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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정신병원에 가든 내가가든 둘중 하나임

ㅇㅇ |2025.08.11 18:14
조회 245 |추천 2
판에 글을 처음 써봐서 가독성 떨어진다면 미안
내용 엄청 길거임…


나는 지금 20대 중반 여자고 일하고 있음
우리 아빠는 50대고, 무직이심

우리 아빠는 예전부터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푸는 경향이 심했음. 특히나 하시던 요식업이 잘 안되던 15년전 즈음부터 라고 생각함.


얘기하자면 정말 길지만, 내가 기억하는 내 유년기의 아빠는 좋은 사람이었음. 재롱잔치며 놀이공원이며 어디든 다 데려가고 무엇이든 다 사주셨음. 20대 초 부터 꾸준히 직장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대신, 아빠와 고모, 그리고 친할머니가 나를 정말 잘 돌봐줬음. 그래서 초등학교 저학년때까지는 정말로 행복했음


하지만 초등학교 2-3학년이 되고나서 아빠는 조금씩 달라졌음. 하루가 멀다하고 집안에서 소리를 치며 욕을 해댔고, 냉장고 문을 열어 음식통을 집어던져 깨트리거나, 엄마의 휴대폰 (아직도 기억함. 고아라폰이 완전히 박살났음.) 부수고 엄마에게 다가가 때리려하자 엄마가 사시나무 떨 듯이 주저앉아 떨고 있는 모습. 그럴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하나였음. 조용히 내 방의 문을 닫고 책상에 앉아 상황을 외면하는 거였음.


그때살던 집은 거실도 넓고 내 방도 넓었음. 초등학생 아이치고는 꽤나 커서, 나는 그 방이 언제나 쓸쓸하게만 느껴졌음. 아빠는 늘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담배를 피며 밖에 나오질 않았고, 엄마는 늘 아침일찍 근무를 하러 나가 얼굴을 보지도 못했음. 숙제를 안해가서 혹은 준비물을 안챙겨서 혼나도 집에서 지도해주는 사람이 없었고, 학교선생은 상담 중 우리엄마에게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새지않는다는 법 없다“ 따위의 말을 하며 부모 앞에서 자식인 나를 흉봤다고 함. 심지어는 아빠의 30년지기 친구가 나에게 “ㅇㅇ이는 공부못할것같다.“ 라고 했는데도 아빠는 아무말도 안했다고 함.


아이들과 내가 따로 학교에서 트러블을 일으킨 적도 없음. 오히려 내가 왕따를 당하면 당했지. 초1-2까지만 해도 학급회장 투표에 자신있게 나가던 나는 초3부터 점점 어두워지고 말수도 줄었음. 그런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던건 학교 도서실이었음. 저녁 6시까지 있다가 왜 집에 안오냐고 혼날정도로. 어쩌면 도서실은 나한테 아무 소음도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도피처 였는지도 모름.


아이들이 전부 가는 수학여행, 수련회를 우리아빠는 극구반대했고, 오죽하면 초5 선생님이 내가 겉돌까봐 걱정되어 직접 설득하기도 했음. 시험이 끝나고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겠다고 한게 점심 12시였는데, 아빠는 12시 30분까지 오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었음. 그런 와중에도 남들이 술약속에 불러내면 잘만 나갔음. 초3인 나와 6살차이나는 여동생을 단 둘이 집에두고, 나보고 동생과 고기를 구워서 먹으라고 한 다음 그냥 가버린 적도 있었음.


한번은 할머니가 나한테 “아빠가 또 싸우면 알려줘라“ 라고 하셨고, 나는 어느날 밤 할머니한테 문자를 보냈음. 너무 무섭다고, 아빠가 또 화낸다고. 다음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아침일찍부터 무슨 저승사자마냥 두분 다 새까만 옷을 입고 오셔서는, 아빠의 미닫이 방문을 벌컥 열고 자고 있던 아빠의 뺨을 후려치고 발로 밟으며 난리를 치셨음. 엄마는 옆에서 말리려했지만 할아버지가 제지했음. 엄마는 내게 빨리 학교 가라며 나를 보냈지만, 나는 그날처럼 학교가는일이 기뻤던 적이 없었음. 아빠가 울면서 때리지말라고 할머니한테 소리치는게 통쾌하고 고소하기만 했음. 매일매일 그러길 바랬음.


