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불복종: 이집트의 산파들부터 마틴 루터 킹까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보다 훨씬 이전에 이집트의 두 산파는 부당한 법에 맞서 싸웠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시민 불복종의 전통을 형성하는 도덕적 용기의 시작이었습니다.
매사추세츠주 브루클린의 톡스테스(Toxteth) 거리 9번지에 윌리엄 잉거솔 보우디치 하우스(William Ingersoll Bowditch House)가 있습니다. 1840년대와 1850년대, 이 집은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의 '정거장'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남북전쟁 이전 수십 년간 미국 내 10만 명 이상의 흑인 노예들이 자유를 찾아 탈출할 수 있도록 돕던 정교한 비밀 경로와 안전지대 네트워크의 일부였습니다.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 18세기 후반부터 남북 전쟁까지 활동했던, 노예 상태에 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미국 북부와 캐나다로 탈출하기 위해 이용했던 비밀 네트워크로, "역"과 "차장"과 같은 철도 비유를 사용하여 "승객"(자유를 찾는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안내했습니다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위대한 협력 운동이었던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는 연방법이 노예 상태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돕는 것을 범죄로 규정했던 시대에 벌어진 대규모 시민 불복종 운동이기도 했습니다. 즉, 지하철도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법을 어긴 사람들이었지만, 동시에 도덕적 영웅이기도 했습니다.
그 집 앞을 지날때면, 그곳에서 난민들을 숨겨준 미국인들에 대해 종종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은 법을 알고 있었고, 법을 어길 경우 어떤 처벌을 받을지, 즉 기소, 무거운 벌금, 투옥 등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양심의 가책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도망노예법(The Fugitive Slave Act)은 의회에서 정식으로 제정되고 대통령이 서명한 합법적인 법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매우 부당한 법이기도 했으며, 지하철도의 남녀들은 그러한 법에 복종하는 것보다 더 높은 의무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최초의 시민 불복종자들
하지만 그들이 그러한 딜레마에 직면한 최초의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정의로운 법 위반의 전통은 미국 남북전쟁 이전 시대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습니다. 기록상 가장 초기에 시민 불복종 행위를 한 사람은 세 명의 여성으로, 그들의 이야기는 출애굽기 서두에 나옵니다. 이들은 고대 이집트 사회 계층의 정반대 끝에 있었습니다. 두 명은 시프라와 푸아라는 이름의 미천한 산파였고, 나머지 한 명은 이집트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파라오인 람세스 2세의 딸인 공주였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인종 학살을 명하는 칙령으로 시작됩니다. 파라오는 노예로 삼은 히브리인들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 시프라와 푸아에게 갓 태어난 히브리인 남자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두 여인은 차마 그 명령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출애굽기 1장에 기록된 대로,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이집트 왕의 명령대로 하지 아니하고 남자아이들을 살려 두었습니다.”
불복종에 대한 해명을 요구받았을 때, 그들은 파라오에게 너무나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히브리 여인들은 출산이 너무 빨라 산파가 도착하기도 전에 아기가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반항은 용감할 뿐만 아니라 조롱거리가 될 정도로 뻔뻔스러웠습니다.
이 사건은 기원전 13세기에 일어났는데, 시민 불복종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기 수천 년 전의 일입니다. 보편적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시프라와 푸아는 수 세기가 지나서야 명문화될 원칙, 즉 어떤 명령은 너무나 부도덕하기 때문에 누가 내리든, 불복종했을 때 어떤 처벌을 받든, 복종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본능적으로 깨달았습니다. 본문은 단순히 그 여성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양심이 있었기에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통치자의 직접적인 명령 아래에서도 살인을 저지를 수 없었던 것입니다.
파라오의 딸
그리고 출애굽기 2장에는 그에 못지않게 놀라운 또 다른 저항의 행위가 나옵니다.
산파들의 반대로 실패한 파라오는 모든 이집트인에게 구속력 있는 칙령을 내립니다. 모든 히브리인 남자 신생아는 나일강에 익사시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히브리인 어머니는 갓난아기 아들을 최대한 오랫동안 숨기다가 바구니에 담아 강에 띄우며 누군가 구해줄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희망을 품었습니다.
누군가 아기를 발견하는데, 알고 보니 파라오의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아기를 발견하고, 아기가 히브리인임을 즉시 알아차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구하기로 결심합니다. 이 반항적인 행동을 목격한 시녀들은 분명 그녀에게 위험을 경고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실제로 공주는 아이를 비밀리에 구출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학살 명령을 정면으로 어기고 공개적으로 입양하여 왕궁에서 키웁니다.
