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이 너무 길어 읽으시기 어려울까봐 요약 이미지도 첨부합니다. 앞서 관심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https://m.blog.naver.com/apateia98/224064541446
안녕하세요.
저는 평택시수어통역센터에서 근무하다 퇴사한 전 수어통역사입니다. 최근 직장 내 괴롭힘 문제와 인사권 남용 의혹을 제보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제가 제보한 글이 정제되지 않고 전문 그대로 공유될 줄 예상치 못해 공식적인 제보문으로 다시 작성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감정을 표출하려는 게 아닙니다. 부당한 조직 문화를 바로잡고 직장 내 괴롭힘을 끊어내기 위한 공익적 목적에서 작성했습니다. 부디 제 글이 모든 부당한 일들을 바로잡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말씀드릴 부분은 크게 일곱 가지입니다.
1. 공황장애 관련
입사 당시 저는 비상약조차 가지고 있지 않을 정도로 공황장애가 호전된 상태였습니다. 마지막 약물 처방은 2020년 여름이었고, 그마저도 끝까지 복용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실질적으로는 5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경기도 평택시에서 서울 소재 대학에 대중교통을 이용해 통학을 할 만큼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입사 이후 불합리한 기준과 대우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며 증상이 재발했습니다. 업무 기준과 복무 규정이 시점과 인물에 따라 일정치 못했기 때문입니다. 입사 초기 센터장은 의상과 관련해 두 가지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화려한 무늬나 영문이 있는 옷은 지양할 것”, “모자가 달린 상의를 입지 않을 것”. 입사 직후엔 정확한 기준을 몰라 헤맸으나 명확한 기준을 묻고 나선 이를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러나 기준 외의 복장에도 반복적으로 지적받았습니다. 동일한 기준을 지키지 않은 다른 직원에게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기에, 저만 유독 지적받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가지 기준 외에도 지적을 받고 해당 기준을 지키지 않은 직원에게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점 때문에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외에도 다른 직원들에 대한 막말 등이 제게 커다란 스트레스로 다가왔습니다. 예정에도 없던 해외연수가 급하게 결정되자, 저는 관리자 두 분께 제 건강 상태를 보고했습니다. 섣불리 내세우기 꺼려지는 병력이었으나 문제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보고하게 된 것입니다. 회사에는 보고 체계라는 게 있다고 생각했기에 고심해서 두 분께 예방적 조치가 가능하도록 부탁드렸습니다. 관리자 두 분께서는 제 상황을 이해하시고 다른 직원들이 신경 쓰이지 않도록 조용히 도와주셨습니다. 저도 미리 안정제 두 종류를 가져갔고 취약한 상황이나 상태를 만들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연수 중 두 차례 공황발작이 발생했습니다. 공황발작 때 겪은 괴롭힘에 대해서는 후술하겠습니다. 해외연수가 끝나고 회의 자리가 마련되었는데 실질적으로 저에 대한 청문회 같은 분위기 였습니다. 제가 심문 받고 질타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발작 당시 왜 사과하지 않았나”
“발작이 끝난 직후에 사과하면 되지 않느냐”
여러 가지 말이 오갔으나 센터장이 제게 한 말들은 트라우마로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공황장애가 더욱 악화되어 발작 빈도와 강도가 심각해졌습니다. 그때의 기억으로 자책을 많이 하게 되었고 우울증 발병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저의 첫 제보문이 공개된 이후 센터장은 AI를 활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명글을 공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해명글에는 “해당 직원이 공황장애 병력을 적극적으로 알려 안팎으로 도움을 요청하였더라면 배려하며 독려하였을 것이다.”라는 취지의 대목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센터장이 병력을 알고 난 후에도, 저는 공황장애에 대한 배려보단 날선 시선과 부담을 주는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제가 화장실에 다녀올 때마다 다른 직원들에게 제 행방을 일일이 물어가며 찾으시고, 단체 채팅방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하거나, 사유서를 요청하기도 하셨습니다. 사유서를 제출했을 때 ‘입사한 이후로 악화되었다'는 부분을 삭제하라며 반려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병력을 알고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는 것. 그게 더욱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2. 업무 중 방관과 책임 전가
2024년 11월 21일 오전, 특정 이용자의 안과 통역을 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갑작스런 통역이었기에 저를 비롯한 센터장, 농통역사가 동반했습니다. 해당 이용자가 백내장 수술 후 불편함을 호소하며 의료진에게 극렬히 항의하고 있었고, 상황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드려도 납득하지 못하시는 상황이었습니다. 1시간이 넘게 병원 내 고성이 오가자 저는 중재 및 상황 종료를 위해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농통역사는 같은 병원에 동반한 타 이용자 통역을 맡고 계셨고, 센터장은 제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센터장은 신입 통역사인 저에게 “직접 이야기하라"며 개입 및 중재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친절히 설명도 해 보고 애써 웃으며 달래도 드리고 그림까지 그려 가며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센터장은 적극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병원에 있는 환자와 의료진들이 피해를 보고, 상황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를 중재하고자 선임 통역사에게 조언을 구하려 했으나, 통역 중이거나 급한 업무 중이셨습니다. 그 와중에 저는 위경련이 와서 허리를 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휴가 중인 특정 직원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센터장은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왜 그 직원에게 전화를 했느냐"고 질책했습니다. 이는 2024년 11월에 있었던 일이었지만 퇴사 직전인 2025년 6월까지도 “왜 그 직원에게 전화를 했느냐"는 같은 질책이 반복되어 심리적으로 위축되었습니다.
