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컨덤
|2009.01.20 18:10
조회 158 |추천 0
따라서 인간에게 부여된 전방양안(前方兩眼) 시각의 장점을 아직 제대로 계발하지 못한
'유아들'은 흡사 사팔눈처럼 보인다.
주지하듯이, 양안 시각의 상호 조절 작용은 원근의 판별을 가능케 한다.
그러므로 생리적 사시현상으로 말미암아 초점작용(focusing)이 어려운 '신생아들'은
당연히 거리조절(疎隔)에 애를 먹는다.
엄밀히 말해서 이 소격(distantiation)의 난조는
'신생아들'의 시각 생리학적 특성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유비적으로 보자면,
이는 제반 유치증의 구조와 성격을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개념틀이기도 하다.
유치증(幼稚症, infantilism)의 요체는
과대망상으로 통칭되는 소위 자아증폭현상(megalomania)으로 볼 수 있지만,
외부로 드러나는 현상은 일일이 예거(例擧)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미성숙(未成熟, immaturity)의 주요한 특징인 '과도한 자아증폭'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소격의 난조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신생아들'에게서 보이는 생리학적 사시현상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유치증에 빠진 이들>은 초점 조절작용의 미숙으로 거리분별 능력을 상실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신생아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자면,
눈에 뵈는 게 제대로 없고,
때문에 겁대갈휘 -_-; 를 상실한다는 얘기다. ㅋ
자신 및 자신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것들을 실제 이상으로 과도하게 부풀려보는 망상은
결국 자기 자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 공간적 실조(失調) 현상에 다름 아니다.
사회의 선량한 구성원으로서 '정상적 삶'을 유지하는 양상은
관계에서의 질서를 어기지 않는 모습 속에서 확인된다.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사회화의 과정을 통해서 학습된
자아와 타아(他我) 사이의 기초적 관계 양상을 지키며,
점진적이지만 부단히 새롭게 정립되어 가는 다양한 관계의 망(網)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 가는 것이야말로
히틀러나 돈키호테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 대다수 '정상적인 일상인'들이
지금의 사회를 살아가는 형국이다.
따라서 '정상적' 사회인들은 자신이 맺고 있는 무수한 관계를 적절하게 조율하며
자신의 권리를 지켜나감으로써 '정상인'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반면, 유전적 그리고/또는 성장 환경적으로 문제가 있어
정상적인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못한 부류들,
즉 결국 정신적 유치증에 빠져있는 이들은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갖게 된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자면,
성숙한 초자아는 부모의 가치와 금기를
'양심'과 'ego'로 내면화함으로써 형성된다.
양심은 해서는 안 되는 것, 즉 제한과 금기로 구성되고,
ego는 자아 실현을 향하는 가치로 구성된다.
그런데 반사회적 성격장애자는
ego만 발달했을 뿐, 초자아가 발달하지 못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말하면 id적 성격을 말한다.
그리고 양심의 부재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가장 두드러진 점이다.
--- '반사회적 인격장애'에 대해서는 이 다음에 구체적으로 써보도록 하겠다.
아무튼,
이러한 의미에서도 망상(妄想, delusion)은 관계(자리 매김)의 실조 현상으로 이해된다.
--- 망상과 어느 정도 유사한 심리구조를 갖추고 있는 영웅 심리는
따로 분석, 평가해야 할 측면이 제법 있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여기서는 상론을 피하기로 하자.
정신적 사시현상인 유치증은
자신과 이웃 사이의 관계태를 적실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여러 관계의 망 속에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매김하지 못하는 행태를 반복한다.
환경과 자신을 구별할 수 있는 경험이 전무한 '신생아들'은
당연하게도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매김하지 못하는 행태'를 보인다.
심리적으로는 극단적 자기 증폭의 단계에 놓여있고,
생리적으로도 전반적 사시 현상
--- 시각만이 아닌, 생리적 기능의 전 부분이 아직 결여하고 있는 경험적 숙련과 적응도 ---
에 빠져있는 '신생아들'은,
그러므로 자신과 이웃을 변별하고,
특히 후자에게 적절한 소격을 부여하는 '원근법적 인식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다.
역시 '사시의 신생아들' 눈높이에 맞춰 풀어 얘기하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고전적인 의미다. ㅡㅡㅋ
사물을 원근법적으로(perspectively) 인식한다는 것은
우선 단안(單眼) 시각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외눈은 시점이 하나로 고정되어서
시야가 입체화되지 못한 채 평면적으로 죽어버리는데,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외눈의 시각은 시각의 비교가 이루어지지 못하므로
자신의 시각을 절대화할 수밖에 없는 한계에 빠진다는 사실이다.
--- 좌정관천(坐井觀天), 우물 안에 주저 앉아서 애꾸눈으로 하늘 보며 자신의 하나뿐인 눈에 보이는 우물 위의 하늘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안다. 즉,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안다는 얘기다.
이는 시각기하학의 초보적 명제에 불과한 지식이지만,
이 또한 유비적으로
<인성의 성숙>을 설명할 수 있는 매우 설득력 있고 효과적인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자아증폭현상과 관련이 있는 유치증 혹은 인성의 미성숙은
비교적 시각(comparative perspectives)을 갖지 못하는 단안 시각의 독선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보여진다.
단안시각의 독재성과 이로 인한 평면적, 몰가치적 인식은
물상과 사태와 대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싶은 대로 보게 만드는 망상적 데이터만을 제공한다.
끼리끼리 논다고 했던가?
정신적 유치증에 빠진 그 주변인들의 부추김과 꼬임 역시
미성숙의 파행태라고 볼 수 있는데,
결국 단안 시각의 독재와 독선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더군다나 드러나지 않은 애꾸눈 돈키호테의 행적을 알게 된다면
서로서로 경악을 금치 못 할 테지만,
그러나 그 수준이 수준들이라 외눈박이 지들끼리도 서로 이용해 먹자는
그네들의 기회주의적이고 처절하고 열등한 생존방식은
성숙, 미성숙의 차원은 언감생심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의 경계에 있는 칠성장어처럼 그저 미개할 따름이다.
정신적 사시현상,
소격의 실조,
관계의 혼동,
그리고 심리적 자아증폭 등등의 유치증이
반사회적 파행태로 치닫는 경우는 사실 그리 흔하지 않다.
어떤 식이든 반사회적 파행태가 기존 사회의 보수적 관행에 대항(?)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힘이 요청되고,
그 힘과 함께 다대한 노력과 절묘한 운이 함께 할 경우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심(慢心)은 금물.
히틀러나 스탈린을 역할 모델로서 꿈꾸는,
외눈박이 돈키호테 같은 완벽한 개자식이 또 없으란 법은 없으니 말이다. ㅡㅡㅋ
하지만 다소의 기벽으로 며칠간 유명(?)해지거나
유치장이나 정신병원에 곱게 수용되는 정도에서 끝날 수도 있을 것이,
운명의 여신이 예기치 못한 생리불순으로 인해
어떻게 삐걱대다가 잘못 조절한 명운(命運)과 더불어,
언제나 멍청했던 주변의 몇몇 미개한 칠성장어들의 부추김과 꼬임을
마치 대다수 다중의 합의가 수여된 것처럼 착각함으로써 필 받고 고무되어
거리 감각도 가늠 못하고 그저 풍차에 돌진하는 애꾸눈 돈키호테를 넘어서서
희대의 '살인마'를 키우는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니,
이 시대, 이 게시판의 <정상적 사회인>들이여,
언제나 밝은 눈을 떠서 조심하실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