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6세 아동이 법정에서 진술하는거 다들 어떻게 생각해?

쓰니1014 |2022.01.13 00:27
조회 497 |추천 1


지난 주에 성폭력 피해를 당해서 이걸 경찰에 신고한 6살짜리 어린이가 이미 경찰에서 피해 진술을 했는데도 또 다시 법정에 나와서 피해 내용에 대한 진술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기사가 났어(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5986.html).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는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도 있을거야 아마.

 

이게 정확히 무슨 일이냐면, 이 6살 어린이가 성폭력 피해를 당해서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거든?

 

근데 이 6살 어린이한테 성폭력을 가한 가해자가 경찰 조사 때 어린이 피해자가 진술한 내용을 부인했기 때문에 이 어린이 피해자가 법원에 나와서 판사랑 검사, 피고(가해자)측 변호인 앞에서 피해 내용을 다시 한 번 더 증언을 해야 한다는 거야.

 

이미 경찰조사 때 피해 진술을 다 했고 그 과정을 녹화까지 했는데, 그 녹화한 영상물은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이 안 된다네?

 

이 영상물이 인정이 안 되는 이유는 이 어린이한테 성폭력을 가한 가해자가 어린이 피해자의 진술을 부인을 했기 때문이야(근데 상식적으로 자기가 범죄 저질러 놓고 ‘내가 죽을 죄를 졌소!! 처벌 받아 마땅하니 벌을 내려주시오!! 꺼이꺼이ㅠㅠ’하는 범죄자가 어딨담?).

 

그래서 이 6세 어린이가 법원에 직접 나가서 진술을 하게 되었어.

 

너무나 어이없고 킹받는 일이 생긴 거지.

 

이런 일이 왜 발생한 것일까?




이게 바로 작년(2021년) 크리스마스 전전날에 헌법재판소에서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조사를 녹화한 영상에 대한 증거능력이 위헌이다’라고 결정된 거 때문이거든?

 

나는 오늘 이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해.

 

법률 용어들이 들어가 있어서 어렵지만, 가급적이면 쉽게 풀어서 설명을 해볼게. ㅇㅇ

 

중요한 일이니까 길어도 끝까지 읽어줬으면 좋겠어. 부탁할게. 

 




 

다들 뉴스에서건 SNS 상에서건, 성폭력 예방교육에서건 이런 이야기 들어본 적이 한번쯤은 있을 거야.

 

아동들이 성폭력 피해를 당하면 해바라기 센터라는 곳에서 조사를 받는다고.

 

해바라기 센터에는 파견나와서 근무를 하는 경찰관이 성피해를 당한 아동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아동 피해자들의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경찰서 보다는 덜 딱딱하고 아동 친화적인 분위기에서 조사를 진행하는데, 이게 바로 해바라기 센터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약자인 아동을 대상으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나쁜 놈은 잡아서 벌을 받게 해야 하니까, 아동 피해자들의 특성을 고려해서 이런 곳을 따로 만든 거야. 

 

그래서 일반적으로 해바라기센터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은 아동을 조사하는 기술에 대한 훈련을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받고 있고, 성폭력 피해를 당한 아동들은 이 훈련받은 조사관에 의해 조사를 받지.

 

이때 진술조사 과정을 녹화하거든? 이건 피해를 당한 아동들을 보호하기 위한 측면에서 진행되는 거라고 할 수 있어.

 

왜냐하면 주로 성폭력 피해 같은 경우, 특히 아동이나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인 약자를 대상으로 벌어지는 성폭력에는 증거가 안 남는 경우가 많거든(물론 증거가 남는 경우도 있지. 하지만, 이런 경우는 피해를 당한 아동이나 장애인의 몸에 끔찍한 상흔으로 남는 경우가 많으니까..ㅠㅠ 이렇게까지 끔찍한 사건은 예로 들지 않을게).

 

아무튼, 그래서 유일한 증거라고는 피해를 당한 아동의 진술밖에 없을 때가 많아(이런 이유 때문에 13세 미만 아동이나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에는 진술을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분석도 진행하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초기에 진술조사를 할 때 이걸 녹화해서 아동 피해자들이 자신이 진술한 내용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진술하면서 생길 수 있는 2차 피해를 최소화 하려고 했던거고.

