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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향 (文香)

해내리 |2022.07.26 07:37
조회 147 |추천 0

내 이야기를 시작해볼게 

어차피 군더더기 서론이 너무 길어지면 

다들 싫어할테니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하지 

난 일곱 살때...그러니까 대략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의 

나이가 되었을때쯤부터 

아버지와 큰어머니(아버지의 본부인)와 함께 

살게 되었어 

 

왜 그전 이야기가 없는지 의아해하겠지만 

좀 복잡해질수 있으니 그건 뒤에 차분히 순서대로 설명할게 

여하튼 그게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들어갈 무렵이었는데 

서울...아마 여의도던가 그런데쯤 있는 어떤 큰 아파트에 

들어가 살게 되었지 

거기엔 나보다 나이많은 누나 둘이 있었고 

나보다 한 살 어린 여동생이 있었어 

그리고 머리 희끗희끗한 무섭게 생긴 할머니 한분이 계셨는데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분이 아버지의 본부인이었던거야 

 

사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진짜 의아한게 

그때 큰누나가 대략 중학교 들어갈 무렵이고 

작은누나는 나보다 두어살 많은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그 정도 나이였으니 

큰어머니 나이를 많이 잡아봤자 40대 초반이나 중반 

그 정도일텐데 

어린나이여서일까...그땐 그냥 웬 

흰 머리 많은 무섭게 생긴 할머니... 

그렇게 느껴졌었어 

 

대충 짐작은 했겠지만 우리 아버지 세대만 해도 

남아선호사상과 대 이을 아들 하나 있어야한다는 가치관이 

중심이던 시절 

아버지가 집안에서 2대독자인데다가 

아버지의 본부인과의 사이에서 딸이 셋밖에 없어서 

그래서 그 사이에 우리 엄마를 만나 

나를 낳았던거지 

그리고 아마 그때까지 쉬쉬하다가 

내가 학교에 들어가야할 나이도 되고 

또 결정적으로 집안의 대를 이어야하는 3대독자니 

본가로 데려와서 큰어머니와 이복누나,여동생들이랑 

살게한거지 

 

여하튼 여의도 큰아파트에서 처음 보았던 

큰어머니 첫 인상은 나이많고 무섭게 생긴 할머니였고 

그때 중학교 들어갈 나이였다는 큰누나는... 

뭐랄까 그냥 좀 나이많은 어른같은 느낌 

둘째누나는...그래도 상대적으로 어려서인지 

어렵다기보단...그냥 좀 뭔가 성격 까칠해보일거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 

 

문제는 막내인데 앞에서 미리 말했지만 얘는 

나보다 한 살 아래인 동생이지 누나가 아니야 

근데 아버지가 도대체 전후설명을 어찌 이야기했고 

또 큰어머닌 지 딸들한테 무슨 이야길 어떻게 했는지 

막내인 얘도 내가 지한테 누나인줄 알더라 

방이...아무리 여의도에 있는 큰 아파트였지만 

여하튼 아버지랑 큰어머니가 함께 쓰시는 안방이 있었고 

큰누나와 작은누나는 각기 따로 쓰는 방이 하나씩 있었고 

난 막내인 여자애랑 한방을 쓰게 되었는데 

사실상...비극의 시작이었지... 

내 인생 비극의 시작... 

 

말했지만 문제는 얘가...사실은 나보다 한 살어린 동생인데 

지 언니들이 다 날더러 자기를 ‘누나’라고 부르라고 하니까 

지도 그냥 나한테 누나인건줄 알았나봐 

그러니까...굳이 그 기집애 입장에서 이해를 해보자면 

어느날 갑자기 우리집에 들어온 이상한 남자애 

그리고 언니들이 이 남자애한테 ‘누나’라고 부르라고 한다 

그러니 나한테도 얘가 누나라고 불러야 하는거구나 

그렇게 이해한건지 원... 

 

상황이해를 돕기위해 천상 세명의 이복누이들(누나 두명, 여동생 한명) 

가명을 지어야할 것 같다 

편의상 중학교 들어갈 나이였던 큰누나를 정리(가명)누나 

당시 초등학교 2-3학년 정도 나이였던 작은누나를 정민(가명)누나 

그리고 나보다 한 살 어렸던 기집애를 

정은(가명)이라고 해두자 ^^;; 

 

여하튼 그렇게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시작된 

아버지와 큰어머니 그리고 세명의 이복누이와 함께 시작된 

여의도에서의 생활 

아,참 그리고 중요한 이야기 하날 빼먹었는데 

사실 난 정상적인 아이들보다 1년 늦게 학교에 들어갔어 

뭐 어쩄든 정상적인 출생이 아니었고...이후 호적에 올리고 

본가로 거처를 옮기고 하는등 과정이 복잡했는지 

여하튼 다른애들보다 1년 늦게 학교에 들어가게 된거야 

즉 나보다 한 살어린 – 심지어 지가 누나인줄 아는 – 정은이 그 기집애랑 

같은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된거지 뭐... 

그리고 또 한가지...몰랐었는데 그 무렵에 난 

정신이 성치 못한 아이였었나봐 

나중엔 그걸 뭐라나 지적장애인 ??? 나중에 성인이 되어 직접 정신과 의사에게 

진단을 받아보니 지적장애보단 자폐증에 가깝다는 판정을 

받긴 했는데... 

