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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끈했던 외국인 새엄마에 대한 기억

해내리 |2022.10.11 06:13
조회 1,000 |추천 2

언제였을까  

강남의 새로생긴 신규아파트에서 살게된지 얼마 안되던 때이니  

내가 초등학교 2학년때였던 것 같다  

아버지는 그때 대기업 간부로 계셨고  

헌데 이 무럽 이태리 지사로 발령을 받아 외국으로 나가게 되셨다  

보통 이럴때는 아이도 함께 데려가기 마련인데  

실은 내가 초등학교 1학년때 학교생활에 잘 적응을 못해서  

그런 내가 머나먼 외국까지 가서 학교를 다니게 되면 더 적응을 못할까봐  

걱정이 되셨는지 나는 그냥 한국의 학교를 계속 다니게 하고  

혼자 이태리로 떠나셨다  

 

어머니는 존재하지 않은지가 이미 오래된때이고  

그렇다고 아버지가 무책임하게 나 혼자만 버려두고 가신게 아니라  

당고모(아버지의 사촌누나)님 되시는분이 혼자남은 내가 걱정이 되어  

한달에 평균 두어번꼴로닌 김치라던가 시금치,콩나물 그리고 김 따위의  

밑반찬 거리들을 직접 만들어 챙겨주러 오시곤 했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메추리알이나 참치 통조림등은  

동네 구멍가게에서 팔던 시절이니  

난 그렇게 학교에서 돌아오면 점심이나 저녁 반찬은  

당고모님이 챙겨주고 가신 김이나 시금치,콩나물  

그리고 이따금 동네 구멍가게에서 산 메추리알과 참치통조림으로  

그렇게 끼니를 떄우곤 했던거지 뭐  

용돈이야...아버지가 이태리에서 통장으로 보내주시는 돈이 있으니  

월말되면 그거 은행에서 찾아서 내 한달 용돈으로 쓰고 했으니  

대략 그렇게 내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사실 아버지가 챙겨주고 가신 부분이 그 정도가 다가 아니라  

실은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아버지 대학선배되는 분도 이웃에 살고 계서서  

- 성이 오씨니까 편의상 ‘오선생님’이라 부르기로 하겠다  

그분이 이따금 우리집에 오셔서 나 문제나 사고없이 잘 지내는지 살펴주시곤  

하셨었다  

그리고 오선생님께도 딸이 셋 있는데 그중 막내가 나랑 동갑이고  

첫째딸과 둘째딸은 각기 나랑 두 살,다섯살 차이나는 누나들이었는데  

그러니 내가 초등학교 2학년때 동급생인 셋째딸과 두 살차이인 둘째딸은  

나랑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다섯 살 차이나는 오선생님댁 큰딸은 이미 중학생이긴 하지만  

이래저래 오선생님 딸들이 나 학교에서 잘 지내는지도  

- 아마 오선생님께서 자기 딸들한테도 내가 걱정되는지 가끔 좀 챙겨보라고  

하셨나보지 뭐...  

여하튼 그렇게 살펴주라고 하셨기 때문에  

한달에 한두번쯤 밑반찬 챙겨주러 오시는 당고모님  

그리고 내가 문제나 사고 안 일으키고 잘사는지 살펴주시는  

오선생님댁 식구들 – 근데 이쯤되면 거의 보호가 아니라 감시당하는 기분일게다. -.-  

- 실제 오선생님 사모님은 덕분에...가끔씩 ‘이거 내가 딸만 셋 키우는게 아니라  

아들 하나를 더 키우는 기분’이라고 이따금 푸념도 하셨다고 하더라  

 

허나 아무리 그래도  

어린 마음에 이는 가슴한켠 허전함이나 어떤 쓸쓸함...  

그런 감정이 쉬이 사라지진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때니 아직 오후수업은 없을 때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렇게 당고모님이 챙겨주신 밑반찬거리와  

내가 가끔 동네 구멍가게에서 사는것들로  

내가 손수 밥해서 김이랑 메추리알,참치통조림 대충 그런 것으로  

식사를 하곤 했었다  

저녁식사 메뉴도 뭐 크게 달라질건 없는거고  

그렇게 점심먹고 숙제하고 대충 책보다 어영부영 시간보내면  

저녁때가 되곤 했다.  

 

저녁때 아마 그 당시 공영방송에서 하는 ‘어린이 인형극’이 있었는데  

은근히 재미있어서 난 저녁이 되면 그 어린이 인형극애  

푹 빠져 시청하곤 했었지  

그러다 저녁먹고 그러다보면 어느덧 잘시간.  

