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이 게시판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용해보는 사람입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쩌다 보니 정말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은 날이 오게 되었네요.
저는 20대 후반 끝자락에 접어들고 있고 3년 차 직장 생활을 해오고 있습니다. 비록 큰 회사는 아니지만, 연구기관에 부설로 있는 곳이라 제 또래의 사람들과 편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또 정규직은 아니지만, 저를 추천받아 채용을 해주신 상사분께서 배려해주신 덕분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어 정규직과 비슷한 연봉과 복지로 생각보다 걱정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3이라는 숫자가 돌아오면, 어김없이 제 현실은 너무나도 힘드네요. 다들 이렇게 지내시는 건지.
처음 월 190만원으로 계약을 하고 3개월 동안 업무를 익히며, 이전 근무자들의 잦은 퇴사로 인해 계약직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던 직장 상사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3개월 동안 제대로 된 인수인계 없이 늦은 시간까지 혼자 끙끙대며 야근을 하는 날이 일쑤였고, 독립한 방으로 일을 가져와 밤새는 날도 꽤 있었습니다. 그렇게 3개월을 아등바등 살아내고 '내 일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이 들던 그때, 제 모습을 지켜보던 직장 상사의 제안으로 무기계약직 전환이 되었습니다.
13개월 차에는 연봉협상 이후 오른 첫 월급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한 일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처럼 좋아야 했는데, (무기)계약직이 정규직만큼 받는 데에는 그만큼 더 일하라는 뜻이 있다는 걸 모를 만큼 둔하지는 못했습니다. 제 마음도, 사람들의 시선도 생각이 많아지더군요. 그때의 저는 퇴사를 생각할 정도로 여려졌습니다. 한 달 내내 별 뜻 없는 타인의 한마디에 주눅 들고, 나만 알만한 작은 실수에도 위축되었습니다. 다시 철야를 지속하면서 틈나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집 앞 초등학교를 몇 바퀴씩 뛰어 돌아내곤 했습니다.
근무 2년을 한 달 앞둔 그때, 처음으로 성과금을 받았습니다. 큰돈은 아니고 100만원 정도였는데, 본가에 가져갈 고기를 사서 부모님 드릴 용돈을 현금으로 뽑아서 갔어요. 아버지가 고작 그거 받고 좋냐고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도 사실, 멋쩍어서 그렇지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무기계약직도 계약직인지라 성과금은 애초에 생각지도 못했고, 다음에 성과금이 나오면 아무에게도 얘기 안 하고 꼭 나를 위해 쓰겠노라 생각했거든요. 돌아가신 할머니 이름으로 절에 등을 40만원 주고 달았다고 자랑하실 때도 그러려니 했어요. ‘드린 돈이니까, 이제 내 돈이 아니니까’요. 제 통장에는 생활비가 고작 4만원이 남아있었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전혀 아니네요. 그달에 제가 한 달 내내 준비한 프로젝트가 다른 부서로 넘어갔거든요. 저는 일주일 내내 식욕을 잃었고, 한 달 가까이 말도, 웃음도 잃었습니다. 그 성과금이 쓸데없는 제 고생에 대한 보상이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본가에 갔던 그 날만은 내가 잘해서 받은 거라는 자랑과 함께 웃었습니다.
올해를 들어서면서 입사 30개월이 되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나이 또래 사람들(이직준비하는 사회 초년생 직원, 2년 계약직 직원)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다 보니,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역시 다들 돈에 관심이 많더군요. 그러다가 우연히 저보다 어린 20대 중반 직원들의 폰뱅킹 잔액을 스치면서 보게 되었습니다. 잔액이 4백, 아니면 5백. 제 통장에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액수였는데, 저보다 나이도 적고 월급도 적은 친구들이 그런 액수를 통장에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알고 있었는데, 여태 흐린 눈으로 애써 보지 못하려고 했는데, 실제로 마주하니 제 청약 통장에 있는 유일한 200만원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올해 저는 한 달에 60만원을 저금합니다. 작년까지는 50만원을 저금했습니다. 부모님께요. 사실 그 돈을 2년 동안 드렸지만, 잘 모이고 있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안 드릴 수도 없어요. 제가 드리지 않으면 부모님께서 빚을 갚지 못하시거든요. 어머니는 어머니의 퇴직금을 받으면 매달 저금했던 돈을 주겠다고 말씀하시지만, 몇 년 전 그 퇴직금마저 아버지 빚 갚는 데 썼다는 걸 저는 알고 있습니다. 사실 크게 상관없습니다. 저도 제 퇴직금에서 부모님을 챙겨드릴 여력은 안 될 것 같으니까요.
저축성 보험 30만원도 대신 내주신다기에 일 년 반째 드리고 있습니다. 이것도 사실 확인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있다고 하니까,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년 차까지는 25만원이었는데, 1년 사이에 5만원이나 올랐습니다. 20년 만기라고 하니 얼마나 더 오를까 걱정이 되면서도, 20년 동안 매달 빠짐없이 내면 아마도 20년 뒤엔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학자금은 작년까지 30만원씩 갚아가고 있었는데, 올해는 40만원씩 갚고 있습니다. 이것도 부모님께서 대신 내주십니다. 그래서 얼마나, 어떻게 갚아지는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올해는, 6월에 국세청에서 240만원을 추가로 상환해야 한다고 고지가 왔습니다. 제 연봉 기준으로 일 년에 600만원에 달하는 돈을 갚아야 하는 건지 궁금했지만, 알아보지는 않았어요. 그냥 어차피 갚아야 하니까, 그냥 갚았습니다.
