아 보였을까.
그렇게 수원에 왔어.
학교도 전학갔고. 물론 고3에 전학와서 친구는 없었지만. 그래도 괜찮았어.그냥. 아무도 날 때리지 않는게 그게 너무 다 괜찮게 느껴졌거든. 자유가 있고, 아무도 날 때리지 않아.
나한테 자유랑 안전한 삶은 둘중에 하나만 허락된거라고 생각했는데.두개를 동시에 가지게 된거야. 게다가 같이 사는 이모랑 이모부는 날 공주처럼 대해줬거든. 손톱에 귤물 든다고, 귤도 못 까게 하고 다 까서 먹여줬어.새엄마한테 맞아서, 내장파열도 한 사람한테. 손톱에 귤물 든다고 그걸 하나하나 다 까줬어.아침에 밥 못 먹으면 기운 없다고 새벽 6시에 밥을 해줬어.과자 사러 나간다고 하면 마음껏 사라고 오만원을 쥐여줬어.날이 덥다고, 날이 춥다고 왕복 1시간 40분 걸리는 학교를 늘 데리러왔어.졸업식날에 내가 제일 예쁘다고 사탕이 잔뜩 든 꽃다발을 줬어. 나 먹으라고, 몰래 숨겨둔 과자를 꺼내줬어오는 길에 예쁘다고 촌스러운 티셔츠를 줬어.뭐가 먹고 싶다고 하면 해줬어. 그게 안되면 외식하자며 데리고 나갔어.두분이서, 매일 ㅇㅇ이는 이거 좋아해 하면서, 이모부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식탁에서 빼고 내가 잘 먹는다는 이유로 고등어찌개가 올라왔어.가시 발라먹기 힘들다고 수저만 들면 생선살을 다 발라서 숟가락 위에 얹어줬어.
그냥 꼴보기 싫다고 맞고, 비비 발랐다는 이유로 뺨을 맞고, 알바비를 주지 않았다고 머리채를 뜯겼던 나한테 말이야.
이런 삶도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어. 동시에 원망도 했어.
왜 엄마는 일찍 나를 데리러오지 않았을까.난 정말 그동안 많이 힘들었는데. 매일 죽고 싶고 또 살고 싶고, 죽이고 싶고, 그럼에도 착하게 살고 싶고.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하대. 근데 있지. 잘 모르겠어. 엄마 잘못이 아닌건 맞아.근데 살아온게 이래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꼬여서 그런지. 그런 생각을 했어사실 엄마도 내가 고아원에 있는게 편한게 아닐까. 하고, 미워죽겠는 새끼의 딸이잖아.솔직히 별로 키우고 싶지도 않을거고.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게 아닐까. 하고근데 아니라. 아빠가 나를 담보로 대출도 많이 받아서 내가 신용불량자였대.이상하지 난 19살인데 신용불량이래.그거 갚고, 내가 있으면 해주고 싶은게 너무 많아서 그걸 다 해주려면 오래 걸렸던 거래.
옛날에는 버스비가 없어서, 학교를 못 간 적도 있어.그래서 가난한게 싫었어. 배고픈것도 싫었고. 남들 다 하는거 그대로 다 하고 싶었어.그걸 다 해주고 싶었대.
근데 그걸 듣고, 원망했어.
다른것보다, 내가 정말 간절하게 원했던건 아무도 나를 위협하지 않는 삶이었는데. 겨우 그런것 때문에 날 이렇게 견디게 했나, 생각했어.
그래도, 엄마를 원망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어. 엄마는 몰랐잖아.아빠가 나를 때릴 줄은, 그렇게 고아원을 들락거릴줄은, 내가 그렇게 힘들줄은 몰랐잖아.그러니까 원망하면 안된다고 생각해.
그런데 가끔 울컥울컥 차오르긴 해.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하고. 학원을 다니고 디자인 회사 취직해서 지금은 2년차야.
게다가 내 돈으로 서울에서 독립도 했어.
성격은 괜찮은걸지도 몰라. 지금 내 주위에 오래된 친구들 빼고는그냥 친구같은 엄마와 가족들 사이에서 공주대접 받으면서 큰 밝고 조금은 호구같은 직장인 정도의 이미지인것 같아.남들보다 웃음도 많고, 매달 기부도 하고 있고 길에서 말거는 사람 무시하지 못하고 일도 열심히하고 친구들도 다 좋아. 회사사람들도, ㅁㅁ씨는 참 밝아서 보기 좋아, 라거나. 긍정적으로 잘산다 거나. 그런 말을 들어.
지금은 죽고 싶다는 생각 안해. 이대로 오래오래 살아서 100살까지 살고, 이곳저곳 여행다니면서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고 생각해.
결혼은 글쎄. 생각은 없어. 날 강간하려고 했던 모든 남자들이 나한테 그랬거든 남자 꼬이게 한다고, 그렇지만 내 탓이라고 생각안해
내가 아빠한테 맞은건 아빠가 인간이 덜 되서야내가 그 오빠들한테 성폭행을 당한건 그 새끼들이 짐승새끼였던거야내가 센터 언니들에게 미움 받은건 그 언니들이 나잇값을 못하고 철이 없던거야내가 센터에서 미움을 받았던건, 부적절한 생활에 대해 모두가 힘들었을 뿐이야내가 그렇게 친구들을 잃은건 아무것도 몰랐던것 뿐이야.내가 아줌마한테 맞은건, 그 아줌마가 나빴던거야.내가 엄마랑 아모네 한테 사랑을 받은건, 그냥 그게 나이기 때문인거야.
나 엄청나게 잘 살고 있어. 남들은 내가 긍정적이라고 하는데. 사실 제일 부정적이라서 그런 걸지도 몰라.
그때를 생각하면 이건 아무일도 아니지. 그때 잠도 못자고 알바하던거에 비하면 지금 버는건 완전 떼돈이지.
이렇게 말이야.지금은 먹고 싶은거 먹고, 하고 싶은거 하고, 입고 싶은 옷을 입고, 하고 싶은대로 화장해.지금의 자유가 너무너무 행복하거든.
내 글이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를 자극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쓸래. 조미료 안 친 그냥 내 이야긴데. 그게 트라우마라면. 기분 나쁠 것 같아.
지금 검사하면 자존감 상위 1프로로 나온다?
멘탈이 쎄게 태어난건지 아닌지. 모르지만, 그래도 많이 무너진 만큼, 난 엄청나게 단단해. 누가 뭐라고 해도 무너지지 않아. 살아있기만 하면 뭐든지 가능해
아직까지 독실한 크리스쳔인데. 이런 표현 맞는지 모르겠지만 뒤지라는 법은 없더라.
버티자. 그냥 버티다보면 괜찮아질 날이 올거야. 하루만 버티면, 다 괜찮아지기도 해.
살아있기만 하자.
그냥 열심히 살았다는 얘기가 듣고 싶어서 쓴 글이 이렇게 길지는 몰랐네 두서 없고 오타도 많을걸. 다시 읽어서 퇴고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냥 대충 이해해줘. 새벽에 뻘글 썻네 이제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