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장미 하나 사랑 둘1
‘휘~휘~휘~! 내 이름은 한 장미! 지금 나는 휘파람을 불며 열심히 그의 집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다. 조금만 있으면 언제나처럼 환한 미소의 그가 2층 집 창문에서 나를 내려다 보겠지. 그리고 내가 배달한 하얀 우유를 마시며 아이처럼 우유 크림을 입술에 잔뜩 묻힌 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눠주겠지. 그의 얼굴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거 아마 내가 방학 중 잠시 시작한 우유배달 알바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장미는 신이 나서 더욱 세차게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3개월 전 다이어트 겸 용돈 벌이 겸 시작한 동네의 우유배달 알바는 그녀의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야하는 고통도 물론이거니와 생각보다 그다지 높지 않은 아르바이트 비용 장미는 점점 그 일에서 지쳐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를 본 것은....
새로 배달하여야 할 집이 늘어났다는 배달소장의 말에 짜증을 내며 그의 집 앞에 다 달았을 무렵 하얗게 칠해진 고풍스런 집의 2층 창문을 열고 이제 막 동이 트기 시작하는 새벽 하늘빛을 고스란히 하얀 얼굴에 가득담은 그가 장미의 에메랄드 빛 눈 안으로 들어왔다.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1.5L 우유팩을 문 앞의 배달 통에 넣으면 끝나는 일인데두 장미는 어쩐지 그에게 말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요? 이거 우유 어디다 둬야해요?”
그는 힐끔 장미를 쳐다본 후 다시금 세상엔 아무 관심이 없다는 투의 무표정한 얼굴로 창문에서 아주 먼 쪽의 하늘만 바라 볼뿐이었다. 그의 무표정이 장미는 싫었다.
“이봐요. 나 우유배달 소녀라구요. 우유배달 소녀에게는 친절하게 대해야하는 거 몰라요?
헌법에 나와 있는데.....제 7장 7조에
프란다스의 개 알죠? 파트라슈! 이제 내가 당신의 파트라슈라구요? 멍! 멍!
이궁. 말 꺼내 보니 내가 개가 되고 말았네. 쩝... 아무튼 내가 당신의 우유배달 파트라슈 소녀가 되었으니까 이제 내가 보는 앞에서 우유 한잔씩 꼭 마셔야해요? 알았죠?“
장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른 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했고 파트라슈의 이야기 일 때는 마치 강아지의 흉내라도 내듯 두 손을 앞으로 꺾어 내린 체 ‘멍멍’하고 짖어대기 까지 했다.
“저 법 공부 하는데요”
창 문아래서 열심히 몸동작을 섞어가며 자신을 향해 수다를 떠는 장미를 쳐다보며 그가 말했다.
‘컥! 젠장 무슨 남자가 농담도 하나 받아줄 줄 모르지...’
장미는 그제서야 자신이 왜 그런 이야기들을 처음 보는 남자 앞에서 해대었는지 부끄러움이 밀려와 입술만 삐쭉 내민 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삐죽 나온 입술에 빨갛게 상기된 볼을 어찌할 줄 몰라 하고 있는 장미를 쳐다보며 그가 말했다.
“그런데 되게 귀여우시네요. 씨익”
“네?”
그가 웃었다. 하얀 우유 빛 살결에 하늘의 색깔을 담은 그가.....
장미는 그 미소를 보기 위해 떨군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헉 머야 저 꽃 미남이 어찌 웃는 모습이 저럴수가’
2층의 그는 태어나 처음 웃어보는 모양으로 입술 주변의 근육만 뻣뻣이 올렸을 뿐이었다. 마치 하얀 가면에 실을 걸어서 입 주변을 억지로 당겨놓은 듯한 어색하고 불편한 표정이었다.
장미는 2개월 전의 그의 웃는 모습이 생각나 자전거의 반대 방향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향해 흐뭇한 웃음을 날리고 있다.
지금의 그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백만불짜리 미소를 가지게 되었으니까.
“셋! 둘! 하나”
그의 집 앞 골목의 코너를 돌며 장미는 소리를 쳤다.
이제 고개만 2층으로 들어 올리면 그가 보일 것이다. 장미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외쳤다.
“안녕 세윤 오빠!”
“응 안녕!”
“어...어..??? 이상하다...어..”
“머가?”
“오늘 오빠가 좀..이상해.... 머리색깔과 모양도 그렇고.... 분위기도 좀... ”
장미는 하루 만에 갈색 웨이브 진 머리에서 검은 색 생머리로 바뀌어진 그의 머리스타일과
왠지 모르게 조금은 더 활발하고 가볍게 보이는 그의 분위기가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그는 장미를 쳐다보며 TV광고에 나오는 축구선수의 흉내를 검지와 엄지로 턱을 괴며 말했다.
“머리하나 바꿨을 뿐인데...씨익”
“머야? 그 웃음은? 마치 2개월 전에 처음 웃었던 모습처럼 뻣뻣하고 어색하잖아.!
