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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 태왕에 업적

1004 |2023.04.16 16:44
조회 388 |추천 1

 광개토태왕의 정석(廣開土太王의 定石)

 

 · 요약 : 고구려의 제 19대 태왕. 제위 주후 391~413.

  정식명칭 - 국강상 광개토경 평안 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연호 - 영락(永樂), 이름 - 담덕(談德)

 

 

· 본문 :

 

광개토태왕은 고구려 제 19대 태왕으로 주후 391년 17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고구려 제 18대 고국양왕의 아들로 12세(386년)에 세자에 책봉되었다.

 

소수림왕 대의 정치적·문화적 안정, 고국양왕 대의 사회 안정을 기반으로 392년 백제 북쪽 변방 석현 등 10개성과 백제의 중요 수군 기지 관미성을 점령하였다. 이후 백제와 소모전을 벌였고 396년(병신년) 에 대군을 동원하여 백제의 58개성을 점령하고 백제 아신왕의 항복을 받으며 왕제와 중신 10명을 볼모로 잡았다.

 

이후 400년 백제와 왜와 가야가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해오자 내물마립간의 지원 요청을 받고 신라를 구원하였으며 그 길에 금관가야와 신라를 영향력 아래에 두었고 왜를 정벌하였다.

 

후연과의 전쟁에서 숙군성을 점령하였고 재차 침입한 왜를 정벌하여 일본열도에까지 진출하였다. 그리고 다시 군사 5만을 동원하여 후연을 공략하였으며 이 여파로 후연이 멸망하여 남·북으로 분열되었고 북연 왕으로 즉위한 고구려 후손 ‘고운’과 친교를 맺어 북연을 영향력 아래에 두었다.

 

410년에 동부여의 64개성과 1,400여 촌을 점령하여 동부여를 완전히 지배권 아래에 두었다. 이로써 광개토태왕은 한강 이북을 차지하여 백제를 영향력 아래에 두었고 왜의 침입으로부터의 신라 구원을 통해 신라와 가야, 왜 또한 영향력 아래에 두었으며 일본 열도로까지 진출하였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후연을 멸망시켜 난하 유역까지 진출하였으며 북으로는 염수가의 거란을 점령하여 대흥안령산맥 근처까지 진출하였고 동으로는 숙신과 동부여를 굴복시켜 송화강 유역, 농안 평원 등 넓은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광개토태왕은 이미 즉위 초 평양에 9개의 절을 건축하여 사상 체계를 정비하였고 관직과 지방 행정 조직, 그리고 군사 제도도 개편하였다.

 

413년 39세의 나이로 붕어하였으며 능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태왕릉으로 추정되며 비는 아들 장수왕이 414년 건립한 ‘광개토태왕릉비(廣開土太王陵碑)’이며 광개토태왕의 업적 및 고구려 초기 역사와 수묘인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광개토태왕은 동북아 고구려 문명 중심 시대를 여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광개토태왕 이후 고구려 문명은 번영하여 멸망 때까지 동북아를 주름잡는 문명의 중심지로 서게 되었다.

 

연표 : [기원후紀元後, 즉 주후主後를 사용함. 월, 일은 삼국사기의 기록과 일치함]

 

371년 10월(고국원태왕 40년)

-백제 근초고왕 고구려 침공, 고국원태왕 붕어

 

371년 10월(소수림태왕 1년)

-고구려 소수림태왕 즉위, 역사책 <유기留記> 편찬 시작

 

372년 6월(소수림태왕 2년)

-고구려 불교 공인->전진으로부터 승려 순도가 전래

-태학 설립

 

373년(소수림태왕 3년)

-율령 반포

 

374년(소수림태왕 4년)

-동진의 승려 아도 고구려에 옴

 

375년(소수림태왕 5년, 1세) -초문사 창건(순도 주관), 이불란사 창건(아도 주관)  

-백제의 수곡성 침략

-담덕(談德, 광개토태왕) 탄생

 

376년 11월(소수림태왕 6년, 2세)

-백제의 북쪽 변경을 침략

 

377년 10월(소수림태왕 7년, 3세)

-백제가 평양을 침공함

-백제를 침공함

 

378년(소수림태왕 8년, 4세)

-가뭄 발생.

-8월, 거란족 침입

 

384년(소수림태왕 14년, 10세)

-소수림태왕 붕어, 왕제(소수림태왕의 아우)이련 즉위

 

384년(고국양태왕 1년, 10세)

-고국양태왕 즉위

-후연 건국됨

 

385년(고국양태왕 2년, 11세)

-후연을 침공함, 현도성 점령

-후연에게 현도와 요동을 다시 빼앗김

 

386년(고국양태왕 3년, 12세)

-왕자 담덕을 세자로 책봉함

-백제를 침공함

 

388년(고국양태왕 5년, 14세)

-가뭄, 메뚜기 떼 발생

 

389년(고국양태왕 6년, 15세)

-백제가 도압성을 빼앗음

 

391년(고국양태왕 8년, 17세)

-고국양태왕이 병이 남.

