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 파블리코프스키(Paweł Pawlikowski) 감독의 2013년 작품 <이다>(Ida)는 폴란드 영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으로, 1960년대 폴란드를 배경으로 한 흑백 영화이다. 이 영화는 폴란드의 역사적 비극과 개인의 정체성 탐구를 깊이 있게 다루며, 인간의 신앙, 죄책감, 속죄, 그리고 진실을 찾는 여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다>는 전통적인 종교적 가치와 현대적 도덕적 갈등을 아름답고 조심스럽게 탐구하며, 이로 인해 국제적인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영화는 아카데미상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고, 폴란드의 역사적 아픔을 전 세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다>는 그 자체로 예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일 뿐만 아니라, 폴란드의 복잡한 역사적 맥락을 깊이 탐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영화의 배경인 폴란드는 원래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이 전개된 곳이지만, 다른 한편 유대인 박해의 역사 또한 갖고 있었다. 2차대전의 종전, 나치의 집단 학살이 끝난 뒤 유대인들은 수용소에서 해방되었지만, 그들이 원래의 땅으로 돌아오는 것에 위험을 느낀 일부 폴란드인들이 유대인을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946년 7월 폴란드의 카일체에서는 유대인들이 폴란드 소년을 죽여서 종교의례에 사용했다는 거짓된 소문들이 퍼지면서 대학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학살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전쟁 이후 유럽을 떠나도록 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다>는 그런 어둠의 역사를 아주 은밀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영화 <이다>는 주인공 안나(Ida)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안나는 고아로 자라나 수도원에서 수도 생활을 준비하는 수녀이다. 영화는 1960년대 폴란드를 배경으로, 안나가 수녀 서약을 하기 전 그녀의 유일한 혈육인 이모 반다 그루즈(Vanda Gruz)를 만나기 위해 수도원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가족이 없어 수녀원에서 자란 안나(아가타 트르제부초우스카)는 수녀로서의 서원식을 앞두고 자신에게 혈육이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이모 반다 그루즈(아가타 쿠레샤)가 바로 그인데, 수녀원에서는 그녀에게 여러 번 편지를 보내 안나를 데려가라고 했지만 '데려가지 않겠다'라는 답을 받았음에도 원장 수녀는 하나뿐인 혈육이니 서원식 전에 찾아가서 만나라고 안나에게 명령한다.
자신을 찾아오지도 않고 데려가지도 않은 이모이지만 안나가 찾아가니 박대하지는 않는다. 좀 차가워 보여도 안나를 자기 혈육으로 인정하고 집으로 들인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 차차 알아가는 식의 대화가 아니라 처음부터 직설적으로 모든 비밀을 말하는데, 그것은 안나의 본명이 '이다'라는 것과 자신들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이었고, 부모님이 폴란드인의 손에 살해당해 숲속에 버려졌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묘지라도 찾아보겠다는 이다의 말에 반다는 선뜻 동행하겠다고 나서고 따라나설 뿐 아니라 이다를 당황하게 할 만큼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반다와 이다의 부모가 살던 집에 찾아가 그들을 어디에 묻었느냐고 묻는 두 사람. 지금 살고 있는 그 사람들은 뭔가를 알고 있는 게 분명한데도 쉽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반다는 대형 공판을 주로 맡았던 주 법원 판사의 경력을 갖고 있었다. 사형도 제법 내렸던, '피의 반다'로 불렸던 이력이 있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들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명의를 확실하게 거주자에게 이전해 주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거주자의 아버지를 다시 찾아가지 않는 조건으로 이다의 부모가 묻힌 곳을 알려주겠다는 답을 듣는다. 이다의 부모가 살아있을 당시 찍었던 사진 속에는 남자아이가 한 명 있었다. 이다는 자신의 오빠냐고 이모에게 묻지만 반다는 '아니야'라고만 대답했었는데, 반다는 감정을 억누르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누워있는 노인(현 거주자의 아버지)에게 묻는다.
"많이 무서워했나요?"
"누구?"
".. 남자아이요."
숲속 어느 지점에 이르러 땅을 깊게 파자 유골이 나온다. 그리고 두상이 작은 해골이 하나 같이 나오는데 반다는 그 해골을 품에 안고 서럽게 운다. 그 남자아이는 반다가 낳은 아이였다. 유대인이 학살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반다는 아이를 동생에게 맡기고 전쟁터로 나갔던 것이고, 그 사이 지금의 거주자들은 이다의 부모와 반다의 아이를 숲에 숨겨준다고 속이고 죽였던 것이다.