뭐 여하튼 지적장애든 자폐아든...그 시절 다른 또래아이들보다 

발육도 늦고...힘도 약하고...또 말도 제대로 못하고 행동도 굼뜬 

- 그리고 어쩌면 사람들 말귀도 제대로 못알아 들었던 

대충 그런 아이였나봐...그리고 지적장애든 자폐아든 그건 다 21세기 들어 생긴 개념이고 

그 시절 기준으론 그냥 X신인거지... 

 

그래서일까 

나랑 한방 쓰게 된 정은이 기집애 

그 자체가 싫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첫날부터 때리더라 

실제로는 내가 한 살많은 오빠고 또...아무리 내가 발육상태가 부진했다 하더라도 

일곱 살 어린 여자애의 주먹이 얼마나 야무진지는 

겪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마로~~~ (생각해보니 이런 경험 해본 사람 자체가 

나빼곤 별로 없겠구나. -.-;;;;) 

 

어쨌든 정은이 그 기집앤 걸핏하면 날 때렸고 

- 심지어 맞은 이유도 난 몰라 

근데 어이없는건 정작 그렇게 툭하면 날 두들겨패놓고 

그래서 내가 맞아서 울면...지도 겁이 났는지 어쨌는지 

덩달아 같이 울더라 

당연히 놀라서 가족들이 달려오겠지 아버지든 큰어머니든 누나들이든 

근데...비슷한 또래의 두명의 남녀아이가 함께 울고 있으면 

상식적으로 어른들은 누가 누굴 때렸다고 생각할까 ? 

맞아. 다들 내가 정은이를 떄린줄 아는거야... 

사실상 집에서 내 편은 하나도 없었던거지 

아버지는 아무래도 큰어머니한테 바람을 핀 원죄가 있으니 

웬만하면 끽소리 못하고 큰어머니 눈치를 보면서 사시는 분위기였고 

중학교 들어갈 나이 된 큰누나는 사춘기가 시작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이런 집안 분위기 자체가 싫었는지 걸핏하면 짜증만 냈고 

대체로 상대적으로 정은이하고도 별로 나이터울 안지는 작은누나 정민이 누나가 

대체로 졍은이하고도 잘 어울리는 편이고 늘상 정은이 편이더라 

그래서...난 정은이한테 맞아서 울면 정은이 기집애도 덩달아 울고 

정민이 누나 방이 바로 옆방인데 우는소리가 나면 바로 놀라서 들어와서는 

‘야 !!! 심O훈(가명) 니가 뭔데 내동생 때려 ? 너 깡패야 ? 심O훈 너 한번만 더 

내 동생 때리면 가만 안 둔다 !!!’ 

이렇게 되는거지 

그러니까 난 맨날...정은이한테 맞고...그 다음엔 정민이 누나한테 맞고 

큰어머니한테 맞고...아버진 늘 눈치만 보시느라 아뭇소리 못하고 

큰누나는 그냥 이런 집안 분위기 자체가 싫어 맨날 소리만 꽥꽥 지르여 

짜증만 내고... 

그러면서 살았던거지 뭐... 

 

어쨌든 그렇게 여의도(서울)에 살면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어 

학교를 1년 늦게 들어가서 한 살어린 정은이와 동급생이 되었다는건 

이미 이야기 했지 ? 

문제는 정은이가 날 싫어하는거였어 (뭐 다른 누나들도 마찬가지지만) 

근본적으로 날 걸핏하면 때리고 그러는 애인데다가 

등교할때는 그래도 아버지가 다들 아픈손가락이라고 출근길에 차에태워 

학교까지 보내셨는데 

문제는 하교길이었어 

뭐 늘 그런건 아니고...다만 정은이 이 기집애가 생각보다 붙임성이 좋았는지 

학교 입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가 제법 생기더라 

그리고 매일까진 아니더라도 한 2-3일에 하루 정도는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는데 

그때 내가 집에 있는게 싫은거지 

그래서 날 쫒아내더라고 

“ 야 !!! 너 나가 !!! 여기 니네집 아니잖아 !!! 왜 남의집에 들어와있어, 

이상한 애야 !!! 나가 !!! 니네 집으로 가 !!! 니네 엄마한테 가라구 !!! ” 

 

뭐 물론...여의도에 들어와 살기전까진 

살던집(다만 그게 엄마랑 같이 살던집인지 기억에 확실치가 않음. 

이 부분 역시 뒤에서 설명하겠지만)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여의도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날더러 지금 어쩌라구 

어떨땐 심지어 하교길에 

- 근본적으로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야 나나 정은이나 같을 수밖에 없잖아 

헌데 보통 지 친구들과 삼삼오오 집으로 가다가 

내가 보이면 흘끔 째려보는 것 같았어 

정은이 기집애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같이 

지들끼리 대체 뭘 수군거리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날 아주 이상하고 그런 아이인양 수군거리는 것 같더라 

(*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무슨 스토커쯤으로 아는 분위기라고나 할까) 

- 근데 어차피 지네집이나 내가사는 집이나 같은 집인걸 날더라 어쩌라구 !!! 

(* 심지어 방까지 같이 쓰게된 판에...) 

 

여하튼 난...이미 대충 정은이 이 기집애가 

지 친구들 집에 데리고 놀러갈때나 친구들이랑 어울려 하교길을 갈 때 

내가 따라붙거나 눈에 뜨이는걸 싫어하는구나 

그걸 깨달았기 때문에... - 내가 지적장애인지 자폐증인지까진 모르겠지만 

최소한의 눈치는 있는 아이였거든 ? 

