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 남자애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글을 적어봐요.
9년만에 그리웠던 친구를 직장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어요.
이 아이와는 안산에서 중학교 입학 때부터 처음 알게 되었었는데, 성인이 된 이후에 마지막으로 본건 거의 10년 가까이 되었었네요. 오랜만에 이렇게 우연히, 제가 일하는 일터에서 만나니까 당황스럽고 창피하기도 하고, 뒤늦게 반갑기도 했어요.
중학교, 같은 자리 짝궁이라는 이유로 이 아이랑 친해지게 되서 매일 등하교를 같이 하고... 집 가는 방향이 같다는 구실삼아 시간 끌어 제가 더 걸어서 집에 들어가기를 망설이던 적이 있었어요. 사실은 어린 나이에 이성에 관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네. 제가 많이 좋아했었어요ㅎㅎ
저는 중학교때부터 가정 폭력을 많이 당했어요. 하나 있는 언니도, 할머니도 저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너무 힘들어서 가출 팸을 전전하며 원룸 생활을 한적도 있었는데, 대학생 오빠들이 제게 몹쓸 짓도 많이 시켰었거든요...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데, 이 아이만은 저에게 큰 힘이 되어줬어요.
가출하고 어디 의지할 곳이 없을땐, 이 아이한테 많이 기대었어요. 외로운 제 어린시절에 빛이 되어준 아이였거든요. 저를 이해해주니까, 같이 있어주니까, 이 친구도 저와 같은 부류의 친구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를 입학하고부터는 이 친구가 크게 달라졌었습니다. 남녀분반 때문에 마주칠 기회가 좀처럼 없었는데, 우연히 복도에서 보면 주변을 의식하지도 않고 공부를 하고 있더라구요. 등·하교에도, 급식실에서도, 어쩌다 같이 타는 버스 안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었어요.
눈빛에 독기가 잔뜩 올라서는, 얘가 이런 아이였었나? 아, 뭐 그냥 열심히구나. 하고 넘겨짚었지만 사실,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보다는 저를 바라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어요. 제가 그 아이의 노력을 인정하면 인정할수록 어두운 저와는 더욱 멀어지는 것 같았거든요.
후에 그 아이가 갑자기 그렇게 공부를 하게 된 이유를 그 아이가 나온 신문에서 알게 되었어요.
저와는 다르게 앞을 보고 나아가는 그 아이가 참 빛이 나 보였고, 시간이 갈수록 그 아이와 관련된 소식은 의식하고 피하게 되었어요. 이 감정이 열등감이었다는 것을 늦게서야 깨닫게 되었네요 ㅎㅎ;;
저는 대학도 중퇴했거든요. 집이 등록금을 내줄 형편도 안되고, 성인이 되어서도 술만 마시면 때려대는 아빠와 가족들의 무관심이 힘들어서 집을 도망치듯 나왔는데, 막상 기댈 곳은 가출팸이었어요.
공장-휴게소-카페, 제 짧은 가방끈으로는 이렇다할 직업도 구하지 못하고 기숙사 생활을 찾아다녔지만, 저의 사정을 헤아려주신 사장님 덕분에 지금은 6살난 이쁜 딸아이와 함께 살고 있네요ㅎㅎ
그렇게 지난 1월, 주문을 받는데 왠 덩치큰 남자가 주문하면서 대뜸 잘지냈냐고 물어보더라구요. 네, 그 아이였어요.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라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었어요. 멘탈이 나가 주문처리도 못해서 라떼를 아아로 주고...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보다는 숨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어떻게든 피하려고 화장실만 들락날락했어요. 그 아이는 자리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더라구요...
사장님께서 몇 년 만에 만난 친구라고 말씀드렸더니, 저한테 이야기 좀 나누라고 양해를 해주셨었어요. 제가 너무 당황해하니까 사채업자가 온 줄 아셨었다네요...
그 아이와 마주앉은 그 자리가 제게는 익숙치 않은 상황이라 애꿎은 카페모만 푹푹 눌러쓰고 이야기 내내 바닥만 바라봤네요.
