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비 가문이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이유
하누카 이야기를 담은 책들은 히브리 성경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가톨릭 성경에는 실려 있습니다.
마카비 상·하권은 유다 마카비와 그의 형제들이 유다를 외세의 지배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벌인 전투에 관한 가장 상세한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들에는 성전 재헌납에 관한 가장 초기의 언급이 포함되어 있으며,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유명한 한나 이야기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권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누락되어 있습니다.
이 누락 문제를 다루기 시작하려면 히브리어 성경 정경의 형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경(canon)"이라는 단어는 원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으며 "기준" 또는 "측정"을 의미합니다. 성경 정경에 대해 언급할 때 이 단어는 특정 종교 집단 내에서 권위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글들의 모음을 지칭하는 데 사용됩니다. 유대인들에게 성경 정경은 타나크에 수록된 책들로 구성됩니다.
히브리 성경의 정경화 과정은 흔히 서기 90년경 얌니아 공의회(Council of Jamnia. 히브리어: יבנה, 야브네)와 연관됩니다.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Yochanan ben Zakkai)는 예루샬라임이 로마군에 의해 파괴되기 전에 탈출하는 데 성공했으며, 얌니아(Jamnia)에 유대인 거점을 재건할 허가를 받았다.
바로 그곳에서 히브리 성경 정경의 내용이 논의되고 공식적으로 채택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최근 몇 년간 지지자를 잃어가는 학계의 주장입니다. 어쨌든, 이러한 논의들(언제 어디서 이루어졌든)을 둘러싼 논쟁의 일부는 랍비 문헌에 등장합니다. 비록 그 논쟁의 완전한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자료들이 정경에서 제외되었고 어떤 것들이 포함되었는지에 대해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여러 이론들
외경서 배제에 대한 여러 이론이 존재합니다. 그 중 한 가지 이론은 히브리어로 원본이 작성된 책들만 정경 편입 대상으로 고려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경에 포함된 다니엘서(Daniel)는 상당 부분 아람어(Aramaic)로 기록되었습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점은 학자들이 마카비서 상권이 실제로 히브리어로 원본이 작성되어 언어 기준을 충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 정경에서 누락되었다고 믿는다는 사실입니다.
마카비서 상·하 두 권이 누락된 또 다른 이론은 이 문서들의 연대 기록에 근거합니다. 비록 성경 정경이 얌니아(Jamnia)에서 공식화되었다고 흔히 추정되지만, 인정된 책 목록이 훨씬 이전에 존재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즉, 얌니아에 모인 랍비들이 이미 비공식적으로 정경으로 인정된 문서 목록을 물려받아 단순히 이를 공식화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마카비 반란이 비교적 늦은 시기에 일어났기 때문에 이미 인정된 이전 목록에 포함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책은 전통 속에 확고히 자리 잡은 역사적 근거가 없었기에 진지한 고려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나 '새로운' 책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론은 다니엘서와의 비교를 통해 크게 약화됩니다. 대다수 학자들이 다니엘서를 마카비 반란 시기인 기원전 165년경, 즉 마카비서들에 기록된 사건의 시기로 추정함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서는 성경 정경에 포함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카비서들의 배제는 제 2성전 후기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사이의 정치적 경쟁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전을 관리하던 사제 계급인 사두개파는 초기 랍비 계급인 바리새파가 공개적으로 주창한 구전 해석을 노골적으로 거부했습니다. 마카비 가문은 제사장 가문이었으나, 얌니아에서 성경 정경의 최종 형태를 결정했을 가능성이 있는 랍비들은 바리새파의 후예들이었습니다.
마카비서 배제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간 갈등의 마지막 포화 중 하나였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하스모네안 제사장 가문을 이토록 노골적으로 찬양하는 문서를 얌니아의 랍비들이 정경으로 채택하려 했을까요?
실용주의와 정치
아마도 그 해답은 실용주의와 정치의 영역에 더 가깝게 있을 것입니다. 마카비서는 시리아 왕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에게 맞선 마카비 가문의 반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몇 세기 후, 유대 학자들은 성전이 파괴되고 예루샬라임을 잃은 채 얌니아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의 처지는 로마에 맞선 자신들의 반란이 실패한 결과였습니다.
유대인 반란의 성공적 결과를 예고하는 텍스트를 홍보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다고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이는 내외부적으로 위협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인들은 그러한 텍스트의 대중화를 결코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실패한 시도로 인한 참혹한 결과를 간신히 견뎌내려는 백성들에게 반란의 개념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내부적/외부적 갈등이 하누카 이야기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아마도 역사 속에서 다시 한번 펼쳐진 바로 이 갈등이 하누카에 관한 기본 텍스트들이 성경 정경에 포함되는 것을 막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카비서가 히브리 성경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역사적 층위 때문에 전통적인 유대교 맥락에서는 이런 가치를 두는 것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제 1마카비서와 제 2마카비서는 알렉산드리아 유대인 공동체를 위해 처음 제작된 히브리 성경의 그리스어 번역본인 칠십인역에 포함되었습니다. 그런데 칠십인역은 신생 기독교 교회의 공식 성경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유대 공동체는 그 권위를 거부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카비서는 기독교 정경에 편입되면서 오히려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수세기 동안 분명히 소실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정경화가 이루어진 후, 이 책들은 유대 세계에서는 수세기 동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유대인 사회 내에서 이 책들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습니다. 유대 역사와 유대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유대 역사상 중요한 시기의 세부 사항, 사건, 인물들을 기록하기 위해 애를 쓴 이 문서들의 가치를 인정합니다. 비록 어느 유대 공동체에서도 정경의 일부로 간주되지는 않지만, 이 책들은 하누카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기념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다시 읽히고 연구되고 있습니다.
By Rachael Turkienic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