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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때 그여선생

ㅇㅇ |2025.02.13 00:00
조회 243 |추천 3
김하늘양 사건보니 자식 키우는 부모로서 너무 가슴이 아프고 지켜주지못해 미안하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마흔초중반 아줌마 입니다.

저는 경북 성주군이라는 작은동네에서 나고 자랐어요.

찢어질듯한 가난함 속에서 저희 남매는 거의 방목으로 자랐죠.

몸이아픈 아빠와 생계를 책임져야했던 엄마..

40키로 겨우넘는 야위고 어렸던 엄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식당에서 설거지와 서빙을 하며 저희를 키우셨어요.

아빠는 매일 누워서 지내셨고 심하게 아플때는 할머니댁으로 가서 오래 계셨어요.

종일 식당에서 일하셨던 엄마는 퇴근할때는 허리가 너무아파서 집으로 올때는 엉거주춤 자세로 겨우 집으로 오셨어요.

저랑 세살차이 오빠는 국민학교 다녔었는데 학교갔다가 집에와도 저밖에 집에 없으니 친구들이랑 밖에서 밤늦게까지 놀다가 오곤했어요.

어린저는 매일 혼자서 집에만있으니 너무 심심하고 무섭고 배고팠고 특히 밤만되면 무서움이 더해져서 엉엉 울면서 엄마를 기다렸어요.

그런 저를 안쓰러워 하던 엄마는 성주새마을유아원 으로 저를 보내주셨어요.

아직도 그당시 제가 다녔던 성주새마을유아원 이라고 적혀있던 나무로된 표지판 같은걸 잊을수가 없네요.


반이 두개였는데 백합반이 있고 장미반이 있었어요.

저는 백합반에 배정을 받았고 이후 즐겁게 등원을 시작했어요.

엄마는 식당일로 너무 바빠서 오티때도 못오셔서 저혼자 오티때 혼자 있었고 등하원도 매일 혼자서 꽤나 먼거리였지만 했었어요.


그게 백합반 담임선생님 한테 좋지않아보였는지 저한테만 유독 차갑게 대했고 싫어하는티를 냈어요.

6세였지만 저는 눈치가 굉장히 빨랐고 다른사람들의 기분이나 감정을 빠르게 파악했어서 바로 알수가 있었어요.

다른 친구들은 깨끗한 옷 입고 예쁜옷 입고 오는데 저는 늘 냄새나고 지저분하게 다니니까 그럴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철없이 엄마한테 나도 깨끗히 씻겨주고 머리도 길러주고 예쁜옷도 사달라고했지만 너무나 가난한집에 수도시설하나 있는것도 감사해야하는 현실이라 변할수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그래도 혼자서 집에있는건 죽도록 싫어서 참고 꿋꿋하게 등원을 했어요..

근데 그 백합반 선생님은 제가 지천명을 바라보는 이 나이가 되어서도 아니 죽어서도 절대 못잊을 일을 제게 했었어요.

당시 제 대략적인 기억에 백합반 아이들이 4~50명 가까이 됐는것같은데 선생님이 노래부르자고하면 놀다가도 쪼르르 자리로 가서 다 앉았어요.

율동하면서 노래하는게 재밌으니까요.

근데 그 노래중에 1명이 율동노래중 다른친구를 데리고 나오면 2명이되죠 그 2명이 또 율동 노래를 하며 다른 친구를 데리고 나옵니다. 그러면 4명이되고 4명이 또 다른친구들 데리고 나가서 같이 율동노래를하는~

그렇게 되면 반전체가 다같이 나가서 율동노래를 같이 하게되는 거죠..

근데.. 친구가 저를 데리러 오는데 백합반 선생님이 쟤는 시켜주지마라고 했습니다.

충격이었고 부끄럽던 저는 혼자 자리에 앉아서 반전체친구들 율동하는 모습을 봐야하는 굴욕을 당했습니다 이유도 모른체!


그게 일회성으로 하는거면 좋았는데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그걸 해서 그시간만되면 저는 혼자 또 앉아있을 챙피함에 너무나 싫었어요.

백합반 선생님이 몇번이나 쟤는 시켜주지마라고 하니 나중에는 반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저만 제외하고 앞에서 율동노래를 하는꼴이 됐죠.

너무 피하고싶은 그순간 항상 그 백합반 선생님이 절 무표정으로 쳐다봤고 저는 재미없는척 율동을 소극적으로 했어요.

그런날이 반복되니 평소 잘 놀았던 친구들도 더이상 저랑 놀아주지않았고 남자애들은 저를 때리기도 했어요.

지나가다가 때리고 지나가도 선생님은 아무런 제지도 안했고 쳐다보기만 했어요.


그 어린 여섯살 저는 이 사실을 절대 엄마한테 얘기를 안했어요.. 못했어요..

저때문에 속상하실까봐 일부러 더 씩씩한척했어요.

글 적으면서도 당시 저의 감정들을 올라와 눈물이 나네요...

어느날 어떤 남자애가 저를 심하게 때리길래 어차피 선생님은 방관할것을 알아서 엄마가 일하는 식당에 찾아가서 얘기했어요.

화가난 엄마는 제 손을 잡고 성주새마을유아원 으로 달려왔고 자초지정을 들은 백합반 선생님은 그랬냐고 걱정해주는척 하며 그 남자애를 부르더니 저보고 그애를 때리래요.

저는 시키는대로 그애를 때렸고 선생님은 엄마에게 신경쓰겠다고 한 후 돌려보내셨어요.

정말 지금 같으면 뉴스나올 사건같겠지만 그당시는 저랬어요..

그날이후 선생님은 지능적으로 아닌척 저를 더 미워했으며 그 율동노래는 여전히 저만 외면됐어요.

더이상 거간 가고싶지않아 엄마한테는 그냥 이제 안가겠다고했고 계속 집에만 있더라도 지옥같던 그곳은 안가는게 좋았어요.

이후 사람들이 왜 유치원 안가고 집에만 있냐는 동네사람들 질문에 엄마는 애가 옷이 없어서 못간다고 그렇게만 대답하시더라구요.

그에대해 저는 할말이 많았지만 가슴에 묻었어요.

가족들 마음에 상처가 될까봐.

어린나이였지만 힘든엄마와 아픈아빠.. 밤늦게 오는 오빠 누구하나 나때문에 마음이 아프지않았으면 했어요.

이후 얼마지나지않아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자랐네요.

지금은 좋은남편 잘 만나서 자녀를 키우며 행복하게 잘 사는데 그때 기억들이 가끔 떠오르면 그때 감정들이 생생하게 떠올라 저를 과롭히네요.

남편한테 처음으로 그때 얘기를 했는데 그 백합반 선생 꼭 죄받았을거라고 하네요.

지금은 살아있어도 고령이겠고...

70은 넘었을것 같네요.

살아있다면 꼭 이 글을 보길 바라고 죄책감 가지고 살길 바랍니다.

남편제외 아무한테도 말못했던 제 사연을 여기다가 터놓으니 속이 시원하고 좋네요.

모두들 건겅한 몸과 마음으로 살길바래요.

가해자는 제외하고..
추천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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