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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차 왖덕의 사소하고 하찮은 덕질의 역사 1

오랫동안 여기서 눈팅만 해 왔는데 한번 물 밖으로 나와서 소리 좀 낼게. 조만간 다시 잠수할 거야. 내가 와이지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 몇 가지만 한 네 번에 걸쳐서 말하고 파서.

일단 왖덕 29년차가 어떻게 가능한 지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난 케이팝 덕질을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시절부터 양군부인으로 시작했어.

놀랍지?

나이가 매우 지긋한 왖덕이지. (애도 둘임. 큰 애가 중학생이라 아마 여기에 우리 큰 애랑 동갑도 있지 않을까. 몇몇은 공포스러울 수도? 부모님이 판에서 내 글을 볼 수도 있다 얘들아.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울 큰 애는 아들인데 와이지나 아이돌 안 좋아함. 얘는 마룬 파이브하고 콜드플레이 팬. 그리고 나는 관심이 덜한 외국 EDM 가수들 다수. 우리집은 좀 뭐가 바뀜. 차에서 난 와이지 노래 듣고 싶어하고 아들은 마룬파이브나 틀라고 해. 와이지는 빅뱅만 좋아하더라고. )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뭔가 이 와이지라는 레이블을 떠받치고 있는 팬층이 생각보다는 넓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고, 또 지금 악의 화신이 되어 버린 양군으로부터 시작한 그 시절의 와이지를 동시대에 느낀 사람의 다들 알고 싶어하지 않는 TMI까지 남기고 싶어서. 몇몇은 관심은 없을 거고, 몇몇은 헐 아주머니 뭐 하세요 할 거 같긴 한데, 이런 거 하나 쯤은 이 팬톡에 있어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뭐 별로라고 생각하면 말해줘. 그냥 안 쓰면 됨.

1. 1992-1996

난 개인적으로 현재의 와이지를 이야기하려면 서태지와 아이들을 논하지 않고서는 이야기 할 수 없다고 생각해. 양싸가 지배해 오던 와이지 엔터테인먼트의 몇몇 시스템, 방송국 대응 방식, 연습생 육성 방식의 대부분이 서태지와 아이들로부터 차용된 게 꽤 많다고 생각하거든. 와이지는 아니지만, 와이지의 씨를 가져온 게 서태지와 아이들이라 서태지와 아이들 이야기부터 할게. 혹시 불편하다고 하면 나중에 편집하겠음.

양군은 지금은 욕바가지를 먹고 있지만 데뷔 당시에는 약간 덕후몰이상이었음. 180정도 되는 피지컬에 당시 트렌드에 맞는 춤을 빨리 습득하고 시원시원하게 추는 스타일인데다가 약간 내성적으로 보이는 서태지 보다는 좀더 활발하고 웃을 때 귀염상.. 그만할게.

양군네 집이 불교용품 파는 집이었는데 그 때 방송에서 나온 양군네 집을 봤을 때 넉넉한 집은 아니었음. 나는 진성 양군부인으로 오빠 10년만 기다려 줘요 라는 질문도 라디오에 막 보내고 그랬어. 그 땐 분명 더 커라 이랬던 거 같은데. (이봐 양씨.)

양군이라는 이름은 일요일일요일밤에 였던가 프로그램은 정확히 기억 나지 않는데 이경규씨가 양군!! 양군!!!이라고 부르면서 시작함. 그게 재미있었는지 서태지가 그 때부터 양군을 형이라고 안 부르고 양군이라고 부르기 시작. 아예 애칭으로 굳어짐. 그리고 그게 양군기획이라는 회사의 기원이 됨. YG는 양군의 영문 이니셜이 맞음.

요즘 서태지와 양현석 사이가 소원하다고 말이 많은데, 그 때 당시에는 세 명 중 그 둘이 제일 친했음. 특히 양군이 서태지를 꽤 좋아하고, 뭔가 방송에서 인터뷰 할 때도 짖궂은 질문으로부터 스스로 나서서 꽤 보호하는 역할을 많이 했었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당시에 했던 방식은 뉴스나 브랜드 전공하시는 분들이 전문적으로 분석할 정도로 엄청나게 핫한 거였어. "공백기"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가수였어. 사실 그 전에 가수들은 방송사에서 부르면 출연해야 하는 슈퍼 을 입장이었고, 업소 출연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분위기였거든.

그런데, 서태지와 아이들이 처음으로 노래를 준비하고 앨범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앨범 활동이 끝나면 공백기에 들어가는 현재 우리가 꽤 익숙한 시스템을 최초로 시도한 거야. 처음에 엄청 욕 먹고 방송 출연 정지 같은 여러 수난도 많이 겪었지.

사전검열에 노래들이 툭하면 걸리고, 특히 K**사는 가사 뿐 아니라 머리 염색으로도 뭐라 해서 출연 못 하고 아무튼 그랬어. 국내 메이저 가수들 중에 아마 거의 최초로 머리 탈색 다 하고 총 천연색 머리를 시도했을 정도였음. 그 때가 "필승" 때였던 거 같은데. 활동기는 그렇게 따져보면 길지 않은데 그 짧은 시기에 가요계에 엄청난 영향을 줬지. 일단, 랩, 힙합, 락 등을 메이저로 끌어올렸고, 슈퍼을에서 을로 지위를 조금은 상승시켰었으니까.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진 유명세를 사실 방송사도 무시하기는 어려웠거든.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기자회견 한 날이 겨울이었는데 내 친한 친구랑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했다고 길거리에서 부둥켜 안고 나 어떻게 사냐고 펑펑 울다가 갑자기 몰아친 눈보라 때문에 응어어억 소리지르다가 맥다날드 안으로 피신해서 햄버거 먹고 기분 좋아져서 웃으며 집에 갔던 기억이 어제처럼 새롭다. (애들의 실연 극복 방법)

양군이 새로 후배가수들 키운다고 자기 타고 다니는 b**까지 팔아서 돈 대고 해서 키운 그룹이 킵식스 였는데

사실 노래는 좋았어. 보컬도 꽤 괜찮았고.