그래서... 

얼마후부턴 난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 가는길을 

정은이나 그 친구들한테 안 뜨이게 반대편 길을 택해 

삥 돌아오곤 했었어 

물론 당연히 시간이 많이 걸렸고 

늘상 큰어머니한테 야단맞아야했지 

“ 아니 도대체 넌 어린애가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다 밤늦게 돌아오건 

하는거니 !!! 우리 정은이 봐라 !!! 얼마나 착실하게 공부도 잘하고 그러는데 

넌 어쩌자구 허구헌날 말썽만 피워 !!! ” 

 

한번은 이런일도 있었어 

그날도 난 눈치껏 학교에서 집 반대편길로 돌아 집으로 왔는데 

정은이가 그날 무슨 다른 사정이 있었는지 여하튼 

집에 지 친구 대략 대여섯명정도랑...아직 집에는 안들어가고 

지들끼리 수군거리고 있었던거야 

그때쯤 내가 거기 도착했고 정은이는 당황했지 

일단 집 문이 열리고 정은인 친구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고 

날 보면서는 기겁을 하며 이랬지 

“ 나가 !!! 여기 니네집 아닌데 왜 자꾸 여기로 와 !!! 이상한 거XX끼야 !!! 

니네 집으로 가 !!! 니네 엄마한테로 가라구 !!! ” 

 

정은이의 친구들도 날 무슨 이상한 구걸하는 아이나 

성격이나 정신이 좀 이상한 아이로 보는지 지들끼리 흘겨보며 

수군거리고 있었고 

그리고 문을 쾅 닫았지. 순간 문틈에 손가락이라도 꼈다면 

큰일이라도 날수 있을정도로 

여하튼 정은이는 지 친구들이랑 집에 들어갔고 난 들어갈수가 없었지 

 

근데 순간 오기가 생기더라 

정은이가 그랬잖아 

니네 집으로 가라고...엄마한테 가라구 

그래. 엄마 찾으러 가자...가면 될거아냐 

사실 난 아빠랑 살게 되기전까지 

‘군산’에서 살았는데 실은 거기서도 엄마랑 살았던 것은 아냐 

기억에 그곳에서 함께 살던 아주머니 – 그런데 일단 나이는 그리 

많아보이진 않았어. 어린 나이 느낌에 최소한 ‘큰어머니’보단 젊어보이던 

여성이었으니까 

보통 난 그분을 ‘이모’라고 불렀고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아버지가 그렇게 일러주시더라고 

그 이모가 실은 나한테 이모가 아니라 우리 엄마(친엄마)한테 이모라고 

헌데 설상가상 그조차도...엄마가 친이모라 이모라고 부르는것인지 아니면 

그냥 흔히 좀 나이많고 절친한 아줌마를 부르는 정도 의미의 

그 ‘이모’인지조차도 확실치 않아 

 

여하튼 군산에서 ‘이모’라고 불렀던 젊은 아줌마와 살았던 것은 확실해 

그러다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이 되어 아버지에 이끌려 여의도로 올라와 

살게된거지 

사실 이제와 하는 이야기지만 난 그때까지 여의도가 서울인지도 몰랐어 

서울과 여의도가 다른곳인지 알았지 

- 굳이 비유하자면 탈북자들이 북한에 있을 때 ‘대한민국’과 ‘남조선’이 

다른나라인줄 알았더것과 비젓한 이치라고나 할까... 

여하튼 서울이든 여의도든 거기서... 

엄마 찾으러 ‘군산’까지 가기로 결심한거지 

정은이가 지 친구들 데리고 집에와서 화가 났는지 

‘집에 가라’고 ‘니 엄마한테 가라’고 한 그날 충동적으로 

무조건 집을 나왔어 그리고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이렇게 물어봤자 

‘아저씨, 여기서 군산 가려면 어떻게 해야해요 ? 저 엄마한테 가야해요 ?’ 

몇몇 지나가는 아저씨나 아줌마,누나들한테 그렇게 물어봤고 

아저씨,아줌마들은 이상하기도 하고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는지 일단 

인근 파출소로 신고를 했지 

잠시후 경찰차가 와서 데려왔고 

그곳에서도 난 일관되게 이렇게 말했어 

‘엄마한테 갈거라고’ ‘엄마찾아 군산으로 갈거’라고 

서울이든 여의도든 초등학교 1-2학년 정도 된 어린아이가 

무작정 ‘엄마찾아 군산으로 갈거라’고 하니 

경찰아저씨들은 또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래도 이런일에 좀 노하우가 있는 경찰이 몇분 계셔서 

일단 주위에 아이잃어버린 젊은 부모라던가 이런 사람이 없나 

그 부분부터 탐문하셨고 (서울 한복판에서 난데없이 초등학교 1-2학년 

정도밖에 안된 어린아이가 ‘군산의 엄마 찾으러 간다’는 말 자체가 이미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지 않나) 

 

대략 한 사흘만에 아버지와 큰어머니가 달려오셨어 

아버진 그래도 날 잃어버린줄만 알았는데 찾았다며 

감격의 눈물 흘리셨지만 

그 자리에선 아무말 없으시던 큰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셔서 

불같이 화를 내시며 날 때리시더군 

‘이제 하다하다 별의별 짓을 다하는구나 !!! 키워준 은공도 모르고... 

