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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my k

ㅇㅇ |2023.04.05 18:40
조회 46 |추천 0

눈에 띄게 열등한 쪽이 있는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한다

남들은 잘만 초대하는 집을 나는 부끄러워서 하지 못했다
한 번이라도 초대할까 싶을 때면 네 집을 갈 때마다 보였던 아주 비싸진 않더라도 화려하고 예뻤던 미술작품들과 널찍한 거실이 생각나서, 사람만 많고 집에 발 디딜 틈은 없는 좁디좁은 우리 집과 비교가 돼서 도저히 하지 못할 듯했다

예보 없이 비가 오던 날, 우산이 없어서 온데간데 못 하고 카페에 꼼짝없이 갇혀있었던 그 날 나는 집에 있는 아빠에게 차로 데리러 오라 할 수 있었다
남들이었으면 곧장 연락할 것을 나는 못 했다
어쩌다 한 번 얻어탔던 네 부모님 차가 널찍하고 깨끗해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먼지 자국이 남은 채 덜컹이는 우리 차와 비교돼서 못 했다

추워지는 날씨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덜덜 떨면서도 내 춥다는 말 한마디에 입고 있던 가디건을 고민 없이 건네주던 너에게 우산을 사기 위해 비를 맞아가며 뛰었던 너에게 너무 미안해서 내가 다녀오겠다는 걸 간신히도 막아내던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그날 내가 욕심이 컸다는 걸 알게 됐다
너랑 좋은 데이트 한 번 하려고 일주일 동안 알바 서너 개를 갈아뛰었다
내가 너에게 부족한 사람이고 분수가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부인하고 싶어서 며칠을 돈만 벌고 밥에 김치만 싸먹었다

너는 알까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

너는 알게 된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사랑이 참 많은 아이라서 도리어 나를 품고 모든 걸 책임지고 보태려 했을 걸 안다
나는 네가 내 황폐화된 인생을 버리고 갈까 두려웠던 게 아니라 이 추한 걸 껴안으려고 할까 두려웠다
혹시라도 나를 닮아가진 않을까 나처럼 못난 생각을 하려 하진 않을까 그게 너무 두려워서 무언가를 살 때 먹을 때 얼마인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처럼 굴었다

나는 더 이상 너 같은 사람을 못 만날 걸 안다
이 시궁창 같은 내 인생을 혐오할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사람은 너 하나가 다일 것도 안다
내가 너를 죽어서도 못 잊을 만큼 좋아하는 것도 안다
6년이 허튼 세월이 아닌 것도 그간의 내 노력이 사랑이 아니란 게 아닌 것도 안다

다 알지만 나는 네가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한다
겉뿐만 아니라 속으로도 숫자나 종이 따위로 너와의 관계에서 주춤거릴 것이 없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안 만나는 때에도 알바 때문에 바빠서 전화도 제대로 못 받는 년 말고 시간적 여유가 충분해서 연락이 즉각 되는 사람을 만나기를 바란다

내가 너에게 못난 말을 한 건 분명 평생 후회할 테지만 나만 생각했다가 종국에 망가져있을 널 보는 게 더 괴로울 것 같았다

다시는 연락하지 않을 거다
네가 아주 멋진 누군가와 멋진 어느 날에 멋진 어딘가에서 영원을 약속하는 때가 되어도 그 순간이 흐르고 흘러 나를 마주치는 어느 순간에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때가 되어도 만나지 않을 거다

나를 사랑해서 슬퍼하는 밤이 길지 않았으면 한다
나를 미워해서 증오하는 맘이 깊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영원히 이 아래에 있을테니
너는 무한히 저 하늘로 솟구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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