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한다. 각 과별로 학회 인원들이 모두 학교에 나와 신입생 통제를 및 안내를 해야 하는 자리이다. 나는 추가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해외프로그램 장학생으로서 수여식에 참석하는 것. 아침 일찍 부터 학교에 나와 모두가 분주했다. 시간에 맞추어 각자 맡은 역할을 하러 나갔다. 나는 신입생들을 대강당으로 안내해 주는 일을 하였다. 그리고 장학금 수여자들이 앉는 맨 앞자리에 정해진 좌석에 앉아있었다.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며 한번도 사람들 앞에서 대표를 상장이나, 장학금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일정대로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고 장학생들이 무대 위로 올라갈 순서가 왔다. 총장님 얼굴을 처음 보았다. 내 이름이 호명되고 예의상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묘하면서 그저 그런 기분이었다. 무사히 오리엔테이션을 마쳤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학과 안에서는 나름 얼굴이 많이 알려져 있었다. 동기들에게는 해외프로그램 장학생으로서, 후배들에게는 학회 선배로서. 지나다니다 보면 신입생들이 나를 보고 고개 숙여 인사해주었다. 어색했다. 나도 똑같이 고개 숙여 인사하며 항상 존댓말을 잊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입생들이 참석해 선배들과 인사를 하는 대면식을 진행하였다. 장소는 고깃집. 전부 다 학회 비용을 진행되는 거라 나는 공짜 고기를 먹을 생각에 신나 있었다. 신입생들은 뒷전에 두고 그나마 동기들이 있는 테이블에 앉아 편하게 고기를 먹으려고 하는데, 동기 학회장이 날 불러 신입생 테이블에 들어가 케어를 해주라고 했다. 불편한 자리는 싫은데. 어쩔 수 없었다. 그게 학회의 일이니. 신입생들이 모인 테이블에 앉았다. 우리 과가 여성비율이 높은 편이라서 이 테이블도 전부다 여성들이었다. 어색한 인사를 나눈 후, 학교생활에 관한 질문에 답 해 주었다. 유독 내 바로 오른쪽에 앉은 친구가 말을 많이 했다. 자연스럽게 그 쪽으로 시선이 많이 갈 수 밖에 없었는데, 눈이 굉장히 크고 예쁜 친구였다. 맘 편히 고기는 많이 먹지 못한 체 대면식은 끝났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MT날이 다가왔다. 작년 내가 신입생으로 참석한 MT를 생각해보았다. 술도 먹지 않고, 혼자 조용히 앉아있다 하룻밤 자고 온 것 같은데. 이번에는 가서 짐도 많이 나르고, 신입생 통제도 해야 하고, 저녁에 있을 장기자랑도 진행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버스를 타고 3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리조트에 도착했다. 열심히 맥주와 소주를 날랐다. 이 많은 술을 다 클리어 할 수 있을까. 이제 막 20살이 된 친구들인데.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다들 언제부터 술을 마셨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남자 여자 할 거 없이 엄청 잘 마셨다. 학회 인원으로서 이제 각자 신입생 방에 한 명씩 들어가 분위기를 주도해야 한다고 했다. 조심스럽게 시끌벅적한 방으로 들어 가보니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며 외쳤다. 입장샷 입장샷, 후.. 참고로 나는 술게임을 하나도 모른다. 술 문화도 모르고. 이럴 줄 알았으면 1학년 때 회식도 참석해 배워 놓을 걸. 들어가자 마자 폭탄주를 마셨다. 그리고 바로 내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을 시작했다. 내가 아는 유일한 술 게임 베스킨 라빈스 떠리원인가 뭐시긴가. 시작했는데. 갑자기 귀엽고 깜찍하게 다시 하란다. 끔찍했다. 인권유린이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싶었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신입생들에게 못 볼꼴을 보일 것 같았다. 잠시 방으로 들어가 앉아서 쉬고 있는데, 누가 내 다리를 툭툭 치면서 말을 걸었다. 혀가 완전히 꼬인 목소리로.
“오 선배님 여기서 또 뵙네요?!”
엄청난 하이텐션 이었다. 그 친구의 얼굴을 멀뚱 멀뚱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뭐야?! 저 기억 안나요?? 저 OOO이에요 OOO”
우연치 않게 이름을 알아버렸다. 저번 대면식 때 옆에 앉아 있던 눈이 큰 친구였다. 술에 많이 취해 보였는데 하이톤의 목소리와 눈이 풀린 표정이 귀여웠다. 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는데 다른 신입생이 그 친구를 데리고 나가며 내게 죄송하다고 했다. 뭘 죄송할거까지야.
다음날 숙취로 마비가 된 신입생들에게 컵라면을 나눠주고, 버스에 탑승해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나도 전날 나름 취해 있었지만, 필름이 끊기진 않았다. 귀여웠던 신입생 친구의 얼굴이 맴돌았다. 학회 친구에게 이번 신입생 MT 참여자 리스트를 달라고 했다. 잠깐 확인할 게 있다고 얼버무렸다. 그 친구의 이름을 찾아보았다.
외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학기에 추억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