아빠는 나를 초2 부터 각종 도구로 나를 때렸음. 성적이 안나와서. 나는 중1 때 엎드려 뻗쳐를 한다음 아빠에게 “소리내면 더 맞는다“ 라는 말을 들으며 알루미늄 빗자루로 허벅지 열대를 연속으로 맞았음. 골프채 잡고 후려칠때 하는 자세 그거 맞음. 다음날 그 빗자루는 버렸음. 완전히 찌그러져서. 183cm의 건장한 성인남성에게 맞은 다음날엔 맞은 부위가 온통 부르트고 피멍이 들었지만, 아빠는 매번 내게 남자로 태어났으면 더 맞았다는 말만 해댔음.


그런 아빠에게 날이 갈수록 반항심은 커져만 갔음. 사실 맞는것보다도 가장 싫었던 건, 아빠가 내뱉는 쌍욕 이었음. 아빠의 입에서는 정말 오만가지 쌍욕이 나왔음. 원수에게도 그렇게 말 못할정도로. ㅆㅂㄴ은 기본 호칭이었고, ㅆㄴ, ㅆㅂ, ㅂㅅㄴ, 죽여버린다, 심지어는 몸이나 팔거냐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했음. 중학교1학년때부터 지금까지, 화가나면 무조건 욕부터 내뱉었음. 나는 차라리 때려달라고 했음.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너무 화가 나서 혼난 직후에 나는 몰래 노트에 아빠를 죽이는 그림까지 그리게 됐음. 내방 문을 벌컥열고 들어온 아빠가 그 그림을 보자마자 정말로 내 멱살을 잡고 바닥에 던지고는 인정사정없이 밟아댔음.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그 폭력을 내가 당할줄은 몰랐음. 숨이 막혔고 컥컥대는대도 계속 그렇게 밟았음.

스트레스는 쌓이는데 엄마는 등신같이 아무말 못하고, 아빠는 폭군으로 군림했음. 나는 팔을 칼로 자해하면서까지 오열하며 제발 정신상담을 받게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니가 왜 비정상이냐는 말이었음. 자신의 딸이 정신병이 있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기 싫은것처럼.


나는 경찰에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으로 신고 해봤지만 경찰이 도움됐던적은 단 한번도 없음. 매번 진정하세요 선생님 하고 갈 뿐이었음. 나이를 먹고 아빠의 평소 성격도 유해졌지만, 화나면 미친개가 되어서 쌍욕을 퍼붓는건 여전했음. 정말로 정말로 끔찍했던건, 내가 종종 아빠에게 맞고 욕먹을때 친구들에게 털어놨었는데, 나중에 내가 요즘 힘들다고 하면 친구들입에서 자동으로 가장먼저 “아버지가 또 뭐라셔?“ 라는 대답이었음. 아빠 언급은 하지도 않았는데. 그만큼 친구들 사이에서는 내가 아빠에게 학대당하는 아이로 각인되고 있었음.


몇번이고 몇번이고 자살할 생각을 했음.
옥상에 올라가기도 하고 칼을 쥐기도 했음. 너무 힘들었음. 학교에서 자살위험학생으로 분류되어 상담을 받았는데, 내 동생마저 똑같이 자살위험학생으로 분류되자 화가 머리끝까지 폭발했음. 처절하게 소리치며 대들었음. 자식 둘뿐인 집안에 둘다 자살위험군으로 분류된게 정상이냐 물었지만 아빠는 아직도 그게 내 사춘기 반항 중 하나정도로 알고있음.


아빠는 다른 사람이 말하는건 무조건 비웃고, 틀렸다고 생각했음.

얼마전에 한국남자가 일본여자랑 결혼하는게 많아지는 이유가, 나는 그저 사회가 더욱 잘살게됐고 예전처럼 무조건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사회가 아니니, 결혼 대신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 여자들도 많을 뿐이다. 이제 더이상 결혼이 필수인 시대가 아니다. 남자들도 결혼 안하고 잘 사는 남자 없겠나. 라고 했지만 아빠는 코웃음쳤음. 이게 다 한국여자가 결혼안해줘서 그렇다고, 한국여자 탓이라고.


수없이 말을 해도 결론은 “한국여자 탓“ 으로 귀결되었고, 나는 그 망할 고집에 너무나도 질려서 자리를 박차고 방으로 들어왔음. 그리고 정신병 약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음.


나도 이게 제발 구라이길바람. 초등학생때부터 끊임없이 내게 세뇌한 다른 집들은 우리보다 더 심하다는 아빠의 말이 진실이길 바람. 이러다간 어느날 정말로 죽어버릴 것 같아서 어디다 털어놓고 싶었음. 아빠는 자꾸 우리가 무직인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해서 더 심하게 대한다는데, 무직이라서 무시한적 단 한번도 없음. 우리에게 쌍욕하고 분위기 말아먹는걸 무시하는 거임.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움
추천수2
반대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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