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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26-완결

까미유 |2004.03.19 19:19
조회 1,584 |추천 0

마지막회

 


화분에 물을 준다. 예전엔 항상 내가 물을 주곤 했었는데 그동안 돌보지 못했다.

아마도 그동안 하은이 물을 준 모양이다. 내가 하나씩 하나씩 너를 대신하던

일들을 이제는 하은이 니가 하는 구나....나두 널 떼어내는 게 마치..심장을 도려

내는 기분이라는 걸 아니...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를 연다. 갈증이 난다. 물병을 꺼내다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위로 떨어진다. 병은 소리를 내며 깨진다. 나는....멍하니 바라본다.


***

작업실을 둘러본다. 낡은 히터...커피포트....완성되지 않은 채 하얀 천을 덮고 있는

죽은 그림들...그리고 볕이 드는 창가에 놓여진 작은 화분 몇 개...쇼파위에

반듯이 개워놓은 담요....여기저기 물감이 베어진 책상과 탁자....오래 되진 않았지만

그리운 것들....주머니 속의 해바라기를 만지작 거린다.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내가 돌아 올 때까지 너희들은 여기에 지금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주길 바래....박교수가 들어온다. 내 어깨위에 손을 얹는다.

나는 가늘게 한숨을 내쉰다.


***

오랫동안 잠을 자는 것 같다. 하은이 내놓은 옷가지들을 가방에 넣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하은이 아직도 잠을 잔다. 침대 가까이로 간다. 하은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다.

숨소리가 거칠다.


-하은아, 하은아.....



***

누군가 나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뜬다. 눈을 뜨면 낯선 물체들이 먼저 보인다.

그리고 준하가 있다. 준하의 눈에 눈물이 그렁하다. 준하에게 팔을 뻗어 본다.

준하가 내 손을 잡는다.


-미안해.....미안해...내가 정말.....미안해...


울부짖는다. 준하야...울지마...우리 울지 않기로 했잖니....니가 울면 나두 울어...

그때 병실 문을 열고 언니가 들어온다. 준하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언니는

화가 난 듯 준하의 뺨을 사정없이 내리친다.


-내가 왜 널, 때리는지 알지 너?


준하의 고개가 꺽어진다. 준하의 볼이 빨갛다.


-언니...그러지마....준하 때리지마.

-너, 알고 있었어?


언니가 준하에게 소리친다.


-하은이 임신한 거 몰랐지?....어떻게 니가 모를 수가 있니?

-언니...제발...준하한테 뭐라 하지마...내가 말 안했어....나, 아퍼. 또 아프려구 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언니는 내 앞에 와서 앉는다.


-한 번은 눈 감아 줄 수 있어....다신, 그러지마. 엄마한테 안 알렸어...준하야...

  너, 다신 그러지마.


언니가 준하에게 등을 보이고 앉아 말한다. 준하는 그냥 서서 울기만 한다.


-준하야....이리와.


준하는 보지 않는다. 가만히 서서 울고만 있다.


-언니...나 준하한테 할 말 있어...


언니가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비켜준다. 언니가 나가고 준하는 내 앞에 와서 앉는다.


-준하야...


대답을 하지 않는다.


-손 좀 잡아줄래?


준하가 꺼억꺼억 울며 내 손을 잡는다.


-괜찮아...난, 괜찮아. 많이 걱정했니?


준하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처럼 소리를 내어 울며....마음 아프다. 니가 너무 이쁘고,

안쓰러워서 맘이 아프다....


-아기....괜찮은 거지?

-어...


숨이 막힌 듯 내뱉는 준하의 대답 뒤에 울음소리가 더 커진다.


-울지마...다, 괜찮잖아...준하야....나, 잠온다. 잘 때까지 거기 그렇게 있어줄거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거기 그렇게 있어. 눈이 다시 감긴다. 준하야....



***

박교수는 운전하는 내내 나를 힐끔 쳐다 본다. 사람 자꾸 힐끔 거리지마...보려면

똑바로 보든지, 안 보려면 아예 눈도 주지 말든지. 언젠가 준하에게 내가 한 말이

떠오른다. 준하와 내가 주고 받았던 유리 같았던 말들....잘못 뱉으면 깨져버리고

말 것처럼 불안했던 것들....그런 것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차창 밖으로 눈이 내린다.