내일 학교갈 준비하고 씻고 잠들고...  

그게 대략 내 초등학교 2학년떄부터 5학년때까지의  

일상이었던 것 같다  

 

혹시 누가  

그 시간이 ‘힘들었냐 ?’고 나한테 묻는다면  

좀 뜻밖일지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선 ‘그렇지 않았다’는게 정직한 대답이다  

솔직히 그렇게 아버지는 이태리에 계시고 어머니도 부재한 상황에서  

혼자 집에서 지내면서  

어린 나이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떤 고독감이라던가 쓸쓸함,허전함 그런 뭔가 한두마디 단어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감정들을 느끼기 시작했던게 사실이긴 하지만  

오히려...시간이 지나다보니 차츰 그런 시간에 익숙해졌다고나 할까  

오히려 그렇게 나 혼자 집에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만의 자유를 추구할수 있었던 홀가분한 그런 시간이기도 했거든  

대략 저녁 6시쯤 되면 공영방송에서 일일극 형식으로 해주는 인형극보고  

저녁먹고 방안에서 숙제하고 책보고 그러다 밤되면 내일 학교갈 가방싸고  

그리고 잠들고  

혼자 그렇게 지내는 시간이 오히려 익숙해지니까 편해졌더라구  

 

물론 당고모님께서 한달에 두어번정도 밑반찬 챙겨다주시고  

오선생님 내외분이 나 불편한 것 없이 혹시 사고같은거 안 당하고 잘 지내는지  

이웃집에 사시며 가끔 지켜봐주시고  

아버지가 용돈은 한달에 한번씩 꼬박꼬박 통장으로 부쳐주시니  

적어도 혼자 살면서도 별다른 불편함은 못느꼈더것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차츰  

혼자 지내는게 익숙해져...차라리 이대로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이  

그냥 계속 혼자 산다면 어떨까...그런 생각이 자리잡아간게  

그 당시 나의 자아였다  

 

사실 오선생님 내외도 처음엔 어린게 여하튼 혼자 아버지도 없이  

지낸다니 불쌍하고 걱정도 되어 자주 집에 들러주시긴 했지만  

일단 근본적으로 그분들도 자기네 딸 셋 돌보는데 정신없을 시절이고  

또 나도 오히려 혼자 있는게 편하고 오선생님이나 그 사모님이  

자주 들러주시는걸 불편해하는 눈치가 보이자  

차츰 우리집에 들르는 횟수가 줄어드시긴 하더라. 여하튼 아주 큰 문제나  

걱정거리가 없으면 굳이 내가 어떻게 사는지까진 돌아보시지 않는  

대충 그런 분위기가 되어갔던거지  

 

아버지는 한두달에 한번씩 내가 잘 있나 걱정도 되고 하셔서  

안부편지도 써보내주시곤 하셨지만  

- 사실 우리때만해도 이메일,스마트폰 일절 없는 시절이고...전화는 그래도  

보편화된 시대이지만...그래도 어떤 진지하고 중요한 사안을 논해야하거나  

정말 그립고 보고픈 사람에겐 진지하게 편지를 쓰는게 더 진실한 소통방식이기도  

했었으니까 .- 가령 멀리 지방으로 전학간 친구가 전학가기전 학교 친구들이나  

선생님 보고파서 편지쓰고 하는일도 종종 있던 시절이었지...  

 

난 뭐 딱히 쓸말도 없고 무엇보다 혼자 지내는데 이미 익숙해져서인지  

답장도 뭐 그리 자주 쓰는편도 아니었어. 있어도 그냥 상투적이고 평면적인  

잘 지내고 있다는식의 말 외엔 더 할 이야기가 없었거든...  

그렇게 대충 3년의 시간이 흘러갔는데...  

 

그러니까 KBS 인형극이 OOO 끝나고 그 후속작인 OOO도 거의 끝나갈  

그 무렵쯤이 되는구나. 사실 아직 5학년 되기전 4학년때부터 뭔가  

좀 앞으로의 일들이 달라질것이란 암시가 있긴 했었어  

우선 오선생님께서 그 무렵에 – 한동안 우리집에 들르는 횟수가 뜸해지시다가  

좀 진지하게 나한테 찾아오셔서 이렇게 물어보시곤 하더라  

‘친엄마에 대한 기억이 있느냐 ?’, ‘엄마도 없고 아버지도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  

에서 우리 OO이 많이 힘들긴 했구나.’  