매달 20만원씩 가족들 통신비, 교통비가 나가고 있고, 부모님 용돈은 30만원씩 부쳐드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다해서 100만원이 남으면 그중에 60만원은 월세와 공과금을 내고, 40만원은 카드값입니다. 저 카드값은 제가 입사 후 독립을 한 그달부터 계속된 금액입니다. 이사 후 생필품 초기 비용이 지금까지 생활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카드값 40만원을 갚으면, 다시 생활비로 카드값 40만원이 나갑니다. 그렇게 저와 39개월을 항상 함께했습니다.
꼬박꼬박 야근하고 출장도 도맡아 가기에 추가 수당이 들어옵니다. 많지는 않지만, 꼬박 3개월 모으면 아버지 생신을 챙기고, 3개월 모으면 추석을 쇠고, 3개월 모으면 설을 쇠고, 꼬박 3개월 모으면 어머니 생신을 챙길 수 있습니다. 명절에는 멀쩡히 괜찮은 회사에서 일하는 조카와 이모, 고모가 되어야 하기에, 집안 어른들부터 조카들까지 용돈을 챙깁니다. 한 번에 100만원이 넘게 나가서 부족한 돈은 어머니한테 빌립니다. 제가 저금을 위해 드리는 돈 이미 제 돈이 아니니까, 빌린 돈은 꼭 갚아야 합니다.
그래도 저에게는 보증금 500만원이 있습니다. 제가 대출을 받아 마련하고, 첫 입사 1년 동안 꼬박꼬박 갚아서 제 돈이 된 보증금이 있습니다. 그리고 9개월째 멈춰있는 제 청약 통장 200만원도 있습니다.
사실 3개월 전, 성과금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오롯이 나를 위해 쓰겠노라.’ 생각했던 그 성과금이요. 놀랍게도 작년에 받았던 월급만큼 나왔습니다. 기분이 좋더군요. 통장에 생긴 여윳돈 250만원을 보면서 ‘일 년 동안 잘 아끼면서 쓸까, 잘 아껴놨다가 뭘 할까.’ 하는 생각에 잠깐 들떴습니다. 그 다음주에 학자금 240만원을 갚기 전까지는요.
올해는 내내 견디기 힘든 3의 해입니다. 30개월부터 시작하여 오늘이 39개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하루에 한 번 생각이 듭니다. 왜 이런 생활을 하고 있지.
물론 학자금도 착실히 갚아나가고 있고, 수중의 돈만 해도 700만원을 모았으니 훨씬 나은 생활이겠지만, 대학을 다니고 졸업 후에 취업 준비를 하면서까지 매달 알바를 하며 8-90만원으로 생활했을 때보다 제가 괜찮아진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참 힘을 내기 힘이 듭니다.
어떤 사람들은 1-200만원이 든 계좌를 보면서, 여윳돈으로 돈 천만원 정도 있으면 좋겠다고 말을 합니다. 저는 제 통장에 뽑을 수 있는 돈이 20만원이라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저의 어머니 통장에도 200만원 정도의 여윳돈이 있지만, 제 보증금을 보태주실 돈은 그 당시에 없었을 겁니다.
아버지는 로또 3등이 여러 번 됐다고 하셨지만, 그 돈을 다 없어질 때까지 저에게 한 번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항상 말다툼하는 날이면 알게 됩니다. 제가 경조사에 가느라 현금이 없어 용돈을 늦게 드리는 날이면 아버지는 항상 ‘그렇게 돈이 많아서 내고 다니냐.’고. ‘그렇게 돈이 많아서 용돈 안부치는 거냐.’고. ‘내가 로또가 돼서 너가 주는 푼돈 같은 거 필요 없는데, 너가 괘씸해서 말하는 거다.’라고. 말씀하시니까요.
가끔 보내줘야 하는 점심값, 커피값 1-2만원이 없어 어머니에게 돈을 빌립니다. 하지만 그보다 비참한 건, 혼자 속을 삭이는 상황을 터놓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이런 내 속상함이 타인에게는 약점으로 보이고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될까 봐,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잣말로 되뇌다 가끔 울어보기도 합니다.
이번 달부터, 일주일에 세 번씩 인근 공원을 한 시간 정도 산책하고 있습니다. 약간 땀이 날 정도로 빠르게 걸으면 힘듦에 집중하게 되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뛰는 게 아니어서 음악을 듣지 않아도 힘을 내서 숨을 고를 수 있습니다.
아침 시간에는 20분 정도 일찍 눈을 떠서 단편선 중 하나씩 읽고 있습니다. 그냥 짧은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나 시집 중 시 한 편을 읽기도 합니다. 그러면 온종일 아침에 읽었던 글 하나를 곱씹으며 몰려오는 불안을 잠시 떨쳐낼 수 있습니다.
매일매일, 내일은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지냅니다. 정말 내일은 괜찮을 거예요. 내일은 제가 입사 40개월이 되는 날이니까요. 3년차에 조금은 괜찮아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쓰고 보니 두서없이 적게 되었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막 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지내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