 

이 영상 증거 때문에 나중에 재판을 진행할 때는 법정에 아동이 직접 나가서 진술하지 않아도 되게 하고 있어.

 

대신에 법정에서 이 영상물을 증거로 인정하려면 조사에 신뢰관계자로 참여했던 사람들 중 하나가 인정을 해주면 돼. 이 신뢰관계자 역할은 주로 진술조력인이나 피해자 국선변호사가 하고 있지.

 



설명이 길었네.

 

아무튼 그래서 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 거냐면,

 

아동 피해자들에 대한 진술조사를 진행할 때 조사에 참여했던 신뢰관계자가 그 조사가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만으로 그 진술녹화 영상이 증거로 인정이 된다는 것은, 피고인(가해자)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피고인의 방어권을 과도하게 제한해서 헌법 규정에 어긋난다는 거야.

 

즉, 만약에 피고인(가해자)이 자기가 성피해를 입힌 아동 피해자가 피해 내용을 진술한 것을 녹화한 영상을 부인하잖아? 그러면 그 아동이 직접 재판에 나와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저 위에서 말한 6세 아동이 경찰에서 피해 내용을 다 진술 했는데도 불구하고 법정에 나가서 이미 진술한 내용을 또 다시 진술하게 된 상황에 놓인 거야. 



 


이해하기 쉽게 하나의 사례를 예시로 들어볼게.

 

내가 초등학교 1학년 아동인데, 맨날 반갑게 인사를 하던 옆집 아저씨한테 성추행을 당했어.

 

그러면 나는 경찰에 신고하고 나서 피해자 조사를 받으며 피해 진술을 하지만, 나중에 이 사건 때문에 법원에 나가서 판사님들이랑 검사, 피고(나한테 피해를 가한 옆집 아저씨)측 변호인 앞에서 피해에 대한 진술을 또 해야 하는 거야.

 

내가 피해를 당한 것도 힘든데, 용기내서 경찰에 신고하고 트라우마 올라오는 거 꾹꾹 참으면서 피해 내용을 하나하나 떠올려가며 진술을 겨우 했단 말이야.

 

근데 나중에 법원에서 나를 부르면 내가 트라우마 올라오는 거 꾹꾹 참으면서 진술했던 내용을 또 다시 진술해야 한대.

 

근데, 이번에는 나한테 성폭력 피해를 가한 옆집 아저씨(피고인)의 방어권을 위해서 하는 거니까 내가 하는 진술을 듣고 있던 옆집 아저씨가 고용한 변호인이 내 진술을 하나하나 까면서 반박을 해.

 

그러면 나는 최소 10개 이상의 눈이 나만을 쳐다보는 법정에 앉아서 대답을 해야 하는 거야.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나는 고작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인데?

  

그리고 피고인(가해자)의 방어권 보장해야 한다고 하는데, 누가 보면 경찰 단계에서 가해자 조사 안 하는 줄 알겠어.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를 하면 피해자 조사를 먼저하거든?

 

가해자가 어떤 피해를 입혔는지 알아야 하니까. ㅇㅇ

 

피해자 조사 후에 가해자 조사하고, 가해자가 진술한 내용도 살펴보고, 피해자가 진술한 내용도 살펴봐. 


그래서 어떨때는 피해자랑 가해자 진술이 엊갈리니까 조사가 2차, 3차까지 진행되기도 해. 


글고 이때 가해자는 변호사 대동해서 조사 받으면서 얼마든지 방어권 행사할 수 있단 말이야.

*** ‘방어권 보장’이라고 해서 재판 이전 단계에서는 방어권 보장을 못받나 궁금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적어봤어. 





나는 법률가는 아니야.

 

하지만 성폭력 피해를 입은 아동, 장애인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어.

 

그래서 지금까지 성폭력 피해를 당한 아동들을 엄청 많이 만나왔기 때문에, 지난 크리스마스 전전날에 전해들은 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너무나 충격적이었어.

 

그 소식을 전해들은 뒤로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고 나발이고, 다 꺼져버려 모드로 2022년 새해를 맞았지.

 

피고인의 방어권 당연히 중요해.

 

근데, 피해자는 어디로 간거야?

 

더군다나 나이도 어린 아동 피해자인데..

 

어떤 중대 사안에 대한 위헌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라면 기계적으로만 결정하는게 아니고, 그 반대의 상황에는 뭐가 있는지 심도있게 살펴봐야 하는 거 아닐까? 싶어.

