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인생에서 각자의 슬픈 순간이 있겠지만
나는 그걸 어디가서 말할 곳이 없어서
여기다 그냥 말하고 갈게...
정말 말할 곳이 없어서.
나는 이상하게 엄마랑 어릴 때부터 사이가 안 좋았어.
엄마도 너랑 나는 정말 안 맞는다 했고...
늘 내가 골치아프게 할 때마다 아빠한테 가서 살란 말을 했어.
나도 엄마가 날 워낙 싫어하니까 차라리 아빠랑 살고 싶었지.
어느 날은 내가 쿠키를 굽고 설거지하는 걸 잊어서 엄마가 밤늦게 일하고 들어온 뒤 폭발한거야.
자다가 갑자기 오빠가 날 깨워서 일어났어. 고아원으로 보낸다고 엄마가 고함을 질러서 울면서 짐을 쌌어.
그러다 오빠가 이모한테 잔화를 해서 급하게 이모가 오고... 이모가 얼른 빌라해서 엄마 발 밑에서 무릎 꿇고 싹싹 빈 적도 있어.
어느 날은 초등학교 방학이 시작됐는데 엄마가 이번엔 정말
아빠네 집 가서 살라고 짐을 싸라는 거야.
작정한 거 같아서 긴장이 되고 너무 두렵더라고...
그래도 싫다고 할 수가 없어서 짐가방 두 개를 싸서 우리를 데려온 아빠의 차에 탔어.
근데 도저히 아빠네 집에서 지내는 동안 ‘사실 엄마가 아빠랑 살라더라.’고 말을 할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무거운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이 왔어.
무섭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차를 타고 가는데, 오빠가 그러더라고.
너 그거 아빠한테 말 안 해도 되냐고... 그 말 들은 아빠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본 뒤에야 솔직하게 사정을 다 털어놨어. 그제서야 아빠도 웬 짐을 그렇게 많이 들고오나 했다 하더라.
그때 용기내서 나 그냥 아빠랑 살면 안 되냐 했어. 근데 안 된다고 하더라고... 이상하게 그 말이 슬프지 않았어. 너무 당연하게 안 될 줄 알아서.
그리고 집에 돌아왔는데 날 보자마자 엄마가 왜 다시 왔냐고 했어.
나는 거기서 아빠가 날 못 키우겠대. 라고 내 입으로 말했어.
너무 수치스럽고 부끄러웠어.
그 뒤에 아빠가 집 안으로 들어왔고, 둘이서 서로 날 못 키운다는 대화가 오고갔어.
아빠는 아무리 그래도 한마디 말도 없이 애를 보내면 어떡하냐 하고, 엄마는 쟤랑 나는 너무 안 맞는다고, 그냥 네가 키우라 하고.
솔직히 말하면 이 기억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거든.
우울증때문에 한동안 끊었던 정신과 찾아갔다가 상담받으면서 떠오른 기억이야.
선생님이 가족에 대해 슬픈 기억이 있냐고 해서
난 솔직히 기억나는 게 없다 했어. 그냥 막연하게 너무 슬프다고...
그런데 끈질기게 계속 잘 떠올려보라고, 분명 있을 거라 해서 몇 분동안 선생님이랑 중학교 때, 초등학교 때 조금씩 더듬다가 떠오른 기억이야.
처음엔 그러고보니 이런 일이 있었다면서 잘 말하고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던진 질문 하나에 미친 사람처럼 울음이 터졌어.
“그때 오빠는 뭘 하고 있었나요?”
오빠는 방 안에서 과자 먹고 있었거든.
별거 아니니까 잊고 있던걸 수도 있는데, 정말 그때는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울었어. 책상에 엎드려서 꺽꺽대기만 했어. 상담도 중단되고... 선생님한텐 좀 죄송해.
내가 가장 슬펐던 건 바로 그건가 봐.
짐을 싼 것도 나 혼자고, 무릎꿇고 빌었던 것도 나 혼자고.
우리 엄마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야.
내가 2살 때 바람피운 아빠한테 양육비 한 푼 못 받고 혼자서 악착같이 애 둘을 키웠어.
화가 나면 말을 고를 줄 몰라서 온갖 욕을 퍼붓긴 했어도, 초중고 다 나오게 해줬어. 그 폭언도 갑상선에 암이 있어서 엄마가 스스로 감정조절을 못했다고 이해하니까 괜찮아졌어. 지금은 수술받고 예전보단 덜하셔.
우리 오빠는 지금 183cm에 누가 봐도 잘생겼고 사교성도 좋고 엄마한테 애교도 잘 부려. 잘난 아들이야.
거기에 비하면 나는 그냥 컸어. 나는 늘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거 같아. 초등학교때부터 우울증이 정말 심했거든.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족사진을 찍기로 했는데, 오빠가 너는 안 찍을 거지? 하고 묻더라. 나는 얼떨결에 그렇다고 했어.
그래서 지금 우리엄마 휴대폰 바탕화면 가족사진엔 엄마랑 오빠뿐이야.
내가 곧 죽을 줄 알아서 그랬던 걸까?
우울증이 심할 때였거든. 정신과 다니던 시기고... 사진 찍었는데 한 명이 죽어있으면 슬프니까.
물론 지금은 평범하게 직장생활하며 살아.
고등학교 졸업하니까 우울증도 나았어.
근데 가끔 떠오를 때마다 가슴을 후벼파는 순간들이 있어.
서로 날 키울 수 없다면서 싸운 부모나
용기내서 머리를 기댔는데 어깨로 밀친 엄마나,
내가 없는 가족사진
방안에서 과자먹던 오빠
아무도 안 온 초등학교 졸업식
우울한 얘기인데 들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