사태 이후 센터장은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제게 돌렸습니다. 해당 이용자가 의료진에게 화를 냈던 것은 수술에 대한 오해가 있었기 때문인데도 불구하고, “해당 이용자가 왜 화를 냈는 줄 아느냐. 네가 웃어서 그렇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저는 최선을 다해 상황을 수습했으나, 센터장이 도리어 그 일의 원인과 책임을 제게 돌리는 것 같이 느껴져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3. 폭력성 및 부당한 신체 접촉
센터장은 해명문을 통해 “직원을 때린 적이 없다"고 하였으나, 저는 공황 발작 도중 빨리 내리라며 손바닥으로 등허리를 수차례 치거나 행사 준비 도중 손가락으로 밀치는 등의 행위를 경험했습니다.
2024년 11월 20일 오전, 센터장은 갑작스러운 해외연수를 결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센터장이 지회 직원을 빼고 가자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당사자에게 흘러 상처를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해외연수는 미리 논의되고 있던 사항이 아니었던지라 여권이 없던 직원은 당일에 급히 만들러 가야 했습니다.
2024년 12월 5일 싱가포르 연수 도중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만원 엘리베이터를 탄 후 공황 발작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진정시킬 새 없이 케이블카를 타게 되어 과호흡과 경련이 심화했습니다. 처음엔 증상을 숨겨보려 애썼으나 상황이 심각해 케이블카 내부 전 직원이 상황을 알 수밖에 없었습니다. 센터장님은 제가 발작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도 등허리 부분을 서너 차례 쳤습니다.
‘폭행의 의도가 있었는가'에 대해 논쟁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해명문에 수어로 터치했다거나 진정시키려는 의도였다고 작성하셨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수어로 전달하다 보니 했던 접촉이라면 제가 볼 수 없는 등허리 쪽을 친다는 게 논리적으로 맞는지 의문입니다. 진정시키기 위한 일이었다면 빨리 나가라고 재촉하며 수차례 치는 행위가 상식적인지 궁금합니다.
행위자의 의도를 단정할 수는 없으나, 피행위자인 저는 부당한 대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저는 센터장의 행위에 급히 내리다가 5초가량 실신하였고, 나중에 이때의 상황을 돌아보며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정말 제가 공황 발작 증세를 보이고 있어서 그러한 행위를 하신 거라면, 오히려 질병을 이유로 부당한 대우와 차별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2025년 1월 24일 정기총회 및 윷놀이 대회 리허설 날이었습니다. 외부 인력인 PD님이 강당에서 행사 준비를 돕고 계셨습니다. PD님은 제게 멀티탭이 필요하다며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에게 전달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저는 당시 사무실에 가있는 게 확실한 동료에게 이를 전달하였고, 동료는 바로 강당으로 갈 예정이라며 멀티탭을 가져가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센터장은 이를 문제 삼으며 현장에서 손가락으로 밀치며 고성을 쳤습니다.
이러한 행위가 단순히 언어의 차이일까요? 의사소통 중 생긴 오해일까요? 수직적인 조직 분위기에서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거친 신체 접촉과 언행을 하는 것이 ‘의사소통'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저는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생각합니다.