부모님의 유골을 찾아 가족이 묻혀 있는 곳에 안장하고, 이다(안나)는 다시 자신이 살던,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수녀원으로 돌아간다. 젊고 아름다운 이다가 삶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수녀로 사는 것을 반다는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그녀의 선택이기에 존중할 수밖에 없다. 이모와의 여행길에 (부모님의 시신을 찾는 여정) 우연히 만난 젊은 재즈 연주자가 그녀에게 호감을 표현하지만 이다는 신께 자신의 삶을 서원했던 것을 돌이킬 생각이 없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이다는 이제야 만난, 세상에 남은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이모 반다를 잃게 된다. 반다는 자신의 아이를 지키지 못했던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 눈으로 아이의 유골을 보게 되자 삶의 의욕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것이다.
존재를 몰랐던 가족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를 만나서 시간을 함께 보내고 둘만이 공유하는 아픔과 슬픔도 깊이 나누었는데 그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이모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가족으로서 그녀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이다는 그녀를 보러 온 리사(재즈 연주자)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모가 입어보라고 했던 드레스를 입고 리사가 연주하는 공연을 보러 가고, 그와 함께 춤을 추고 사랑을 나눈다. 이모가 없는 이모의 집에서 그녀의 흔적을 느끼며 이다는 그녀만의 애도식을 치른 것이다.
리사는 이다와 함께하는 삶을 그리지만, 그리고 이다 역시 이모를 잃은 아픔 때문에 신을 향한 믿음을 잃고 이모가 말했던 평범한 삶을 선택한 것으로 보였지만, 아직 자고 있는 리사를 두고, 이다는 다시 수녀복을 입고 수녀원으로 향한다.
이런 행동들은 어디까지나 이모의 죽음을 애도하고, 다시 홀로 남은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는 세리머니일 뿐이었다. 그녀는 오래전 결심했던 것, 평생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신과 자신에게 약속했던 것을 지키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바흐의 아름답고 슬픈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이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안나를 처음 만난 이모의 첫 질문은 “내가 누군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니?”라는 말이었다. 누구인가, 무슨 일을 했는가는 물음은 영화의 주된 질문이다.
부모님 묘소에 가보겠다는 안나의 말에 이모는 “시신도 못 찾고 있다. 그러다 신이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떻게 할래?”라고 묻는다. 안나의 여정은 그러므로 상관적인 두 질문에 대한 해답 찾기로 이어진다. 그 하나가 부모, 과거의 내력, 자신의 정체성 찾기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가 되돌아와야 할 신에게로 열린 영혼의 탐구이다.
안나의 수녀원 바깥으로의 여행은 갑작스러운 운명, 숨겨진 과거, 혹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 역사의 시간과 만나는 탐험이다.
<이다>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신앙과 정체성의 갈등이다. 이다는 수녀로 사는 삶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녀가 부모의 죽음과 자신의 유대인 혈통에 대해 알게 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다. 그녀의 신앙과 새로운 정체성 사이의 갈등은 영화의 중심 갈등을 이루며, 이는 우리가 직면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문제 중 하나로 다가온다.
또한 반다는 이다와 함께 여정을 떠나면서,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선택과 그로 인한 죄책감에 직면하게 된다. 반다는 공산주의 정권에서 일했던 과거와 개인적인 비극을 함께 짊어지고 있으며, 이는 그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녀의 죄책감은 이다의 부모가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과도 연관되어 있으며, 이는 인간의 죄책감과 속죄의 문제로, 개인이 과거를 어떻게 극복하며, 이를 받아들여야 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다>는 폴란드의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적 맥락을 배경으로, 집단적 기억의 문제를 제시한다. 이다와 반다가 겪는 개인적인 고통은 폴란드의 역사적 비극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유대인 학살과 공산주의 정권 아래에서의 억압은 이야기의 전체 흐름에 배경을 형성하며, 그 안에서 개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그들의 자기 모습을 유지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집단적 기억을 개인의 이야기와 결합하여, 역사와 개인의 삶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며, 단순한 개인 차원의 이야기를 넘어서, 폴란드 사회 전체가 겪은 고통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를 보여준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다>는 개인이 어떻게 과거와 화해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다>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영화 전체가 흑백 화면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흑백 화면은 영화의 고전적이고 묵직한 분위기를 강화하며, 관객들이 영화의 주제와 캐릭터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흑백의 구성은 또한 영화의 주제와도 잘 어울리며, 이다와 반다가 겪는 내적 갈등과 역사적 비극의 무게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다>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다. 영화는 과거와의 화해, 정체성의 탐구, 그리고 개인의 선택이 가져오는 도덕적 책임을 다루는데, 이러한 주제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다>는 우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과거의 고통과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영화”이다“는 2015년 국내에 개봉됐다, 영화의 배경인 현재는 1962년 공산주의 체제의 폴란드이지만 과거의 사건은 1941년 "예드바브네 학살"을 배경으로 한다.
"예드바브네" 학살은 1941년 나치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폴란드 예드바브네에서 폴란드인들이 최소 340명의 유대인을 헛간에 가두고 불을 질러 죽인 사건으로 나치에 의한 학살이 아닌 이웃으로 살던 유대인을 학살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