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편 시리즈
현대 역사에서 "6•25전쟁(한국전쟁)" 만큼 그 시작이 미스터리하고 애매모호한 전쟁은 없다고 한다. 전쟁 첫 번째 날부터 남한과 북한 정부는 마치 각각 약속이나 한 듯 상대방을 향해 38도선을 넘어 선제공격한 침략자로 서로 단언하고 비난했다.
1950년 6월 25일 이른(새벽) 아침, 북한 정부는 남한군이 38선을 넘어 1~2km 떨어진 해주(옹진) 서쪽 4개 지점에서 우리 영토를 기습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금천(개성) 방면, 철원(연천•포천) 방면, 양양 방면으로 지적하고 이를 격퇴하기 위한 "정의의 반격"을 선언했다고 한다.
우리 한국 정부는 이날 이른 새벽에 북한군이 38선 일대에서 쳐들어왔다고 발표했다. 무초 주한 미 대사는 한국군에게서 보고받고 이를 토대로 주한미군에 보고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군이 새벽 4시경 옹진을 포격하며 남침했으며 옹진, 개성, 춘천, 동해안 일대에서 38선을 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유엔에서 미국 정부는 불법적으로 남한을 침략한 북한 정부를 비난하고 북한에 군대를 38선 북쪽으로 원상 복귀하라는 경고를 보낸다.
그 이후로 전개되는 이 비극적인 역사적인 사건의 책임이 누구인지 감별하는 문제는 전 세계의 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초점이 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서구에서는 북한 정부가 전쟁을 도발했으며 이에 대한 책임이 북한에 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인식,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브루스 커밍스와 굽타와 같은 학자들은 한국이
옹진반도에서 남한군이 북한군에게 도발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특히 커밍스는 전쟁 전날의 상황 그리고 38선을 따라 옹진의 상황을 각종 문서와 인터뷰 등을 세밀히 연구 분석한 후 옹진반도 북침 공격을 지시한 것으로 보이는 인물로 이승만 대통령, 김백일 장군, 김석원 대령, 백인엽 등을 의심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으로는 북한 정부는 전 대중에게 제공한 전쟁 초기 버전을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계속 유지해 왔다는 특징이 있다.
1990년대 초반 구소련의 한국전쟁 관련 기밀 해제 문서가 공개되면서 1950년 봄 북한군에 의한 한반도 통일 계획에 스탈린, 김일성, 마오쩌둥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50년 4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회의에서 스탈린과 김일성 사이에 전쟁 문제에 대한 최종 합의가 이루어진 듯 보이는데 여기서 아쉬운 것은 이에 관한 결정적인 문서(사료)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북경에서 마오쩌둥이 김일성의 전쟁계획에 동의한 것 같다.
모스크바와 평양 사이의 비밀 전보를 통해 스탈린과 김일성은 전쟁계획을 세부적으로 논의하고 조정했으며 전쟁이 시작될 때까지 전쟁을 준비했다.
그러나 아직도 아쉬운 건 전쟁 발발에 관한 문서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전쟁이 발발하기까지 며칠 동안 양쪽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만약 북한이 먼저 공격한다면 북한의 작전 계획은 무엇이었는가? 북한군이 커밍스의 추측대로 역습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에 남한으로부터 어떠한 도발이 있었는가?
1950년 6월 25일의 북한군의 행동은 정말 북한 정부가 공언한 대로 역습으로 시작되었는가?
특히 우리 대한민국은 아이러니하게도 당사자국인데도 이데올로기라는 환경과 반공이라는 공포 때문에 38선 전역에서 전쟁의 발발을 부정할 수 없는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조사한 적이 없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학자들은 1950년 6월 25일 새벽과 그다음 며칠 동안의 사건들이 실제로 어떻게 38선에서 전개되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구소련 문서 보관소가 문을 연 이후에도 '윌리엄 스튝'는 누가 전쟁을 일으켰는지에 대해 결국 유보적인 견해로 보류 중이다.
또 한국의 한 학자는 북한 정부가 서울을 제외한 남한의 전 영토를 더 이상 점령할 생각이 없다는 가설을 세우기도 했고, 대신 그들과 평화 협상을 하기로 계획했다는 주장. 또 다른 학자는 이승만과 그의 추종자들을 제외한 남한의
................................................................................................................................................................................................................................................................................................
정치인들을 의심한다. 또 다른 전문가는 이승만의 정부와 미국 정부가 전쟁 전에 북한의 움직임과 심지어 남한에 대한 그것의 정확한 공격 시기를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허용했을 것이다.라는 이론 등 정리가 안되고 어수선하기가 그지없을 뿐이다.
한국전쟁에 관한 소련의 자료가 쏟아져 나온 뒤에도 커밍스의 두 번째 모자이크에서의 그럴듯한 증거의 설명력은 여전히 살아있기도 하다.
본 글의 목적은 북한군의 전야와 전쟁 초기의 행동에 대한 사실적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선 초점은 최대한 남쪽과 북쪽에 공평하게 맞춰지길 노력할 것이며, 6.25전쟁 관련 문제는 아직도 확실하지 않은 것이 많으며 이와 관련하여 답해야 할 질문은?