4. 야근 관련
수어통역센터는 업무 특성상 긴급한 상황이 자주 발생합니다. 교통사고, 질병, 상해 등 갑작스러운 통역 요청이 오기도 하고, 지자체 및 상급기관으로부터 빠듯한 기한의 제출 서류를 요청받기도 합니다. 갑작스러운 야근을 피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을 설명드립니다.
센터장은 “오전 중 보고하지 않은 야근을 승인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어떤 직원은 오전 중 보고하지 않고 야근을 했음에도 수당을 인정받았고, 어떤 직원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같은 날 오전 시간에 야근을 신청한 직원 중에서도 제 야근만 반려한 날도 있었습니다. 야근이 불필요한 일이라거나 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반려 사유도 듣지 못했습니다. 2025년 2월 11일 오전, 저는 한경대 지원 사업으로 제작하던 소식지 제출 기한이 빠듯하여 야근을 신청했습니다. 점심시간 직전, 센터장은 단체 채팅방에 야근을 허락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이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특정인에게 불이익을 준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업무량이 과다하고 기한이 촉박한데 야근을 인정해주지 않아 무급 노동을 한 적이 수차례 있습니다.
반면 저는 센터장이 야근 수당을 받은 날 실제로 근무 수행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을 목격했습니다. 2025년 3월 12일 저는 야근을 하고 있었고 센터장과 한 직원이 원탁에 앉아 간식을 먹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센터장은 일이 많아 야근을 하는 거라고 언급했으나, 책상에는 단 한 차례도 앉지 않고 퇴근하는 걸 목격했습니다. 이후 제가 담당인 시간 외 신청서 및 확인서를 확인하니 해당 일자에 야근 수당을 신청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런 것은 야근이 인정되고 직원들이 진짜 일한 시간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5. 복무 관련
제 업무일지나 업무 다이어리에도 쓰인 바와 같이, 저는 살인적인 업무량에 시달렸습니다. 저의 계약 기간은 9개월이지만, 제 손을 거쳐가지 않은 업무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다양한 일을 해왔습니다.
품의서 및 결의서, 4대 보험, 퇴직연금, 보조금 시스템, 선거 준비와 개표, 대표자 변경, 근무 상황부, 비품, 출장 명령부, 센터폰 담당, 직원 건강검진, 소식지 제작, 법정 의무 교육 및 직무 교육, 자원봉사자 관리, 통역 실적, 후원자 관리, 전자 기부금 영수증, 원천세, 연말정산, 단축 급여 계산, 수어 교실, 찾아가는 수어 교실, 후원 물품 수령.
생각나는 것만 나열해 보았습니다.
저는 계약 기간 동안 단 한 차례도 단 1분도 늦은 적이 없습니다. 되려 최소 30분 정도는 일찍 출근해 빠르게 일을 시작했습니다. 과다한 업무량 때문도 있었으나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해외 연수 이후 공황 발작에 대한 막말을 들은 트라우마로 병세가 악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업무 도중 과호흡, 경련, 복통, 실신, 빈맥, 부정출혈 등의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종종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었고, 저는 대신 업무 밀도를 높이고자 노력했습니다. 업무 시간에 딴짓을 안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잠깐 쉬는 것조차 드물었습니다.
맡은 업무량이 상당했기에 제가 다 못 해서 피해를 줄까봐 아침에 30분에서 1시간은 일찍 출근해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가 맡은 바를 완수하고 구체적인 메뉴얼까지 제작하고 퇴사했습니다.
한편 센터장께 의문을 제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센터장은 다른 농인 직원에게 업무 시간에 개인 통역을 의뢰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개인 통역은 휴가를 쓰고 의뢰하라고 수차례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는 다른 모습을 보았습니다. 업무 시간에 부동산, 기차표 등 개인 통역을 부탁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다른 농인 직원들과 센터장의 잣대가 다른 게 여전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6. 차별적 언행 및 부적절한 지시
앞서 언급한 대로 특정 직원에게만 과도한 지적과 감시를 반복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법정 휴게 시간인 점심시간에 특정 직원이 구내식당에 없으면 다른 직원들에게 수소문하여 행방을 묻는 일도 있었습니다. 같은 사무실에 있는 지회 직원의 자리만 빼고 청소하라는 지시를 한 적도 있습니다.