 

내가 이렇게 흥분하는 이유는 아동의 특성을 충분하게 고려하지 않은 무심하고 기계적인 위헌결정도 있지만, 사실상 법원에서 얼마나 무지막지하고 몰상식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야.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내가 아동이나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를 만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잖아.

 

그래서 나는 법원에 증인으로도 자주 출석을 해.

 

그래서 법정의 그 딱딱하고 숨막히는 분위기를 아주 많이 경험 한 바 있거든.

 


사실 나는 미국 법정드라마를 엄청 좋아해.

 

굿와이프, 보스턴 리걸, 앨리 맥빌, 저스티스, 슈츠.. 나의 20대는 이 미드들과 거의 함께 보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

 

물론, 그 중에 단연 최고는 <굿 와이프>인데, 혹시 아직도 <굿 와이프> 안 본 사람 있다면 꼭 봐. 제목이 ‘굿 와이프’고, 첫 에피가 여주가 바람핀 남편의 싸다구를 때리는 장면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읭? 할 수도 있는데 알고보면 엄청 잘 만들어진 법정드라마야. 꼭 봐(제발 안 본 사람 없게 해주세요ㅠㅠ).

 

<굿 와이프>가 법정드라마이기 때문에 재판하는 장면이 되게 많이 나와.

 

미드 법정물 본 사람은 누구나 기억할거야.

 

피고측 변호인이 증인 신문하면서 부적절한 질문을 하면 바로 상대측 변호인이 오브젝션(objection: 이의 있습니다)!! 외치잖아.

 

어쩔때는 운만 떼도 바로 오브젝션!! 하고 외치고, 부적절한 질문을 원천봉쇄하기도 하지.

 

아무튼 나는 이런 드라마를 보면서 나의 20대를 지내왔고, 그러면서 ‘아~ 저렇게 재판이 진행되는 구나’라고 재판 절차를 미드 법정물을 통해서 배웠어.

 

이렇다 보니까 내가 실제로 재판에 증인으로 불려나갔을 때 실망도 컸어.

 

아니, 우리나라에서는 재판에서 피고측 변호인이나 검사가 증인 신문을 할 때 부적절한 말을 해도 아무도 제지를 안 하더라구???!!!

 

물론, 우리나라랑 미국이랑 같을 수가 없지.

 

하지만, 내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나는 피해 아동을 경찰 조사 초반 단계에서 만나서 이와 관련해서 의견서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인신공격성 질문을 듣는데 정말 아무도(!!) 제지를 안 할 줄은 정말 몰랐어(<굿 와이프>의 알리샤 플로릭이었다면 분명 곧바로 “오브젝션!!”이라고 외쳤을 거야ㅠㅠ).

 

법정에서 무슨 인신 공격성 질문이 얼마나 나올지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거야.

 

나의 경우는 10년 이상 성폭력 피해 아동을 만나는 일을 해왔기 때문에 비법률가 치고는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한 경험이 비교적 많은 편에 속해.

 

그래서 법원에서 증인 신문할 때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 질문들이 오고가고, 어이없는 상황들이 펼쳐지는지도 경험에 의해서 알고 있지.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

 

내가 이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어. 법원에서 처음으로 증인 소환장을 받아서 떨리는 마음에 전날 밤에 잠을 거의 못 자다시피 하고 정해진 시간에 법원에 갔어.

 

그때가 10년도 훨씬 전이니까 지금보다 나이가 어리고, 내 커리어도 막 시작한 단계였거든.

 

법정에서 본인 확인을 한 후에 떨리는 마음으로 선서를 하고 의자에 앉았고, 피고(가해자)측 변호인으로부터 질문이 시작되었어.

 

첫 질문이 나이가 몇 살이냐는 질문이었어.

 

내가 그때 사회 초년생이었으니까 나이가 어려서 한국 나이로 27세였고, 만 나이로는 25세였어.

 

그래서 내가 한국 나이로 ‘27세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더니, 그 변호인이 ‘만 나이로 25세네요’라고 정정을 하면서 헛웃음을 치더라구.

 

근데 그 옆에 앉아 있던 피고인(가해자)이 같이 헛웃음을 치는 거야.

 

???

 

나는 순간 당황했지. 무슨 문제라도?

