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없는 부모를 보고 자라는 아이들
2023. 1. 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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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피아노 콩쿠르 경연 대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피아노 콩쿠르는 아이들끼리 경쟁하는 곳이다. 아이에게 경쟁시키는 것이 옳은 일인가 싶지만 경쟁의 의미를 지우면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회를 위해 몇 달을 연습하고, 한 곡을 악보 없이 연주할 수 있게 되면서, 아이 스스로 잘 하는 것이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 피아노 콩쿠르는 경쟁은 맞지만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연 대회는 본질적으로 경쟁하는 곳이다. 경쟁에는 성적에 따라 순위를 세울 수밖에 없기에 이왕 참관할 꺼면 좋은 성적을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경연장에서 연주하는 건 집에서 연주하는 것과는 심리적으로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연습할 때는 틀려도 괜찮고 옆에서 선생님이 지켜봐 주시기 의지할 곳이 있는데, 의지할 곳 없이 무대에서 평가자들 앞에서 연주하는 부담감은 어쩔 수 없다. 이런 부담감을 없애기 위해 무대 밖에서 부모도 나름의 노력을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을 보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내 아이만 생각하는 이기적 행동들이 보인다.
내가 경험한 것이 이런 어른들의 이기적 행동이다. 피아노 경연은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아이들이 누르는 음이 정확한지, 페달 활용이 적절한지, 강약 조절을 잘하는지, 아이들이 곡 해석 잘하는지 심사위원들은 신경을 세우고 들어야 한다. 피아노 콩쿠르는 들으면서 평가하는 곳이기에 그 어떤 경연보다도 정숙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정숙은 몇 명 어른의 잘못된 행동으로 깨지기 마련이다.
첫째가 참여한 대회는 한 학년에 150여 명이 참여했고 한 학생 당 40초 정도 연주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은 참여자로 1시간 넘게 대기 후에 연주했다. 각자에게 주어진 40초 동안 집이나 피아노 학원에서 연습한 대로 연주를 끝내고 뿌듯하면서도 아쉬운 표정으로 내려온다. 그러나 부모 입장에서는 큰 무대에서 완주를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굉장히 감격스럽다. 마치 큰일 하나 해낸 것 같아 내 아이에 대한 자부심도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공연장 안에서 표현한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치고 자기 아이 이름을 부르고 환호하면서 말이다"
내가 가장 놀라운 건 이런 행동을 하는 어른이 한 명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략 100명 정도 연주를 들은 것 같은데 정확히 4명의 부모가 그런 행동을 했다. 손뼉 치고 환호하는 부모가 있을 때마다 상황실에서는 경연에 참여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그만하라는 안내를 하지만 상황실의 말을 듣지 않는 부모들이다. 몇 분 지나 다른 곳에서 박수소리가 들리고 안내가 나오고를 몇 차례 반복되었다.
손뼉 치고 환호하는 부모 한 명을 우연히 관찰했다. 내가 관찰한 시기는 손뼉 치고 환호하기 전이다. 엄마, 할머니 그리고 동생으로 추정되는 아이 한 명이 참여한 가족이었는데 내가 그 부모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건 아이 때문이다. 아이 손에는 스마트폰이 주어져 있었는데 그 스마트폰에서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소리가 아주 커 공연장의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들릴만한 소리였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 무음으로 바꾸긴 했지만, 그런 부모의 자식은 어떤 아이일까 궁금했고, 그 해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이 엄마는 자신의 아이 차례가 되니 핸드폰 촬영을 위해 무대 가운데로 부산스럽게 움직였고, 연주가 끝나니 손뼉 치고 소리쳤다. 이 분 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4명의 부모 모두가 비슷한 행동을 했다. 경연장에 가보니 내 자식만 최고라는 생각하는 부모와 할머니들 천지다.
이런 어른의 행동을 보고 느낀 건 우리 사회에 '배려'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반성했다. 똑같지 않지만 나도 '배려'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공연장이어서 안 했을 뿐이지, 내 아이가 경쟁에서 밀리는 상황이라면 나도 내 아이만 생각할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닌 사회가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배려'가 없어진 것 같아 아쉽다. 이웃사촌들은 이제 옛말이다. 가족들끼리 돈 때문에 죽이는 시대인데, 그 누구에게 배려를 가르친단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내 아이들에게 굉장히 미안하다. 우리 세대는 부모님들로부터 '배려'를 아무 대가 없이 받았는데, 우리는 '배려'를 가르치지 못한 것 같아서 말이다. 피아노 경연 대회에서 첫째가 우수한 성적을 거뒀음에도 기쁨보다는 씁쓸함이 남은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잃어버린 '배려'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짐해 본다. 내 아이에게는 어떻게 해서든 '배려'를 가르쳐야겠다고. 우리 사회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다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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