기껏 먹여주고 입혀주고 헀더니...이젠 뭐 ? 군산의 니 엄말 찾으러 가 ? 

허구헌날 집에도 안 들어오고 말썽만 피우더니 군산 니 엄마를 찾으러 

가곘다고 ? 가려면 가 이 벼락맞을 후레자식아 !!! 벼락맞아 뒈져도 시원찮을 

천하의 후레자식 같으니 !!! 군산 그 니 술집창녀 에미년을 찾아가던지 말던지 

니 마음대로 해 !!!’ 

 

그러고보니.. 

우리엄마가 술집창녀란 소린 그때 처음 나왔던거 같은데... 

어쨌거나 난 너무 억울해서 되려 아무런 항변의 말도 

심지어 울음소리도 나오지 않더라 

이게 다 누구때문인데 

18...지 X 막내딸이 나 집에도 못들어오게 해서 

친구들 데리고 집에 올 때 나 있는거 싫어하는거 같아서 

일부러 밖으로 삥돌아 늦게들어왔던거고 

심지어 지 X 막내딸이 날더러 니네집 아니라고 

니네집으로 가라며 니네엄마한테 가라며 그래서 

그래서 군산사는 우리엄마한테 가려고 한것뿐인데... 

게다가... 

나보고 키워준 은공도 모른다느니 먹여주고 입혀주고 했다느니 하던데 

일단 근본적으로 그 일이 내가 아버지와 큰어머니랑 함께 살게된지 

반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야 

 

물론 그 사이 학교도 들어갔고 그 사이 정은인 지 학교 친구들도 많아져 

여러분 지 친구들도 집에 데려오고 지도 친구집 여러번 놀러가고 

그러던때니 일단 학교 입학한지는 시간이 꽤 지난 시점이지만 

여하튼 대체로 큰어머니와 함께 살게된지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벌어진 일인데 

키워준 은공...이라니... 

뭐 결과적으론 구박과 설움이 있었을지언정 

이후에도 대충 성인이 될 때까지 쭉 큰어머니 가족들과 함께 살았지만 

적어도 함께 산지 반년도 안되었을 때 나올 소리는 

아니지 않나... 

그리고 제대로 먹여주고 입혀주고나 했는지는 

아아...치사해서 그것까지 따지진 않으련다... 

 

너무 서러운 이야기만 하는거 같아 다른 에피소드 하나만 들려줄게 

그러고보면 

여하튼 큰어머니 댁에서 나보다 한 살어린 동생이지만 

지가 누난줄 아는 동급생 정은이와는 한방을 썼고 

정민이누나(작은누나),정리누나(큰누나)는 각기 다른방을 쓰고 있었지만 

보아하니 정은이나 정민이 누나나 다 소꿉놀이를 

즐기는 것 같더라 

다만 둘이 좀 스타일이 달랐어 

굳이 구분을 하자면 정은이는 모노드라마형이라고나 할까 

저혼자 제 방에 있는 여러 가지 인형을 혼자 늘어놓고 

저혼자 어떨땐 엄마도 되었다 아빠도 되었다 군인도 되었다 간호사도 

되었다 판사도 되었다 약사도 되었다 그야말로 혼자 1인 다역을 하는 

모노드라마형이었고 – 다만 그렇게 저혼자 인형극놀이 하다 뭔가 기분이 

안 좋으면...그때 날 때리곤 했던거야 

 

둘째누나는 역할극형이었어 

주로...나랑 정은이를 파트너삼아 역할극을 하는데 

재미있는게 맡기는 역할이 지가 언니고 정은이가 동생 그리고 난 

동생 남편...역이었어... 

나중에 역시 성인이 되어 알았는데...어떤 아동심리학자가 그러더라 

아이들 소꿉놀이 하는 모습을 보면 대충 그 집안 분위기를 짐작할수 있다고 

근데 재미있는게 

정민이누나가 하는 소꿉놀이 역할이 

언니야 지가 언니고 정은이가 동생이니 그렇다치고 

내가 졸지에 제부(?)가 되어버린 그 역할극에서 

언니가 맨날 동생내외 야단치는 역할이더라 

글쎄...뭐 난 솔직히 큰어머니쪽 가족에 대해선 잘 몰라 

- 그리고 그런건 상식적으로도 쉽게 물어볼수 없는 질문일테고 

큰어머니한테 동생이 있는지 뭐 어쩌는지 그런건 난 잘 몰랐지만 

재미있는건 정민이 누나 소꿉놀이 소재가 맨날 

속썩이는...혹은 맨날 사네 못사네 하며 부부싸움하는 

그런 동생내외 야단치고 또는 타이르고 그러는 역할인거지 

 

글쎄... 

정민이누난 도대체 지 엄마 평상시 어떤 모습을 보고 

그런 소꿉놀이 소재(?)를 떠올린걸까 

맨날 지가 언니 정은이는 동생...그리고 난... 

