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써 있는데로 되었다.
그말인 즉슨, 성경은 실제 상황과도 관련이 깊으며,
종교중에는 진짜배기라는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면, 바로 이말씀,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ㅡ 코린토1서 7장31절
처럼, 형체가 있어도 형체가 없는 듯,
보는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현재 우리가 이런 시대인것입니다.
마지막시대말이죠.
끝까지 갔으니 “마지막시대” 아니겠습니까.
성경에 의하면 말이죠. 마지막시대...
현재의 상황과 똑같습니다.
그렇다면, 신비롭게도 성경대로 되었다면,
성경은 베스트셀러라서 다 알게 되었은즉,
더 중요해져야 하는게 윤리의식이 아닙니까.
이것에 대하여, 성경에서는 어떠한 말로,
아무 여자나 보면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을까?
성경이 윤리의식의 끝판왕인 걸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한 예로 “간음하지 말라”가 대표적입니다.
우리나라는 한때 동물의 왕국이라고 동물과 비교대상까지 되었으니
말 다했죠.
그런 구절이 성경에 과연 존재하는지에 관하여서도 궁금할 것이다.
어떻게 현재의 현 상황을 맞추었을까.
자세히 들여다보자.
찾아보자.
있다. 이 구절이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간음한 것이다.>
ㅡ 마태5장28절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이런 시대가 이미 올 줄이나 알았다는 듯이, 이 문장 역시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와 마찬가지로
미래를 예언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이 없다면 오히려 놀라운 일이 아닌가.
마지막시대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니 말이다.
인간이 그렇게 내적인 면이 훌륭하단 말인가.
실제 역사적인 사실만으로도 보아도
전혀 인간은 추악하지 않다는 말인가.
너무나 정확히 들어맞기에 더욱 놀라울 뿐이다.
성경이 “종교중에서는” 진짜배기였던 것이다.
하느님이라는 신을 더군다나 지구의 1/2이나 믿고 있다.
이 수치는 기아와 빈곤을 제외해도,
지구의 1/2의 인구가 하느님을 믿고 있다는 말이니
얼마나 많은 사람인지 객관적으로도 알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종교“들”이 말이다.
음욕을 품고, 아무 여자나 바라보는 자마다, 간음하는 것이다.
어떻게 바라보는데 간음한다는 행위에까지 간다고,
성경에는 분명히 써 있게 되었고, 그 내용이 실제 상황과 똑같이 나오게 되었을까.
어떻게 바라보는 것일 뿐인데도,
남의 여자를 실제로 간음하는 행위까지 미칠 수가 있다는 것일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럴수 있는가가 오히려 의아할 것인데
현재의 상황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
현재의 상황이, 성경의 말이 실제라고 말하며, 이는 사실임이
마치 이미 답이 배밖으로 나와
적나라하게 드러난 실정이다.
그런데, 오늘날과 같이 형체가 사라진 시대라면,
형체가 사라졌는데 아무 여자만 보는것도,
보기만 하는 행위도, 실제로 간음하는 죄까지 갈 정도로는,
절대로 윤리에 어긋나지는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보는게 실제의 행위인 간음죄까지 간다고
성경에서는 말씀하시는데 말이다.
“히잡”으로 온통 방어를 하는 무슬림의 여자들의 종교의 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종교들”중에 하나인 가톨릭에서도 그러한 잘못된 행위는
실제로 간음하는 죄까지 갈 수 있다고 성경에서는 말씀하시는게 아닌가
생각해보라.
보는게 실제 간음한 것이라....
윤리적으로만 본다면,
형체가 사라진 상황이라면,
실제로 그 형체안의 아무 여자나 보는 그 행위는
간음하는 죄까지도 갈 수 있을 정도로
잘못된 행위라고 충분히 윤리적으로는 말할 수 있다.
보는게 실제로의 간음까지 가려면,
얼마나 어긋나야 할까 한번 생각해보란 말이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가
실제로 일어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는
보는 것만으로도, 가장 무거운 죄인 게다가
실제로 성행위를 해야만 성립하는 간음죄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성경말씀은
윤리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본다면, 그 정도의 처벌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옛날에도 실제 두 사람의 간음은 사형이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ㅡ 레위기 11장45절
가장 쎄신 신이신 절대자의 모습이시다.
절대자께서는 약자의 편에 서 계셨다.
이를 의롭다고 한다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