내가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기 때문에  

아버지의 신변에 뭔가 달라지는 뭔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버지는 이태리에서  

새롭게 사귄 여자분이 생기셨지. 그것도 현지 여성으로  

그러니까 나에게 외국인...그것도 이태리 출신 새엄마가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이 만들어진거야.  

아버지도 오선생님도 그 부분을 많이 걱정하신 것 같더라구  

일단 아버진 이태리 지사에서 3년 근무가 끝나고 본사로 복귀하실때가 되어가고  

지금 사귀는 이태리 여성과 결혼 국내에서 함께 살고픈 의사가 있으신듯했어  

그러니...자연히 내 문제가 걱정이 될 수밖에 없고  

나한테 물어보지 않을수 없으셨던거지.  

새엄마...그것도 외국인 새엄마가 생기는건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하는 문제를...  

 

그때 내 심정은 뭐랄까...좀 뜻밖이고 당혹스럽긴 했지만  

뭐랄까...의외로 아무생각이 안 났다고나 할까  

아직 초등학고 4-5학년 정도 어리다면 어리다고 할 수 있는 나이  

그래서인지  

새엄마...그것도 외국인 새엄마가 생긴다는 상황을  

별다른 거부감 없이...좀 더 정확히는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마침내 아버지가 이태리 지사 3년 임기가 마무리되고  

귀국하시는때가 되었어  

아버지가 이태리에서 사귀었다는 그 여성과 함께 귀국하게 되셨는데  

일단 결혼식은 한국에서 올릴 예정이지만  

아버지가 사귀는 이태리 여성은 근본적으로 한국행이 처음이고  

딱히 아는 사람이 있는것도 아니라 그냥 우리집에서 처음부터  

함께 사는 상황이 발생한거지. 그러니까 아버지가 이태리 여성과 함께  

귀국하시자마자 난 그 외국인 예비 새엄마랑  

한 집에 사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거야  

 

사실 내가 가장 당황스럽고 거부감을 느꼈던건  

새엄마가...그것도 젊은 외국인 새엄마가 생긴것에 대한 당혹스러움보다  

이미 3년동안 혼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내 방식대로 자유롭게 혼자사는 생활방식이  

아버지뿐만 아니라 외국인 새엄마까지 생김으로서  

방해(?)받기 시작했다는 점이니  

좋은시절...다 지났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다소 불편하다면 불편하고 뭔가 절망스럽다면 절망스러운 그런 감정으로  

이태리 예비 새엄마를 데리고 3년만에 돌아오신 아버지를  

맞이하게 되었다.  

 

새엄마의 이름은 말레카라고 했고  

그때 나이가 25세. 그러니 아버지하고는 17살 차이였고  

내가 그때 초등학교 5학년이었으니 우리나라 나이로 12세  

그러니까 나하곤 열세살 차이였던거지  

사실 난 새엄마가 생겼다는 그 자체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학교에서 돌아와서 숙제하고 저녁때 되면 혼자 KBS에서 하는 인형극 보고  

그리고 혼자 남은 숙제하고 공부하고 방에서 혼자 책보다 라디오듣다  

하며 놀다 잠들고 그러던 일상 자체가  

방해받게 되었다는게 불편해지기 시작했지  

5학년때부터는 오후수업을 하게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돌아와서 혼자 김,메추리알,참치통조림으로 저녁해먹고  

그리고 KBS 인형극 보고 숙제하다 공부하다 잠들고  

하는 그 일상 자체는 크게 달라진게 없었는데  

그 하루 일상이 새엄마로 인해 변하기 시작했다는게  

난 불편했어  

 

아버지는 여러 가지로 걱정도 되고 우려도 되어  

‘새엄마는 좋은분’이라며 날 여러차례 설득도 하고 타일렀지만  

난 3년만에 만나게 된 아버지한테 반항하고 싶지 않아서  

일단 아버지 앞에선 수긍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지  

새엄마가 생긴 현실 그 자체에 대해선말야  

 

여하튼 그렇게 3년동안 익숙해진 내 일상  

학교에서 돌아와서 숙제하고 저녁때 되면  

김,메추리알,참치통조림으로 저녁해먹고 – 물론 가끔씩은  

당고모님이 밑반찬으로 챙겨주고 가신 시금치나 콩나물 따위도  

가끔 꺼내먹고  

KBS에서 일일극 형식으로 해주던 인형극 보고나서  

방에서 혼자 공부하다 숙제하다 놀다가 잠들곤 하던  

그 일상은 본격적으로 깨지기 시작한거지  

 