동생남편...그리고 지가 맨날 동생내외 야단치거나 타이르는 역할 

여하튼 나야 뭐 큰어머니 친정식구들을 만나보거나 한적은 없어 

솔직히 그래야할 이유도 없었을테고 

다만 (* 도대체 그 집안 동생내외는 얼마나 지 언니 속을 썩이기에 

맨날 지 둘째딸 소꿉놀이 소재가 속썩이는 동생내외 야단치는 

역할이냐 !!! ^^;;) 

 

어쨌거나 난 그렇게 

늙고(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 나이를 40대 초반 정도로 추정할수 있으니 

초등학교 1학년 어린 내 눈에 그렇게 보였을뿐 그렇게 많은 나이라고는 할수 없지만) 

무섭게 생긴 큰어머니 

화나고 열받는 일만 있으면 또는 이런 집안 분위기 자체가 

싫고 짜증나는지 툭하면 꽥꽥 소리만 질러대는 큰누나 정리누나 

집안에선 늘상 정은이 편이고 난 늘 소꿉놀이 대상(주로 속썩이는 제부역 -.-) 

으로 삼는 둘째누나 정민이누나 

그리고 분명히 내가 한 살 많은 오빠인데 지가 누나인줄 알고 

걸핏하면 때리고 지 친구들 데리고 오면 나 집에 있는거 싫다고 

나가라고 내쫏는 셋째 정은이 

그런 가정환경에서 대략 초,중,고 9년의 학창시절을 보낸거지 

 

물론 그 사이 정리누나,정민이누나,정은이도 자랐는데 

뜻밖에도 정리누나는 수학에 취미나 흥미가 있더라 

다들 알다시피 대한민국 모든 중,고생의 90% 이상이 수학을 X나 혐오하고 싫어하는데 

특이하게도 정리누나는 원래 수학을 좋아해서 

대학을 실제 ‘수학교육학과’를 나온뒤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 되었어 

정민이누나의 경우엔 여하튼 소꿉놀이 할때부터 상상력이 있어보이더니 

나중에 드라마 PD나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하더군 

다만 아버진 이건 반대하셨어. 사실 요즘은 여자 PD나 여자 영화감독도 

적잖이 볼수 있지만 

사실 80년대는 물론 90년대까지도 대한민국 방송가나 영화판에 

여류작가라면 모를까 여성PD나 여성감독은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원래 ‘딸자식은 연예인 시키지 말라’는 속설도 있지만 

그것도 여자애가 여류작가나 연예인도 아닌 

여성감독이나 PD가 되려하는건 당연히 아버지 반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지 

 

나는 대학은 무역학과를 들어갔다 

일단 대한민국에서 판,검사나 변호사같은 법조인 또는 의사 

그런 직업군이 출세하기 딱 좋은 직업이란건 

조두류가 아닌 다음엔 모르는사람은 없을테고 

다만 난 그런길은 너무 흔해빠져 별로였고 

이공계는 원래 내가 흥미가 없었고 그렇다고 무슨 공부벌레도 아니라서 

- 어쩄든 서울에서 4년제 대학 한번에 붙을수 있는 그 정도 실력은 되었지만 

미안하지만 나도 뭐 그렇게 공부벌레도 아냐 

그래서 무슨 인문학(가령 고전문학이나 역사,철학,종교 이런것들...)같은데 

깊이 파고들어 평생 연구하는것도 별로였기에 

경제관련 학과를 나와서 이 다음에 대기업에나 취직해볼 생각으로 

그런대로 들어본적 있는 무역학과에 들어간거지 

 

어쨌든 내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 

나랑 다섯 살 터울지는 큰누나(정리)는 이미 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으로 교편을 잡고 있었고 

둘째누나(정민)도 어느덧 대학 졸업반이지만 그보다는 무슨 드라마PD나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한참 설치고 돌아다닐땐데 

문제는 정은이 이 기집애야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인데 심지어 한때 지가 누나인줄 알았고 

내가 학교를 1년 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졸지에 동급생이 되어버려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녀야했던... 

근데 내가 대학을 한번에 덜컥 붙은데 반해 

정은이 이 기집애는 이후 계속 재수,3수 하면서 떨어지더라 

그래서 큰어머니도 나중엔 열불이 났는지 정은이 기집애를 

이렇게 다그치기도 했어 

‘세상에 저 병XX끼도 한번에 붙는 대학을 도대체 왜 넌 못 가니 ? 

어이구 속터져...어이구 열불나...’ 이렇게... 

덕분에 한동안 신체적 폭력은 나에게서 정은이에게로 넘어가긴 했지만 

(헌데 그조차도 의붓아들인 난 한번에 대학에 붙었는데 자기 친딸은 

계속 대학 못붙는것에 대한 신세한탄과 화풀이를 그렇게 하신거고....) 

 

게다가 아무리 그렇기로 

열딱지나면 지 딸이나 욕을 할 것이지 

거기서 왜 또 난 굳이 ‘저 병XX끼도 붙는 대학을...’ 하는 식으로 

토를 다는것인지 원... 

여하튼 나는 그렇게 대학에 들어갔다 

- 아 참 그리고 또 하나 미리 말해둘게 있는데 

설마 이쯤에서 뜬금없이 ‘아저씨, 군대는요 ?’ 이렇게 물어볼 

조두류는 없겠지 ??? 

혹시 있을까봐 그것도 조금만 부연설명해줄게 

근데 이미 나 앞서 지적장애에 자폐증까지 있는 장애인이라는거 

이미 말했다. 

