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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구걸하는 위치라는 생각은, 이제 정반대가 되었다.

까니 |2025.12.07 07:52
조회 42 |추천 0




므리바의 물

2
공동체에게 마실 물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갔다.

3
백성은 모세와 시비하면서 말하였다.
“아, 우리 형제들이 주님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4
어쩌자고 당신들은 주님의 공동체를
이 광야로 끌고 와서,
우리와 우리 가축을
여기에서 죽게 하시오?

5
어쩌자고 당신들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고약한 곳으로 데려왔소?
여기는 곡식도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자랄 곳이 못 되오.
마실 물도 없소.”

6
모세와 아론은 공동체 앞을 떠나
만남의 천막 어귀로 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그러자 주님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났다.

7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8
“너는 지팡이를 집어 들고, 너의 형 아론과 함께
공동체를 불러 모아라.
그런 다음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저 바위더러
물을 내라고 명령하여라.
이렇게 너는 바위에서 물이 나오게 하여,
공동체와 그들의 가축이 마시게 하여라.”

9
모세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주님 앞에 있는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10
모세가 아론과 함께 공동체를 바위 앞에
불러 모은 다음,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 반항자들아, 들어라.
우리가 이 바위에서 너희가 마실 물을
나오게 해 주랴?”

11
그러고 나서 모세가 손을 들어 지팡이로
그 바위를 두 번 치자, 많은 물이 터져 나왔다.
공동체와 그들의 가축이 물을 마셨다.

12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믿지 않아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공동체에게 주는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

13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과 시비한
므리바의 물이다.
주님께서는 이 물로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셨다.





12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믿지 않아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스라엘도 하느님을 믿지 않아서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게 되었냐면,

그 어떤 거룩함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구걸하시는 하느님이 아니시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사실인 것입니다.




"믿지 않아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ㅡ12절.

이 성경구절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믿음을 구걸하는 행위로 보입니까.



오히려 신은 오늘날 영적존재가 방언과 안수기도에 따라
실제 움직임으로써, 인간에게 구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나 도와주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기위해서라면 하느님께 구걸해야 하는데,
되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믿으라고

또, 하느님께서는 믿음을 구걸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습니다.


또,

"사람들은 흔히 기도를 드리고도,
그 어떤 응답도 받지 않았다고 신은 없다"라고

이야기까지 항상 하곤 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요.
방언으로 기도를 해 보셨습니까.


방언은 성경에서도 나오는,
말하는즉시 이루어 지는 "영의 언어"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들은
"혼의 언어"입니다.


방언이라는, 성령에 힘입어 보셨습니까.
또, 방언은 바로 실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영의 언어인 방언으로 기도하면, 바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마지막시대임에도

대부분은 모르고, 성령회관에 다닌다는 매우 열정적인
극소수만 알고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는 묻습니다.

방언이 무엇입니까. 방언이 성령입니까.
방언은 처음 듣습니다 혹은 방언이 성령기도입니까.


성령을 전면에 내세운 적이 없었다는 이유로,
"마지막 시대"조차 성령을 내버려두고

성경구절이라는 신의 힘은 무시하고,
오로지 사람의 힘에만 의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개신교의 모범적인 사례도,
예수님과 성체성혈도 없다는 이유로

존중할 가치는 요만큼도 없다는 말씀입니까?




일반인도 논할수 있는 학문마저도
개신교라는 이유로 땅에 묻고 썪여 버리겠습니까.


개신교 신자는 성령을 일찍부터 활용하여,
그 마케팅 때문에 많은 개신교인들은 방언을 알고 있으며,

그게 천주교 신자보다
나은 점으로 평가할수 있습니다.


개신교에게는 방언은 은사 중에 가장 기본은사로써
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항인 것입니다.




성령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등 실제로 개신교인들은,
방언이라는 성령도 힘입어 보았기 때문에,

믿음이 크게 증가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며,
이는 개인적인 생각에만 머무르지 않았음을

개신교는 1000만 신자수라는 통계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1000만 개신교를 금방 이룰 수 있었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아니, 성경에서도 믿음은 성령과 관련이 깊다고
말씀입니다.