미리 말했지만 아직 아빠랑 새엄마가 정식 결혼식을 올린 것은 아니고  

허나 한국행,한국생활이 처음이고 한국말도 서툰 새엄마가  

어디 딱히 혼자 거처할 것도 없으니 그냥 아버지랑 같이 우리집에서  

함께사는 상황이 만들어진거지  

 

처음 한동안은  

내가 그전까지 혼자 집에서 지내던 일상이 많이 망가지긴 했지만  

일단 그런대로 현실에 수긍하면서  

새엄마한테 반항도 안하고 말썽도 안 부리면서  

조용히 그냥 현실에 순응하며 살려고 했었어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아빠랑 새엄마랑 함께 산지는 아직 두주정도가 지나지 않았을때였어  

 

가끔 방에서...아빠랑 새엄마가 싸우는듯한 소리가 들리더군  

헌데 새엄마가 한국말이 아직 서툴러서인지  

싸우는 말소리가 한국말은 분명 아니고...아빠는 한국말과 이태리말을  

반반씩 섞어가면서...새엄마는 대개 이태리어 중심으로 하지만 그래도  

간간히 배운 한국말을 한두마디 섞어가며  

그렇게 말다툼을 하는듯한 분위기였어  

 

확실히 그때까지 새엄마의 한국어는 아직 서툴렀어  

물론 아버지와 이태리에서 1년이든 2년이든 함께 살면서  

한국말을 전혀 못배우진 않았겠지만  

대체로 거의 기초적인 명사와 동사 이 정도 외의 언어는  

구사하지 못하는 듯 하더라. 가령 가끔보면  

목적어 없이...주어와 서술어만으로 한국말을 할때가 있었어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목적어’에 들어갈만한 적당한 한국말을  

잘 모르는 듯  

가령 ‘나 OO 하고 싶어요,, ’, ‘나 OO 가고 싶어요’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다는것인지 어디를 가고 싶다는것인지  

구체적인 목적어가 빠진 한국말을  

종종 쓰긴 하더라. 그럼 아빠가 대충 새엄마에게 친절하게  

목적어에 들어갈 적당한 한국어를 가르쳐주시긴 했는데  

여하튼 아직까진 새엄마의 한국어실력이 크게 늘진 않았어.  

그래서일까  

방에서 들리는 새엄마와 아빠의 부부싸움 소리도  

보통 ‘무엇’을 한다 안한다 못하겠다...대충 이런식의 대화가  

오가는 느낌이었아. 대체 그 밤중에  

뭘 안하겠다는건지 못하겠다는건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또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화장실에라도 가기위해 밤에 잠깐 일어났는데  

새엄마가 거실 소파에 앉아 혼자 흐느끼는 모습을 보았어  

무엇 때문에 우는지는 새엄마도 한국말이 아직 서툴고  

나야 당연히 이태리말을 모르니 구체적으로 대화나눌수 없었지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새엄마가 혼자 밤에 거실에 나와서  

흐느끼는 것을 본적이 있었지  

새엄마가 무슨 기척을 느꼈는지 흘깃 옆을 보려고 하면  

난 소스라치게 놀라 내 방으로 들어갔지만  

여하튼 그렇게 새엄마가 혼자 거실에 나와서 소파에 앉아  

우는 모습을 보았다는거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채 흐느끼는 모습  

이런표현 어떨지 모르겠지만...  

고왔다.....  

 

어느정도 더 시간이 지났을까  

새엄마와 함께 산지는 이제 한달남짓쯤 되었을때였어  

아빠가 귀국하셔서 새엄마와 함께 살게된게 5월 중순때니  

어느덧 6월 중순을 지나 하순...날이 슬슬 더워지기 시작할때지  

하루는 문득 한밤중에  

새엄마가 내 방에 들어오더군  

난 아직 잘시간은 아니기에 적당히 이불위에서 뒹굴고 있었는데  

그런 내게 새엄마가  

문득 이렇게 말하더라  

OO......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국말 서툰 이태리 새엄마가 그래도 이때쯤엔  

내 이름만큼은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는데  

그런 상태에서 이렇게 말하더군  

‘내가...재워준다... ’  

순간 이게 무슨말인가 좀 황당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했는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새엄마는 한국말을 주어와 서술어는 대충 표현할줄 알아도  

중간에 들어가야할 명사형 목적어를 아직 모르는게 많은  

그 정도 수준의 한국말 실력이었어.  

그런데 이때쯤엔 여하튼...잔다...재워준다 이 정도 표현은 아는 듯 했는데  

내 이름을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거야  

‘내가...재워준다...’  