가령 신검 현장에서도 한번에 육안으로 ‘장애’가 확인이 되는 그런 장애인이야 

굳이 비유를 하자면 가령 전철이나 버스같은 대중교통 이용할 때 

행동이 좀 굼떠보이거나...사지육신은 분명 멀쩡해 보이는데 어딘가 좀 모자라는 친구 

아닌가 그리 생각되는...그런 승객을 아마 한두차례 본 기억은 누구나 있을거야 

딱 그 정도 수준의 장애라는거지. 여하튼 장시간 지켜보면 어느정도 신체나 정신에 

문제가 있는 친구로구나 그게 확인이 되지만 먼발치서 얼핏 보거나 

혹은 입사시험장 같은데서 얼핏얼핏 봤을땐 그저 사지 멀쩡하고 건강한 청년으로밖에 

안 느껴지는 그 정도 분위기 

 

여하튼 결과적으로 신검은 면제판정을 받았어 

다만...뭐 듣기론 조두류들중에 가끔씩 그런 애들 있다며 

신검현장에서 정신장애등이 확인되면 바로 면제판정을 받는다는 점을 악용 

현장에서 생쇼를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던데... 

그래서 억울하게도 난...신검 관계자들이 의혹을 가져서 재검,삼검까지 받는 끝에 

큰어머니가 병원에서 직접 진단서까지 끊어오셔서 

일다 의혹은 해소되고 깔끔하게 면제판정을 받았지 

다만 큰어머닌 내 진단서 떼어오시면서도 그러시더라 

‘하이구야 !!! 세상없는 병XX끼를 아들X끼라고 거뒀더니마 

이제 하다하다 내가 별 거지X떡같은 뒤치다꺼리까지 다 해줘야 하는구나 !!!’ 

 

후우... 

넘어가자... 

 

본격적인 대학생활이 시작되었어 

아까...정은이 이 기집애 재수,3수 하는것까진 

지켜봤다고 했었지 ? 

그럼 최소한 대학 3학년 될 때까진... 

그 집에 같이 살았다는 소린데 

- 큰어머니가 자기딸(정은이)한테 

‘도대체 저 병XX끼도 한번에 대학 붙는데 넌 왜 이렇게 대학을 못 가냐 !!!’고 

툭하면 구박하시는 모습까지 지켜보면서 말야 

 

여하튼 그러니까 그 일이... 

3학년이나 4학년 상급생이었을땐 확실히 아니고 

1학년 신출내기 신입생때인가 했는데...그때도 그럼 아니고 

대략 2학년 가을쯤 그때 있었던 일이 아니었나 싶네 

사실 난 자폐아에 지적장애아지만 

그래도 내 발로 혼자 학교도 다닐수 있고 신검도 받으러도 가고 

회사 면접시험도 직접 보러 갈 정도로 

아주 저능아는 아니야. 그러니까 

무슨 한총련이니 전대협이니 이런 대학가 시위 같은거 

전혀 눈치 못챌만한 바보는 아니란 소리지. 

그리고 우리땐 그래도 전대협보단 한총련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인데 

그리고 민주화가 이미 한참 진행중이던떄라 과격 학생시위도 

적어도 80년대에 비해선 많이 잦아든 시대지 

 

헌데 그러다 어느날...대략 내가 2학년 가을 무렵 

한총련이 주도한 반정부 시위가 한참 대대적으로 벌어진다고 

난리가 난적이 있었아 

근데...적어도 내가 다니는 A대는 그때까지만 해도 

운동권 영향력이 그리 세지 않던 그런곳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 신경은 쓰지않고 평상시처럼 

무역학과 강의만 열심히 듣던 무렵이었어 

다만 어쨌든 무슨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곧 대대적으로 벌어지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가 게속 있던 무렵이라 

학교갈 때 전철역이며 학교근처며 전경이며 사복경찰까지 

쫙 깔려서 검문검색 하고 있었어 

그러나 난 설마 무슨일 있으랴 하는 심정으로 

평상시처럼 등교를 서둘렀는데 

내가 다니는 A대학이 OO역 전철역에서 내려 도보로 한 10여분 정도를 

걸어가야 하는데 

전철역 개찰구를 나와 학교로 가는 발걸음을 막 서두를때쯤 

누가 부르는거야 

 

그리고는 혹시 ‘A대 학생이냐 ?’고 묻더군 

난 순간 사복경찰의 검문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고 

자기도 그 학교 학생인데 사정이 있어 그러니 

이걸 좀 A대 OO관 OO실까지 좀 옮겨다줄수 없겠냐 

부탁을 하더군 

그러고보면 말하는걸로 봐선 나는 그 학생을 못알아봤지만 

그 학생이 날 알아본 것 같은 분위기이긴 했는데 

난 뭐 다들 알다시피 대학에 동아리도 많고 이런저런 부속시설도 많고 

세미나나 이런저런 행사도 많고 하니 

그런데 쓰는 물품이려니 생각하고 

무엇보다 ‘착한일’ 하는거라 생각하고 해맑게 미소지으며 

그 낯선 학생이 건네준 가방보따리를 받았지 

그리고 학생의 부탁대로 관련된 방으로 그 짐보따리를 옮겨주기 위해 

열심히 발걸음을 옮겼는데... 

 

어느덧 학교 정문에 다다랐을때쯤이었어 

그곳에서도 이미 한바탕 검문검색이 살벌하더군. 

근데 그런 검문검색하는 사복경찰중 하나가 날 부르는거야 

그리고 ‘가방을 열어보라’고 하더군 

 

‘아...’ 순간 아찔한 심정에 비명을 토해냈어 

가방안에는 이른바 화염병 만드는 재료들 

그리고 반정부 구호등이 가득담긴 전단이 하나가득 채워져있었지 

나는 바로 경찰에 연행되었아 

 

일단 그 일은 

아버지가 연락을 받고 달려오셔서 

만 하루만에 오해가 풀려 훈방조치되긴 했었어 

그러나 난 집에 들어오자마자 

큰 어머니로부터 뺨을 한 대 얻어맞야아만 했지. 

