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기 전, 우선 본문 중에서 몇 구절 뽑아 보았습니다.
제목 <아름다운 출가 >
본문 중에서
1
이후, 죽음은 나의 이상향이 되었다. 내 머리 위엔 항상 죽음의 빛이 밝게 빛나고 있었고, 나는 죽음의 강에 한쪽 발을 담그고 있었다. 한 번쯤 죽음을 꿈 꿔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많은 사람이 가보았지만 결코 얘기해주지 않는 세계, 누구나 경험할 수 있지만 절대로 알 수 없는 세계가 아니던가. 나는 삶에 집착하는 대신, 죽음에 성큼 다가서 있었다.
2
어쨌거나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죽어가는 것이나 다르지 않으니 생사(生死) 또한 둘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날마다 사는 일에 골몰하듯 죽는 일에도 열중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는 반쪽의 삶만을 추구해 온 것이 아니겠는가.
3
나는 홀로 그렇게 그의 언어에 몰입해 들어갔다. 그를 밤이면 머리맡에 두는 것을 잊지 않았고, 책가방 속에도 항상 넣고 다녔다. 어떨 때에는 그를 읽다, 못내 그리워 끌어안고 잔적도 있었으니 그의 그 통쾌하고 짜릿한 역설, 노래하듯 신비로운 시어, 그리고 어쩐지 저 니르바나(Nirvana)를 꿈꾸는 듯한 모습을 나는 정말 사랑했던 것 같다.
4
나도 가끔 현실 속에서, 이 세계만이 삶의 전부라고 믿는 특별한 사람들 혹은 학자를 만날 때가 있다. 그들은 나와는 다르게 너무나 이성적이고 똑똑한 사람들이다. 학식 또한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들은 그 배움의 세계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모른다.
그들은 플라톤의 이데아를 음유시인처럼 멋들어지게 논할 수는 있어도 스스로(ego)가 구축해 놓은 삶이라는 세계가 그저 동굴 속에 어른거리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아(ego)를 스스로의 퀄리티(quality), 혹은 프라이드(pride) 정도로 여기며 자신들의 믿음이 얼마나 참혹하고 맹목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당당한 말투나 그 두렷한 눈빛 뒤로 궁극의 기미를 발견하곤 한다. 그들 역시 본성(本性)을 지닌 완전한 정신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세계는 오온(五蘊)이라는 허위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허구일 뿐이다. 현실 같은 꿈! 현실처럼 잘 꾸며진 가상세계. 바로 매트릭스(Matrix)인 것이다. 또한 조작되고 연출된 투르먼(Truman)의 대형 세트장이며 적자생존의 치열한 세계, 큐브(Cube) 안이다.
5
마음의 눈을 뜨는 것, 곧 깨달음이란 이 거대한 허구의 세계에 실제(實際)의 혁명을 일으키는 것, 그리하여 영원한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이 허구의 노예에서 해방되고 싶지 않은가. 그 곳에서는, 일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꿈같은 일이 벌어진다. <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달이 뜬다!> 일상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라고? 아니다. 일상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난다. 봄이면 욕망이 발동하고 가을이면 공포가 엄습해 온다. 방황하는 영혼은 봄을 어지럽히고, 초라한 영혼은 가을을 우중충하게 만든다. 다 눈뜨지 못한 영혼의 발현이다.
6
이 경지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삼백육십 날을 하루같이, 피를 토하고 살을 저미는 고통으로 자아(ego)의 소멸에 매달려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하고 남아있는 기력을 모아 수만 번 까무러치듯 화두에 몰입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두 눈을 부릅뜬 채 부처가 오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가 오면 조사를 죽이고(殺佛殺祖), 눈에 밟히고 가슴에 묻은 부모와 자식을 내쳐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7
어머니는 본래 그런 존재이다. 자신의 뼈를 깎아 자식을 낳고 자신의 살을 도려내어 자식을 기르는, 종내에는 자신의 모두를 바쳐 그를 완전하게 만드는 존재. 어머니가 존재하는 한 세상에 구원은 존재한다.
그러나 명심해야 한다. 어머니는 바로 자식이 키운다. 자식 없이 어머니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자식을 낳음으로써 태어나고, 키움으로써 존재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침으로써 완성된다. 그것이 바로 어머니이다.
8
그 많은 아픈 영혼들이 나에겐 대지였지만 결국 이제와 보니, 그것은 구원이었다. 나를 키운 대지가 바로 나에게는 구원이었던 셈이다. 나는 이제 그들에게 아낌없이 내 온 우주를 바칠 것이다. 그들은 나의 대지였으므로, 또한 나의 구원이므로......
9
경직된 자세로 보는 세상은 험난하고 거칠지만, 태양과 바람을 통해 본 세상은 조화롭고 신비롭다. 사랑을 몰랐을 때 보는 세상은 온통 쓸쓸하지만, 사랑을 하고 있을 때 보는 세상은 그지없이 아름답다. 사막의 따가운 태양은 지옥을 방불케 하지만, 바닷가의 뜨거운 태양은 천국을 말해준다.
10
다만 아무리 탐욕에 가득 찬 사람일지라도 대자연의 신비를 대하면 숙연해지기 마련이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던 사람일지라도 그 순간 신의 얼굴을 대면하곤 옴마니밧메훔(om mani padme h?m)을 외칠지도 모른다.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위대한 자연은 그야말로 신,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때로 자연은 우리를 일깨운다.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도 생의 궁극 혹은, 존재의 근원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지도록 만든다. 그것이 다름 아닌 신의 힘이다.
11
명상. 그것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까지 내 한 숨에 달려 있음을 알게 할 것이다. 멀리 보이는 산도, 마을 앞에 흐르는 개울도 결코 우연히 있지 않음을 알게 할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음직한 사람도, 내 집 마루 밑의 개미도 결코 다른 존재가 아님을 알게 할 것이다. 또한 내 모든 고통과 인류의 모든 불행이 둘이 아님을 철저히 알려 줄 것이다.
어쩌면 두려움 대신에 진정한 용기를, 불안 대신에 평안을, 아만(我慢) 대신에 겸손을, 집착 대신에 사랑을 일깨워 줄지도 모르겠다. 잠자는 세포를 일시에 흔들어 깨워 이 우주와의 접속을 시작하게 될지도, 그리하여 진정 끝나지 않는 영원한 연애를 즐기게 될지도 또한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