 

근데 변호인 옆에 있던 피고인(가해자)은 왜 같이 웃는 거야???

 

둘이 사전에 전략을 짠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전략을 짠 거라면 그 날의 그 전략은 성공적이었어.

 

그 뒤로도 피고(가해자)측 변호인은 사회초년생으로 짧은 나의 경력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까내리기 시작했고, 내가 말렸다고 생각했는지 그때부터 법률 용어를 섞어서 빨리 말하기 시작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그때 그 변호인이 나에게 한 말 중 한 번에 알아들은 게 거의 없어.

 

생각해봐.

 

안 그래도 법률용어 다 한자고, 법률가들 이중부정 문장('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거 있잖아. 꼭 한 번은 속으로 되뇌이게 하는 짜증나는 문장 형식) 많이 사용하잖아.

 

안그래도 내 오른쪽 앞쪽에 앉아 있는 성범죄 가해자(피고인)가 나를 지켜보면서 변호인이랑 같이 낄낄대는데,

 

검사나 판사(그날 판사님은 감기에 걸렸는지 옆에 곽 티슈를 놓고 코만 엄청 푸시더라) 아무도 제지를 안하고(!!!) 지켜보고만 있고,

 

심지어 내 대답을 기록하는 속기사님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머릿속이 하얘져서 질문이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오더라구.

 

나 그때 그 변호인 얼굴이 눈을 감으면 아직도 떠올라... 그 뒤로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데.. 우연이라도 다시 만나면 가서 물어볼거야. 그때 나한테 왜 그랬냐고.

 



사실 나는 법원에 증인으로 나간다는 게 굉장히 무서웠어.

 

생각해봐봐.

 

여지껏 살아오면서 범죄를 저지른 적도 없고, 피해를 당한 적도 없어서 법원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법원에 나가서 증언을 해야 한다?

 

나는 재판 과정을 미드로만 본 사람인데??

 

게다가 증인소환장에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강제구인할 수 있다고 써 있단 말이야ㅠㅠㅠㅠ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어.

 

그리고 또 법원에 나가면 그 아동성범죄자를 봐야 하잖아(정확히 말하면 유죄판결 전이니까 아동성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거라고 할 수 있겠지만).

 

너무 무섭고 떨렸어.

 

하지만, 이런 걸 표현할 순 없으니까. 무섭고 떨린다는 이유로 안 나갈 순 없으니까.

 

사회초년생의 패기로 아닌 척 하고 출석을 했던 것 같아. 


그러고는 된통 당했던 거지.

 

이게 나의 쓰라린 첫 번째 재판 출석 경험이야.

 

아직도 이 생각하면 밤에 자다가도 이불킥한다ㅠㅠㅠㅠ 


앞서 말했듯이 10년도 더 된 일인데 말이야.

 

 


그리고나서도 내가 재판에 증인으로 소환되는 일은 계속 되었어.

 

처음으로 참석한 재판에서 아주 거지같은 경험을 한 나는 두 번째 재판에서 증인소환장을 받았을 때 법원에 전화를 해서 물어봤어.

 

‘제가 증인소환을 받은 OOO인데, 혹시 피고인(가해자)이 없는 자리에서 증언을 할 수 있을까요?’

 

인신공격성 질문을 하면서 까내리다가 내가 무너지길 호시탐탐 노리며 공격했던 변호인 때문에도 힘들었지만, 피고인(가해자)이 나를 바로 지켜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나의 응답에 시시각각 반응한다는 것이 너무나 나를 괴롭게 만들었어.

 

무섭기도 했고.

 

그리고 두 번째로 증인소환장을 받은 사건의 피고인은 전과자였거든.

 

대인피해 사건의 전과자였어(이전에 사람을 해친 전과가 있다는 의미야).

 

그래서 법원에 전화를 해서 물어봤던 거지.

 

이런 거 물어봐도 되나 걱정을 하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전화를 했는데, 그때 전화를 받은 법원주사분이 그러더라.

 

‘OOO님은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권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물어봤어.

 

‘법정에서 증인 확인한다고 제 개인정보 다 공개적으로 물어보시는데, 그걸 들은 피고인이 나중에 저한테 보복을 할 수도 있지 않나요?’

 

그랬더니 그 법원주사분 왈.