무슨 일 있어? 갑자기 왜 딴 사람 같애?“
장미는 그의 어색한 웃음과 분위기가 사뭇 이상한 듯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이궁 못 당하겠네 미안! 나 사실 세윤이 아냐! 나 세윤 형의 동생인 하윤이야
미안해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장난 좀 쳤어“
“하윤? 어? 오빠가 말한 그 동생? 근데 얼굴이 똑같네 쌍둥이 었어?”
“응! 형과 나 일란성 쌍둥이야 사실 난 동시에 세상에 나온 거 같은데 집에선 세윤이가 먼저 나왔다고 하니 마음넓은 내가 그냥 형으로 인정해 주는 거지 머! 하하”
“와! 정말 똑같이 생겼네! 신기하다. 일케 똑같은 쌍둥이들은 첨 봐 진짜 신기하다.
근데 그럼 세윤오빠는 어디 간거야?“
“아...응....그게 형은 지금 운동하러 헬스장에 갔어!
요즘 우리 형제들이 몸이 부실해져서 운동하러 다니거든...”
하윤은 조금 더듬거리며 장미에게 말했다.
“어 근데 왜 하윤오빠는 안갔어?”
“우리 집이 좀 가난해서 말야? 또 우리 쌍둥이니까 둘 다 끊을 필요는 없잖아.
하루는 형이 하루는 내가 가!”
“아.. 맞다. 쌍둥이니까 그러면 되겠네. 되게 편리하다. 근데 오빠네 집이 가난하다는 건 말도 안돼
일케 동화처럼 이쁜 집에서 살면서....”
장미는 동화 속 집처럼 온통 하얗게 칠해져 있는 고풍스런 집이 부러웠던 참이었다.
“에휴...”
“왜? 왜 한 숨을 쉬는거야?”
장미의 한숨소리에 2층 창문에서 하윤이 묻는다.
“아니 나 사실 매일 매일 세윤 오빠가 내 눈앞에서 우유 한잔씩 마시는 걸 보며 하루의 힘을 내었거든.... 근데 오늘은 그 모습을 못 보니까 갑자기 힘이 빠지네. 헤헤..“
“하핫..안 그래도 형이 형 대신 나보고 꼭 우유 한 컵 니 보는 앞에서 벌컥벌컥 마시라구 하더라. 지금 거기 문 앞 우유 통에 넣어줘! 어머니께서 내려가셔서 가져 오실거야”
“아 근데 하윤오빠 왜 오빠들은 직접 내려와서 안 가져가는 거야? 세윤 오빠두 단한번두 내가 배달 왔을 때 직접 우유 가져간 적 없는데.... 매번 어머님이 가져가시구 왜 그래? 물어봐두 대답두 안해주더라 세윤 오빠는....”
“아...아..그건....그건...말이지...
우리 어머니가 아들들을 너무 아끼셔서 그래! 어머니가 꼭 우유를 갖다 주셔야만 직성이 풀리시나봐 또 집에 누구 방문하는 것도 싫어하셔서..그래..그게 다야..“
하윤은 조금 당황한 듯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흐흠...그렇구나...훔 이제부터 내가 더 어머니께 잘 보여서 꼭 한번 집에 놀러가야 하겠는걸
으샤 힘내자 한 장미!“
장미는 두 팔을 걷어붙여 알통을 만들어 내며 하윤에게 말했다.
하윤의 눈엔 그런 장미의 모습이 새벽녘의 신선한 공기처럼 느껴졌다.
때마침 어머니가 하윤에게 우유 한 컵을 가져다주시고 하윤은 이내 우유한잔을 벌컥 벌컥 들이킨 후 입 주위에 묻은 우유 크림라인을 손가락으로 찍어내며 말했다.
“어때? 이렇게 우유마셔서 일케 라인을 만들면 되는거지? 그렇지?”
“하하하..! 하윤 오빠 되게 귀엽네.
나 이제 집에 가서 학교 갈 준비해야하거든 오빠 세윤 오빠에게 안부 전해주고
다음에 또 봐! 만나서 반가웠어!“
“어 그래 장미야 또 보자 잘가!”
하윤은 창밖으로 손을 흔들며 말했다.
‘하윤오빠도 참 느낌이 좋은 사람이네’
장미는 세윤에게 그랬듯 하윤에게도 좋은 감정이 생기는 자신을 발견하고 엷은 미소를 지은체 총총히 자전거의 페달을 밟았다.
창밖으로 사라지는 장미의 자전거를 바라보며 하윤은 조금은 어두워 보이는 흰색 방안으로 의자를 밀며 말했다.
“형! 형 말처럼 장미 되게 좋은 아이 같아. 나도 저애가 좋아질 것만 같아. 내가 장미를 좋아해두 될까?”
“응..그래...”
하윤의 등 뒤에서 세윤이 조금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