 

내가 놀랍기도 하고 살짝 당혹스러워  

뒷걸음질 치는데 새엄마는 이미 나한테 다가와서  

제법 강렬히 나를 끌어안고는 이리 말하더라  

‘OO...내가 재워준다...’  

내 이름까지 분명하게 앞에 덧붙여서 그렇게 말하는거야  

‘OO...내가 재워준다...’  

 

내가 무슨말을 덧붙이기도 전에 이미 새엄마는  

방의 불을 끄고 자리에 눕혔지  

그리고 무슨 자장가이기라도 한지 그런 노래를 살짝 흥얼거리면서  

날 재워주는거야  

그리고...좀 당혹스러울 정도로...아니 많이 당혹스러울정도로  

자기품에 나를 꼭 안더라. 그리고  

한참을 내 얼굴을 부비며 스킨십을 하려들었지  

이게 무슨 상황인가  

차라리 같은 한국사람이라면 대화로 소통이라도 하지  

아직 한국말 서툰 이태리 새엄마의 이 이해할수 없는 행동이  

이해안가 많이 혼란스러웠지  

 

그 뒤에도 여러번 그랬어...사실상 거의 매일같이  

밤에 내 방에 들어와서 또렷이 내 이름을 부르며  

‘OO...내가 재워준다’ 이렇게 말했지  

게다가...그 사이 배운 한국말이 좀 더 늘긴 했는지  

이제 아예 몇 개 더 수식어를 덧붙여  

‘OO...내가 밤에 코야코야 재워준다’, ‘내가 밤에 쿨쿨 재워준다’  

‘내가 밤에 새근새근 재워준다’ 이렇게 말하는거야  

또 한번은...  

‘OO...좋은꿈 꿔.’  

어디서 그런 표현을 배웠는지 그렇게 말하며 내 이마에 키스해  

날 현기증나게 만들었지...  

 

한번은 이런일이 있었어  

날 씻겨주겠다고 하더군  

괜찮다고 손을 내젓는 내 옷을  

어서 벗으라고 재촉하고는...  

내가 아무리 그래도 속옷까지 벗는 것은 좀 그래서 난감하게 서 있으니까  

이번엔 다소 짜증나게 화가난듯한 말투로  

이러는거야  

‘OO...어서 OO(하의용 속옷명) 벗지 못해 !!!’  

후우...진짜 새엄마 그동안 한국말실력 많이 늘었다...  

​ 

여하튼 마지못해 새엄마 손에 이끌려 목욕탕안으로 들어간 나  

여기저기 때밀어주고 비누칠하며  

아주 정성스레 깨끗이 씻겨주더군...  

그렇게 새엄마가 종종 날 씻겨주긴 했는데  

그러다 한번은 이러는거야  

내 등을 밀어주다 문득 멈추더니  

갑자기 내 등에 얼굴을 기댔어  

그리고는 한참을 슬피울었어  

난 놀라고 무슨일인가 싶어 바로 몸을 돌려 새엄마를 불러봤는데  

새엄마는 내 물음에 대꾸는 않고 다만  

여전히 내 몸에 얼굴을 기댄체 한참을  

슬프게 우는거야...  

 

그리고 한번은  

아버지가 야근이 있어 안 들어오시는 날  

밤 늦게 조용히 날 불렀어  

그리고 이렇게 말하더라  

OO...이렇게 진지하게 내 이름을 부르고는  

이렇게 말했어  

‘OO....내 OO 해줄수 있어요 ?’  

사실 그동안 새엄마 한국어 실력이 좀 늘긴 했는데  

그래도 아직 명사형 단어 모르는게 많은지  

목적어가 빠진채 이렇게 묻는거야  

‘내게 OO 해줄수 있어요 ?’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하더라  

‘나 OO OO 해주고 싶어요’ 그런데...  

‘OO는 내게 OO 해줄수 있어요 ?’  

그리고 한참을 뭔가 서글픈 눈빛으로 바라보다  

날 안더니 다시금 이렇게 말하더라  

‘나 OO(이름) OO 해주고 싶어요. 그런데 OO는 나한테 OO 해줄수 있어요 ?’  