 

‘OOO님은 이 사건의 피해자도 아니고, 피해자랑 친인척 관계도 아니잖아요. 그런 일은 벌어질 수가 없어요. 그리고 피해자랑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니까 그건 저희가 어떻게 해드릴수가 없어요’

 

...

 

모르겠어. 그 주사분이 상상력이 부족하신건지, 내가 법정물이나 수사물을 너무 많이 본건지.

 

뭐가 문제였던 걸까?

 

아무튼 그래서 울며겨자먹기로 그냥 나갔지..

 

다행히 그 두 번째 재판의 피고인(가해자)은 변호인의 질문에 답하는 나를 보며 낄낄대거나 헛웃음을 치지는 않았어.

 

하지만, 이미 전과가 있는 사람이었다고 했잖아.

 

그래서 그날은 피고인(가해자)쪽은 아예 쳐다도 안 봤어.

 

지금처럼 마스크를 쓰는 시대도 아니었어서 기를 쓰고 고개를 피고인(가해자) 쪽으로 향하게 안 하려고 했더니 목 뒷 부분이랑 오른쪽이 뻣뻣해져서 한 일주일 고생했어.

***지금은 그래도 요청하면 피고인(가해자)이 없는 자리에서 증언할 수 있도록 절차는 마련해 놨더라. 

 

증인으로 소환이 되어서 재판에 출석했다가 경험한 불쾌한 경험을 말하라고 판을 깔아주면 나는 하기스 차고 24시간 필리버스터도 뛸 수 있을 정도야.

 

이런 상황이다 보니까 더더욱 저 위헌결정에 화가 날 수 밖에 없는 거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 많이 하잖아.

 

요즘에는 그래도 이전보단 세상이 나아졌다.

 

피의자(가해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형사사법체계에서 이제 피해자의 인권도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에 피해자를 지원하는 제도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과연 법원도 마찬가지일까?

 

개인적으로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법원은 가장 늦게 변화가 되는 곳 같아.

 

항상 어떤 범죄가 먼저 발생하고 다수의 피해자가 생기고 나서야 관련 법이 생기잖아.

 

물론, 이건 법률이 생기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속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

 

범죄자들이 어떤 범죄를 저지를지 미리 예측을 해서 법률을 만들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미리 법안을 못 만들어서 피해자의 발생을 막을 수 없다면, 피해를 당하고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통에 잠식되지 않도록 돕는 일들은 우리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근데, 이번의 위헌결정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시대를 역행하는, 피해자를 고통 속에 다시금 쳐넣는 결정 아닌가 싶어.

 




내가 지금까지 이 일을 하면서 많은 성폭력 피해 아동들을 만났었다고 했지.

 

이 아동들의 보호자들이 항상 걱정하는 게 ‘성장과정 중에 발생한 성피해가 아동의 앞으로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야.

 

그래서 많은 아동 피해자들이 경찰 조사 이후에 심리치료나 상담을 받고 있어.

 

그리고 이것도 단순하게 한 번 딱 받고 끝나는 게 아니고 최소 2~3달에서 몇 년까지 걸린단 말이야.

 

그만큼 피해로부터 회복을 하는 게 쉽지 않아.

 

근데 다들 그거 알았어?

 

생각보다 형사사법절차가 되게 늦게 늦게 진행이 된다?

 

나도 이건 이쪽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몰랐던 사실인데,

 

어떤 사건이 경찰에 신고되어서 가장 빠르게 재판이 열릴 수 있는 시기가 신고 시점부터 3개월 정도 지난 뒤고, 보통은 재판까지 가는데 1년은 그냥 넘어간다고 생각하면 돼.

 

시간이 되게 오래 걸리지?




 

내가 본 사건 중 최악으로 길었던 사건이 있어.

 

그거 피해 아동이 성범죄 피해 당해서 경찰에 신고를 하고 재판이 열리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알아?

 

5년!

 

그 사건은 재판이 열리기까지 5년이 걸렸어.

 

그 사건의 피해자가 최초로 경찰에 피해를 신고했던 게 초등학교 5학년 말~ 6학년 초쯤? 이었거든.

 

5년 후에 법원에서 증인소환장을 받아서 재판에 나갔는데 그 사이에 피해자는 고등학생이 되어 있더라구.

