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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사랑이야기-4

쓰니 |2024.06.18 17:28
조회 192 |추천 1

쉽지 않았지만 우리는 조금씩 회복해나갔다.

대화가 거의 없었던 우리가 서로 안부를 걱정하며 한마디 두마디씩 대화를 늘려갔고,

그 틈에 일상적인 대화도 조금씩 생겨나갔다.

우리는 다시 평범한 대학생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실은 그렇게 해야만 했다.

이기심과 내 인생을 위해서 희생시킨 생명체가 있는데,

나는 다시 모범생이고, 예쁘게 만나는 남자친구가 있고, 앞으로의 인생이 즐겁기만을 바라야 했다.

 

사실 너에게 말하지 않았었는데, 그 당시 나는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다.

서로 괜찮아지려고 억지로 노력하는게 눈에 보여서 힘들다고 평소처럼 돌아오지 못하겠다고 말하지 못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나 따위가 그런 희생을 감수하며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수없이 많이 생각하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또 자책했다.

그 감정이 어느 순간은 날 잠식해서 집에서 가족들과 있을 때도, 친구들을 만나도, 심지어 혼자 있어도 나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 같았다.

가면의 표정은 웃고 있지만 그 속에 나는 너무나도 끔찍한 얼굴을 하고 있는 본체가 있었고,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가면을 벗지 못해서 어느 순간 가면을 벗는 방법을 까먹은 내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너도 많이 힘든데 애써 괜찮은 척하는 거겠지 생각했기에, 내가 가진 죄책감 중 하나씩만 꺼내서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너가 있었기에 견뎌낼 수 있었다.

그 사이 우리는 방학을 했고, 우리의 거리는 다시 1시간이 되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루도 빠짐없이 서로를 만났다.

너는 나를. 나는 너를. 위로했고, 위로받았고, 또 다시 서툰 사랑을 했고, 서툰 싸움도 했다.

 

집안사정상 아르바이트를 계속 해야 했던 너는 새벽에 나가서 저녁에 돌아오는 날도 있었다.

너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서운했지만, 힘들었던 하루 끝에 나의 응원이 너를 조금이라도 예쁘게 웃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너가 없는 너의 동네에 가서 집 우체통에 비타500과 초콜렛을 넣어놓고 왔다.

다시 1시간에 걸쳐 집으로 돌아갈 때도 행복했다.

너가 날 만나러 오는 길이 이렇구나, 이런 공원을 가로질러 걷는구나, 정거장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너와 함께하지 못하는 날도, 너의 시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와 함께하는 것 같았다.

 

그 해의 겨울은 너무나도 일렀고, 끝도 없이 길었지만 해는 바뀌고 봄이 찾아왔다.

그동안 더 많은 추억이 쌓였다.

짜장면은 먹지 못했지만, 길거리 호떡이 보이면 매번 사먹었고 붕어빵도 머리부터 먹어야 맛있는지 꼬리부터 먹어야 맛있는지 실험해보았으며

루돌프가 그려진 커플 기모 후드티도 생겼고, 양털재질의 커플 집업도 생겼다.

날이 점차 따뜻해져서 기모 옷이 필요없고 꽃들도 피어날 준비를 했지만

우리는 다시 4시간거리가 되지 않아도 되었다.

너의 입대 날짜가 정해졌기 때문이다.

너는 벚꽃이 필쯤 갈 예정이었다.

그래서 꽃들이 피어날 준비를 하는 것이 야속했다.

겨울은 빨리 지나가고 봄은 늦게 오길 빌었다.

 

그럼에도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었고, 나는 다시 학교를 다녀야 했기 때문에 방학처럼 자주 보지는 못했다.

정해진 이별 날짜는 다가오는데 너가 인사해야할 친구들은 너무 많았고, 나의 학교 스케줄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애가 탔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싸움은 늘어갔다.

자주 보지 못하는 답답함과 다가오는 입대날짜, 그 후 2년에 가까운 막막한 기간, 그럼에도 너무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를 끊임없이 떼어놓고 붙이기를 반복했다.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수많은 이유들로 우리는 전화하다가 싸워서 훽 끊어버리기도 하고, 밥을 먹다가도 싸워서 집에 혼자 가기도 했고, 빡빡이 머리를 하러 미용실을 가는 길에도 싸우고 이발 후에는 웃으면서 화해하기도 했다.

그 반복은 입대 전날까지 이어졌다.

다음날이면 이별인데, 우리는 치열하게도 싸웠고 나는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다음날 아침 너를 만나면 뻥 차버리고 가야지 결심했고,

다음날 아침 너를 보니 미움보단 슬픔과 사랑이 치고 올라와서 결국 언제 그랬냐는 듯 화해한 후 입대해서 빡빡이들 사이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빡빡이가 사라질 때까지 울면서 손을 흔들었다.

 

훈련병이 되어 당분간 전화도, 편지도 할 수 없는 너에게 나는 일방통행의 편지를 썼다.

하루에 두 장씩 빼곡하게 채워나간 편지를 비타민사탕과 함께 매일 부대로 보냈고,

다른 훈련병들이 편지받을 때 혼자서 쓸쓸하게 있지 않았으면 해서 아무리 피곤한 날에도 매일 편지를 쓰고 잠들었고 다음날 오전엔 꼭 우체국에 편지를 보내고 학교를 갔다.

나중에야 알게된건데, 비타민사탕은 전달이 금지되어있기 때문에 폐기해야하지만 담당 군인분이 매일 모아뒀다가 너가 자대배치를 받을 때 이때까지 받은 사탕을 모두 전달해주셨다고 한다.

그렇게 애지중지했는데 정작 너가 걸어온 첫 전화는 씻고 있느라 받지 못했다.

씻고 나와서 부재중을 확인하고 직감적으로 너였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걸 받지 못한 내가 너무 미워서 이틀 동안 눈물을 뚝뚝 흘리며 편지를 썼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너는 자대배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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