“나를 용서해” 라는 노랜데 96년도 노래지만 그렇게 많이 올드하지는 않아. 한 번 들어봐봐. (얼마 전에 비계로만 활동하는 트위터에서 누가 이 노래 언급하는 걸 봤음. 그래, 여기서 새로운 사실 알려줄게. 지금 부모님들 중에서 트위터 구독계나 비계로 너와 함께 활동하고 있을 수도 있다,애들아. 난 트친이나 이런 건 없음. 아무래도 나이차가 자식 같은 친구들도 있다보니 부담스럽더라고.)

https://youtu.be/-_N0QZpPlgo

뮤비 퀄은 그러려니 해. 그 때 양군이 차까지 팔았대잖아.

난 음반도 사고 노래방에서도 열심히 불렀음. 울 양군오빠 아끼던 차까지 팔아서 키우는 그룹이라 잘 되라고 엄마한테 뒷통수 얻어맞아 가면서도 열심히 음방도 찾아가고 했어. 결국 잘 되진 않았지만.

2. 1997년 지누션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온 게 지누션.

지누션에서 지누는 사실 94년도에 이미 “나는 캡이었어”라는 노래로 어느 정도 인지도 있었던 미남 솔로였고, 션은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괌 교포 출신이라 통역까지 겸하면서 같이 다니던 백댄서 출신이어서, 완전히 양군 손으로 키운 팀은 아니었음.

그런데 이 97년도에 지누션이 발표한 "가솔린"이라는 노래가 진짜 엄청난 히트를 쳤거든. 당시에는 96년도 9월 데뷔한 그 어마무시한 H.O.T가 이미 아이돌판이라는 거대한 세계의 한 시작점을 구축하고 있던 시기고, 젝스키스와 더불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 가면서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가요계의 흐름을 만들고 있던 시기임. HOT 자체가 알다시피 10대들의 승리라는 뜻을 말하는 거고, 그래서 멤버 구성이 17세,18세, 19세, 진짜 고등학생들로 구성된 어린 팀이었는데, 이게 결국 이 가요계에서 성공 공식처럼 구축되던 시기. (지금 와이지 막내 트레저보다도 평균연령이 어릴 때 데뷔한 거지) 그리고 같은 해 12월 SES(16세 17세 18세)가 데뷔하고 곧바로 다음 해에 핑클이 데뷔하면서 걸그룹 역사를 시작하기도 했지.


그 와중에, 정말 그 어린 아이돌판 친구들에 비해 노장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던 지누션의 가솔린이 엄청난 인기를 거머쥐면서 진짜 폭망할 수도 있었던 양군을 수렁에서 건져 올려 줌.

놀라운 건 이 가솔린이 이현도가 뮤직비디오에 나와서 이현도 작사작곡인 줄 아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이게 무려 양군 작사 작곡이었다는 사실.

이현도의 완벽한 범죄자 연기와 꽤 잘 만들어진 노래 덕분에 당시에 남자애들도 이 노래를 꽤 부르고 다녔고, 나도 오빠 응원해야 하는 심정으로 앨범도 사고 열심히 불렀는데, 진심, 지누션 1집은 명반임. 아직까지도 과일 거기에서 돌려서 들어보는데, 내가 올드스쿨이라 그런지 아직도 세련된 노래들이 많다는 느낌.

개인적으로는 가솔린도 가솔린이지만 인트로 격인 지누션 밤 (Jinusean Bomb, 작사 작곡은 현재 전설로만 남아 있는 외국인 작곡가 페리)도 엄청 좋아했음. 지누션 밤을 한 번 들어보면 우리가 말하는 이른바 "와이지풍"의 원조가 거기에서 출발했다는 걸 알 수 있음. 지누션이 진짜 힙합이냐, 션 랩이 과연 랩이냐 이런 실력적인 면에서의 공격도 상당히 있었지만, 그래도 국힙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함.

지누션밤은 한 번 들어봐봐.

https://youtu.be/8kfBuQV54Kk

그런데 당시 그 시대를 살면서 그걸 향유했던 사람으로서, 앨범 퀄은 진짜 대단함.

그 첫번째 앨범에 아직까지도 유명한 "말해줘" (이게 이현도 작사 작곡으로 기억)가 더블타이틀로 들어가 있음.


이 다음으로 아마 이야기 할 그룹이 이제 나의 원타임임. 원타임은 양군부인으로서 살아오던 나를 아무런 미련과 후회 없이 원타임으로 갈아타도록 도와준 나의 오빠들...

그 다음부터 양군이 아니라 양싸 새끼로 바뀌게 된 존재들임. 좀 공들여 써야 되는데, 지금 저녁 먹으러 나가야 됨.

아무도 기대하지 않아도 조금 더 써 볼테니 좀만 참아줘. 나 이런 이야기 할 데가 없어.. (학부모 모임이나 회사에서 이런 이야기 할 수는 없잖아.)

추천수15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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