 

그러니까 헌법재판소의 이 위헌결정이 그 당시에도 적용이 되었다면,

 

이 피해자는 자신이 초등학교 5학년 말에서 6학년 초쯤 당했던 피해를 경찰에 신고를 한 뒤 조사를 받고 나서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5년 동안 계속해서 마음속에 담아두고 기억해두고 있었어야 해.

 

왜냐구?

 

재판에서 경찰 조사 시 진행한 영상녹화 증거가 부인되면 이 피해자가 직접 재판에 나가서 피해 내용을 또 다시 증언해야 하거든.

 

5년 전에 자신이 했던 진술 내용이랑 현재의 진술이 다르면 피고(가해자)측 변호인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거든.

 

다들 5년 전 생일 날 뭐 했는지 기억들 해?

 

정말로 끔찍하지 않아?

 

내가 성피해를 당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힘든데, 경찰신고 바로 다음날 열리는 것도 아니고, 1년 뒤에 열릴지, 2년 뒤에 열릴지, 최악으로 5년 뒤에 열릴지도 모르는 재판을 위해서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계속해서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거야.

 

이런 상황이면 그 어떤 심리치료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 피해자가 피해 경험을 딛고 자신의 일상을 잘 살아나갈 수 있을까?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저 위헌결정이 얼마나 실제를 반영하지 못한 곧이곧대로의 기계적인 결정인지 내가 굳이 거품물고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다들 충분히 이해했을 거라고 생각해.

 

 



실제로 성폭력 피해 아동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때 생각보다 많은 피해 아동들이 피해 상황을 떠올리는게 고통스럽다며 피해 사실에 대해서 진술하는 것을 거부해.

 

그렇기 때문에 이런 아동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경찰관은 피해아동이랑 신뢰를 쌓고 친밀감을 형성하는데 많은 공을 들이지.

 

이거 절대 쉬운 과정이 아니고 굉장히 까다롭고 조심스러운 작업이야.

 

그래서 초기에 피해아동이랑 경찰관이랑 신뢰와 친밀감이 제대로 형성이 안 돼서 결국에 진술을 하는데 실패하는 사건도 되게 많아.

 

이런 경우는 나이가 어린 아동일수록 더 많이 발생하고.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법원이 이런 어렵고 조심스러운 작업을 진행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피고(가해자)측 변호인이랑 피고인(가해자)이 증인의 답변에 같이 낄낄거릴 때 그 누구도 제지 안 하는 재판장에서?

 

어려운 법률용어 섞어가면서 이중부정 문장으로 빠르게 질문하고, 여기에 대답을 못하면 비웃어도 아무런 제지도 안 하는 재판장에서?

 

요즘에는 그래도 조금은 제지는 하더라.

 

근데, 미드에서처럼 바로 제지를 하는 건 아니고 피고(가해자)측 변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다 듣고, 이에 대한 증인의 답변도 다 듣고 나서. 그러고나서 제지를 해.

 

그럼 그 부적절한 질문에 이미 노출된 나는 영향을 아예 안 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가해자가 고용한 변호사가 피해 아동들에게 질문을 가려서 할 것 같아? 피고인(가해자)의 방어권을 위해서 진행되는 절차인데?


지금도 법정에 나가는 청소년 피해자들에게 '(가해자가) 몇 번째 손가락을 (성기에) 넣었나요?', '이전에 섹스 해봤어요?', '아저씨 성기가 커요? 작아요?' 이런 질문 서슴없이 한 단 말이야. 아무런 제지도 안 받고. ㅠㅠㅠㅠ

 

성인이며 직업인으로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세월만 10년이 넘는 나도 영향을 받는데, 아동이 이런 상황에 노출이 되면 어떨 거라고 생각해?

 

헌법재판소에서 미성년 피해자의 영상녹화진술 증거에 대한 위헌결정을 내리면서 과연 이런 부분까지 다 고려하고 결정을 내린 걸까?

 

나는 이 결정에 자꾸 회의적인 생각만 들어.

 



 

다들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이거 그냥 헌법재판소 결정 그대로 ‘아~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걸까?

 

어떻게 하면 아동 피해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걸까?

 

이 문제를 다들 심각하게 바라보고 주변에 마구 퍼트려줬으면 좋겠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목소리를 내면 아동 피해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하루 빨리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부탁할게. 




긴 글 읽어줘서 정말 고마워!! >_<


 

 

추천수1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