겨울 들어 첫눈이다. 준하야....눈 온다. 너 지금 이 눈 보고 있니?....영화에서

그러더라. 첫 눈 오는 날 함께 있는 사람하고....사랑이 이루어진다고....


-괜찮아?


내리는 눈을 보고 아마도 나를 걱정했을 것이다. 이런 날....내가 준하를 떠나는 날...

이렇게 눈까지 온다. 너와 내가 헤어지는 걸 축복하는 걸까....아님...진정 내가

가야할 길을 제대로 찾아 들어온 걸 축복하는 걸까....


-고마워요, 그동안.

-내가 고맙단 소릴 들을 만한 일을 한건가...다행이군, 나는 따귀를 올려 붙이면

  어쩌나 그랬는데....당신, 웃을 때가 참 이쁘더라. 이제 평생 흘릴 눈물은 다 흘

  렸으니 앞으로 웃을 일만 남은 거지?


그래요...웃을 일만 남았으면 좋겠네요...진눈깨비가 곧 굵어지기 시작했다.

거리의 사람들은 하늘 바라보고 뛴다. 안녕....준하야.


***

하은이 잠 들어 있는 사이에 집으로 간다. 하은의 옷가지를 몇 벌 챙겨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잠시 혼자 있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달리는 차안에서 흩날리는 눈을 본다.

나는 잠시 차를 세우고 앉아 하늘을 올려다 본다.


-선배...지금 뭐해요?....혹시라도 내 전화 기다리는 거에요?....선배, 하은이가 많이

  아파요...너무 많이 아파서....내가 선배에게 지금 갈 수가 없어요....나 때문에...

  아기가 다칠 뻔했어요....난, 왜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아픔만 주는 걸까요...

  미안해요....정말 미안해요....이럴 줄 알았다면...선밸, 잡아두지 않는건데...때늦은

  후회도...이제와서 용서가 되진 않겠죠?....이럴 줄 알았다면...정말 이럴 줄 알았다면...

  사랑한다고....그 말 한마디쯤은 해줄걸.....내 이기심에 하은이도, 선배도 상처만

  받고....기다리지 말아요....이렇게 추운 날 혼자서...날, 기다리지 말아요....미안해요...

  그리고....사랑해요 선배.



***

다음 날 이른 새벽....골목 골목마다 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 있다. 밤새 내렸을 눈은

아직도 내리고....사람 발자국 하나 없는 새 길은 누군가의 발길 기다리고 있었다.

희뿌연 새벽 길을 따라 한참을 지나면 서울역이 보인다. 옆 앞엔 아무도 없다.

떠나는 사람도, 돌아오는 사람도....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시계탑의 바늘은 다섯시 오십육분을 가리키고 있다....초침이 움직인다. 오십칠분,

오십팔분, 오십구분....정확히 여섯 시를 가리킨다....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삼 년후---


아이의 울음소리가 크게 울린다. 침대위에 지쳐 골아 떨어진 하은은 당체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준하는 방바닥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자고 있다. 아이는 흔들 침대위에 홀로

버려진채 울기만 한 시간이다.


-준하야....지니 울어....


하은이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준하를 찾는다. 준하는 부스스한 머리로 겨우 상체를

일으킨다. 잠에 지쳐 정신을 못차린다.


-준하야....어떻게 좀 해봐....아우, 증말...


하은이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앙탈을 부린다. 준하가 일어나 아기 침대앞에 다가간다.

아이를 번쩍 안아 들고 거실로 나간다. 너무나 익숙한 솜씨로 아이의 젖병을 찾아

분유를 타고 뜨거운 물을 붓고....손등위에 몇방울 떨어 뜨려 본다. 그리고 아이의 입에

젖병을 물리면 아이는 그새 울음을 그친다. 쇼파에 앉아 젖병을 물리는 준하가

고개를 까닥까닥 한다. 그새 졸고 있다. 이런 풍경들이 평범하지만 평화롭게 보인다.


***

-준하야...뭐해? 아직 멀었어?