대체 뭘 해달라는거고 뭘 해주고 싶다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슬픈 눈빛으로 한참을 여러차례  

해주고싶다...고 반복해서 말했지  

 

그때가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니  

이성(異性)에 대한 눈을 뜰수는 있어도  

성(性)에 대한 눈을 뜨기엔 아직 다소 이른  

좀 애매한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다만...좀 이상한 느낌을 받기 시작하던 시간들이  

있기는 했다  

 

근데 한가지 이해 안가는건  

새엄마가 날 안아줄떄도  

그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는거다  

묘한 아랫도리의 저려옴이  

처음 새엄마가 날 방에서 품에 꼭 안고 자면서 얼굴을 부빌떄도  

새엄마가 날 목욕시켜줄때도  

그리고 자기한테 ‘OO(?)’ 해줄수 있느냐고 물을때도  

그런 묘한  

흥분과 야릇한 떨림이 있었다는 이야기지  

 

다만 그렇게 차츰 새엄마와 친해지긴 했는데  

덕분에 난 새엄마와 좀 더 깊이있는 소통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태리에 대한 정보를 조금씩 남몰래 수집해 알아가기도 시작했고  

이태리어도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어  

새엄마와 좀 더 구체적이고 깊이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말이야  

- 요즘처럼 인터넷이나 이런게 있었던 시대는 아니라서  

가령 교육방송에서 하는 외국어 강좌중 이태리어 강의 시간을 일부러  

챙겨 찾아보던가 일부러 휴일같은데 시내 대형서점 같은데 가서  

이태리와 관련한 관광,여행 안내책자 지리정보 같은 책을 찾아본다던가  

그렇게 이태리말도 배우고 이태리어 배우는 시간을 갖자  

새엄마도 그런 날 조금씩 가르쳐주며 도와주기도 했고  

그렇게..새엄마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  

 

사실...충격적인 진실들을 차츰 알아가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엄마들이 실은 자기 아들을 세상에서 제일 끔찍이 생각한다더라’  

는 식의 이야기를 알게된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난뒤의 일이고  

실은...새엄마는 10대 중,후반 나이때 성폭행 피해를 입은 여성이었어  

물론 이런 새엄마의 과거를 알게된것도 시간이 한참 지난뒤의 일이지.  

가령 아직 중,고생 정도 나이였을 내게 새엄마가 일부러  

그런 이야길 할 가능성은 아직 그리 많지 않으니까  

 

다만 어쨌든 새엄마는 그때의 충격으로 여러번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고  

그러다 주변이 만류하고 어떻게든 살아가라는 충고를 듣고나서  

이런저런 직장을 전전하며 살아가다 한국이란 나라의 대기업 해외지사인  

이태리 지부장으로 와있는 아버지를 만나 사귀게 된거야  

그리고...  

성폭행 피해 때문에 이태리에서의 적응이 쉽지 않았던 새엄마는  

차라리 아빠를 따라 한국이라는 멀리 떨어진 나라에 가서 살기를 바럤고  

그래서 아빠가 이태리지사장 임기가 끝나는 무렵에  

새엄마와의 결혼을 결심하고 그녀를 데리고 한국으로 들어온거지  

 

- 까놓고 말해서 70-80년대에 젊은 미국이나 유럽 여성이  

굳이 한국에서 살고 싶다며 이런 나라를 택한 이유는 두가지 정도로밖에  

해석이 안된다 (1) 원래 동양의 전통문화나 역사에 관심이 많았거나  

(2) 그런게 아니라면 그냥 자기 나라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타국으로라도  

떠나서 살고싶은(또는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남다른  

상처나 과거,사연같은게 있거나  

그 둘중에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여하튼 그런 과거와 상처가 있는 새엄마 말레카는  

그때까지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한국이란 나라로 사랑하는 사람인 아빠와 떠나서 살기를 바랬고  

그래서 아빠가 새엄마를 데리고 한국으로 들어오신거야  

- 역시 나중에 알았지만 새엄마는 그때까지만 해도 6.25나 남북분단 이런거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여하튼 해외에 그런 지사까지 파견하는 대기업도 있고  

그만한 나라라면 그런대로 잘사는 나라려니 하고  

막연히 짐작했었대 – 한국에 대해 해외에 알려진거라곤 북한과 개고기밖에 없던  

시절이니 차라리 그런 의미에선 다행이었던거지 뭐...  