와...사실 난 그때 

초등학교 1학년 어린아이가 (내가 그동안 큰어머니한테 

한두번 얻어맞았겠냐 ? 백번...아니 천번도 넘지... -.-) 

40대 초반의 아주머니한테 두들겨 맞을때보다 

어느덧 20대 청년 대학생이 되어 

나이 이미 50대 중반으로 접어든 사실상의 할머니로 봐야하는 

여자한테 얻어맞을 때 

그 뺨따귀 때리는 손길이 천억배는 더 매섭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어 

 

다들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며 어이없어 할련지 모르겠는데 

뭐...그럴 수밖에 없는 자초지종이 좀 있긴 해 

큰어머니는 그날 내 뺨을 때리시며 이렇게 발악하시듯 외치시더라 

‘이제 하다하다 별짓을 다 벌이는구나 !!! 이젠 아버지 남은 여생마저 망쳐먹을 

작정이냐 !!! 이 천하의 악질 후레자식 같으니 !!!’ 

그때 처음 알게 된것이지만... 

그때 아버진 사실 여당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시기 위해 한참 

동분서주하실때였어 

어쨌든 아버지도 젊은 시절부터 대략 30년 가까이 

그만한 중소기업을 운영하시며 해당 업계에선 성공한 CEO로 평가받는 분이고 

대한민국 정치,사회 분위기를 어느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인물에게 정치권 영입제안이 들어온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면 일이었지 

전혀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게야 

 

역시 그때 처음 안 사실이지만 그때 큰어머니는 

생전 안 나가시던 교회까지도 주위에 그런 기독교인 친구,동료의 추천을 받아 

인근의 제법 큰 대형교회에 새벽기도까지 나가시며 

‘우리 남편 5선 의원이 되게 해주시옵고 저를 ’5선 국회의원 사모님으로 만들어 

주시옵소서’한참 그렇게 눈물로 기도하실때라 하시더군 

나중에 들어보니 그 교회 담임 목사님께서 이런 푸념도 하셨다고 해 

‘나 원 지금까지 살면서 별의별 신도를 다 만나봤지만...그냥 우리남편 국회의원이나 

장관되게 해달라는 기도도 아니고 굳이 자기가 ‘5선 국회의원 사모님’이 되게 해달라고 

그런 기도제목을 붙여서 기도하는 경우는 30년 목회 하면서 보다 처음 보는군 하고... 

 

뭐 큰어머니 인생을 생각하면 이해못할 ‘큰어머니의 기도’는 아니야 

어쨌든 그분도 손귀한 집안에 시집와 아들 못낳는다고 시댁에서 그리 구박받고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그러다 혼외자를 덜컥 낳아서 데려왔으니 

그 기함하는 심정은 또 어땠을것이며...심지어 속된말로 그런 모자라는 아이를 

지금껏 손수 거두고 키워야했으니 그 한은 또 어떠했을까 

그러니 그렇게 평생을 살아오신 큰어머니가 연세 50을 넘겨 

‘5선 국회의원 사모님’이라도 되어 사회에서 대접받으며 살고 싶노라는 

그 정도 야심은 이뤄져야 힘들게 살아온 세월에 대한 

합리적 수준의 보상은 되지 않겠어 ? 

 

헌데 그런 자신의 마지막 남은 야심마저 

밖에서 데려온 의붓아들의 경솔한 행동으로 무산될 위기에 처해버렸으니 

큰어머니 입장에서 그 좌절감 그리고 그로인해 나에게 쏟아지는 

원망,분노,경멸,혐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걸 생각하면 초등학교 1학년때 아직 40대 초반 아주머니었던 큰어머니한테 

얻어맞을때보다 

다 큰 대학생 성인,청년이 되어 이미 50대 중반 할머니가 다되어가는 

큰어머니한테 얻어맞는 따귀가 

훨씬 더 매섭고 아프고 충격이 클수도 있다는 것 

논리적으로 그렇게 말 안되는 소리야 

 

다만 난 그때부터 그 일화는 더 믿지 않기로 했어 

왜 그 전설의 고향이던가...아니면 무슨 어린이용 사극형 꽁트 

(가령 ‘뽀뽀뽀’나 ‘TV유치원’ 같은) 그런데 한번 나왔을범직한 효자일화 있잖아 

어머니한테 회초리를 맞는 효자 아들이 오히려 

‘어머니 회초리 치시는 힘이 젊으셨을때보다 너무 많이 빠지셔서 

어머니가 이제 진짜 늙으셨구나 하는 생각에 울었습니다’ 하더라는 이야기 

와...18 늙어서 힘이 빠지기는 개뿔 

우리 큰어머니가 나에 대한 경멸,분노,혐오 게다가 자신의 인생과 야망마저 

좌절될 위기에 빠져 그 격노의 심정으로 따귀를 때리던 그 순간은 

초등학교 1학년때 나이 40대 초반의 그냥 아주머니로 처음 봤을 때 

처음 얻어맞았을때보다 

천억배는 더 아프더라...18... 

 

그러다... 