조나단 삭스 랍비가 지적했듯이, 그녀의 행동이 얼마나 중대한 의미를 지녔는지 이해하려면 "파라오의 딸"이라는 표현 대신 "히틀러의 딸"이나 "스탈린의 딸"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최고위층의 살인적인 정권을 돕기를 거부함으로써, 어둠의 한복판에서도 도덕적 용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여성들, 즉 산파들과 공주는 악에 가담하기를 거부했다는 점 외에는 공통점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역사적 선례나 정치 이론의 도움 없이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당한 법에 맞서 싸우기 위해 법을 어기고, 그 결과를 감수하기로 선택한 모든 사람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로자 파크스(Rosa Parks),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오스카 쉰들러(Oskar Schindler), 소련의 망명 거부자들(the Soviet refuseniks), 보우디치와 지하철도 운동가들(Bowditch and the Underground Railroad abolitionists), 그리고 안네 프랑크(Anne Frank)와 그녀의 가족을 숨겨준 네덜란드 부부와 같은 사람들 말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유산(Martin Luther King’s Legacy)
매년 1월이면, 미국인들은 인종 정의를 위한 시민 불복종에 헌신하여 20세기의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이 된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의 삶과 업적을 기릴 것입니다.
침례교 목사(Baptist minister)였던 킹 목사는 시프라, 푸아, 그리고 파라오의 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도덕적 용기의 유산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저서와 연설에는 성경 구절이 많이 등장하며, 그의 비폭력 저항 철학은 고대 산파들의 가르침과 같은 토대 위에 세워졌습니다. 즉, 인간의 법보다 더 높은 법이 있으며, 선량한 사람들은 때때로 순종과 정의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963년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비폭력 행진을 조직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었을 때 쓴 유명한 " 버밍엄 감옥에서 보내는 편지(Letter from Birmingham Jail) "에서 킹 목사는 시민권 시위를 금지하는 가처분 명령을 어긴 자신을 비난했던 백인 성직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는 정당한 명령과 부당한 명령의 중요한 차이점을 지적하며 "부당한 법에 불복종할 도덕적 책임이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권위에 저항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킹 목사는 진정한 시민 불복종은 처벌을 감수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부당한 법을 어기는 사람은 공개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기꺼이 처벌을 받아들이는 자세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라고 그는 썼습니다. "양심이 부당하다고 말하는 법을 어기고, 공동체의 부당함에 대한 양심을 일깨우기 위해 기꺼이 투옥이라는 처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진정으로 법에 대한 최고의 존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법이나 폭력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아니었습니다. 킹 목사는 둘 다 명백히 거부했습니다. 식당 카운터에 앉아 있던 사람들, 거리 행진을 벌이던 사람들, 버스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기기를 거부했던 사람들은 무정부주의자나 혁명가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미국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를 옹호하고, 건국자들이 깊이 다져놓은 민주주의의 위대한 뿌리로 나라를 되돌리고 있는 것이라고 킹 목사는 주장했습니다.
사실 그들은 훨씬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당대 가장 강력한 통치자 앞에 서서 "아니오"라고 말했던 이집트의 산파들에게로, 아버지의 학살 명령에 저항했던 공주에게로, 그리고 양심이 불복종을 요구할 수 있으며 그러한 불복종은 법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법의 가장 고귀한 표현임을 이해했던 역사상 최초의 사람들에게로 말입니다.
미국인들이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유산을 기리는 이 시점에서, 그의 시민 불복종에 대한 헌신이 결코 추상적이거나 편안한 것이 아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투옥과 살해 협박, 구타와 폭탄 테러를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킹 목사는 33세기 전 이집트 산파들이 믿었던 것처럼, 어떤 법은 어겨야 하고 어떤 명령은 거부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날(Martin Luther King, Jr. Day):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삶과 유산을 기리기 위해 지정된 미국 연방 공휴일로, 매년 1월 셋째 월요일입니다
보우디치 하우스(Bowditch House)는 여전히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곳에 도망자들을 숨겨준 사람들은 역사가 자신들을 어떻게 평가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알던 것은 단지 자신들이 해서는 안 될 일뿐이었습니다.
도덕적 진보는 대개 그렇게 확신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거부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양심이 금하는 것을 법이 요구할 때마다, 도덕적 진보는 바로 그러한 거부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By Jeff Jacoby (a columnist for The Boston Glo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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