 

새엄마의 퍼즐을 맞춰가는데는  

대략 10년정도의 세월이 걸렸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중,고등학교 사춘기 시간이 지나  

어느덧 대학 들어갈 때 되고 군대갈 나이 될 때까지  

대충 그 정도의 시간이  

일단 새엄마는 10대때 성폭행 피해를 입은 상처 때문에  

결혼을 해도 아이를 갖거나 할 생각은 없었고  

대신 이혼남인 아버지의 아들인 나를  

친아들처럼 자신이 품고싶다는 그 생각을 했었던거야  

하지만 아버진 어쨌든 젊은나이에 이혼한 몸으로 뒤늦게나마  

17살 어린 젊고 이쁘고 섹시한 외국인 새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으니  

그간...얼마나 굶주렸겠냐  

근데...새엄마가 그런 상처와 사연 때문에 관계를 거부하니  

그로인한 트러블이 결혼 초창기에 있었던거지  

- 따지고보면 아빠도 참 불쌍한 사람이다. 옆자리에 소피마르소나 브룩쉴즈 뺨치는  

젊고 이쁜 유럽 섹시미녀가 있는데  

잠은 같이 자도 관계는 가질수 없다니...  

얼마나 돌아버릴 심정이셨겠냐 ^^;;;;  

 

여하튼 그렇게 새엄마의 퍼즐은 풀린거지  

원래 새엄마가 나한테 하려던말은  

‘나 OO(내 이름) 엄마 해주고 싶어요. OO도 내 아들 해줄수 있어요 ?’  

였던거고... -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미 OO((* 하의 속옷명)란 단어까지  

아는 사람이 그때까지 ‘엄마’나 ‘아들’이란 한국말을 몰랐다는건 좀  

이해가 안가긴 하지만...  

여하튼 그때까진 ‘새엄마는 실은 어린나이에 상처가 좀 있던 사람이라  

아이는 낳을 생각이 없다. 대신 우리 OO이 새엄마가 친아들처럼 품어줄게  

그러니 OO이도 나 엄마로 해줄수 있겠어 ?’ 라는 표현을 할줄 몰라서  

‘나 OO(이름) OO 하고 싶어요. OO도 나한테 OO 해줄수 있어요 ?’  

라는 말을 그와같이 한거고  

한국말이 서투른 이태리 새엄마 말레카는 대신  

잠자리에서 날 끌어안고 스킨쉽 해주는걸로  

자신의 엄마로서의 애정표현을 해주며 나와 가까이 지내고 싶었던거였지  

어쨌든 새엄마의 그 깊은 마음을 알기까지  

10년정도의 세월이 걸렸던거라니까  

 

고등학교 수능전날 이런일이 있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느덧 사춘기 소년이고 고3이면 이미 성인이나 다름없으니  

이제 초등학교때처럼 새엄마랑 같이 잔다던가 하는일은 별로 없었는데  

수능 전야때 내 방문을 살짝 열고 들어와서는  

야릇이 웃으면서 말하더라  

‘그동안 힘들었지 ? 내일은 OO 인생에 중요한 날이니까 힘내라는 의미로  

그리고 위로의 의미로 엄마가 곁에서 같이 자줄게. ’  

 

우와...  

10년동안 새엄마 한국말 실력 진짜 많이 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나라에 시집가는 딸 있는 엄마가 결혼 전야에 딸과 한방에서 자면서  

그동안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포를 푼다던가  

아니면 군대가기직전의 젊은 친구가 그전에 사귀던 여자랑  

헤어지기전 마지막이라면서 여관방에서 뜨거운 밤을 보내더라는 식의 이야기가  

어느어느 주간지 3류소설 같은데서 많이 볼 수 있는 장면이긴 하지만...  

대체...수능전날의 의붓아들이 새엄마와 함께 잔다는 말은  

그때까지 들어본적이 없는데...  

이게 어디서 들은 무국적 풍습(?)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날 난...새엄마의 마음씀에 고마움을 느끼며  

품안에서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새근새근 잠들었었다...  

 

.....  

 

세월이 많이 흘렀다.  

중학교 3학년때쯤 강남 아파트를 떠나 일산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를 왔어.  

그리고 내 나이 어느덧 20대 중반을 지나 후반으로 접어들고 있다  

그러고보니 강남을 떠난지도 어느덧 그 정도 시간이 흐른거고  

이제 더 이상 서울시민이 아니라 경기도민이 된지도  

그 정도 시간이 흐른거네...  

게다가 일산의 새 아파트는 이전 강남아파트보다도 열평정도 더 넓은  

40평 규모였기 때문에  

게다가 새엄마가 아빠하고 사이에 동생을 낳거나 한것도 아니라서  

아빠와 새엄마 그리고 나까지 세식구가 살기엔  

충분히 넓은 공간이었지  

이제 한국사람 뺨칠정도로 한국말이 능숙해진 새엄마는  

‘OO는 여자친구 없니 ? 엄마도 어서 며느리나 한번 보고싶다’고 말씀하실  

정도가 되었지만...  

