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이야기 시작하기 전에... 음.. 다른 글 올라오면 쓰려고 했거덩. 너무 도배성으로 보여서. 일단은 주말에만 쓸 시간이 되서, 오늘 올리고, 다음 주 주말에 올릴게. 그러다가 활발하게 이렇게 본인 덕질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 하고 있음 나도 스리슬쩍 껴서 하나씩 던지고 갈게.
그러기 전에 일단 40대 아줌마의 꼰대질과 걱정거리를 먼저 남겨놓을게.
이 글은 그냥 킬링타임용 소설이라고 생각해 (소설 같다고 해 준 팸 고마워, 덕분에 정체성 확립.)
그냥, 우리 팸들, 이 이야기에 너무 신뢰성을 부여하진 말고, 진짜 100퍼센트 내 기억과 내 생각에 의존한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해도 됨. 전문적인 분석도 아니고, 그냥 10대 초반 어린 빠순이가 어른이 되어서, 엄마가 된 한 사람이 회고하는 응답하라 양군기획 정도로만 생각해 줘. 그래서 사실과 다른 이야기도 있을 수 있어. 내가 내 기억에 의존해서 하고 있는 거고, 이걸 위해 자료 조사 같은 걸 다시 하지는 않고 있거든. 가볍게 쓰는 건데 자료 조사하면 논문이 되잖아. 논문을 누가 팬톡에서 읽겠냐고...
참고로, 난 우리 애들이 가수 좋아한다고 해도 안 말림. 오히려 도와주는 편이야. 나도 그러고 있고, 내 와이지가수들 응원봉 컬렉션이나 굿즈를 넣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 울 아들 방 장롱에서 한 칸을 탈취해서 쓰고 있는 와중에, 내가 아들한테 덕질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잖아. (물론 얘는 안 하고 있음. 둘째는 좀 나 닮아서 기질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쯤되면 이 아줌마는 뭐 하는 사람인가 의심할 수 있는데 그렇게 덕질 열심히 하는 와중에도 공부는 열심히 했어.. 엄청 바쁜 인생을 살면서, 자격증 따야 할 수 있는 전문직종에서 어느 정도 밥벌이 하면서 살고 있지.
덕질 자체가 인생을 망치는 경우는 내 주변에 없었어. 자동차를 수집하거나 장난감을 수집하거나 공연을 보러 가는 덕질이 인생에 기쁨을 주는 것처럼. 문젠 이게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덕질이라, 그 사람의 인생사에 나의 삶도 연동해서 인생의 희노애락에 엄청난 영향을 주긴 해. 그리고 사람에 대한 덕질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부분이 우리가 말하는 "사랑"하고 동일한 성질의 거라, 좀.. 짝사랑 같은 증상도 나타나기도 함. 짝사랑도 깊어지면 병 생기는 것처럼 가끔 그런 진통 앓는 사람도 봄. 가슴이 터질 거 같고 아프다고 혼자 중얼거리고. 나는 너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넌 날 왜 모르지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으로는 안 받아들여져 이런 경우도 봄. (그런 경우는 에픽하이 "Fan"을 추천함)
그런데 잘 극복하고, 오래 하다보면, 덕질도 "내가 응원하고 있는 최애가 잘 되었으면 좋겠고 내 최애가 잘 되면 나도 잘 될 것 같은 느낌" 정도의 수준으로 갈 때가 오고, 그런 기분을 잘만 조절하면 꽤 인생이 다이나믹하게 살게 되는 원동력이 됨. 그 조절이 좀 어렵긴 한데. 가장 근본적인 조절은, 덕질과 함께 하는 삶에 "그"가 아닌 "내"가 있고 일단 "내 사람"이 있으면 됨.
난 10대에 나와 함께 덕질하던 나이대가 다양한 덕질메이트들과 아직까지도 연락하면서 소소하게 모임을 가지고 있는 중이야. 물론 그 때는 "최애"가 주제였다면 지금은 각자 최애가 달라지고 덕질계를 떠난 사람도 있고 그랬지만, 내 사람들만 남아서 "우리"가 남았음. 다들 변호사에 공무원에 자기 삶도 잘 살아. 웃긴 건 개버릇 못 준다고 다들 대상이 다른 덕질 중.. (뮤지컬 배우, 락밴드 등등)
물론, 나의 원타임 시절의 덕질은 사랑에 미친 X이었어. 이 깨달음을 얻기 전이라.....
4. 1998년 페리/지누션/ 1TYM 과 YG패밀리의 시초-MF 패밀리
1998년엔 지누션의 1.5집 영어 앨범이 나왔어 The real이라고 지누와 션 모두 교포출신이라 영어 노래가 오히려 더 편하게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러워서 완전 외국풍 난다고 난 좋아했던 앨범이었음. 내가 좋아하는 지누션밤의 영어 버전이 들어 있는 앨범이기도 하고. 우리 김이사님 노이사님의 신나는 영어 랩과 노래를 듣고 싶으신 분은 추천함.