그동안 저를 쭉 찾았었대요. 몇년이나 찾으면서 일면식도 없는 제 같은반 동창들을 직접 찾아가서 탐정처럼 겨우 겨우 수소문 끝에 찾아오게 되었다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낸건지, 왜 찾아온건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훌쩍 가더라구요.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이 아이는 여전히 빛이 나는 사람이었어요. 그 모습이 참 부럽기도하고... 마음 한켠으로는 아직 제 속에 사그라지지 않은 열등감 때문인지 그다지 밝은 표정은 보여주지 못했었네요. 이 친구는 지금 꿈을 찾아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다가 저를 찾았다는 소식에 휴가를 내게 되었다네요. 그동안 제가 다른 지역에 있다보니 그동안 찾기 쉽지 않았었을거에요...ㅎㅎ어린아이처럼 신이 난듯 그동안의 못다한 이야기들을 말해주는데, 이 아이 덕에 평생 꿈도 못꾸던 베를린을 대리여행간 기분이었네요.
그러면서 제 이야기를 하니 이 아이가 웁니다. 네, 펑펑 웁니다. 덩치가 산 만한데 꺼이꺼이 연신 눈물을 흘려대니까 제가 다 놀랐어요.
한쪽 눈이 점(?) 때문에 좀 파란 아이인데, 그동안 나를 못 찾았었다.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 이러고 울고불며 하니까 눈시울이 붉어져, 빨강 파랑 빨강 파랑 색깔 맞춰 우는게 웃겨서 위축되었던 긴장도 다 풀어져버렸었네요.
키가 이렇게 컸었나, 풍기는 아우라, 훈남이 되어버린 이 남자애의 모습에 이제는 손 뻗어도 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나아가 버렸네요. 지나간 시간, 그 때 만약 제가 용기내어 다가갔었다면(?) 하는 생각도 해봤었지만, 이미 엇갈려버린 길이라 이제는 이 아이를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만 드네요 ㅎㅎ;;
이 아이에게 받았던 고마운 추억들은 제 마음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어요. 다음에 다시 보게 되었을 때 당황한 기색 없이 웃으면서 반갑게 마주하고 싶네요.
시간이 지나 이렇게 만나게된 인연이 신기하면서도 제 힘들었던 어린시절에 참 고마웠던 인연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이 그저 감사하게만 느껴지네요.
어디 말 터놓고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고,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을 아침부터 두서 없이 쓰다보니 제가 무지성으로 글을 올리게 되었네요.
여러분들께서는 인생에 이렇게 고마웠던 사람이 있었나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하시는 일 잘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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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들 다 읽어보았어요. 제가 제 감정에 복받쳐서 두서 없이 글을 적었었네요 ㅎㅎ;;사실, 제 어두운 부분은 제가 더 비참해지는 것 같아 그냥 넘어갔는데... 네, 저는 미혼모에요. 애 아빠가 연애할땐 저를 잘 이해해주고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임신했다는 소식에 바로 잠적으로 답해준 참 나쁜 사람이네요.
그리고 지금은 원룸에서 살아요. 기숙사가 보장된 일만 하다 덜컥 아기가 생기는 바람에 직장을 그만두게 되고 오갈데도 없었는데, 지금의 사장님이 저를 직원으로 받아주셨어요. 지금 살고 있는 이 원룸도 사장님께서 많이 도와주셨답니다.
그 친구와 이성 관계로 발전 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그저 남자 사람인 친구인 관계로 남을거에요. 다만, 그 아이가 학창시절에는 외로운 싸움을 할 때, 제 열등감 때문에 도망갔었지만, 지금은 그 친구를 응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물론 월세와 생활비가 부담되어 빠듯하게 생활할 때도 있지만! 저는 지금 제 딸 아이와 둘이 꿋꿋이 오손도손 잘 살아볼 생각이에요.
몇년의 감정들을 여기 몇줄로 전부 설명할 수 없지만, 그 아이를 통해 제가 받은 좋은 영향은 평생 잊지 못할거에요.
고마움과 그리움, 미묘한 감정들이 겹쳐서 부족한 제 어휘력으로는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감정으로만 늘어놨네요. 그럼에도 제 두서 없는 하소연을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