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잊혀진 유대인 여왕: 쉘로메찌온 알렉산드라(Shelamzion Alexandra)

phantom |2025.12.21 05:56
조회 27 |추천 0

 

잊혀진 유대인 여왕: 쉘로메찌온 알렉산드라(Shelamzion Alexandra)

그녀의 평화로운 통치는 권력, 신앙심, 유대인의 리더십에 대한 많은 가정을 뒤집었습니다.

옛날 옛적에 유대 왕국을 다스리는 유대인 여왕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쉘로메찌온 알렉산드라(Shelamzion Alexandra)였으며, 기원전 76년부터 67년까지 통치했습니다. 비교적 짧은 기간이었지만, 전쟁과 내전으로 지친 유대 땅에 안정과 번영을 가져다주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유대인들처럼, 그녀의 이름도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히브리어 이름(שְׁלוֹמְצִיּוֹן, 쉘로메찌온, "시온의 평화"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어 이름(Alexandra. 알렉산드라)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셀레우코스(Seleucid) 왕조의 그리스인들로부터 마카비(Maccabees) 가문이 독립을 이루고 약 60년 후, 그리고 헤롯(Herod) 왕보다 수십 년 앞서 유대를 통치했던 쉘로메찌온(שְׁלוֹמְצִיּוֹן)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시내 거리 표지판에서 그녀의 이름을 볼 수도 있지만, 그 외에는 거의 기억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통치 후 몇 세대 동안 쉘로메찌온(그리스어로 살로메(Salome)은 유대인 여성들에게 두 번째로 인기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이는 권력, 신앙심, 그리고 유대인 리더십에 대한 우리의 많은 고정관념을 뒤집은 여왕에 대한 존경심을 반영한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랍비들은 점차 쉘로메찌온을 그들의 이야기에서 삭제하고, 그녀의 남편인 알렉산더 얀네우스(Alexander Jannaeus)로 대체했습니다. 기독교 복음서는 더 나아가 그녀의 증손녀(살로메 라고도 불림)를 쟁반에 담긴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는 매혹적인 댄서로 묘사했습니다. 18세기와 19세기에 이르러 서구 작가들은 "살로메"를 위험하고 관습을 초월하는 여성성의 상징으로 변모시켰습니다. 경건한 여왕에서 팜므파탈(femme fatale)로 변모하는 이 이름의 변화는 여성의 권력이 어떻게 기억되고, 억압되고, 비방되는지에 대한 더 큰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고대와 현대 역사가들이 남성의 이야기를 선호했기에, 하스몬 왕조(Hasmonean dynasty)에 시집가 그 가문의 일원이었던 여성들은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남편 알렉산더 얀나이우스 왕이 죽기 전 쉘람찌온의 삶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쉘로메찌온은 장성한 두 아들,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와 히르카누스(Hyrcanus)를 위해 쉽게 왕위에서 물러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임종을 앞둔 왕은 그녀에게 직접 왕위를 계승할 것을 권했고, 그녀는 동의했습니다. 그녀는 아마도 아들들이 내전에 휘말릴 것을 예견했을 것입니다 (결국 실제로 그렇게 되었고, 로마와 페르시아의 개입으로 그 지역에 파괴적인 결과가 초래되었습니다).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대담한 선택이었는데, 특히 권력에 매달린 여성들이 오래 살아남기 어려웠던 왕조에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전임의 용감했던 어머니는 아들에게 투옥되어 굶어 죽었습니다). 그러나 쉘로메찌온은 민족의 평화를 확보하기로 결심했고, 결국 성공했습니다.

당시 유대인 여성 통치자의 모델은 거의 없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가장 유명한 왕비들인 이세벨(Jezebel)과 쉐바(Sheba)는 외국인이었고, 나중에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성경의 율법에 여성의 왕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은 없었지만, 후대 랍비들은 신명기의 "너희 위에 왕을 세우라"는 명령을 여성을 배제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이 굳어지기 수 세기 전, 쉘러메찌온은 백성의 축복, 혹은 적어도 용납을 받으며 통치했습니다.

놀랍게도 랍비 문헌은 쉘로메찌온을 범법자가 아닌 덕의 귀감으로 기억합니다. 한 미드라쉬는 쉘로메찌온 여왕 시대에 비가 많이 내렸다고 기록하는데, 이는 그녀의 지도 아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평화와 풍성한 비를 누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 세기 후,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쉘로메찌온을 경건하고 정치적으로 기민했다고 묘사합니다. 바리새인들을 박해하고 학살했다고 알려진 남편과는 달리, 그녀는 그들을 영향력 있는 지위로 끌어올리고 사두개인들을 강등시켰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토라 공부와 도덕적 행동을 강조한 것은 결국 우리가 아는 유대교의 출현을 위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개입과 지원이 없었다면 다른 상황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요세푸스는 다소 마지못해 이 여인이 "현명하고 유능한 행정가였음이 증명되었다"라고 인정합니다. 그녀는 군대 규모를 두 배로 늘리고, 국경을 확보했으며, 정복보다는 신중한 외교를 통해 평화를 유지했습니다. 그녀는 외국 지도자들 사이에서 존경을 받았고, 더 중요한 것은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아들들의 경쟁으로 유대가 혼란에 빠졌지만, 그녀는 생전에 유대를 통일하고 자유를 유지했습니다.

유대 전통은 종종 다윗, 유다 마카비등 전사형 왕들을 찬양합니다. 하지만 쉘로메찌온은 다른 종류의 영웅심, 즉 절제를 통해 이끄는 용기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종 비교되는 또 다른 유명한 유대 왕비 에스테르(Esther) 처럼 쉘로메찌온은 남성 중심적인 궁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했고 외교를 통해 백성을 보호했습니다.

그녀는 군주제에 대한 모호한 전통에서 예외적인 존재입니다. 에스테르의 이야기는 용기와 영리함의 이야기입니다. 무력이 아닌 전략으로 백성을 구한 여성입니다. 쉘로메찌온은 바로 그러한 미덕을 구현합니다. 두 사람은 지배보다 설득을 중시하는 리더십의 본보기입니다.

두 가지 사이에는 놀라운 역사적 우연이 있습니다. 그리스어 에스더서에 따르면, 이 두루마리는 기원전 78년경, 쉘로메찌온이 왕위에 오르던 시기에 번역되어 예루샬라임에서 알렉산드리아로 보내졌습니다.

탈 일란(Tal Ilan)을 비롯한 학자들은 에스더 이야기를 널리 알린 것이 쉘로메찌온의 왕비 지위를 정당화하려는 더 광범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유대 세계에 여성 통치자에 대한 신학적 선례를 제공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의도적이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 시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이 푸림을 기념하기 시작했을 때, 진정한 유대인 여왕이 유대 유대인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쉘로메찌온의 이야기는 유대인 리더십의 모습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혀줍니다. 그녀는 신화 속의 구원자나 성경 속 인물이 아니라, 용기와 경건함, 그리고 지성을 바탕으로 통치했던 실존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유대 역사에 왕, 예언자, 랍비뿐 아니라 공동체를 지지하고 지탱했던 여왕, 여 예언자, 그리고 지혜로운 여성들도 있었음을 일깨워줍니다.

그녀의 이름 자체가 고대 유대인의 기도문에서 따온 것입니다. 샬롬 찌온(שלום ציון), 즉 찌온의 평화입니다. 여전히 평화를 갈구하는 세상에서, 그녀의 유산은 우리에게 힘뿐만 아니라 온유함, 정의, 그리고 배려에 뿌리를 둔 리더십을 상상하게 합니다.

By JewishLearning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