2024년 11월 9일 한국농아인협회 경기도협회 평택시지회장 선거가 있었습니다. 센터장은 이 선거에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하였습니다. 이후 ‘지회와 센터 분리'라는 명목 하에 기존에 하던 일을 그대로 하는 직원들에게도 무분별하게 화를 냈습니다. 하던 업무를 중단하라거나 다르게 하라는 등의 특별한 지시가 없었음에도 그러했습니다. 그 외에도 지회장이나 지회 직원이 무거운 물건을 들 때 돕지 못하게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회 회계 업무를 임시로 담당하던 제게 지회 인수인계를 열심히 하지 말라는 지시도 한 바 있습니다.
2024년 11월 27일, 센터장이 제게 개인 면담을 호출했습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갔으나 그중 가장 괴롭게 남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본인과 사이가 좋지 않은 특정 직원을 감시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한 기관의 장에게 이러한 내용을 들었다는 점과, 이에 따른 괜한 죄책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2025년 3월 21일, 센터장은 같은 사무실에 있는 근로지원인과 지회 직원, 행정 도우미를 배제하고 센터 직원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분들만 회의실로 불러 피자를 먹었습니다. 센터장이 분실물을 찾아준 대가로 받은 피자라는 점은 알고 있으나,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 소수의 근로자만 배제하는 행위는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2025년 5월 22일, 센터장은 한국농아인협회 중앙회에서 추진하는 자격증 개편에 대한 찬성 서명을 강요했습니다. 직원들이 거부 의사를 여러 차례 표명했음에도 서명을 강요했고 전 직원이 개인의 자유 없이 서명해야 했습니다.
이 외에도 근거 없는 이야기가 직원들 간 신뢰를 해치는 일도 있었습니다.
2025년 1월 17일, 특정 직원이 자녀 졸업식으로 인해 휴가를 사용했습니다. 반면, 저는 회계 처리를 위해 은행 통장 정리를 다녀와야 했습니다. 점심시간과 합쳐 다녀오게 되었고 실제 법정 휴게 시간보다 적게 사용하여 다녀왔습니다. 이후 제가 그날 특정 직원의 자녀 졸업식에 참석해 가족들과 식사 자리를 가졌다는 허위 사실이 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2025년 3월 10일, 저와 특정 직원의 휴가가 겹친 날이었습니다. 이후 센터장이 이날 제가 특정 직원의 자택에 방문해 이삿짐 싸는 걸 도왔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사실 센터장이 공개한 해명문에서 차별적 사고가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출산 대체인력”, “계약직"을 수차례 반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모든 일들이 직원 간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직장 내 위계를 이용해 조직에 불신을 자리 잡게 한다고 느꼈습니다.
7. 연임에 대한 의문점
저는 단순히 저의 억울함이나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저는 이 기관을 떠났지만, 이것이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 얼마나 교묘하게 지속되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았습니다.
① 두 지원자의 조건, 자격, 경력, 학력이 거의 유사합니다.
② 1번 지원자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민원을 받은 사례가 많습니다. 이는 중앙회에서도 익히 알고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③ 2번 지원자는 타 센터에서 문제없이 근무해 왔습니다.
④ 1번 지원자와 2번 지원자의 경쟁에서 1번 지원자가 선택받은 합당한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
정량적 조건 중 2번 지원자가 1번 지원자보다 부족한 부분이 무엇입니까? 경력, 자격, 학력, 조건 모두 비슷한데 어느 부분에서 당락이 갈리게 되었습니까? 혹여 정량적 조건이 아닌 정성적 조건에서 갈렸다면, 면접에서 정확히 어떤 대답이, 자기소개서에서 어떤 내용이 그간 수어통역사들의 고통들을 누를 만큼이었는지요. 저는 그게 궁금합니다.
8. 마치며
저는 이 기관에서 심각한 우울증과 악화된 공황장애를 얻고 퇴사했습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동료들, 앞으로 이 기관과 함께하게 될 직원들이 같은 고통을 겪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코다(CODA)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수어와 농사회에 항상 관심을 가졌고 지금은 깊은 애정까지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공개하는 걸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저의 개인적 아픔이 공개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지만, 제 얼굴에 침을 뱉는 듯한 기분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남아있는 직원들이 피해를 볼까 싶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공익 제보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용기를 낸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부디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