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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나 사이의 그대

누렁이 |2006.11.16 16:32
조회 31 |추천 0

해와 나 사이의 그대

이승하


그대 안다면서
또다시 온 밤의 이 험준한 기슭에서
내 벌거벗은 혼으로 내처 날뛰다
다리에 쥐난 마라토너처럼
털썩 주저앉고 마는 이유를

나를 미행하는 그대는
저 해가 보낸 것 은밀히
내 등뒤에서 따라오며 작은 소리로
자네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거지
이런 무모한 짓을 왜
이런 무의미한 일을 왜
매일 하느냐고 속삭이는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저 해
해의 밀사가 날이면 날마다
끈질기게도 따라다녀 내 미치겠네

그대 나를 안다면서
그대를 보낸 저 해는
나에 관한 정보를 다 안다면서
내가 미친 듯이 웃을 때
해는 동정의 눈짓을 보내고
내가 한 찬양의 말을 듣고
해는 경멸에 차 얼굴을 찌푸리지
어둠 속에 불끄고 숨죽이고 있으면
난 차라리 마음이 편해져

그대 안다면서
내 오늘도 이 험준한 밤의 기슭에서
밑 빠진 가슴에 술을 퍼붓다가
시체처럼 늘어져 잠들고 마는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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