-다 됐어...


서재에서 준하의 목소리가 들린다. 가방을 챙겨 나온다. 하은이 아일 안고 있고

준하는 서둘러 신발을 신는다.


-지니야...아빠, 다녀올 때까지 엄마 너무 힘들게 하지마....


아이의 볼에 입에 뽀뽀를 하고 하은의 볼에도 뽀뽀를 해준다.


-준하야, 차 조심하구, 사람 조심하구...

-알았어...개조심두 할게.

-그래, 다녀와.

-어, 나중에 전화할게.

-어...


준하가 가고 전화벨이 울린다. 하은인 아이를 안고 뛰어가 수화기를 찾아 든다.

청담동에서 걸려온 전화다. 준하의 엄마다.


-나다, 준하는 출근했니?

-네 어머님...

-오늘 차 나왔다. 나중에 애비한테 보내마.

-안 그러셔두 되는데...

-너 여기 올때마다 불편해서 안돼...너 생각해서가 아니라 지니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아버지가 주시는 선물이니까 암말 말구 받어...

-감사합니다 어머님.

-이번주에 다녀갈거지?

-네.


전화를 끊고 아이를 데리고 욕실로 들어간다.


***

-아니, 거기 말구...저기가 낫겠어.

-여기요?

-어, 거기가 낫다. 됐네.

 

그제서야 맘에 드는지 지니는 한결 가벼워진다. 꽃병 하나까지도 제자리를 찾아

두는 게 맘이 편한가 보다. 갤러리 안은 인부들이 북적댄다. 페인트 칠 하나 하나까지도

지니는 입을 댄다. 박교수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입구에 서 있다.

그러나 지니와 시선이 마주친다.


-언제 거기 있었어요?

-조금 전에. 당신, 보기보다 까탈스러운 데가 있었네.

-수업은 어쩌구요?

-어쩌긴...그 옛날에 유지니 땡땡이 치던 실력 좀 배웠지....


박교수가 웃는다. 지니도 피식 웃는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박교수가 손수건을 꺼내 준다. 그걸 받아 이마의 땀을 닦는다.


-언제야 오픈이?

-이번 주 토요일요.

-뭘 그렇게 급하게 서둘러?

-그것두 늦은 거에요...점심 했어요?

-아직...

-그럼, 가요. 요 근처에 매운탕이 끝내주는 집이 있거든요.


지니와 박교수가 함께 걸어 나간다. 뒷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


***

준하의 차가 지나간다. 지니와 박교수는 그 차를 보지 못한다.

준하 역시 그들을 보지 못한다. 걸어 가다 문득 뒤를 돌아보는 지니...

고개를 갸웃거리고 그냥 지나친다. 그러다 주머니속의 해바라기를

꺼낸다.


-그게 뭐야?

-어...해바라기요.

-누가 해바라기인지 몰라서 물어? 이니셜이 있는 것 같은데...누구야?

-우리....아빠, 엄마요.


환하게 지니가 웃는다. 그리고 해바라기를 다시 주머니 속에 집어 넣는다.




***

그동안 저의 글을 읽어 준 모든 님들께 감사합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건, 오래 전 노희경님의 거짓말이란 드라마를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 드라마를 정말 가슴 시리게 보았습니다.

그들이 아팠을 것임에도 불구하고...나두 저런 사랑 한 번 받아 봤으면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죠. 사랑은....가해자가 없습니다. 모두

피해자죠. 저는 하은이와 준하, 그리고 지니....이 세 사람이 바라본

사랑이 다 아프고 절절했고...안타까웠습니다. 사랑 앞에선 그 누구도

강하지 못하고 악하지 못합니다. 내가 안타까운 것은 박찬영이란 인물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사람을 좀 제대로 표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음엔 더 좋은 글로, 더 아름다운 이야기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파랑새님, 마루님, 희망님, 희야님, 고구마님, 최정화님, 빨간여우님,

혜석님, 해피님, 애독자님, 독자님, 바부팅이님, 저두요님, 화창한날님,

power님....또 있나요?....모든 님들....정말 고맙습니다.

다음에 좋은 글로 다시 만나요.

읽는다구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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