첫째, 북한군의 전쟁에 대한 작전 계획은 무엇이었으며, 1950년 4월 모스크바에서 스탈린과 김일성 간의 전쟁 계획 논의와 어떤 관계가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둘째, 전쟁 첫날 38선에서 실제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셋째, 북한군이 서울을 3일 동안 점령한 후에 왜 한강을 건너 진격하지 못했는가? 전쟁 전 박헌영이 동료들에게 장담한 대로 한국(남한) 사람들이 대규모 봉기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하고 북한 지도자들이 그곳에 머물 계획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진격을 계속하는데 방해가 되는 어떤 다른 요인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꼭 이 질문들만이 아니더라도 전체적으로 더 포괄적으로 연구를 수행하면서, 다행히도 나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중요한 정보 자료 출처 등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라주바예프의 보고서'이다. 1951년 1월 이후 북한 정부에 대한 소련 대사이자 군사자문단 단장인 라주바예프 장군의 보고 문서다.
참으로 가치 있는 자료이고 참으로 참고할 만한 자료이다.
러시아의 기밀 해제된 자료들을 보면 북한은 6월 12일부터 6월 23일까지 38선에서 북쪽으로 10-15km 떨어진 전쟁 기반에 부대를 이동 시겨서 군대를 모이게 성공했던 건 여러모로 사실이었던 것 같다. 장대한 야전 기동으로서의 병사들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명의 중요한 북한군 고위 장교 출신 '유성철'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비록 그가 북한 정권을 미워하고 김일성 정권에 대해 안 좋은 마인드로 북정권에 대해 팩트가 아닌 불리한 증언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충분히 참고는 할 만하다고 생각된다.
북한의 남침 작전 계획서의 작성 과정에 대해서는 망명한 유성철 전 북한군 장군이 증언을 했는데, 일반적인 맥락에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몇 가지 점에서 의심스러운 점도 있다.
유성철의 증언에 따르면 대부분이 소련 출신인 북한 장성들과 고위 장교들로 구성된 선발된 그룹은 강건 총참모장의 지시에 따라 작전 계획을 작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소련의 고문들은 북한의 계획이 너무 단순하다며 러시아어로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책임을 지고 있었다. 작전 계획은 전투명령, 육해공군의 이동 계획, 보급계획, 작전 계획 등 4가지로 구성됐다.
다양한 부대의 전쟁 준비를 군사 훈련으로 위장하는 것. 이것들은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유성철은 이 계획의 제목이 '선제타격 계획'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침략 계획이 서울 점령으로 끝났고, 나머지 남한 지역을 점령할 다른 계획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서울을 점령하는 것은 북한의 지도자들과 장군들 사이에서 전쟁의 종결을 의미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군대가 서울에 입성하면 대규모의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유성철의 증언 중 일부 특징의 진위는 현재 포착된 북한 문서들에 의해 부분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소련의 군사고문들은 포스트니코프 총참모장의 지휘 아래 사단 전투명령 수준까지 작전 계획을 작성했다. 1950년 7월 대전인근에서 포획된 6월 22일 자로 한국어로 번역된 잘 알려진 북한 제4사단의 전투 명령 1호는 러시아인이 그린 것이 틀림없다.
이제 우리는 캡처된 문서인, 제3국경경비여단 6, 1, 4, 3, 2, 12사단 오토바이 연대에 배포된 일련의 정찰 지시서가 러시아어로 작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cumings(커밍스)는 이의 진위 여부를 의심했다. 조작된 문서라고 의심했다. 이는 나름 이유는 있었다. 어쨌든 진위라고 하고 이 문서는 북한 총참모부 정보부장이 작전 계획의 각 단계에서 정찰부대가 수행해야 할 임무를 설정한 러시아어로 6월 20일 작성된 정찰 지시서다.
어떤 학자나 전문가들의 글을 보면 이런 명령서들이 위조된 이유 등을 나름대로 샅샅이 밝힌 글들이 많은데 읽어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또 그렇다고 그 명령서들이 날조, 위조됐다고도 하기에도 확실한 증명이나 이유 등도 어색하고 난해하고 논리적인 것도 떨어진다.
지금까지 공개된 소련의 기록 문서에서 제일 아쉬운 점은 최종 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
하지만 라주바예프 보고서에는 전쟁에 대한 4단계 작전 계획이 담겨있긴 하다. 이 계획이 언제 다시 그려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것은 6월 21일 스탈린과 김일성 사이에 합의의 결과로 수정된 최종 계획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것은 길게 인용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아쉬운 점이 있다. 아래의 글을 보라
조선인민군의 반격 계획
남한군이 북한 영토를 공격한 후 조선인민군 사령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우리 육군은 항상 반격에 대비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배치 상태에서 행동을 시작합니다. "이를 위해 조선인민군 부대들이 38도선 일대를 일제히 반격하도록 전환하는 작전 계획을 수립하였다.
지형 완화의 특성과 작전 전선의 상대적 중요성을 고려하여, 주요 공격을 계획하였다.
~~~ 이렇게 글이 시작된다. 즉 남측이 먼저 공격해서 북한군은 이에 반격전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남한의 많은 학자들은 처음부터 계획하고 작성한 거라 크게 의미를 두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아무래도 뭔가 찝찝하고 개운하지가 않다.
하지만 현재 지금은 시간이 더 흘렀고 더 많은 사료들도 발굴됐다.
집필자인 나의 글은 대한민국의 일반인분들한테는 좀 놀랍고 충격적일 수도 있을 텐데 미리 좀 힌트 좀 주자면:
0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