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당신을 넘어뜨릴 때
이집트인들을 굴복시키고 출애굽을 촉발시킨 마지막 재앙은 장자의 죽음이었습니다. 운명의 그 밤, 모쉐는 유대 백성에게 유월절 어린양을 준비하고 저녁 내내 집 안에 머물라고 지시했습니다. 모쉐는 그들에게 “너희 집 문에 희생 제물의 피를 발라라”라고 말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 사람들을 치시려고 지나가시다가 문설주와 두 문기둥에 묻은 피를 보시고, 그 입구를 지나가시며 멸망시키는 자가 너희 집에 들어와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유월절이라는 명절이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왜 우리는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는 걸까요? 출애굽 이야기는 기적적이고 극적인 순간들로 가득한데, 만약 우리가 명절 이름을 지을 때 왜 하필 이 순간을 택했을까요? 물론 이 명절을 부르는 다른 이름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유의 축제"나 "무교병 축제" 같은 이름들이죠. 그렇다면 히브리어로 "페삭(פֶּסַח)"이라고 하는 "유월절(Paaover)"이라는 이름이 왜 영원히 우리 기억 속에 남게 된 걸까요?
입구 만들기
유월절이라는 이름은 그 명절의 진정한 주제를 잘 나타내기 때문에 선택되었습니다.
설명을 위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에게 말씀하신 아름다운 미드라시 구절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바늘구멍만 한 작은 길을 내게 만들어 주면, 내가 궁전의 문처럼 활짝 열어 주겠다.” (Midrash, Shir Hashirim Rabah 5:2).
미드라쉬는 죄나 무관심으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진 유대인이든, 단순히 창조주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자 하는 유대인이든, 하나님께 돌아오려는 모든 유대인을 언급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무리 작은 노력이라도 해보라. 그렇게만 한다면 내가 나머지는 너희가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보시다시피,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돕고자 하십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나서야 합니다.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무언가라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순간, 하나님은 우리를 끌어올려 우리 스스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었던 높이까지 올려주실 것입니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위안이 되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집트의 문제는 백성들이 그 작은 노력조차 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지만, 슬프게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주 작은 노력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육체적 차원과 정신적 차원 모두에서 사실이었다.
문자 그대로, 백성들은 완전히 지쳐 있었습니다. 모쉐가 하나님의 구원 소식을 전하러 처음 그들에게 왔을 때, 토라는 그들이 "고된 노동으로 숨이 차서" 듣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이것은 노예가 너무 깊은 억압에 갇혀 자유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심오한 심리적 감옥과 같은 상태입니다. 희망과 꿈마저 사라지고, 자유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속박에 갇힌 껍데기만 남은 인간의 모습입니다.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조하르(Zohar)는 그 백성들이 "50가지 부정의 문(gates of impurity)" 중 49 번째 문까지 타락했다고 말합니다. 수 세기 동안 그 타락한 땅에서 온갖 고통을 겪으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의 잊어버렸고, 심지어 우상 숭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집트에 살았던 유대 조상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먼저 행동하라"는 고전적인 규칙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입구를 지나가시다.
이것이 유월절의 더 깊은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입구를 지나가시리라"라는 구절에서 "입구"를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먼저 노력해야 한다고 선언하신 미드라쉬에서 "입구"를 뜻하는 단어와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토라에서 유월절 밤에 “하나님께서 그 입구를 지나가시리라”라고 말하는 것은,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특별한 예외를 두시어 “이번에는 작은 입구조차 필요 없게 하겠다. 내가 그 입구도 지나가리라”라고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힘든 일을 다 해 주셨습니다. 백성들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들을 육체적인 피로와 영적인 심연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백성들은 그럴 자격이 없었고, 아주 작은 일조차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해 그 일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를 위해 무엇이든 하실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유월절 순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가장 올바른 방법은 시도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영적으로든 삶을 개선하고 싶다면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머지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저 너무 지칠 때가 있습니다.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걸 알고, 뭔가 해야 한다는 것도 알지만, 몇 달, 몇 년이 흘러가 버린 탓에 그 무게에 짓눌려 꼼짝도 할 수 없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첫걸음조차 내딛을 수 없을 것 같이.
어쩌면 당신은 너무나 심각한 잘못을 저질러서, 상황을 바로잡을 방법이 전혀 없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이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직장 동료가 친구에게 못되게 굴면, 그들은 스스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너무나 끔찍한 일을 저질러서, 이제는 꼼짝없이 갇혀버린 듯, 아주 작은 일조차 할 수 없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끝난 걸까요? 당신은 점점 더 깊은 심연 속으로 떨어질 운명일까요?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당신을 위한 "유월절의 순간(Passover moment)"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분을 믿고, 그분께 기도하고,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어쩌면 당신은 그럴 자격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집트에 살던 유대 조상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서도 함께하실 것입니다.
By Rabbi Aharon Loschak
Art by Sefira Lightstone
This essay is based on a teaching of Reb Baruch of Mezhibuz, cited in Shem Mishmuel, Shemot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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