이 때는 대부분의 노래가 페리라는 프로듀서의 손에서 나왔는데, 우리가 와이지를 이야기 할 때, 반드시 이야기 하고 넘어가야 하는 사람 중에 하나가 바로 페리임.
와이지 초기 음악의 대부분이 페리의 손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임. 페리의 정체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음. 누가 봐도 외모가 남미 계열의 외국인이어서 한국인은 아니라고 알고 있었고, 실제 앨범도 하나 냈는데, 그 때도 전체 모두 영어로 앨범을 냈음. 그게 2001년이야. 이건 나중에 이야기 할게. 뷥들한테도 의미있는 앨범이라서 순서대로 가다가 자세히 이야기 하는게 나을 듯.
그리고 알지 모르겠는데 그 때 당시 노이사님께서 Majah Flavah라는 옷 메이커를 만들어서 팔고 계셨음. 당시 가장 핫한 플레이스인 압구정동에서도 매장이 있었어. 줄여서 MF라고 하는데, 힙합 패션 중에 당시에는 칼 카니와 함께 꽤 힙한 패션이었음. 99년도 쯤인가 나도 하나 사 입었음. 와지 빠순이는 그 정도 하나는 사 입어야 되는 줄 알아서. 놀라운 건 그게 아직도 내 옷장에 있음. 놀랍지. 노이사님 양심적으로 옷 만드셔서 내구성이 훌륭함.. 역시 훌륭한 사람임. 그 때 힙합 패션이었던 게 다행인게 크게 사서 오버사이즈로 입었던 게 지금은 자로 잰 듯 딱 맞아서 내 몸에 맞춤복으로 착용.. 그만하자.
이 Majah Flavah의 뜻은 Major Flavor를 흑인억양으로 적은 거라고 함. 메이저 취향이라는 건데 말이지, 이게 향후 와이지의 모토가 되는 거라는 걸 그 땐 몰랐어.
한 예로, 이 MF 개념이 단순 의류에만 나온 건 아니고, The Real 에 타이틀인 "이제 더 이상"이라는 데에서 MF 패밀리라는 용어로 등장함. 물론 나중에 와이지 패밀리 개념이 출범하고 나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던 용어임. MF패밀리가 뭐냐면 여기에 원타임 멤버들이 들어가거든. 이른바 데뷔 이전 미리 맛보기를 보인 건데. 그 땐 한 여섯명이었나 일곱 명이었나 그랬는데, 그 중에 네 명만 원타임으로 데뷔했어. 그 중 한 분은 하이테크로 가신 거 같은데, 맞는지 모르겠다.
1998년 11월, 이 원타임이 정식으로 데뷔를 하지. 본인들의 팀명인 1TYM이라는 노래로 간지나게.
1TYM is one time for your mind라고 팀명을 뜻풀이하면서 등장했는데, 그 전까지는 보면, 다들 아이돌들이 무대에서 맞춤봄을 무슨 비닐재질 같은 거나 스페이스 오페라에 나올 거 같은 복장으로 과격하게 나오거나 솜털 같은 거 한 여름에 입혀서 귀엽게 춤추게 하거나 아무튼 그런 거 손민수 했다간 길거리에서 저 년 누구 팬 이게 확 드러나는 거였단 말이지. 그런데 이 원타임은 그냥 길거리 힙합 패션 같은 걸 입고, 수건을 들고 무대에서 춤을 췄었어.
그리고 진짜 그 때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헐떡거리는 라이브를 주로 했었어. 다들 아이돌 춤들이 과격하다보니, 립씽크가 엄청 일반화 되어 있는 상황에서 원타임이 힙합 가오를 외치며 라이브를 들고 나왔지. 늘 한 건 아니었고 방송국도 라이브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경우가 있어서, 립씽크를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건 팀 사정이라기 보다는 방송국의 거지 같은 음향과 마이크 사정인 경우가 많았음.
처음엔 양싸가 된 양군이 저기에서 뭔 살풀이를 하려고 수건을 들고 나오게 하는 건가 하는데, 나중엔 그게 천사의 날개짓으로 보이더라. 몇 번 보고. 일단 원타임 타이틀 1TYM을 들어본 팸이 있을 지는 모르겠는데 좀 사람 기분 우울할 때 들으면 약간 텐션 업이 도는 힙합이야. 이 노래는 테디가 참여한 건 아니고, 페리가 작곡하고 송백경이 작사했던 노래임. 저 위에 적은 1TYM is one time for your mind 가 상당히 중독성이 있는데 그 때 안무도 손가락을 위로 하고 몸의 이동방향 반대쪽으로 손을 이동시키는 그 동작이 꽤 따라하긴 쉬워서, 노래방에서 같이 부르면 다들 딴짓하다가도 그 부분에서 군무를 췄음. (아참, 홈런 치는 그 안무도)
이 1집에서는 우리 더블랙 박사장님인 테디는 아직 프로듀싱에 크레딧이 없음. 오히려 송백경의 작사 비중이 커서 한국말이 약한 페리가 노래를 만들면 그에 따른 가사를 송백경이 만드는 형태로 들어갔지.
