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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9-

까미유 |2004.03.12 10:14
조회 973 |추천 0

제 9 화

 

 

동이 틀 무렵 누군가의 손길로 인한듯 잠에서 깨어났다. 창밖은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는데도 듬성듬성 불빛들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초가을의 향기가 입안에 가득하다.

츄리닝을 입고 밖으로 뛰어 나왔다. 동네를 한 바퀴 돌 생각이다. 숨이 목 언저리까지

차올라도 그쯤은 고통도 아니었다. 나보다 앞서 뛰기 시작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마구

헤집고 다닌다. 그들도 바둥대며 뭔가를 애써 떨쳐내고 싶었던 것일까. 무엇을 그리도

잊고 싶었기에 저럴까.  동네를 돌고, 또 돌아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현관앞에서 준하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셔.


막 뽑아낸 원두커피 향이 그윽하다.


-내가 걱정되서 왔니?


아무 말이 없다.


-준하야..

-지금 화가 많이 나려 해요.

-내가 너무 멀쩡해서?

-강수현씨..만났어요.

 

마시지도 않고 커피잔만 만지고 앉아 있는 준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준하야, 니가 내 걱정을 왜 하니?

 

가슴이 울컥한다. 목까지 차오른 다른 말들을 애써 삼킨다.

 

-어떤 사람이 내게 그러더라...나의 우유부단함이 상대방에게 기대를 갖게 만든다고...그게 가장

  나쁜 죄라고..

-예전에 선배도 내게 그랬어요...걱정하고, 챙겨주고...마음 써주고...혁이선배 사고는...선배 탓이

  아니에요..그건...선배가 막을 수 없었던 일이에요...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정말 그 사람이..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멀찌기 지켜보는 것 말고는 정말 아무 것도...할 수가 없었는데...

  내 마음과는 달리...너무 순식간에 영지가 죽었어요...

 

준하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린다.

 

-그땐 내가 할 수 있었던 게 정말..아무 것도 없었어요. 난...선배를 보면 예전의 나와 영지를 보는 것

  같아요...그래서 지금..선배 마음이 어떨지 잘 알아요.

-커피...다 식었네. 다시 줄까?

 

준하가 고개를 끄덕인다.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오른다. 준하가 안쓰럽다. 머리를 만져 주고 싶단

생각을 하다 그만둔다. 커피를 다시 내어 놓는다.

 

-너의 영지도...혁이도 우릴 용서하겠지?

 

 

 

***

-너, 휴대폰은 왜 꺼놨니?

 

앙칼진 하은의 목소리다.

 

-어, 꺼져 있었는지 몰랐어...무슨, 일 있니?

-어디야 너?

 

하은이 정말 화가 많이 난 것 같다. 이렇게 화를 내는 건 정말 처음이다.

 

-사무실 들어 가는 길인데...하은아, 무슨 일이야? 화났어?

-화 많이 났어 지금....

 

하은이 울먹인다.

 

-무슨 일인데?...어디야 지금?

-나중에 얘기해...내가 얘기하고 싶을 땐 전화도 안되고....하기 싫어졌어.

-내가 갈게 그리로...어디야?

-나중에 얘기하자구...끊어.

 

하은이 정말 전화를 끊어 버린다. 나는 다시 하은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다.

 

-내가 나중에 얘기하쟀지?...

 

버럭 소리를 지른다.

 

-내가 마음이 안좋잖아..하은아, 화내지마 무섭다.

-정말 신경질나서 못살겠네...난, 화도 못내니? 지금 너랑 말하기 싫으니까 전화 하지마.

 

다시 전화를 끊어버린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차를 세우고 청담동으로 전화를 건다.

전화는 받지 않는다..정말 무슨 일일까..하은이 걱정되서 안절부절 못한다.

휴대폰이 다시 울린다. 하은인가 싶어 서둘러 받는다.

 

-준하니?

 

하은의 언니인 지은이다. 그러니까 내게는 처형인 셈이다.

 

-하은이 여기 있어, 너 걱정할까봐 내가 전화하는 거야...

-하은이 무슨 일이래요?

-나도 몰라..말은 안하구 울고만 있네..나 하은이 이러는 거 첨본다 얘.

-제가 사무실 들어 갔다가 바로 갈게요..하은이 위로 좀 해주세요.

-그래, 저러다 말겠지...걱정 하지말구 일 봐.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하은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

점심을 같이 하기로 해놓고선 약속 시간보다 늦은 나는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다. 자리에 앉자 마자

음식이 나온다. 늦을 줄 알고 미리 주문 시켜 놨다는 박교수는 점심을 다 먹고 커피를 마시는 동안

내 얼굴만 바라보고 앉아 있다.

 

-얼굴 뚫어지겠네.

 

그래도 말없이 쳐다보는 박교수 때문에 당혹스럽다.

 

-왜 그래 정말?

-당신, 사진 찍고 있는거야..눈으로 찍어서 가슴 안에 저장해두려구...이 여자, 어디가 이쁜가 그것도

  보고...코에 점이 있는 것도 보고...

