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 "커피 한 잔"은 잠깐동안의 휴식을 뜻한다. 그래서 휴식시간을 "커피 브레이크(Coffee Break)"라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 "차(茶) 한 잔"은 만남과 대화를 의미한다. 그래서 커피숍이나 카페 등은 만나는 장소이고, "차 한 잔 합시다"라는 말은 "만나서 얘기합시다"라는 인사말이 된다.
최근 차의 약리 성분이 밝혀지면서 "차 한 잔"의 의미가 각별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차 한 잔을 마시더라도 건강을 챙기겠다는 심리 때문인 것 같다.
차의 약리 효과는 5,000년 이전부터 널리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고대 중국의 "다경(茶經)"에 따르면 기원전 2700년께 3황5제의 하나로 농업과 의학을 전파한 신농 시절부터 차를 마신 것으로 전해진다. 고대 그리스에서 차는 신성한 약으로 취급되어 천식, 감기, 기관지염에 사용했다고 한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자신의 두통을 줄이기 위해 주치의에게 차로 처방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차는 커피, 코코아와 함께 세계3대 음료로, 치료제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질병에 효과가 있다는 식으로 말할 수는 없다. 단지 신체에 좋은 약효성분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질병을 예방하거나 건강에 도움을 주는 음료다.
서양의 역사를 보아도 차는 중국에서 비롯됐다.
중국은 당나라나 송나라 때부터 아라비아 및 중동과 교역을 했고 당시 해상무역에 종사하는 아라비아 선원들은 신선한 채소가 없어 괴혈병에 잘 걸렸다. 그러나 한족 선원들은 항해를 오래 해도 병에 걸리지 않았다. 이유는 바로 중국 차에 있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족의 차는 비싼 값으로 아라비아와 유럽에 수출됐다.
원나라 때 베이징을 방문한 마르코폴로가 유럽으로 차를 가져다 퍼뜨렸다. 따라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비단길은 차의 길이기도 했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로 있을 당시 동인도회사는 중국 차의 종자를 가져다 스리랑카에 전파시켜 세계적으로 이름난 실론차가 생겨났다.
러시아는 16세기경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카자흐 족이 차를 받아들여 널리 보급했으며 한족의 차 문화는 인도차이나를 거쳐 프랑스 사람들에 의해 18세기 이후 유럽으로 본격 전파됐다.
영어의 "티(Tea)"는 푸젠성 사람들이 차를 말하는 발음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아직도 러시아에서는 차를 "챠이"라고 부르는데 이것도 중국의 차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는 가야 때 인도로부터 차가 전래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기록상으로는 신라 흥덕왕 3년(928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림이 차 씨앗을 가져와 지리산 화엄사 일대 또는 화개동 쪽에 심은 이후 호.영남지방을 중심으로 퍼진 것으로 돼 있다.
몇 년 전부터 우리 나라에서도 차(茶)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커피, 청량음료 대신 우리 고유의 차를 즐기는 인구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은은한 향기와 깔끔한 맛을 내는 차는 특히 다른 음료와는 달리 예법이 엄격해 자기수양에도 좋은 기호품인데 바로 이 점 때문에 차는 점차 일상 사에 찌든 현대인의 가쁜 호흡을 가라앉히는 촉매제로 뿌리내려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차 소비는 점차 증가추세에 있지만, 차는 노동 집약적인 생산방식과 경작면적 부족 등으로 소비량 만큼 생산치 못해 여전히 높은 가격대를 형성, 서민식품으로까지 확대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차는 우리 생활문화를 윤택하게 해주고 건강에도 이로운 음료이지만 입 맛에 맞아야만 가까이 두고 생활할 수 있다.
흔히 중국 차는 향기, 일본 차는 빛깔, 한국 차는 맛을 중시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우리 나라 차의 우수함을 상징적으로 대변해 주는 말이다. 향기는 좋아도 마시지 못할 것이 있고, 빛깔이 훌륭해도 향기나 맛이 부족할 수 있지만, 뛰어난 맛은 향기와 빛깔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차는 제조과정에서 발효정도에 따라 분류된다.
전혀 발효과정을 거치지 않은 녹차(우리 나라에서는 잎이 작은 소엽이 주로 많이 생산돼 녹차로 활용되고 있음), 반정도 발효한 우롱차(잎이 중간크기여서 약간 발효시킨 것으로 중국에서 주로 생산), 완전 발효한 홍차(잎이 커 완전히 발효 시킨 것으로 인도 스리랑카에서 주로 생산)가 대표적이다.
또한 차는 크게 3종류로 나뉜다
우리가 흔히 차 잎을 뜨거운 물에 담가 우려 마시는 것이 본래의 차를 말하는데 녹차가 주종을 이룬다.
생강차나 유자차 같은 종류는 전통차로, 오미자나 둥글레차 등 한약재를 사용한 차들은 한방차로 분류된다.
근래 들어 커피대신 우리 고유의 녹차를 찾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녹차는 신진대사 촉진과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가 높고 비타민이 많은 등 좋은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며 다른 차에 비해 다양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속속 밝혀지고 있어 녹차의 효능을 알고 마시면 녹차 맛이 한층 더 살아난다.
