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가족이 편하지 않았다.일반적인 분위기에서 자라 오진 않았어도 나름 유대감이라는 걸느끼며 살아왔었는데 사춘기 때도 아닌 스물넷이나 되어서가족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나이를 먹으면 철이 들어서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사춘기가 지나면 다 돌아온다.”
내가 길고 긴 사춘기를 겪고 있는 걸까이제는 가족이라는 지칭마저 환멸이 난다. 이게 뭐라고 놓을 수 없는지.
남들같이 키우지 않았으면서 남들 같길 바라는 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닌가. 폭력 가정에서 자라게 해놓고 싹싹하고 애교 많은 딸이 되길 바라는 게 너무 모순적이다. 가족여행이 싫고 가족행사가 싫다. 누군가에게 내 자랑을 할 때면 스스로 이룬 내 성과를 본인들의 덕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게 싫다.
그런데도 마음껏 원망할 수가 없다. 그래도 엄마니까 아빠니까.아빠가 엄마를 때려도, 엄마가 술 주정을 부려도 내 엄마 아빠니까. 생판 남이었으면 그냥 끊어버리고 남았을 것을 그 약하디 약한 울타리에 덕지덕지 붙은 가족이라는 테이프가 질기다.
남들보다 일찍 눈치를 배웠고 자존감을 잃었다.아빠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게 숨죽였고 숨었다. 아빠를 욕하는 엄마를 위로했다.어린 나는 아빠를 원망하게 됐고 나는 엄마에게는 감정 쓰레기통이 되었다. 그때는 아빠가 나쁜 사람이고 엄마가 불쌍했다. 결혼하지 말고 엄마랑 단둘이 살고 싶었다.근데 내가 자라고 보니 엄마도 똑같이 나에게 가해자였다.
그걸 깨닫지 말았어야 했는데깨닫지 않았으면 좀 나았을까. 그냥 가스라이팅 속에서 엄마를 사랑했으면 우리 모두 더 행복했을 텐데
자취를 하고 보니 내가 독립을 얼마나 원했는지를 깨달았다. 왜 자취를 하고 있음에도 엄마한테 연락이 오면 숨이 막혔는지 이제야 알겠다. 가족이 아닌 내가 나를 지키는 울타리가 될 수 있다는 걸 몰랐기 때문에 스스로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된 지금 내가 이렇게 무너지고 있는 거야
가족 같지 않은 부러질듯한 울타리에서 자라와서인지튼튼하고 안전한, 아늑한 새 울타리를 짓고 싶다. 어서 이 집에서 도망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