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새로 사온 임테기 두 개로 다시 테스트를 했다.
이번엔 보다 선명한 두 줄이 반겨줬다.
너와 나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아니, 우리 둘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먼저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때의 우리는 스물.
곧 스물 하나가 된다지만 그렇다고 뭐가 바뀌는 나이는 아니었다.
아직 새내기 이름표를 떼기도 전이었고 졸업까지는 최소 3년이 남아있었으며
법적으로만 성인이지 아직 의지하고 의존할 곳이 수없이 많은 학생이었다.
그런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부모가 되는 일은 아니었다.
너와 함께하는 10년 후, 20년 후에 너의 예쁜 미소를 빼닮고 나의 눈을 섞어놓은 아이를 그리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이때까지 모범생으로만 살아왔었기에 부모님께 감히 말할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모르겠다.
그냥 그 때는 하늘이 노랗다는게 이런거구나 싶었고,
무서웠고, 두려웠고, 죽고싶었다.
아니 어쩌면 살고싶었던 것 같다.
모범생이고, 예쁘게 만나는 남자친구가 있고, 앞으로 펼쳐질 즐거운 인생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일주일전 나인 채로 계속 살고싶었던 것 같다.
너도 비슷한 생각인듯했다.
그런 우리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서로를 안고 펑펑 울었다.
그리고 각자의 핸드폰으로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없이 검색만 하다가 그날의 데이트는 끝이 났다.
일주일 뒤,
주말 전 마지막 학교수업이 끝나자마자 너를 만나러 서둘러 이동했다.
일주일 사이 너는 수술을 해주겠다는 병원과 연락이 닿았고, 주말에 예약을 잡아놨다.
결국 너의 부모님께도, 나의 부모님께도 사실을 알리지 못했고,
너가 내 보호자가 되어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너를 만나러 가는 길, 몸은 더 좋지 않았다.
입김이 절로 나는 기온이었지만 식은땀이 흘렀다.
내가있는 위치만 중력이 두 배로 작용하는 것 같았다.
관절 사이사이 벌레가 알을 까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그 와중에 짜장면이 먹고 싶었다.
하지만 먹을 수가 없었다.
존재를 알자마자 버릴 준비를 하는 내가 감히,
그 생명체가 원하는 것을 주는 가식적인 행위를 할 자격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훗날 그 생각을 수천 번도 넘게 후회했다.
그 생명체를 위해 어떠한 것도 하지 않았던 내가 최소한은,
그 아이가 원하던 거 하나쯤은 해줬어야지. 그래야 사람이지. 그랬어야, 죄책감을 가질 양심이라도 있지.
하지만 그때의 나는 사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모두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냥 아무 감정없이, 그 시간이 지나가길 바랐다.
힘들게 도착해서 널 만났고, 너는 자취방이 최대한 따뜻하도록 미리 보일러를 틀어놓았다.
이미 방은 뜨거울 정도로 따뜻했지만, 너는 더 따뜻하도록 내가 자는 밤새 나를 안아주었다.
다음날 오전, 내가 입고 온 옷 위에 너의 패딩을 입고, 너의 목도리까지 두른 채로 함께 나섰다.
병원에 도착을 했고, 수술 동의서를 작성했다.
내 이름, 내 서명. 그리고 너의 이름, 너의 서명.
긴장해서 얼어있는 나를 풀어주려고 너는 살며시 웃어보였다.
방금 작성한 동의서가 증거가 될 테니까 앞으로 큰일은 못하겠다.
앞으로 소소하게 살아가며 너만 봐야지.
라고 말하며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수술대에 올랐고,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10부터 숫자를 거꾸로 셌다.
그리고 또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1이 되기 전에 정신을 잃었다.
나중에 너에게 들은건데, 마취를 해도 수술 기구를 몸에 접촉하니 몸부림이 너무 심해서 간호사분들이 내 몸을 잡아 고정했고, 급기야 너도 수술실로 들어와서 내 손을 잡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살며시 웃으며 내 손을 잡고 있었던 너가
눈을 떠보니 똑같이 내 손을 잡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회복실로 들어와서 링거를 맞고 있었다.
수술은 잘 됐고, 한두 번 소독을 하러 오면 된다고 했다.
30분 후 병원을 나와 다시 너의 자취방으로 왔다.
어제처럼 방은 계속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다.
돌아왔을 때 방이 차가우면 내가 안 좋을까봐 보일러를 켜두고 나왔다고 했다.
그 대화 이후로 우리는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내가 기억나는 것은
아침과 다르게 뭔가 너무 허전했고, 마음은 뻥 뚫린 것 같았으며, 더 이상 짜장면이 먹고 싶지 않았다는 거다.
그렇게 나는 잠만 내리 잤다.
지금 순간도 내가 기억하는 우리의 계절은,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