 

난 어느날 문득 궁금해져  

내가 살던 옛날 강남아파트가 있던곳을 찾아가 보았다.  

......  

좀 뜻밖의 충격을 받았다  

그러고보니 그 사이 내가 예전에 살던 강남 OO동의 OO아파트는 간곳이 없고  

그 사이 재건축이 되었는지  

새로 만들어진 주상복합건물이 그 자리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더라  

그리고 내가 예전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저녁 찬거리로  

메추리알과 참치통조림을 사러가던 구멍가게가 있던곳도  

새로운 유흥업소 건물이 들어서고  

불과 10여년 사이에도 너무 많은 것이 변해있더라  

 

문득 숨이 턱 막히는 어떤 느낌과 함께  

좌절감이 밀려들었어  

그리고 어떤 허전함과 공허함,아쉬움,안타까움...그런 감정이  

밀려들었다  

이해할수 없는 일이었다  

새엄마와 나의 사이가 그간 어땠는지는 위에 충분히 열거했으니  

생략하고  

다만 그럼에도 난...초등학교 2학년때 그 시절로 돌아라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던거였어  

엄마도 없고 아빠도 해외지사에 계시기 때문에  

난 저녁때 KBS에서 해주는 인형극 보고  

동네 구멍가게에서 산 메추리알과 참치통조림으로 저녁식사 해먹으면서  

그렇게 하루일과를 보냈던  

혼자서 그렇게 지냈던 시간이 되려 어떤  

향수와 그리움으로 작용하더라  

그럴수도 있는것일까  

 

헌데 중요한건...정작 그렇게 어린시절을 보낸 강남의 OO 아파트  

그 사이 사라지고 없고 이미 새 건물이 들어서있는거야  

어떤 느낌이 들었냐면  

만약 어떤 평행우주나 4차원 같은 공간이 있어 그곳을 지나  

내가 어릴 때 살던 초등학교 2학년...혼자 KBS 인형극 보며 저녁먹던  

그 시간으로 돌아갈수 있다면 그렇게 해버리고 싶었는대  

4차원의 문이 이미 탁 막혀 버린 그런 느낌이랄까  

‘이상한 나라의 폴’ 만화 본 사람이라면 어떤 장면인지 이해갈거다  

주인공 폴 일행이 요정이 마법을 써서 사차원으로 통하는 문이 생기면  

폴 일행이 그곳을 통해 4차원 세계 모험을 하고 돌아오고 그러는거잖아  

헌데 일정한 시간이 지나 그 4차원의 문이 닫히거나 사라져버리면  

폴은 예전에 살던 공간으로 돌아갈수가 없지  

바로 그런 느낌  

4차원을 통해 평행우주로 예전 내가 살던 그 시간으로 돌아갈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부랴부랴 달려왔건만  

이미 4차원을 통과할수 있는문이 시간초과로 사라져버린 느낌  

다시 돌아갈수가 없다는 느낌...  

내 어릴적 살던 아파트가 그 사이 재건축으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내가 살던 옛날 아파트는 그 흔적을 찾을수 없다는데서  

그런 막막함과 함께 어떤 아련함,억울함,안타까움,아픔  

그런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치밀어올랐어  

난 그 자리에 허망하게 털썩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지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다만 이해할수 없는 것은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상식적으로 혼자 지내는것보다는  

아빠,엄마 식구들 다 있고 그런 정상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는걸 바랄텐데  

비록 새엄마긴 하지만 그간 무난하게 잘 지냈고...그런 시간들이었는데  

난 되려 엄마도 없고 아빠도 해외지사에 나가계시고 그래서  

혼자 동네 구멍가게에서 저녁 찬거리 사와서 저녁밥해서 해결해서 먹고  

혼자 KBS 인형극 즐겨보며 저녁시간을 보내던  

그 어린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거야  

 

왜 그랬을까 ?  

그냥 추억이란 개념의 실체와 본질이 그런것일까.  

부모없이 쓸쓸하고 외롭게 살았건 혹은 가난한 환경에서 어렵고 힘들게 살았건  

(물론 후자의 경우는 나한테 해당사항은 안되는 일이지만)  

나한테 잘해주는 새엄마...그리고 아빠랑 함께 살고 그런 가정환경에 살면서도  

되려 혼자 저녁해먹고 KBS 인형극 보며 그렇게 오후와 저녁시간을 보냈던  

그때가 그립고 행복했던 시간으로 여겨지는 것  

메추리알과 참치통조림만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시간이었건만  

내겐 이미 그것이  

되돌아가고픈 행복했던 추억으로 자리잡아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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