방언도 성령을 힘입는 방법이 아닌가요?
방언이 신기한 영의 언어가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방언을 할수있게 됨으로써,
믿음이 크게 늘었다는 개신교인들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믿음은 성령과 관련이 있습니다.
보십시요.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할수 없습니다.
ㅡ 고린도전서 12장 3절



천주교는 성령을 힘입는 방법을 너무나 모르고 또
성령이 무엇인지도 느낀적이 없으며,

게다가 천주교에서는 처음보는 성령의 활동에
어색하기 때문에, 천주교의 신자들이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천주교는 믿음은 없습니다."




개신교보다 훨씬 믿음과 멀리 떨어져 있기에,
천주교는 실제 다니는 신자수가 90만으로

600만 중에 "실제 신자는 바닥"이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느냐고 그 대답을 꼭 말하라하면,
천주교는 거의 없다고 말할수 밖에 없습니다.



천주교는 성령이 전무한 상태이거든요.




이는, 천주교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수 있는
천주교신자가 거의 전멸상태로써 없었던 것입니다.


성령의 기능이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성경만 보면 되겠지,
성경을 읽다가 어쩌다가 믿을자는 믿게 되겠지. 하고

낮은 확률에 천주교는 오로지 그 인간의 힘에만
신자수를 내맡겼었는데

오히려 성경에서는 성령을 적극 활용하여
믿음을 증가시키라고 이야기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개신교는 성경대로한 결과가
1000만 개신교를 천주교보다는 늦게 시작하였음에도
굉장히 일찍 이룩하지 않았습니까.




믿음이 없다면,

심지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조차도 예수님께서는
그 어떤 거룩함을 보여주시지도 또

드러내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믿음은 성령에 힘입는것"이라고
성경에서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구걸하시는 위치나 존재가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항상 착각하고

신에 대한 믿음은 랜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자들에게 성령이라는 특효약이
너무나 절실해 보입니다.





이제 신에 대한 생각이나 정립은
바뀌어져야 할만큼, 우리는 실제로 환난도 겪었습니다.



이제 신이 이렇게나 명백히 드러났다면,
우리가 하느님께 무릎을 꿇고 경배 드려야 하겠습니다.


신이란 존재는, 우리나라 악신에게 이미 맛보게 된적이
우리는 실제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종교를 멋대로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가 종교를 선택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이제는 아닙니다.
신은 그정도로 실존함을 이야기 하였던 것입니다.




책에 쓸만큼 또 신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종교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사실을
우리나라는 악신에게 지배아래라는 고통의시간을 겪으면서

신이란 존재의 위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되었으며,
신이란 단어는 꼭 다시 재정립되어야 하는 위치로

그 위상이 완전히 천지개벽처럼 뒤바뀌어 버렸습니다.




자, 신이란 단어는 재정립되어 있습니다.
암도 치유, 불치병도 치유. 마귀에게 구마까지.

심지어 성모님께서도 발현하시어,
전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기적과 함께,

천주교의 성체성혈은 진짜 사람의 심장조직과
진짜 사람의 실제 피라는 과학적인 측정결과이자 검증까지

이 모든 객관적인 자료들만 보아도,
개신교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천주교만 객관적으로도

이미 완료된 상태인 것입니다.





개신교는 성체성혈도 이벤트로 여기며 또한
객관적이라는 필수인 과학적인 검증과 증거가

전혀 없었으므로,
이는 개신교는 예수님을 한번도 몸에 모신적이 없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부르짖는 셈입니다.





개신교는악신에게 처절한 패배를 당하고 또
굴욕의 쓴 잔을 맛보지 않았습니까.



신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우리는 절대자만을 꼭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역으로 악신에 의한 환난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자. 그 절대자는 하느님이십니다.
보십시요.


@전세계의 1/2의 신자수.

@하느님의 종교"들"은 하나가 아니며, 여러개다.

@실제로 암의 치유와 불치병도 치유가 된다.

@전세계적으로도 수없이 방대하게 많은 부분에서조차
기적과 실제사례들이 넘쳐난다.





자.여기서 절대자이기에 또 무엇이 부족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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