-박교수도 가끔 보면 어린애 같아요.

-시집, 장가 안간 사람은 어린애라던데...갑자기 결혼이란 것도 해볼만 할 것 같단 생각이 들어 요즘.

 

피식 웃고 만다.

 

-이태리엔 가족 있어?

-네.

-그럼 형제도 있겠네?

-형젠....서울에 있어요.

-근데 왜 한 번도 그런 얘길 안했어?...만나는 것 같지도 않던데. 유교수, 막내야?

-정말, 갑자기 내 사생활이 왜 궁금해졌는데요?

-내가 전에 말했지?...나, 당신한테 관심 갖기 시작했다구..당신, 나한테 관심 좀 가져보지 그래.

-박교수...

-나는 좀 질긴 편이거든....당신이란 여자가 궁금해졌어. 잘만하면 나도 결혼이란 걸 한 번 해보겠단

  생각도 들고...나 같은 사람 만나는 것도 재미 있을텐데?

-박교수 나는...

 

휴대폰이 울린다. 하은에게서 걸려온 전화다. 기분이 매우 가라앉은 듯한 목소리다. 전화를 끊고

박교수를 본다.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미안해요 박교수, 일어나봐야 할 것 같은데...

-누군데?

-갑자기 이러니까 적응 안되려 하네 정말...

-알았어, 그만하지...다음에 다시 얘기하자구.

 

박교수와 헤어지고 하은을 만나기 위해 까페로 달려 갔다.  하은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근처에서 전화한 거니?

-엉...

 

풀이 죽어 있다. 운 것 같기도 하고...얼굴이 많이 부었다.

 

-무슨, 일 있었어?

-선배, 나..술 좀 사주라.

 

날이 어둑해지려면 서너시간이 지나야 한다. 찬 맥주를 단숨에 마시던 하은이 다시 잔에 술을 채운다.

병을 뺏아야 내가 다시 채워준다.

 

-하은아...

 

말없이 고개를 돌린다. 창 밖을 응시하던 하은이 머쓱한듯 나를 보고 쓴 웃음을 짓는다. 눈엔 눈물이

그렁하다.

 

-선배....내가 너무 내 욕심만...자꾸 생각하는 걸까.....그냥 참아보려고 했는데...도무지 참아지지가

  않아요.

-준하랑 싸웠니?

-아니..차라리 싸워서 해결될 문제라면...좋겠다. 아무 문제 없고....열심히 배란일 맞춰서 노력하는데..

 우린 왜 아이가 생기지 않는걸까...이번엔 인공수정이라도 해봐야 할 것 같아요...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그런게...벌써 몇 년이야....준하 엄마가....그래서 애초에 결혼을 반대했던 거라고.....그러네...내 맘이..

 

하은이 안쓰럽다. 그러면서도 나는 왜 자꾸 그녀가 부러울까. 맥주를 한 모금 마신다. 개운해지지가

않는다.

 

-내가...널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선배가 도와줄수 있는 일이...아니잖아요....오늘처럼 준하가 미워본 적이 없어요....

-너, 씩씩하잖아...잘해낼 거야....준하랑 얘기해서 방법을 찾아봐.

-점점...자신이 없어져요...근데 준하랑...헤어지는 것은 더 자신 없어요....

 

 

 

***

지니선배의 전화를 받고 오피스텔에 도착했을 때 하은은 자고 있었다.

 

-많이 마셨어...

-네...

-준하야...하은이 많이 힘든가보더라...니가 신경 좀 써줘.

-미안해요 선배...선배도 마음이 그럴텐데...

-난, 괜찮아. 저녁은 먹었니?

 

아무 말없이 하은을 내려다 본다. 얼굴이 부었다. 하은에게 너무 미안하다.

 

-준하야, 저녁 먹고 가. 먹는 동안 하은이 좀 더 자게.

-네...

 

지니선배가 저녁을 차리는 동안 하은의 얼굴로 흩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한참을 들여다 본다.

하은의 말대로 인공수정이라도 해봐야 할 것 같다. 더 이상 하은을 힘들게 할 수는 없다.

 

-찬이 별로 없다...

-아니에요....

 

입맛이 없다. 몇 술 뜨다 만다.

 

-왜?...

-입맛이 없네요...선배 성의를 봐서 다 먹고 싶었는데..미안해요.

-괜찮아...물 마셔.

 

지니선배에게 괜히 미안하다.  물을 마시고 하은을 깨운다. 하은이 제대로 일어나지 못한다.

하은을 업고 오피스텔 주차장으로 내려온다. 지니선배가 하은의 백을 들고 차문을 열어준다.

 

-조심해서 운전해.

-네, 오늘 고마웠어요.

-준하야...너무 고민하지마.

-네..갈게요 그럼.

-그래, 잘 가.

 

지니선배의 표정이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어제 9회를 올리려고 한 시간동안 바둥댔는데...ㅠ.ㅠ

날려 먹었음...조금 늦어서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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