이 때, 원타임이 꽤 신선하게 라이브로 무대를 때리면서 공중파에 진출하고, 노래도 꽤 아름다운 선율로 올리고, 무엇보다도 대니와 오진환이라는 덕후몰이를 위해 창조된 피조물 둘이 있어서, 당시 HOT, 젝스키스, 신화 등 이미 꽉 짜여진 메이저 아이돌판에 아이돌이라기엔 하나 부족한데 그렇다고 힙합전사로 하기엔 살짝 애매한 포지션을 "실력파 힙합 그룹"으로 두루두루 선전하면서 포지셔닝을 했어.
지금 생각하면 진짜 똑똑한 포지셔닝이었지. 힙합이지만, 아이돌처럼 군무를 하고, 그렇다고 스스로를 아이돌이라고 칭하지도 않아서 기존 아이돌들하고 색도 안 겹쳤거든.
여기 힙빌 있으면 좀 뭐 좀 붙여봐봐. 나 분명 열렬한 빠순이였는데 기억이 희미해져. 영상도 복습하고 그래야 기억이 남는데, 그 때는 비디오로 녹화 뜨지 않으면 도대체 영상을 어디서 저장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시대였음. 인터넷이 뭐냐, 피씨통신으로 3대 피씨통신 팬클럽 동호회(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에서 애들이 게시판에 글도 올리고 팬픽도 올리고 하던 시절이라, 그런 기록물이 매우 희귀함.
그 때 기억에, 원타임 팬클럽 가입신청서에 통신 아이디 적던 시절이었거든... (뭔지 모를 팸들도 있을 거 같음)
중요한 건, 몇 번 보다보니 양군부인은 이미 때려치고, "이제 나는 착한 진환이"( from "쾌지나칭칭" . 2000)나 따라다니게 됨. 원래 여자 맘이 그런 거지. 원타임으로 넘어가서 알게 된 건, 내가 테디랑 교집합이 있었던 사람이었다는 거랑 (초등학교를 같은데 다님, 대곡초등학교라고. 그 때 한탄을 함. 내가 리더랑 같은 공간에서 숨쉬고 있었다고. 그런데 이야기 듣기로는 대곡초등학교 졸업 전에 미국으로 이민갔다 들었음.), 진환이 좋아하면서, 진환이한테 돈 뜯긴 백경이 간에 그 혐관서사가 어떻게 동료애로 승화되는 지를 지켜본 것에 따르면 내가 생각보단 (잘생긴) 남자 과거에 관대하다는 거랑, 생각보다 힙합 패션을 위해 태어난 체형이었다는 거 정도.
그 사랑이 어느 정도였냐하면, 인터뷰 같은 데서 진환이가 옛날에 오토바이 타고 사고가 나서 큰 수술했다고 했었는데 그게 폭주족 놀이할 무렵에 사고로 부러진 갈비뼈라 그 사실 알고 비가 오면 우리 진환이 수술한 게 시릴까봐 눈물 흘리고 할 때였어..
그 때 하도 바지를 질질 끌고 다니고 원타임 이름 새겨진 수건 들고 다녀서 엄마가 원타임이라는 나이트에 춤추러 다니는 거 아니냐고 물어봤던 시절도 있었음. (응, 엄마 거긴 아니고 난 락카페 가, 벤츄리.. 아참 진짜 중요한 NB를 빼먹을 뻔. 여기도 대학 가곤 진짜 자주 갔었다. 이게 뉴스에 등장할 줄은 그 때 당시엔 몰랐어)
원타임 1집은 사실상 페리의 작품이었고, 송백경이 작사에 참여하는 정도여서, 프로듀싱을 멤버들이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원타임 2집부터는 의외로 테디의 프로듀싱 비율이 확 늘어났어. 사실, 이렇게 프로듀싱을 시작하게 된 게 양싸가 엄청 갈아대서 다들 스트레스 받아가며 시작했단 이야기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테디의 2집, one love하고 쾌지나칭칭이 그 중에서도 one love (개인적인 체감으로는 일반인들도 이 노래는 다 알았음)가 진짜 가공할 성공을 하면서, 그 후려침의 효과가 발하긴 했음. 실제로 양싸가 테디 작곡 천재라는 말을 언론에 은근 슬쩍 흘리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함. 그런데 그 와중에 와이지 초반의 모든 음악작업을 도맡아 했던 페리하고도 뭔가 신경전이 있었다는 카더라가 있었는데 뭐 난 모르지, 그 때 우리 진환이는 지금 뭐 할까 하면서 떡볶이나 먹고 있을 때라.
원래 여기에 1999년도 와이지 패밀리 시작까지도 말하고 싶었는데, 저녁 해야 해서 다들 안녕. 다음 주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