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3급의 친정 오빠가 사기를 당했다
지난주 화요일에 내가 인지를 했고 6일이 지났는데
나는 지난 6일이 1년보다도 길게 느껴진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가 오픈뱅킹으로 돈을 이체했고 무슨 핸드폰을 사서 팔았다 라며 두서없이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내며 울먹였다. 혼자 사는 오빠 집에 누군가 와 있다는데 그 사람이 의심스럽단다.
곧 남편이 퇴근할 시간이었지만 상황을 알아보러 오빠집에 갔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이것저것 들춰보며 오빠를 기다리는데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다 나를 보더니 멈춰섰다. 아주 찰나의 숨막히는 정적이 지나는 동안 나는 알았다. 그냥 알았다. 저 놈이다.
OO(오빠이름)집 아니예요? 라며 말 같지도 않은 질문을 한 채 문 앞에 서 있는 그 놈에게 들어오라고 했다. 몇 차례 주춤 하더니 들어오는데 그 놈이 메고 있는 까맣고 작은 가방 안으로 현금 뭉치가 얼핏 보였다. 아주 잠깐 스치듯 보였다. 하지만 명확히 그것이 만원짜리와 천원짜리 뭉치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사용감이 있는 현금뭉치. 창구에서 받은 것이 아닌 현금뭉치.
곧이어 들어온 오빠를 앞에 앉혀 놓고 이야기를 들어봤다. 누군가에게 100만원을 받아서 자신이 수수료 80을 갖고 20을 누군가에게 줬단다. 몇 차례 질문과 답이 오갔고 그 놈은 나가있겠다고 했다. 그 때 붙잡아 놨어야 하는데. 그 놈이 나가고 오빠에게 그걸 알선한 사람이 아까 그 놈이랑 같은 놈이냐고 물었지만 아니라고 했다.
어쨌든 뭔가 이상한 상황이었고 다음날 같이 경찰서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다음날 확인해보니 오빠 앞으로 총 6개의 휴대폰이 개통되어 있었다. 오빠 휴대폰을 뒤져보니 알 수 없는 텔레그램 대화내역 불법대출업자와의 대화 등 뒷일이 걱정될만한 하지만 그 놈을 잡기전까지는 알 수 없는 그런 내역들이 많았다.
지체장애를 가진 68세 노모와 지적장애를 가진 40대 중반의 아무것도 모르는 오빠를 끌고 통신사를 돌며 가입내역서를 뽑아 들고 늦은 시간 경찰서를 찾았다.
나는 살면서 하지말라는 일은 안하며 살았다. 경찰서에 갈 일은 당연히 없었다. 피해를 당하고 경찰서 가서 이야기를 하면 그걸로 신고가 되는 것으로 알고 40년을 살았다. 수사관은 내 말을 잘 들어주었고 지적장애가 있는 오빠에게 질문을 간간히 하면서도 두서없는 대답을 차분히 기다려줬으나 법은 혹은 경찰서는 수사관만큼 친절하진 못했다. 그것만으로는 사건접수가 안된단다.
내가 사기를 인지한 날로 이틀이 지난 31일. 또다시 엄마와 오빠를 데리고 통신사를 돌고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자료를 받고. 사실 너무 전쟁같았던 시간이라 내가 어디어디 전화했는지 언제 전화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은행거래내역서와 통신사가입시 작성서류 등 여러 자료를 챙겨들고 다시 늦은 시간 경찰서에 갔다. 수사관은 여전히 내 말을 잘 들어주고 오빠 말을 기다려줬지만 아직도 사기고소는 되지 않았다. 범죄일람표라는 것을 육하원칙에 맞게 써서 정확한 피해사실과 금액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 마지막에 오빠 입에서 그 놈이 게임방을 같이 차리자고 했다는 말이 나왔다. 집에 오늘 길에 게임방을 차리는 돈을 만들기 위해 그렇게 하라고 했다는 것과 그 돈을 모아주겠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뭔가 길이 보이는 듯도 했다.
늦은 시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는 사이 나는 오빠앞으로 대출, 현금서비스, 휴대폰 소액결제(결코 소액이지 않은), 카드사용 거기에 리니지 아이템 결제까지. 대략 1300만원 이상에 이르는 피해 금액에 관한 자료를 모았다. 그 모든 일들은 보름도 안되는 기간에 벌어진 일이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도 연락을 했고 법률구조공단에 상담예약도 한 상태에서 주말동안 나는 그 놈과의 싸움을 준비했다.
오빠 집에는 유플러스 맘카가 설치되어있다. 오빠가 간질이 있어 언제 쓰러질지 모르기 때문인데 사실 엄마도 하루종일 그것만 들여다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다행인 점은 움직임이 감지되고 20초간 녹화가 된다는 것. 불행인 점은 그 놈도 맘카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점과 초기 설치 시 잘 몰라서 주말 녹화 설정이 되어 있지 않다는 점. 하나 더 다행인 것은 목소리까지 녹음 된다는 사실을 그 놈이 안 것은 나와 만나기 전날 이었다는 점이다.
그 놈과 오빠의 영상을 녹취록 뜨듯 정리 하고 피해 사실도 일자별로 정리하는데 주말을 전부 썼다. 그 모든 자료를 가지고 기대를 안고 오늘 법률구조공단에 갔다. 가는 길 개나리는 강을 이루듯 피어있었다. 나만 모르는 사이 봄이 활짝 피었구나.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시간이 걸릴테지만 이일은 곧 해결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마음이 조급해 약속 시간보다 20분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자리에 앉은지2분도 채 되지 않아 나는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형사고소 건은 우리가 하지 않아요.
민사는요?
민사도 형사 결론이 나야.
그럼 여기서 지금 제가 도움 받을 수 있는게 없네요?
이런 일이 있었다 피해를 당했다, 그런 말만으로는 안된다.
자료는 제가 다 찾아놨어요
하지만 내가 가져간 자료는 꺼내보지도 못했다.
나는 똑같은 내용을 장애인권익옹호 단체에도 문의를 했었고 그곳에서는 같이 법률구조공단에 갈 약속을 잡자는 답을 들었는데, 그렇다면 그 약속도 필요없는건가? 아니면 장애인권익옹호단체와의 협업은 되지만 개인의 형사고소는 안되는건가? 그렇다면 여기서는 무엇을 구조해주는건가. 착잡하고 무기력해졌다.
역시 인생은 각자도생. 여기까지도 혼자 했는데 뭐 어떠냐. 나 혼자하면 된다. 다시 수사관님과의 약속을 잡고 차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사기의 얼굴은 친절하다. 그 놈은 오빠의 약 시간을 살 뜰이 챙겨줬고 적막하던 오빠 집에 사람 냄새를 남겼다. 사회로부터 수용되지 못한 사람의 식사는 유난히 조용하다. TV 소리조차 사람에게 닿지 못하고 흩어지듯 날리고 창 밖의 봄은 본체도 없이 지나가버린다. 그런 사람에게는 단 하루 함께 일 한 것만으로도 동료라는 이름의 내 사람이 된다. 또한 그런 것이 엄마를 더욱 슬프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