-고국양태왕이 붕어함

 

391년(영락 1년, 17세)

-광개토태왕 즉위

-신라에 사신을 보내 우호를 약속함

-연호를 ‘영락(永樂) ’이라 정함

 

392년(영락 2년, 18세)

-4만 군사를 동원하여 백제 북쪽 변방 10성을 점령

-북쪽의 거란의 반란을 토벌함

-백제의 요새 관미성을 점령함

 

393년(영락 3년, 19세)

-백제에 변란이 일어나 진사왕이 살해되고 아신왕이 즉위함

-아신왕이 외숙 진무에게 군사를 주어 관미성을 침공케 함

-고구려가 백제의 침공을 막음

 

394년(영락 4년, 20세)

-백제가 수곡성을 침공함, 고구려가 백제군을 물리침

-남쪽 변방에 7개의 성을 건설함.

-거련(巨連, 장수태왕)탄생

 

395년(영락 5년, 21세)

-백제가 변경을 침략함

-패수에서 대승을 거둠

-비려국의 반란을 토벌하고 수많은 전리품을 얻음

-아신왕이 침공을 계획하였으나 폭설로 회군함.

 

396년(영락 6년, 22세)

-10만의 대군으로(수군 포함) 백제의 수도를 공략함.

-58개의 성을 획득하고 위례성을 함락함.

-아신왕이 항복함. 군신 관계를 맺어 조공을 약속함

 

397년(영락 7년, 23세)

-백제의 아신왕이 태자를 보내 왜에 원병을 청함

 

398년(영락 8년, 24세)

-고구려가 백제의 변방을 침략함

 

399년(영락 9년, 25세)

-왜가 신라를 대대적으로 공격하여 신라가 고구려에 원병을 청함.

-후연이 고구려의 신성과 남소성을 공격하여 빼앗음

 

400년(영락 10년, 26세)

-정미대원정. 장수를 보내 군사 5만으로 신라를 구원함

-신라의 내물 마립간이 구원에 대한 보답으로 조공을 약속함

 

402년(영락 12년, 28세)

-5만 군사로 후연을 공략함. 신성과 남소성을 회복하고 평주를 점령함.

 

404년(영락 14년, 30세)

-고구려가 후연의 유주를 공격함.

-백제·왜 연합군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음

 

406년(영락 16년, 32세)

-후연이 거란 침공 후(실패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실패함

 

407년(영락 17년, 33세)

-국내성을 중축함. 대륙백제를 침공하여 무력화시킴

 

408년(영락 18년, 34세)

-후연이 멸망하고 북연과 남연으로 분열됨. 북연에는 고운이 왕으로 즉위함(고운은 고구려의 후예임)

-북연과 화친을 맺음

 

409년(영락 19년, 35세)

-왕자 거련을 세자로 책봉함

 

410년(영락 20년, 36세)

-동부여를 점령함

 

413년(영락 23년, 39세)

-광개토태왕이 붕어함, 장수태왕 즉위.

 

414년(장수태왕 2년)

-광개토태왕릉비 건립

 

※ 주요 해설 :

 

· 세자 : 고구려 왕위 계승자의 명칭은 ‘태자’가 아니냐고 묻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인들이 직접 세운 ‘광개토태왕릉비’에서는 태자라는 용어는 나오지 아니하고 ‘세자’라는 용어만 나온다. 고구려 시대에 태자와 세자의 상하 구분은 없었으며 이후 중세 시대에 비로소 태자와 세자의 상하 구분이 생기게 된다. 따라서 고구려의 왕위 계승자의 명칭은 ‘세자’가 옳으며 발해의 세자 대광현이 고려에 투항했다는 기록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 이구등조(二九登祚-9가 두 번 된 나이에 즉위하였다) : 광개토태왕릉비에는 광개토태왕이 이구, 즉 9가 두 번 된 나이인 18세에 즉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광개토태왕릉비에서는 광개토태왕이 39세의 나이로 붕어하였다고 기록하였다. 광개토태왕이 붕어한 연도는 주후 413년이며 그의 붕어시 나이를 따져본다면 그의 출생연도는 375년이다. 그리고 광개토태왕에 의거하면 태왕의 즉위연도가 주후 391년이 되기 때문에 그의 즉위시 나이는 17세이다.

 

· 붕어(崩御) : 일반적으로 천자의 죽음을 뜻하며 천자국에서만 쓰일 수 있는 것이다.

 

· 태왕(太王) : 중국와 황제와 유사한 개념으로 고구려에서 독자적으로 사용되던 용어이다. 따라서 고구려의 왕들을 부를 때에 ~제 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고구려는 태왕 외에도 ‘성왕(聖王. 예: 1대 추모성왕)’, ‘명왕(明王. 예: 2대 유리명왕, 21대 문자명왕)’, ‘대왕(大王. 예: 6대 태조대왕, 26대 영왕대왕) ’ 등이 쓰였다.

 

 

저자 : 백듀산텬디(白頭山天地) 조 여호수아(Joshua Jo). 유조아(http://www.ujoa.com/) 에 역사소설 ‘광개토태왕’ 연재 중
추천수1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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