정은이 이 기집애가 3수...아니 사실상 3수 포기하고 놀러다니고 할 때 

큰어머니는 졸지에 툭하면 당신 막내딸 정은이 닦달하면서 

‘도대체 저 병XX끼도 한번에 붙는 대학을 넌 왜 못가냐 !!!’ 

하며 졸지에 나까지 들먹이며 2중으로 들먹이실때쯤 

그리고 난 어느덧 대학 3학년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진지하게 나를 불러 말씀하시더라 

그러지말고 너 ‘친어머니’를 찾아가보는게 어떻겠냐구 

아버지도 나름 그런 판단을 하셨던 것 같아 

도저히 내가 이 집에서 큰어머니나 이복누나,동생들과 함께 사는게 

내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것이란 것을 

진지하게...어머니를 찾을만한 단서를 알려주시긴 했어 

 

아버진 어쨌든 군산(혹은 그 인근지역 – 대략 이리(지금의 익산)나 전주,김제,정읍 

그쯤되는 지역)에서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우리 어머니를 만나 

관계를 가져 날 낳으신거고 

막상 그렇게 날 낳으신 어머니는 어디 아이를 맡길때가 적절하지 못하니 

소위 ‘이모집’에 날 맡기셨던거야 

다만 그 이모가 나한테 ‘이모’뻘이라는것인지 어머니한테 이모뻘이라는것인지 

또는 실제 ‘이모’는 아니고 그냥 어머니의 아는 지인이라 편의상 

‘이모’라고 부른것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해 

여하튼 대략 그 이모집에서 초등학교 들어갈때까지 살다가 

그쯤되어서 아버지가 날 데리러 오신거지. 

애를 학교에도 보내고 해야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까지 내 소재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 

우리 엄마랑 아버지가 가끔씩 연락 정도는 주고받고 사셨던 것은 분명한 것 같아 

 

여하튼 그렇게 ‘이모’집에 맡겼다는 날 아버지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이 되어서 데려가신건데 

그러고보면 그...어릴 때 함께 살던 이모가 

나이가 많은 분이었는지 젊은분이었는지... 

나로선 워낙 어릴때라...기억이 확실치 않네...적어도 그것만이라도 어느정도 

기억을 하면...나한테 이모뻘이란 소린지 엄마한테 이모뻘이란 소린지 

그 정도 추론은 가능했을텐데말야... 

 

어머니... 

뵙고 싶습니다 단 한번만이라도 

지금까지 큰어머니댁에서 당한 설움,슬픔,아픔,고통...굳이 그런것들은 

다 열거하지 않아도 

살아생전 단 한번만이라도 뵙고 싶습니다 

단서는 단 두가지...어쨌든 아버지가 젊은시절 전북 군산 혹은 대략 그 

인근(이리(지금의 익산),전주,김제,정읍 그 정도 지역)지역 유흥업소에서 

일하시던 어머니를 만나 아이를 낳은거고 

그리고 그 아이인 저를 어머니가 역시 군산 혹은 그 인근지역의 

‘이모’집에 맡겼다는 것 

생각해보니...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보다 막연하지는 않네요 

어쨌든 전북 북부지역의 유흥업소를 이잡듯이 뒤지다보면 

언젠가는 알게되지 않을까요 ? 어머니의 흔적이든...이모의 소식이든... 

 

사실... 

아버지가 저한테 ‘어머니를 찾아가보라’는 권유를 하시며 

그 단서를 알려주실 때 

불편한 진실 하나를 더 알려주시긴 했다 

솔직히 한번 유흥업소에 발 들여놓은 여자 이후에 

거기에서 빠져나와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복귀하는거 

솔직히 쉽지 않다고 

굳이 비유하자면 

한번 정치판에 발 들여놓은 사람 평생 그 언저리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고 

한번 호기심에 방송,연예가 근처에 가본사람 

평생 그 근방 벗어나기 쉽지 않은것과 

비슷한 이치라고나 할까 

 

물론 이미 우리 어머니도 – 어쨌든 아들이 이미 대학생이니 - 

나이가 들었겠지만 

꼭 직접 남자들에게 술따르고 유혹하는 그런일을 직접 하진 않아도 

하다못해 그 근처에서 창녀나 술집여자용 물품을 팔든 가짜한약이라도 팔든 

그런 관련 업종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하며 살수도 있는일 아냐 

 

어머니...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단서라고 해봤자 어쨌든 70년대 중,후반경 

군산 혹은 그 인근지역에서 유흥업소를 하시거나 사셨던 

어머니...이모님... 

아니 설사 이미 더 이상 전북 북부지역에 살지 않고 

이미 다른곳으로 이주하셔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다 뒤져야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니 이 작은 한반도가 문제겠습니까 ? 

경우에 따라선 아니...지구끝이 아니라...은하철도 999를 타고 안드로메다까지 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전 어머니의 흔적을 

반드시 찾아내고 말것입니다 

그래서 훗날 혹시 누가 

저희 어머니의 소식을 안다는 이가 제게 

‘니 에미 알고보면...세상 그런 더러운 3류 저질 창녀가 없었다’ 그렇게 말한다 할지라도 

모든걸 각오하고 

저는 어머니를 포용하겠습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이 죄많고 더러운 세상에 

그렇게라도 태어냐야 했던게 저만의 숙명이라면 

그래서 지적장애에 자폐증까지 있는 사생아로 평생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살았을지언정 

그렇게 살아가게 만든 어머니를 포용해야 하는게 

저만의 숙명인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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