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힘을 빌려 이야기를 해 봅니다.
18세 부모님의 이혼으로 나는 충격적인 가족관계를 듣게 된다. 아빠가 나는 바깥에서 데려온 자식이라서 엄마가 떠났다고 했다. 아빠의 하룻밤 실수로 바깥에서 내가 생겼다고 한다. 아빠는 18살 여고생 딸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엄마는 내가 자기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떠났다고 했다. 이게 모두 아빠의 잘못이라고 나에게 미안하다고 무릎을 꿇었다. 그래도 아빠는 강조했다. 여전히 너는 이 가족/친가에 속한다고.
그렇게 10년이 넘게 엄마를 미워하면서 지냈다. 어렸을 때 엄마와의 안좋은 추억들을 모두 내가 바깥에서 데려온 자식이기 때문에 미워했다고 치부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긴 하다. 엄마는 내겐 늘 잠만 자는 사람이었고, 엄마와 딸 간 돈독한 사이가 만들어질 시간도 없이 엄마는 이른 아침 집에서 나가 밤 늦게 돌아오는 돈을 버는 사람이었기에. 슬픈 현실이지만 아빠와 더 가까워질 수 밖에 없었다. 돈을 벌 수 없던 아빠는 나와 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유대감을 쌓았으니까.
그러나 부모님의 이혼후에도 나는 엄마를 포기할 수 없었다. 나에게도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이혼 후에도 엄마는 따로 생활을 했지만 나와는 연락을 유지했으며, 그리고 근근히 금전적인 도움을 받았다. 뒤늦게나마 엄마는 나를 도와주기 위해 약간의 이것저것 보충을 해 주었고 그런 서포트를 포기 할 수 없었던 나는 엄마를 외면할 수 없었다. 진실이 무엇이든.
그렇게 아빠와 둘 뿐인 가족생활, 어렵게 학업을 유지하고 있을 때, 24세쯤이었나. 내가 엄마와 연락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아빠는 분노에 가득찼고, 아빠는 어쩌다 나를 데리고 온 교회를 찾아 보게 되었다. 그 계기는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까지도 나는 아빠의 자식인 줄 알고 있었고, 반쪽짜리 가족을 찾아보려는 시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 가족이 잘 살든, 못살든. 우리보다는 잘 살고 있겠지 싶어서. 그렇다고는 민폐가 되고 싶지는 않고 그냥 궁금했다.
아빠는 나를 연결해준 교회를 찾았고, 소개해준 아주머니/할머니가 이제 돌아가셨다고 했나.. 무튼. 나랑 더이상 연결되고 싶지 않다고 거절 당한것으로 기억이 난다. 나를 더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고 대답을 들은 것 같다. 내가 관여하지 않았고 아빠로부터 모두 전달받은 이야기였다. 아빠도 갑작스럽게 나의 존재를 통보받은 사람이었으니까 그걸 추적하기가 쉽지 않았겠다 하고 생각하고 넘겼다.
그러다 나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고, 그에 못마땅하고 분노한 엄마는 느닷없이 예고되지 않은 진실을 내게 퍼부었다. 그게 바로 내가 30 세.
사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아빠로 부터 들은 모든 것들은 진실이 아니라고 한다.
나는 원치 않은 부부의 연을 맺은 사람들을 위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가여운 부부를 위해 보내진 아이이다. 서울의 한 교회에서 지방의 한 교회 목사들의 연결로 태어나자 마자 입양되었다. 출생은 서울, 그러나 생후 거의 1달 되자마자 지방으로 옮겨진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엄마의 수첩에 적힌 내 생년월일과 실제 나를 받아온 날이 한달 정도 차이가 있다. 6월 생, 7월 부터 기록)
입양기관을 통하지 않고 개인간의 거래로 이루어졌다. 즉 기록이 전혀 없다. 금전적인 거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테다. 왜냐하면 나의 부모님은 풍족하지 않은 편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한가지씩 퍼즐이 맞추어진다.
한 6살까지 까지 무렵 매년 검은색 차가 매년 한번씩 우리 동네에 와서 놀고 있던 나를 관찰하고 가던 게 기억이 난다. 늘 우리 아빠 이름을 물으며 이미 누군지 알고 확인하는 듯. 그리고 아빠한테 누가 아빠를 찾았다, 어떤 형색이었다를 말하면 다시는 대화하지 말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차는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어렸을 때 큰아빠 큰엄마집에 명절마다 모일때면 나는 늘 외톨이었다. 뭔가 겉도는 느낌을 늘 받았다. 나는 그게 내가 외동이라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나 빼고 모두가 내가 입양아인걸 이미 알고 있었다. 나만 은근히 떠도는 왕따였던게 조금 이해가 되었다.
나는 교회 간 소개로 옮겨진 딸 아이. 그래도 지켜진 아이. 그 아이가 어느정도 자랄때 까지는 관찰된 아이었다.
이제 나는 내 나이 40을 바라보고 있고 그래도 아직은 궁금하다.
가족끼리는 닮으면 알아볼 수 밖에 없다는데 나는 이제 타국에 있어서 그럴 기회도 적어졌다.
정말 나는 닮았을까? 미혼모의 자식이었을까? 미성년자의 자식이었을까? 출생까지 이루어진 것 보면 그래도 키우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으나 시대적 상황으로 포기해야만 했을까?많은 추측들로 머릿속은 늘 가득찬다.
인터넷의 힘을 빌려서라도 한번쯤 만나 보고는 싶다.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