녹차는 암, 특히 전립선 암에 좋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녹차의 주요성분인 카테킨은 충치, 식중독균 살균, 콜레스테롤 감소부터 암세포 억제, 치매 예방 등 그 효능은 무궁 무진하다. 특히 녹차에는 레몬보다 몇 배에 달하는 많은 비타민이 들어있어 노화방지나 피로회복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중요한 녹차의 카테킨 성분을 충분히 우려내려면 수질, 차의 품질, 물의 온도, 투다(投茶)법, 우리는 시간, 차 그릇 등도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녹차는 다른 차에 비해 낮은 70~80도 정도의 온도로 우려서 떫은 맛 성분이 적게 우러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차의 품질도 카테킨 용출과 차 맛에 영향을 준다.
고급녹차의 경우에는 카테킨 용출을 억제하고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 성분이 잘 우러나오도록 50~60도 정도의 저온에서 침출시켜야 한다.
차는 제조시기에 따라 4월 20일에서 5월 10일 사이에 잎을 따는 첫물차.
6월 중순에서 6월 하순에 채엽하는 두물차.
9월 하순에서 10월 초순에 채엽하는 세물차. 등으로 구분되는데 품질은 첫물차가 가장 뛰어나다.
녹차를 처음 마시는 사람은 구수한 맛이 가미된 현미 녹차가 적당하며 사무실에서 피로회복이나 두뇌회전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첫물차가 적당하다.
녹차를 보관시 주의할 점은 녹차가 냄새를 흡착한다는 사실을 감안(마시고 난 차 잎을 모아 냉장고에 두면 냉장고 특유의 음식냄새가 사라진다), 새 녹차를 냉장고에 보관할 때 밀봉상태가 불완전하면 자칫 음식냄새가 흡착돼 차의 향미를 잃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녹차는 제조방법에 따라 증제차, 덖음차, 옥로차 등으로 나뉘어진다.
증제차는 일본에서 주로 생산하는 차 종류로 맛이 담백하고 신선해 깔끔한 뒷맛을 즐기는 사람들이 애용하며 초밥집에서 주로 사용한다.
덖음차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차로 맛이 한인의 기호에 맞아 한국인들이 선호한다.
옥로차는 이슬구슬이라는 뜻에서 알듯이 고급 녹차로 감칠맛과 부드러운 맛이 으뜸이다.
따라서 구수한 맛을 즐길 땐 덖음차를, 상쾌한 맛을 원할 때는 증제차를 선택하면 된다.
커피에 비해 우리의 전통차는 마시는 과정이 조금 더 복잡하다.
다기가 있어야 하고(다기는 미지근한 물에 살짝 데쳐야 하고...) 그 양을 조절해야만 하고 물도 그 끓는점을 잘 맞추어야 한다. 그래야 차 맛이 난다고 한다.
덧붙여 차를 마시는 태도 역시 빼 놓을 수 없는 예법을 따라야 한다. 차인(茶人)들은 "차를 마신다"고 하지 않고 "차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알맞게 차를 우려내는 일에서부터 차기(茶器)를 준비하고 차담(茶談)을 나누는 일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행차(行茶)에 상대방을 높이고 자신을 닦는 예절과 수양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80년대 후반까지 커피에 밀려 힘 한번 쓰지 못했던 우리의 차는 그 후 대량생산이 가능한 이유로 조금씩 서민들에게 인식되어지고 있다.
우리 나라 최대의 차 생산지는 판소리 서편제의 고향으로 널리 알려진, 또한 개성 다양한 인물들이 역사의 굴곡에 새겨진 소설 "태백산맥"의 주 무대가 되는 전남 보성군과 우리 농촌의 정감 어린 색채 가득한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경남 하동군이다.
언제 기회가 되면 이 두 곳에서 매년 열리는 차 문화축제 한 마당에 가보기를 권한다.
판소리 서편제의 고향 보성은 전국적으로 녹차가 가장 많이 나는 곳이다. 보성은 차 문화 선양을 위해 지난 85년부터 해마다 5월 10일에 보성다향제를 베푸는데 여기서 차 만들기 경연대회, 차 아가씨 선발대회, 녹차 장터개설, 판소리 한 마당 등 다양한 부대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져 볼거리와 우리 고유의 차 맛을 볼 수 있다.
하동은 우리 나라에서 녹차를 가장 먼저 재배한 곳으로 알려진 고장이다. 매년 5월 15일부터 열리는 하동야생차문화축제 역시 다양하고 다채로운 행사로 보성 차 문화축제 못 지 않은 재미와 독특한 하동의 차 맛을 볼 수 있다.
아직은 겨울 찌꺼기가 진득하니 묻어 있는 삼월,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날씨에 따듯한 차(茶)를 마셔 봄이 어떠할까?
또 한번쯤은 인사동의 전통찻집에 들려 삶의 여유를 갖고 넉넉한 차 문화를 접해봄도 괜찮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